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모니카의 닦달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기차 시간은 12시 40분. 하지만 그녀 덕에 역에는 12시도 전에 도착했다. 홍콩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구나. 모니카와 얘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홍콩 반환 전에 태어난 그녀는 여권이 두 개였다. 영국 여권과 홍콩 여권을 모두 가진 그녀는 필요에 따라서 유리한 쪽 여권을 쓴다며 여권들을 보여주었다.
모니카를 처음 만났을 때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 '모니카와의 여름'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 댁에 가면 먹을 수 있는 폭신한 모나카 생각이 나기도 했다. 물론 그녀는 내 자유 연상 과정 중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영화 <모니카와의 여름>
3등 칸 좌석은 역시 더웠다. 외국인인 우리를 보고 승무원이 다가와 돈을 더 내면 상위 클래스 좌석으로 옮겨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돈 안 내고 땀 흘리는 편이 낫다. 다행히 기차에는 승객이 많이 없어서 편하게 갔다. 더우면 잠도 잘 온다. 앉자마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바로 잠들어버렸다. 3시간이 금방 지나고, 우리는 부하라에 도착했다. 모니카가 어제 호스텔을 알아봐 뒀대서 같이 가기로 했다. 역을 나서는데 동양인 한 명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겉모습을 보고 일본 사람일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는데, 틀리지 않았다.
"곤니치와, 혹시 어디로 가세요?"
"아, 곤니치와. 저는 루미 호스텔로 가요."
기차역의 이와사키 상은 우리와 같은 호스텔이다.
"데와, 택시 뿜빠이... 도데스까?"
길거리에서 파는 음료수
부하라의 구도심은 꽤 작다. 나비하우즈라는 오아시스 연못을 중심으로 오래된 마드라사와 미나렛, 모스크가 오밀조밀하게 자리해있다. 호스텔에 도착해 짐을 풀어두고 이와사키, 모니카와 함께 밥을 먹으러 나비하우즈로 나갔다. 고민하다 들어간 곳은 꽤 큰 식당이었는데, 인테리어나 메뉴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느낌의 식당이었다. 이어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는데 샐러드와 빵도 같이 서빙을 했다. 해외에서 시킨 적이 없는 음식이 나오면 일단 경계를 하게 된다. 3년 전 터키에서도 한 번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에 촉이 왔다.
"우리는 이거 안 시켰는데, 혹시 이거 공짜인가요?"
선한 인상의 웨이터 아저씨는 그렇다며, '노 프로블롬'을 연발했다. 우즈베키스탄 인심이 좋네, 라며 계산서를 받아 들었을 때 우리는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갸우뚱했다. 샐러드와 빵 값이 꽤 높은 가격으로 포함되어 있었던 것.
나비하우즈
모니카는 단단히 화가 나서 웨이터 아저씨를 몰아세웠다. 아저씨는 약간 주눅이 든 것 같았다. 책임자를 불러오라는 모니카의 말에 다른 아저씨 한 분도 불려 나와 모니카 앞에서 쩔쩔맸다. 말이 잘 안 통해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요지는 '이미 영수증에 올라가서 가격을 빼주기는 힘들다, 대신에 빵을 조금 더 싸주겠다.' 정도인 것 같았다. 선뜻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빵이라도 받았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일어났다.
식당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피곤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움직여야 했다. 오늘은 한국 대 멕시코의 경기가 있는 날. 모니카와 함께 축구를 틀어주는 펍을 찾아 나섰다. 서너 군데를 돌았는데 다 티비가 없거나 월드컵 채널이 안 나온대서 반쯤 포기하고 앉아있었다.
"월드컵 틀어주는 펍 찾고 있어요? 따라오세요."
갑자기 영어가 들려와서 귀를 의심했다. 외국인인 우리가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게 이목을 끌었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와서 도와줬다. 친절하게 펍 앞까지 우리를 데려다줬고, 따라 들어가 봤더니 스크린까지 설치해둔 곳이었다. 냉큼 스크린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모니카가 카우치서핑에서 만난 친구를 초대했다. 이름은 무라드, 아직 카우치서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는 적극적으로 부하라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손흥민 선수의 환상적인 감아 차기 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패배로 경기는 마무리되고, 우리는 무라드의 제안에 따라 부하라 구시가지의 야경을 보러 그를 따라나섰다. 부하라는 실크로드 시대의 도시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마드라사와 모스크 사이를 걸어 다녔다. 사마르칸트와는 달리 조명이 따로 설치가 안 된 곳이 많았지만, 오늘 같이 달이 밝은 날에는 조명이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다.
점심을 늦게 먹은 탓에 저녁을 걸렀는데, 호스텔에 돌아오니 배가 고팠다. 하지만 12시가 넘은 시간이라 문을 연 구멍가게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나한테 라면이 하나 있긴 한데, 끓여먹을 방법이 있을까?"
호스텔의 주방을 살폈다. 가스레인지가 있기는 한데, 가스 밸브를 열고 성냥으로 불을 켜는 지난 세기의 물건이다. 한번 시도해보기로 하고 모니카가 가스 밸브를 여는 동시에 내가 성냥을 그었다. 불 피우기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하지만 가스 밸브 앞에서 성냥을 긋는 순간 내 손등 위로 불꽃이 확 일었다. 오늘 밤 라면은 생라면이구나.
#54 칭기즈칸의 모자를 벗긴 탑
"어제 만났던 무라드 기억나지. 오늘도 시내 구경을 시켜준다는데, 같이 갈래?"
모니카를 따라나서 나비 하우즈에서 무라드를 만났다. 무라드는 부하라에서는 플로프를 먹어야 한다며 플로프 식당에 우리를 데려갔다. 우리에게 익숙한 필라프와 발음이 비슷한 플로프는 중앙아시아식 볶음밥이다. 기름기가 자글자글 흐르는 부하라식 플로프를 앞에 두고 사마르칸트식 플로프와 무엇이 다른지 무라드의 장황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밥 이야기를 하다가 역사 이야기까지 나와버렸지만,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는 지금은 같은 나라지만 꽤 다른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 부하라는 20세기 초까지 존속했던 독립국인 부하라 칸국의 실질적 수도로, 사마르칸트와는 전혀 별개의 나라였던 것. 그래서 우즈베크 인보다는 타지크 인이 많이 살고, 제1 언어 또한 우즈베크어가 아닌 타지크어다. 물론 러시아 말도 여전히 널리 쓰인다.
"아, 왜 말을 못 알아들어. 일단 콜라부터 달라고, 콜라, 콜라!"
우리가 앉은 테이블 뒤로 한국인 아저씨와 아주머니 세 분이 오셔서 자리했는데, 들려오는 한국말을 듣기가 불편했다. 종업원을 불러 한국말로 주문을 하려는 것도 모자라 대놓고 하대하는 그 사람들. 왜 우즈베키스탄에 와서 꾸역꾸역 한국말로 주문하는지도 이해가 안 됐지만 심지어 못 알아듣는다고 반말로 대하는 모습에 내가 부끄러웠다.
무라드는 우리의 가이드를 자처했다. 울룩벡 마드라사나 칼론 미나렛 같은 구시가지의 명소들을 주욱 훑어보며 설명을 들었다.
"아니, 이미 알고 있는 얘기였어? 너네가 좋아할 줄 알고 이제 막 칭기즈칸 얘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아쉬워하는 그 대신 모니카에게 칭기즈칸의 탑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칭기즈칸이 전투 끝에 부하라에 입성하고, 모든 건물을 파괴하라 명령했다. 그리고 이 탑 앞을 지나며 탑의 꼭대기를 보려고 고개를 젖혔다. 그 순간 모자가 땅에 떨어졌고, 그는 모자를 주우려 허리를 숙였다. 아차 싶었던 그는 자기를 인사시킨 탑은 이게 처음이니, 이 탑만은 부수지 말라고 명령했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칼론 미나렛만큼은 정복자의 파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칭기즈칸의 시점 아닐까
구시가지는 걸어서 돌아볼 수 있기 편하게 보행자 전용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이 사마르칸트보다 부하라를 더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구시가지를 다 보고 빠져나오면 마지막으로 거대한 요새가 보인다. '아르크'라고 불리는 곳으로 옛날 부하라 칸국의 왕족들이 살았던 성이다. 하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내부가 꾸며져 있다. 박물관에는 사진이 많아서 좋았다. 나는 옛날 사진 보는 걸 좋아한다. 상상만으로 옛날 모습을 그려보기 힘들 때 옛날 사진을 보면 훨씬 수월하게 그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둘러싸고 벌인 식민지 쟁탈전인 이른바 ‘Great game’이 시작될 무렵 부하라 칸국의 마지막 아미르의 사진들과 그 당시의 풍경들. 몰락한 왕조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씁쓸했던 조선의 말년이 생각나기도 했다.
더위와 시티 투어에 지쳐버린 우리는 호스텔로 살짝 돌아와 물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저녁 시간에 맞춰 호스텔로 우리를 다시 데리러 온 무라드와 함께 저녁을 해 먹었다. 오늘은 무라드가 가스불을 켜줬다. 모니카가 토마토 계란 볶음을 준비할 동안, 나는 라면을 끓였다. 러시아 라면은 'Big Bon'이라는 브랜드가 맛있다. 물론 널리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의 도시락 라면도 중앙아시아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
밥을 다 먹고 어제 갔던 펍으로 축구를 보러 나갔다. 오늘은 일본 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사쿠라 호스텔에서 만났던 사오리와 사마르칸트에서 만난 암란은 지금 같은 경기장에서 축구를 보고 있겠지? 일본이 극적인 무승부를 거두고 경기가 끝났다. 나와 무라드는 이제 일어나려는데, 모니카는 축구를 한 게임 더 본다며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무라드는 가을이 되면 이탈리아로 공부하러 떠난다며, 그때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으면 보자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55 책을 버리며
여행하며 짐을 최대한 가볍게 싸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2시간을 지고 다니면 어깨가 당길 정도로 아프다. 이제 중앙아시아 여행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던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을 호스텔 책꽂이에 두었다. 왠지 소중한 것을 떠나보내는 아련한 기분이 들어, 속표지에 다음에 루미 호스텔에 들어와 이 책을 집어 들 여행자에게 남기는 짤막한 편지를 적어두었다.
이미 누가 버리고 간 '감동의 습관'
'
루미 호스텔의 샤워실은 충격적이다. 샤워실 한 구석에 나무로 불을 때는 가마솥 같이 생긴 온수 보일러가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그리고 그 끓인 물을 찬물과 섞어 온수로 사용하는 식이다. 혹시 온도 조절이 잘 안되면 어쩌나 싶어서 찬물로만 샤워를 했다. 비단 샤워실뿐 만 아니라, 호스텔 프런트에서 오버 부킹을 받아 잠도 간이침대에서 자야 했다. 이런 상황인데 간밤의 모기 때문에 잠까지 설치고 나니, 더 이상 여기 있기가 싫었다. 남은 2박을 취소하고 돈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승수 형이 추천해준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깔끔한 비즈니스호텔이었는데, 억울하게도 루미 호스텔의 8인 실과 가격이 비슷했다. 단점은 구시가지를 한참 벗어난 변두리에 있었다는 것 정도.
하지만 나는 부하라 관광에 별로 미련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방을 쓴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요즘 혼자 방을 쓴 적이 거의 없다.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두고 슈퍼에서 사 온 감자칩을 집어먹으며 영화를 봤다. 빈둥대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저녁 먹을 때가 되자 슬슬 밖으로 나가 호스텔 근처의 대중식당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즈비니쩨 제뾰시카, 삐라 빠좔루이스타." (저기요, 맥주 부탁할게요)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뭔지도 모르는 메뉴판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척을 했다. 한참을 보다 만만한 라그만을 시켜먹었다.
#56 원 데이 모어
날이 식기를 기다려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초르 미나르를 부탁드렸다. 구시가지 중심지와는 거리가 있어서 그저께는 못 왔지만, 동글동글한 지붕이 귀여운 건물을 보러 다시 시내로 나왔다. 건물을 둘러싼 네 개의 낮은 탑 때문인지 멀리서 보면 네 발 짐승을 거꾸로 세워둔 것 같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곳은 시내의 관광 명소와 비교해 조용한 편이다. 관광객은 한 명도 없었고, 건물도 관리가 부실해서 외벽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물론 그 나름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저러다 건물이 폭삭 내려앉으면 어쩌나, 하는 아슬아슬함도 같이 느낄 수 있다.
건물을 보고 나오는 길에 'Bello Italia'라는 이탈리아 식당을 보고 홀린 듯 들어가 버렸다. 이름과 컨셉부터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다.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라그만이나 플로프는 질리도록 많이 먹었다. 메뉴판의 파스타와 피자, 반가운 이름들이다. 볼로네제 파스타와 마늘 바게트, 맥주를 주문했다. 생각만큼 비싸지 않아 안심했는데, 알고 보니 파스타 크기가 사발면보다 작았다.
바게트로 소스를 싹싹 닦아 배를 채우고 호텔로 걸어 돌아왔다. 벌써부터 발걸음이 무겁다. 내일은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떠나는 날이기 때문에. 어떤 곳인지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서 걱정만 한가득이다. 비자 때문에 그렇게 속을 썩였는데, 입국해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