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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 세피데의 통금시간_마슈하드, 이란

나의 비단길 이야기-19

by 현진

#59 국경의 좁은 문


20180629_092752.jpg 호텔 조식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의 국경 통과 지점인 가우단으로 향하는 길. 지도상으로는 아직 국경까지 거리가 꽤 남았지만 도로는 철조망으로 막혀있고, 차와 사람들이 빽빽하게 엉켜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차에서 일단 내렸다. 사람들의 흐름에 섞여 그들을 따라가다 보니 철조망 사이로 문이 나 있고,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좁은 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외국인인 나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친? 야폰? 까레이?"

"야 까레이!"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모여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길을 터줬다. 감사 인사를 하고 그들을 앞질러 문 앞으로 곧장 나아갔다. 문 앞에서 보초병에게 여권을 보여줬다. 엄격해 보였던 그 군인은 선선히 문을 열어주며 나를 통과시켜줬다. 여기서부터 국경까지는 민통선 비슷한 구역인 것 같았다. 개인 차량은 들어갈 수 없고, 문을 통과한 사람들을 위한 셔틀버스가 국경 사무소까지 운행한다. 나도 남들을 따라 눈치껏 줄을 서 있다가 도착한 버스에 올랐다.


에어컨은 물론, 앉을자리도 없는 데다 피난민 같이 보따리들을 짊어진 사람들로 꽉 찬 구식 버스를 타고 황량한 산길을 1시간 동안 달렸다. 창 밖을 내다봐도 국경까지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는 버스 안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를 쓰며 자꾸 시계만 바라봤다. '10분 뒤에 GPS 확인해야지... 다음 10분, 10분만 더 버텨보자' 이렇게 10분 만을 되뇌다 보니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일을 안 한다.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길래 나도 배낭을 깔고 앉아 기다렸다. 1시간이 지나고,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입술이 달싹달싹할 때쯤 사람들이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색대로 향하는 줄에 나도 섰다. 입국할 때처럼 짐을 다 열어봐서 오래 걸린다. 외국인은 나밖에 없는 듯했다. 그래서 눈에 띄었는지 경찰 한 명이 다가오더니 넌지시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머니! 달러, 유로, 마나트... 머니!"

사무실까지 따라 들어가자 눈을 찡긋하며 돈을 달라고 했다. 영어와 러시아어가 섞인 그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자기들에게 뇌물을 좀 주면 외국인인 내 짐 검사를 생략해주겠다는 말인 것 같았다. 짐 검사를 해봤자 나는 걸릴 게 없는데, 아무 말도 못 알아듣는 척을 했다. 한참을 나를 구슬렸다, 윽박질렀다 톤을 바꿔가며 얘기를 하다 내가 아무 반응도 안 보이자 책상을 꽝 치더니 가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들고 나와 다시 긴 줄 끝에 섰다.


독재국가가 으레 그렇듯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갑질이 심하다. 국경에서도 알아서 기다리라는 식으로 자리를 비워버리거나 짐 검사를 할 때도 고자세로 사람들을 대한다. 나는 외국인이라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오히려 자국민들 짐을 더 꼼꼼히 체크하는 듯했다. 결국 입국 때처럼 출국 때도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기나긴 출국 수속을 마치고 이란 국경으로 걸어갔다. 뒤돌아본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경 초소에는 역시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고, 정면의 이란 국경에는 눈을 부릅뜬 호메이니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이란 국경을 넘은 나를 맞아준 건 택시 기사들. 기사 아저씨들과의 협상 끝에 마슈하드까지 20달러로 합의를 봤다. 투르크메니스탄 쪽 국경과 마찬가지로 길가에는 아무것도 없다. 단내가 나는 차 안이 답답해서 창문을 열었더니 먼지 냄새만 가득 들어온다. 마슈하드까지는 2시간, 시내에 도착해서 기사 아저씨께 싼 호텔로 데려가 달라 부탁했다. 그의 추천대로 간 곳은 허름한 호텔. 숙박비는 하룻밤에 딱 10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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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이란에 입국하고 가장 신경이 쓰이던 것은 환전. 이란의 화폐인 리알은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가치가 매우 불안정하다. 경제 제재 이후 심해진 인플레이션 때문에 정부에서는 아예 1달러에 4만 2천 리알이라는 고정 환율을 정해버렸지만 암시장에서는 훨씬 높게 거래되는 화폐가 리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이란만큼 달러가 대접받는 곳이 없다. 나도 이란을 대비해서 달러를 가져왔기 때문에, 바꿀 곳이 필요했다. 은행에서는 정부 환율대로만 환전을 해 주기 때문에 나도 사설 환전상을 통해서 거래를 해야 했다.

호텔 리셉션을 통해 환전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구글링을 해 본 바로는 1달러에 6만 리알에서 10만 리알까지도 바꿨다는 정보를 봤다. 배가 불룩 나온 환전상 아저씨는 조수인 듯 수염이 거뭇한 내 또래의 친구를 한 명 데리고 호텔 입구에 나타났다. 우리는 계산기를 꺼내 들고 숫자로만 이루어진 대화를 했다. 아저씨는 7만을 찍어 보였고, 나는 일단 최고가인 10만을 불렀다. 몇 번 더 숫자가 오고 간 끝에, 우리는 7만 9천 리알에 합의를 봤다. 8만 정도를 내심 기대했는데, 7만 9천 리알부터 아저씨는 완강하게 '노'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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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바꾸고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친구 세피데를 만나러 갔다. 알려준 대로 지하철을 타고 나가 파르도우시 대학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마슈하드는 시아파 무슬림의 성지로 알려진 곳으로, 이란 내에서도 매우 보수적인 지역에 속한다. 외국인도 잘 없는 곳이라 쳐다보는 눈이 많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질 때쯤 나타난 세피데. 그녀의 히잡은 거의 벗겨질 듯 말 듯 뒷머리에만 살짝 얹혀있었다. 요즘 놀 줄 아는 이란 친구들은 다 이렇게 쓴다며, 자기는 무슬림도 아닌데 답답해 죽겠다며 얘기를 해왔다.


그녀를 따라 마슈하드의 랜드마크인 이맘 레자 영묘를 보러 갔다. 큰 관심이 가지 않는 탓에 '이맘 레자'가 누군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세피데에게 예의상 물어봤다. 하지만 그녀도 몰랐다.

"몰라 그냥 옛날 사람이겠지? 사람들이 시아파 이슬람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는 건 들었어."

영묘 근처는 이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성지순례객들로 붐볐다. 나는 무슬림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 제한되어 있다. 세피데는 히잡을 걸치고 있었는데, 영묘 안으로 들어가려면 전신을 덮는 차도르를 입어야 해서 입구에서 차도르를 빌렸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너른 광장이 나온다. 시아파 무슬림은 하루에 3번 기도를 하는데, 그때마다 이 넓은 광장에 카펫이 깔리고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고. 내가 갔을 때도 카펫을 한창 깔고 있었다. 그냥 계속 깔아 두면 안 되려나, 하루 3번 수백 개도 넘어 보이는 카펫을 걷고 다시 까는 사람들이 힘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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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넓은 메인 건물은 외국인도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았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유리 장식으로 뒤덮인 번쩍번쩍한 내부가 보였다. 하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시원했다는 점. 세피데와 폭신한 카펫에 앉아서 서로의 문화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세피데는 내가 얘기해주는 불교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군대에서 꿀떡을 먹으러 불교 종교행사를 갔다가 향으로 팔 지지고 불교 이름을 받은 일과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절에서 밥을 준다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근데 절 밥 맛있어?"

"음... 사실 맛있는 건 다 빼고 만든 밥이 절밥이야."


20180630_150715_HDR.jpg 영묘 내부


영묘를 나와 이것저것 먹고 보면서 마슈하드 시내를 다녔다. 커다란 바자르도 들르고,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에 오면 이런 느낌일까? 같은 물건을 파는 점포가 정말 많아서 다들 장사는 되는지 궁금했다. 이 많은 상인들을 다 먹여 살리려면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와야 할까. 상인들은 내 관심을 끌려고 니하오, 곤니치와라고 외쳐댔다. 옛날엔 일일이 '코리아! 안녕!'이라고 다 대답해줬지만 지금은 그냥 못 들은 척 지나친다. 그들도 딱히 내 반응을 바라는 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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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아파 카페에 앉아 체리 주스를 마셨다. 창 밖으로는 슬슬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 8시까지는 들어가 봐야 해, 통금 같은 거야."

"진짜 통금이 8시야? 친구들이랑 그럼 밤에는 어떻게 놀아?"

한국을 생각하고 멍청한 질문을 했다. 세피데는 굳이 그래야 하냐며, 사실 여기서 밤늦게까지 뭐 할 게 있을까라고 반문해서 할 말이 없었다.

"여기는 술도 음악도, 파티도 없어. 해가 지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 심지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 굳이 밖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야..."

수많은 통제에 대한 세피데의 얘기를 들으며 이란으로 넘어오면서부터 많은 어플들이 차단된 내 휴대폰이 떠올랐다. 여기가 점점 갑갑하게 느껴졌다.


세피데와 헤어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간식거리를 사는데, 무알콜 맥주가 있어서 사봤다. 군대에서나 먹던 건데, 역시 바보 같은 맛이었다. 이란 사람들은 이거만 마시고 어떻게 사는 거지? 하지만 세피데는 돈만 많다면 어디서 어떻게든 술을 구할 수는 있다고 했다. 미국의 금주법 시대가 생각났다.

#61 맛있게 먹기


20180630_182254.jpg 기차역 가는 길


마슈하드 기차역을 찾아가 테헤란행 기차표를 샀다. 버스와 기차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12시간 거리기 때문에 기차가 나을 것 같았다.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며 간식과 음료를 나눠주는 기차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처럼 안락했다. 객실 문을 열면 4자리가 마주 보는데, 내가 타고 남은 3자리에는 한 가족이 탔다. 영어는 단어 정도로만 말했지만 친절하신 분들이었다. 급하게 기차 시간에 맞추느라 먹을 걸 아무것도 못 사서 탔는데, 기차에서 먹어야 했던 점심과 저녁 모두 챙겨주셨다. 난에 싸 먹는 으깬 감자와 짭짤한 팝콘, 해바라기씨 같이 끊임없이 들어가는 간식들. 사실 감자 요리는 먹기 힘들었다. 감자에 치즈 가루를 넣은 것 같았는데, 너무 비렸다. 하지만 맛있는 리액션을 하면서 꿀꺽 삼켰다. 자꾸 억지로 삼키려고 하니 토할 것 같아서 물을 들이부어 씻어 내렸다. 얼굴은 웃으면서 속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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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놀랬던 점은 좌석인 줄 알았던 기차가 침대칸으로 변한다는 것.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께서 일어나더니 슥슥 좌석을 침대로 바꾸고 2층 침대를 펼쳤다. 3층짜리 딱딱한 침대 기차밖에 안 타봤는데, 2층짜리 침대 기차는 확실히 다르다. 2층에서도 앉아서 허리를 펼 수 있다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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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누워서 자다 깨다 하다 보니 테헤란에 도착했다. 시간은 밤 12시가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뜨거운 바람이 훅 불었다. 휴대폰을 켜 확인한 기온은 33도였다. 내일 낮 날씨는 어떨지 벌써부터 알 것 같았다. 늦은 밤에 택시 타는 것은 가급적 자제하려고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호스텔 주소를 보여줬다. 지도와 길을 번갈아 체크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몇 분 뒤 아무 일 없이 호스텔 입구에 내릴 수 있었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주며 기사 아저씨는 벙긋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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