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슈케크로 돌아가는 마슈르카 안, 기사 아저씨가 차를 거칠게 몰았다. 낡은 도요타 승합차에는 안전벨트도 없어서 차가 크게 흔들릴 때마다 움찔움찔했다. 단지 이 아저씨뿐 만 아니라, 이곳은 전반적으로 운전이 다들 험하다. 길도 좁은데, 서로 추월하려고 아슬아슬하게 중앙선을 넘나 든다.
비슈케크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메흐메드를 기다렸다. 메흐메드도 방학 동안 터키로 돌아간다며 알마티에서 넘어와 비슈케크의 자취방 짐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메르하바 메흐메드, 그런데 나 티켓 사는 것부터 좀 도와줘"
알마티를 떠난 후 3주 만에 다시 만난 메흐메드를 다짜고짜 이끌고 매표소로 갔다. 러시아어가 유창한 메흐메드는 어렵지 않게 내 손에 내일 저녁에 출발하는 비슈케크발 타슈켄트행 버스표를 쥐어주었다.
(비슈케크-타슈켄트 버스 : 18년 5월부터 생긴 노선이다.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어 타라즈, 심켄트를 거쳐 타슈켄트 버스터미널로 바로 들어가는 버스. 가격은 1000솜)
타슈켄트행 버스표
아유미와 이전에 갔었던 치킨스타에 메흐메드를 데리고 갔다. 현지 음식인 라그만과 만티에 좀 물려버렸다. 비빔밥과 김밥을 시켜먹었다. 김밥에 참기름만 반들반들하게 발려있으면 진짜 완벽할텐데. 밥을 다 먹고 사쿠라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러 갔다. 현관 비밀번호를 아직 기억하고 있어서 문을 따고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주인아저씨도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내가 묵었던 2층 6인실 방으로 짐을 지고 올라갔다. 방에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 명이 낯이 익었다.
"어, 카즈요시상! 아직 있었네요"
"현진상 오랜만이야! 이식쿨 호수는 어땠어요?"
그는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호스텔을 찾았다며, 여기서 느긋하게 쉬다 갈 작정인 듯했다. 나머지 한 명은 사오리, 여기서 일주일간 러시아어 단기강좌를 듣고 다음 주엔 월드컵을 보러 간다 했다. 일본 팀의 표를 다 사놨다며, 혹시 몰라서 16강전 표도 사놨다 했다. '돈을 버린 게 아닐까'라고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비가 내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쳤다. 메흐메드를 따라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자기가 좋아하는 펍에 오늘 밴드 공연도 한다며. 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메트로 펍'이란 곳이었는데, 꽤 비싼 곳이었다. 하이네켄 한 병에 3천 원. 우리나라의 반값이긴 하지만 이곳 물가를 생각했을 때 왠지 억울했다. 맥주 한 병만 시키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공연을 기다렸다. 메흐메드는 저번 주에 알마티에서 만난 러시아 누나와의 관계에 대해 상담을 하고 싶어 했다. 인스타그램 채팅창을 보여주며 그간 나눈 대화들을 요약해 주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공연은 재밌었다. 러시아 노래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영어 노래도 섞어주며. 보컬 아저씨가 노래를 잘했다. 12시를 넘기면서까지 공연은 계속 이어졌고, 지친 나는 메흐메드에게 이제 들어가야겠다고 말을 했다. 우리는 펍을 나와 각자의 갈 곳으로 돌아갔다.
"친구, 나도 다음 주에는 터키로 돌아가. 니가 다음 달에 터키에 오면 진심으로 내 고향을 방문해줬으면 좋겠어. 카흐라만마라쉬에 오면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면 돼. 꼭 오길 바랄게!"
나는 당연히 고마운 그의 초대에 응했다. 우리는 아마 한 달 뒤에 다시 보겠지.
#46 카즈요시의 인연의 끈
중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값싼 볶음밥을 시켰는데, 접시에 수북하게 쌓여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짜장 소스나 짬뽕 국물을 안 끼워줘서 퍽퍽했다. 그래도 이 가격에 이 정도 양이라면 학교 앞에 있다면 매일 갈 텐데, 생각했다. 갑자기 학교 앞에 있던 자주 가던 반점의 짜장면이 그리웠다.
밥을 먹고 호스텔 안마당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버스 시간은 저녁 7시 반이라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렇다고 어디 가볼 마음도 안 들고. 나와 비슷한 마음인 듯 보이는 카즈요시도 평상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카즈요시, 엠마네 가족 알아요? 딸 셋이랑 여행하는 프랑스인 가족"
"당연히 알지, 이 호스텔에서 만났어. 너는 어떻게 알아?"
나탈리가 여기서 묵었을 때 카즈요시랑 만났었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게 생각나서 카즈요시에게 물어봤다. 알고 보니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였다. 중국에서부터 그들을 만났다는 내 얘기를 듣고 그는 놀라워했다.
"우리는 모두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어. 그래서 우리의 끈 안에 나탈리가 있고, 너가 있고, 내가 있는 거야. 여행하며 새로운 인연을 만날 때마다 짧은 실을 이어달라고 부탁하는데, 너에게도 부탁해도 될까?"
이미 자전거로 아시아를 여행한 그의 인연의 끈은 꽤 길게 이어져 있었다. 붉은 실을 받아 들고 흰색의 실 옆에 살짝 나의 인연을 이었다. 물어보니 흰색은 사오리의 끈이었다. 저 많은 실 안에 히로의 실이, 나탈리의 실이, 내가 모르지만 알 지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실이 뒤엉켜 있겠지.
타슈켄트행 버스는 정시에 터미널을 출발했다. 서너 시간을 달려 카자흐스탄 국경에 도착했고, 카자흐스탄 입국심사를 받았다. 잠깐 지나가는 건데 입국카드 쓰고 입국심사대 앞에 서있으니 조금 귀찮았다. 국경을 넘을 때 긴장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심사대 앞에서 줄을 서 있는데 뒤에서 한국말이 들려서 깜짝 놀랐다. 여행하면서 한국인 거의 못 봤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계셨다.
"아, 여행하시는구나. 저희는 여행은 아니고 타슈켄트에 살아요. 잠깐 비슈케크에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에요."
국경을 통과해 다시 돌아온 버스 안에서 루나 아주머니께서 빵을 나눠주셨다.
"타슈켄트까지 가세요? 괜찮으면 타슈켄트에서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오랫동안 한국 음식을 못 먹었을 텐데,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만들어줄게요."
카자흐스탄 남부 초원을 달리는 길은 고요했다. 가로등도, 휴게소도 없이 깜깜한 우주 속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휴게소 대신 도로변에 간이 화장실이 나오면 버스가 멈췄다. 나도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갔다. 창문도 없는 한 칸짜리 푸세식 화장실 내부는 블랙홀 같았다. 몸의 모든 감각을 닫고 볼일을 후다닥 끝마쳤다. 버스에 다시 타려는데, 살짝 하늘을 올려다보다 흠칫 놀랐다. 밤하늘에는 별이 징그러울 만큼 촘촘히 박혀있었다. 맨눈으로 보이는 별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닫혀있던 하늘이 갑자기 먼 우주와 이어진 것 같았다. 옛날 사람들은 항상 이런 밤하늘을 봤겠지, 별자리를 만들고,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게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7 한국인의 정(情)
무릎이 저린다. 엉덩이도 아프다. 옆자리에 앉은 커다란 러시아 아주머니 때문인지 온몸이 불편하다.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졸다 살짝 깨서 시계를 보면 겨우 1시간 지나있다. 마음속으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긴긴밤이 지나고, 날이 밝고 나서야 카자흐-우즈베크 국경에 도착했다. 7시 정도였나,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국경은 이미 붐비고 있었다. 아니, 붐비는 정도가 아니라 꽉 차있었다. 국경 앞 수백 미터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빽빽하게 줄을 서 있었다. 루나 아주머니께서는 우즈베키스탄보다 관세가 저렴한 카자흐스탄에서 사는 편이 훨씬 싸다며, 그래서 저기 저 사람들이 다들 등에 냉장고를 지고 있다고 하셨다.
간신히 국경을 넘은 냉장고들
우즈베키스탄의 입국 심사에 대해서는 숱하게 들었기 때문에 더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여행자의 짐을 다 풀고, 노트북과 휴대폰의 사진도 다 체크하고, 책이라도 나오면 무슨 책인지 꼬치꼬치 캐묻는다며... 제출해야 하는 세관신고서도 얼마나 복잡해 보이는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가방의 지퍼를 열 일은 없었다. 말 많던 입국카드도 세관신고서도 없었다. 여느 국경처럼 엑스레이 검색대를 한번 쓱 통과하고 심사대에 서면 도장을 시원하게 찍어줬다.
"원래 우즈베키스탄 입국 심사가 좀 복잡한 편 아닌가요?"
"네 원래 그랬는데 올해부터 외국 여행객 유치의 한 방법으로 심사를 많이 간소화시켰어요. 저희 같은 사람들은 훨씬 편해졌죠."
루나 아주머니께 여쭤봤더니 올해부터 바뀌었다고 대답해주셨다. 아유미가 며칠 앞서 우즈베키스탄 국경을 통과하고 별 문제없었다고 연락을 해줬는데, 그녀가 말한 그대로였다.
"숙소가 타슈켄트 어디예요? 우리도 집에 가려면 택시 타야 하는데 같이 타요. 숙소 앞까지 데려다줄게. 여기 외국인이 택시 잘못 타면 바가지 쓰기 쉬워요."
루나 아주머니께서 택시 기사와 흥정을 했다. 그렇게 차 몇 대를 보내고, 합의점을 찾으신 듯 짐을 실었다. 차를 타고 가며 아주머니는 재차 초대를 하셨다.
"남편은 여기서 자동차 회사 현지 파견근무 중인데, 나도 소일거리로 한국어 과외를 하고 있어요. 이따 오후에 학생들이 공부하러 올 텐데, 현진 씨도 와서 같이 한국 음식도 먹고 학생들한테 이런저런 얘기도 해줘요. 여기는 내 번호랑 주소, 까먹지 말고!"
아주머니 덕분에 택시까지 얻어 타고 호스텔까지 쉽게 찾아왔다. 그런데 지금 객실이 만원이라 조기 체크인이 안된다며, 체크 아웃 시간이 되어 투숙객들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댔다. 로비에 멍하게 앉아있는데, 한국인 두 사람이 지나갔다.
호스텔 입구
"혹시 한국인이세요?"
평소에는 멍청한 질문이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꽤 반갑게 들리는 말이다. 투루판 이후 처음 만나는 한국인 여행객이다. 한국말을 오랜만에 쓰니 발음이 조금 새는 느낌이다. 승수 형과 관복 형. 나와 마찬가지로 4월에 출발해 세계일주 중인 형들이었다. 형들도 체크인을 못해서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그동안 환전도 하고 기차표도 미리 사놓자며 같이 나가기로 했다.
우즈베키스탄은 화폐 단위가 크다. 은행에 들러 100달러를 내밀었더니 76만 8천숨으로 바꿔줬다. 지폐 다발을 받으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기차역에 가서 사마르칸트행 기차표를 예매했더니 5만숨이 훅 나갔다. 쓸데없이 화폐 단위가 너무 커서 돈을 가지고 다니기도 불편했고 가게에서 돈을 셀 때도 힘들었다. 끝에 0을 세 개는 떼야 정상적인 화폐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타슈켄트 기차역
형들과 시장도 가고, 밥도 먹었다. 야간 버스를 타고 온터라 피곤했지만 잘 돌아다녔다. 키르기스스탄은 고산지대라 서늘했는데, 국경을 넘어오자마자 온도계가 35도를 가리킨다. 이제 긴팔 티셔츠들은 넣어둬야 할 것 같다. 체크인 시간이 지나 들어와 샤워를 했다. 경계가 모호한 어제부터 이어진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진다. 오늘은 이만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루나 아주머니께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어, 현진 학생 잘 쉬었어요? 지금 수업 마치고 학생들이랑 김밥 싸고 있는데, 빨리 와요!"
어찌어찌 적어주신 주소로 아파트를 찾아가니 아주머니의 학생 한 명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안뇽하쎄요!"
타슈켄트 지하철
찾아간 집에는 학생들과 아주머니, 아저씨도 계셨다. 아저씨는 '빼빼 가족'이야기를 하시며 세계일주 블로그를 운영하는 가족도 타슈켄트에서 아저씨네 공장을 찾아와 자동차를 정비하고 갔다고 하셨다. 나도 여행을 준비하며 그 블로그를 참고했기 때문에, 반갑기도 하고 신기했다.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의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혼자 여행해요? 그런데 타슈켄트는 왜 왔어요, 허허 여기는 별로 볼 게 없어요. 차라리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히바 같은 유적지로 빨리 넘어가요. 그리고 소매치기, 바가지 조심하고. 외국인이 얼마 없다 보니 외국인들은 다들 돈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다들 착하지만, 만에 하나 나쁜 마음을 먹고 노린다면 학생만 힘들어지잖아요? 조심해서 나쁠 것 없어요."
아저씨께서는 밥을 먹으며 이것저것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면서 주의할 점을 알려주셨다. 식탁에 같이 앉아있던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나에게 궁금한 점이 많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이나 내 여행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다들 한국에서의 취업과 진학을 목표로 한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에게 한국은 꿈이었다. 지금 이 공간에는 같이 앉아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할 수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에 오면 도와주겠다며 내 번호를 가르쳐주는 일 밖에 없었다. 까닭 없는 그들의 호의가 고마웠다.
밥을 다 먹고 후식으로 과일과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너무 배불렀다. 이제 일어나려고 하니 아주머니께서 김밥이며 김치, 과일과 어제 만드셨다고 닭죽까지 싸주셨다. 그리고 약은 챙겨 왔냐고, 두통약과 파스 같은 비상약까지 이것저것 또 한 보따리 챙겨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쇼핑백에 담아오는데 외갓집이라도 다녀온 기분이었다.
호스텔로 돌아가 형들 방문을 두드렸다.
"형 뭐해요? 제가 김밥이랑 김치 좀 얻어왔어요!"
"야 대박이다 진짜. 우리는 너가 나간 사이에 보드카 사놨거든, 얼른 들어와! 같이 먹자."
얻어온 음식들을 꺼내놓자 형들은 입맛을 다셨다. 컵라면과 과일까지 한가득 술상을 펼쳐놓고 술을 마셨다. 주거니 받거니 보드카 반 병을 비워내고, 잠깐 바람을 쐬러 안마당에 승수 형과 같이 나갔다.
이미 호스텔 안마당에도 떠들썩한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아침에 로비에서 만난 독일 형들과 잉글랜드인 마틸다, 러시아 누나인 스베틀라냐와 호스텔 스텝들까지. 이미 취한 그들은 새로운 사람들인 우리를 보자마자 빨리 앉으라며 성화였다. 우리도 마시다 남은 보드카를 가지고 나와 자리에 꼈다.
"술은 많아. 보드카, 와인, 맥주 종류별로 있거든, 마시고 싶은 걸로 마셔. 연초, 물담배 다 있으니까 이따 피워도 좋아!"
러시아인들은 '다바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즈다로뱌'(건배)라는 단어가 있지만, '다바이'(어서)를 더 자주 쓰는 듯하다. 스베틀라냐는 연신 '다바이'를 외치며 술잔을 재촉했다. 독일 형들이 술이 좀 들어가더니 안마당에 있는 풀장에 뛰어들었다.
"빨리 다들 들어와!"
술 마시고 수영하면 안 되는데, 에라 모르겠다. 나와 승수 형도 티셔츠만 벗어두고 뛰어들었다. 팔다리가 마음만큼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직은 물이 차다. 덜덜 떨며 물에서 나왔더니 호스텔 스텝인 스베틀라냐가 수건을 준비해줬다. 흰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머리를 닦았다. 스베타는 내가 머리를 닦는 모습을 옆에 앉아서 지켜봤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48 안개의 하루
스베틀라냐의 아파트에서 정오가 돼서야 일어났다. 머리가 어지럽다. 변기를 붙잡고 어젯밤 먹은 모든 것을 토해냈다. 쓴 침을 삼켰지만 목이 말라 유리잔에 미지근한 수돗물을 받아마셨다. 다시 정신을 차린 건 오후 늦게.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온 스베타가 건넨 아이스티를 받아 마시고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제서야 알았다. 휴대폰과 지갑이 없다.
급하게 머릿속을 더듬었다. 이그러진 기억은 안개처럼 뿌옇기만 했다. 술을 더 마시러 안마당에 나오기 전 승수 형의 방에 놔두고 왔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당장 호스텔로 돌아가 내 추리를 확인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호스텔로 돌아갈 돈이 없다.
"스베타, 나 호스텔까지 돌아갈 택시비가 없어. 혹시 빌려주면 내일 꼭 갚을게."
아쉬운 대로 스베틀라냐에게 손을 벌렸다. 그녀는 흔쾌히 콜택시를 부르고, 택시비를 넉넉하게 쥐어줬다.
"돈은 안 갚아도 돼. 호스텔에 도착하면 연락해, 이건 내 번호야."
흔들리는 택시 안에서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한 채 포스트잇에 그녀가 적어준 호스텔 주소와 번호를 꼭 쥐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야 이 새꺄, 너 진짜 죽을래? 애가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잖아, 폰이랑 지갑도 다 버리고!"
호스텔에 들어서자 바로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승수 형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형들은 오늘 밤 기차를 타고 부하라로 떠나는데, 내가 그전까지 안 오면 기차까지 미뤄야 하나 생각했다며 걱정해주셨다. 그러면서 내 휴대폰과 지갑을 건네주었다.
"너 진짜 간수 잘해라, 여행하다 한꺼번에 폰이랑 지갑까지 잃어버리면 답도 없어."
"됐고 밥이나 먹자. 너가 먹을 것까지 생각하고 많이 샀으니까 입맛 없어도 좀 먹어."
관복 형은 일식당에서 사 온 볶음 우동과 샐러드, 롤을 거실 식탁 위에 펼쳤다. 여전히 입맛은 썼지만, 샐러드 속 방울토마토를 깨작깨작 집어먹었다.
형들이 미리 텔레비전 앞자리를 잡아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나조차 까먹고 있었지만, 오늘은 한국과 스웨덴의 월드컵 첫 경기가 있는 날이다. 보는 둥 마는 둥 지루했던 경기가 끝나고,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텔레비전 앞에 모여서 축구 이야기를 했다. 승수 형과 관복 형은 기차 시간에 맞춰 길을 나섰다. 나는 내일 아침 기차로 사마르칸트로 떠난다. 형들은 먼저 부하라를 들러 하루를 보내고 사마르칸트로 넘어온다며 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