손잡고 거닐던 우리의 첫 유럽 여행을 생각하며, 장거리 중 쓴 일기
2021년 3월 17일
내게 무슨 일이 있냐 물어보았다
표정이 안 좋은 탓이었다
이제 그만 뚝, 우리가 함께 있었던 크로아티아 여행 사진을 보라 그랬다
하늘과 해변이 채 구분되지 않는 푸르름 사이로
4시쯤 강한 햇살에 두 눈을 잔뜩 찌푸려
저렇게 시원하게도 이이잉 웃고 있지 않냐며-
당신은 그 싱그러움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랬다
수많은 타인들 속에 파묻혀서도
걸어오는 그 아장아장 팔자걸음이 귀엽다고 했다
나는 다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 저녁만 되면 저렇게
하마 같은 표정으로 하품을 하던 모습도
그립다 했다,
"저기 해지는 하늘 가운데 우리가 서 있는 절벽을 봐
정말 아름답지 않니?"
옆을 돌아보면 꾸벅꾸벅 조는 내가 있었고
그 와중에 춥다고 깨선 두꺼운 옷 주섬 주섬
뺏어 입곤 다시 잠드는 내가 있었다 했다.
옆에선 잔잔한 에드 쉬런 노래가 흘러나오고
해는 뉘엿뉘엿 그리 저물어갔다.
그래도 함께라서 좋았다고, 그날의 공기가 그립다고
그랬다.
나도 그래, 언제나 같은 마음이야
오늘은 그리운 이 날의 하늘을 생각하며
자기 전, 내가 썼던 여행 글을 다시 읽어볼게. 더 생생히 기억나도록- 이 글을 재료 삼아 다시 웃으며 잠들려 해
보고 싶은 나의 남자 친구야, 너는 나의 성냥이야
싱가포르가 항상 푹푹 찌는 여름이래도,
이리도 울적한 겨울 같은 나의 날들에
화면 가득 온 세상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비춰주니까
다정한 조각들이 모여 나의 이 건조하고 바스러진 마음을 예쁘게 밝혀줘
뒤엉켜버린 어둠 투성이에 인생이 덧없다 말해도
"아니야 소중해"라 말해줘서 고마워
함께 먹은 신촌의 어느 김치 삼겹살이 그리워
감자와 두부가 포슬포슬 뭉개진 된장찌개도 함께라면
말캉말캉 기분이 다 나아질 것 같아
부탁이야, 내가 앞으로도 넘어지려 할 때
따뜻한 존재 그대로 무게중심이 되어줘
나 역시,
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더 근사해진 사람이 될게
무난히 지난 행복에 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게
잘 자. 우리 얼른 만나자.
코로나가 하루빨리 사라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