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단길 이야기-18
#57 나와 쇼흐라트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방문을 나서기가 내키지가 않는다. 모험심이 부족한 탓인지, 항상 국경을 넘는 날이면 찝찝한 기분이 먼저 든다. 배낭을 제대로 쌌는지 몇 번이나 확인을 했다. 혼자 시작한 여행이지만, 이런 날이면 옆에 누군가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호텔 프런트에 택시를 잡아달라고 부탁하고 짐을 챙겨 내려왔다. 파라브 국경이라고 말하니 기사 아저씨가 몇 번이나 히바가 아니라 파라브냐고 확인을 했다. 2시간 걸려 도착한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사이의 파라브 국경은 한산했다. 듣던 대로 대부분 여행자들은 히바를 거쳐 다쇼구즈 국경을 넘기 때문인 것 같다. 으레 국경 초소 앞에서 여행자를 기다리는 환전상도 한 명 밖에 없었다. 남은 우즈베키스탄 숨을 투르크메니스탄 마나트로 바꿨다. 환율이 어떤지도 모르겠지만, 큰돈이 아니라 주는 대로 받았다. 우즈베키스탄 출국은 입국과 마찬가지로 수월했다.
"Have a nice day"
계급장이 번쩍번쩍한 제복을 입은 국경 초소의 군인은 같이 내민 숙박 등록증은 보지도 않고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즈베키스탄 측 출입국 사무소를 통과해 계속 길을 따라 걸었다. 마지막 초소에서 여권 체크를 받고 군인이 문을 열어줬다. 배낭을 짊어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면서 투르크메니스탄 국경의 첫 번째 체크포인트에 도착했다. 흙바닥의 먼지가 풀풀 날리는 초라한 초소에는 올리브색 군복을 입은 세 명의 초병이 지키고 있었다. 여권을 보여주고 한참을 기다렸다. 비자를 들여다보며 의논을 하다 러시아어로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야 니옛 즈나유 루스키" (러시아어 몰라요)
낡은 소총을 어깨 위로 둘러멘 병사는 '쯧'하고 혀를 한번 차고는 알아서 내 여권을 보고 몇 가지를 장부에 슥슥 썼다.
군인들이 철조망 문을 통과시켜주고 초소 뒤편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 있으니 다마스 한 대가 왔다. 나보다 앞서 국경을 넘은 아주머니 두 분이 1마나트를 기사에게 내는 걸 보고 나도 따라서 냈다. 미리 마나트를 바꿔 둔 내 판단을 스스로 칭찬했다. 출입국 사무소까지 다마스를 타는 건 의무인 듯했고, 군사 구역을 걸어서 통과하는 건 허용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도로는 포장도 안 돼있고, 창문 밖으로 본 국경은 매우 황량했다. 도착한 출입국 사무소 외벽에는 이 나라 대통령 사진이 붙어있었다. 기이한 독재자였던 전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집권한 사람이다. 건물 벽에 자기 사진 붙이기 좋아하는 지도자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검문소에서는 우선 아주머니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 사무실에 들어가 입국신고서를 받아 작성했다. 그리고 이어진 입국심사. 나는 외국인이라 입국세 14달러를 또 내야 했다. 입국심사대에는 직원이 있다 없다 해서 꽤 오래 기다렸다. 사람들이 새치기를 많이 한다. 입국심사대에서부터 질서가 안 지켜지는 나라는 처음이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면 짐 검사를 하는데, 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다 끄집어내 안에 뭐가 들었는지 살펴본다. 일이 많은데도 공무원들이 일을 느긋하게 처리해서 모든 게 오래 걸린다. 비자가 한 달만에 나온 이유를 알 것 같다.
국경을 통과하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국경에서 만난 아주머니 두 분이 택시를 잡는 것 같아서 나도 손짓 발짓으로 꼈다. 그렇게 꼽사리를 껴서 택시를 타고 국경 도시인 투르크메나바트로 향했다. 국경에서 도시까지는 30분 정도 거리.
"노 머니, 머니 익스체인지"
다행히 영어를 조금 알아듣는 택시기사에게 환전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환전상을 소개해줬다. 은행에서 환전하지 말고 암시장 환율로 하는 게 무조건 이득이라며, 그는 으슥한 아파트 지하로 나를 데려가 잠긴 문을 두드렸다. 혹시라도 갱스터가 튀어나와 싹 털어가면 어쩌나, 내려왔던 계단을 곁눈질하며 나름의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인상 좋은 후덕한 아저씨가 나왔다. 손에 침을 발라 꼼꼼하게 돈을 세며 환전을 해줬는데, 역시 은행보다 달러 환율이 훨씬 좋았다. 마나트 다발을 손에 쥐니 뿌듯했다.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겼다.
환전을 하고 도착한 기차역. 매표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여기 경찰이 내 친군데, 그 친구한테 달러를 좀 주면 표를 빨리 끊을 수도 있어. 어때?"
"음... 괜찮아. 나는 그냥 맨 뒤에 가서 줄 서는 게 나은 것 같아."
꺼림칙한 뒷거래는 사절이다. 그러자 그는 이제 가보겠다며, 론리플래닛에서 들었던 가격의 3배 정도를 택시비로 불렀다.
"뭐라고? 내가 원래 가격을 대충 들었는데, 너무 비싸잖아."
"맞아. 하지만 내가 너 환전상도 소개해주고, 기차표 사는 것도 도와주려 했잖아. 나한테 조금 더 얹어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나에게 도움을 준 것에 대해 일종의 수수료를 얹었다며, 오히려 야박하게 구는 쪽은 내 쪽이라는 듯 얘기를 해왔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난 내 또래의 택시기사가 호의에서 나를 도와준 줄로만 알았는데, 다 장사였다니. 호의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게 나에게는 낯설었다. 내 기준에서는 의아한 논리였지만, 너무 당당하게 요구해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 덕을 사실 보긴 했으니까.
"중궈런?" (중국인?)
찝찝한 기분으로 매표소 줄을 서 있는데 앞사람이 말을 걸었다. 갑자기 중국어가 들려서 당황스러웠다.
"니옛, 야 까레이." (아니, 나 한국인이야)
러시아말로 대답했더니 중국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인사를 했다. 친구의 이름은 쇼흐라트. 중국에서 공부를 했고, 지금은 여기 무역회사에서 일한다며 고향에 잠깐 돌아갈 일이 있어 아시가바트를 거쳐 카스피해 연안의 항구도시 투르크멘바쉬로 간다고 했다. 아슈하바트까지 같이 갈 길동무를 만나서 다행이었다.
새로 만난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차례를 기다렸는데, 줄이 정말 안 줄어들었다. 창구의 직원들은 자주 자리를 비우고 나가버리고, 국경처럼 일도 느릿하게 처리했다. 거기다 새치기도 얼마나 들 하는지.
"여기는 슬로우스탄이야. 모든 게 다 이 모양이야. 빨리 그냥 이 엿 같은 나라에서 떠나는 게 좋을 거야. 나도 우리나라가 정말 싫어."
줄어들지 않는 줄에서 기다리기가 힘들었지만, 쇼흐라트도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매표소 줄에서만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다행히 아슈하바트로 가는 야간열차의 표를 끊을 수 있었다.
3시간 남은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배낭을 안고 플랫폼 구석에 앉아서 쪽잠을 잤다. 볼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운 쇼흐라트는 기차 시간에 맞춰 돌아와 나를 깨웠다. 기차는 중국에서 탄 3층 침대 기차와 구조가 비슷했다. 딱딱한 침대칸. 하필 또 맨 위칸이라 난간을 붙잡고 원숭이처럼 기어 올라갔다. 중국은 그래도 침대 시트랑 이불보는 다 준비해주는데, 여기는 승무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시트를 받아서 자기가 깔아야 한다. 이불보도 그렇고. 귀찮아서 이불보를 몸 위에 얹고 그 위에 담요를 덮었다. 벼룩 같은 건 없겠지...
"투르크메니스탄은 사실 답이 없어. 경찰과 공직자들은 뇌물 받을 생각만 하고, 일자리는 없고. 설사 일자리를 얻어도 월급이 터무니없이 낮아. 나는 외국으로 일하러 가고 싶은데, 마나트는 매우 불안정한 화폐라 외환 거래를 하기도 너무 힘들어. 내 월급은 마나트로 나오는데, 어떻게 달러로 바꿔서 외국으로 가겠어."
새벽에 쇼흐라트와 복도의 간이 의자에 앉아 그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인 그는 이미 결혼도 해서 아내와 2살 난 아들이 있었다.
"돈 문제뿐만 아니라 아내와 다른 가족들도 외국으로 나가는 건 절대 반대해서 힘들어. 솔직히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끔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해. 여기서 뼈 빠지게 일해봤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단지 제자리걸음만을 위해 하루하루를 갉아먹는 셈이야."
우리는 비슷한 시간을 살았지만, 그가 느끼는 삶의 무게와 나의 무게가 너무나 다른 것 같아 그의 얘기를 들으며 슬펐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58 라스베이거스와 평양 사이의 어딘가
꿈을 꿨다. 내가 탄 침대칸과 똑같은 기차 안에 누워있는데, 기차가 지하철 선로를 따라 우리 집이 있는 역으로 향하는 꿈이었다. 익숙한 역에 내렸더니 친구들이 나와 있었다.
"야 이제 왔나, 돼지국밥 한 그릇 무러 가까."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 국밥집으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어디서 땡땡땡 소리가 들렸다.
아침이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는지, 승무원들이 숟가락 비슷하게 생긴 걸 들고 다니면서 철제 난간을 땡땡땡 치면서 사람들을 깨웠다. 이렇게 기분 나쁘게 일어나기도 힘든데, 소리가 너무 무례해서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확 상했다. 아직 돼지국밥은 한술 뜨지도 못했는데. 맞은편 침대에서 막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는 쇼흐라트를 보고 현실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기차에서 내릴 때도 마찬가지로 시트를 벗겨서 승무원한테 내야 했다. 기차가 멈추고, 우리는 아슈하바트 역에 내렸다. 역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배는 고파 쇼흐라트와 구내매점에서 선 채로 커피와 단 과자를 후루룩 삼켰다.
역에서 나오기 전 화장실을 들렀다. 쇼흐라트가 내가 화장실에 간 동안 보조 배낭을 들어준다길래, 망설임 없이 배낭을 맡겼다. 그리고 오줌을 누며 갑자기 어제 그가 한 얘기가 머리를 스쳤다. 내 배낭에 든 건 노트북, 지갑, 휴대폰, 카메라, 400달러가 든 봉투. 그의 6개월 수입보다도 많을 텐데, '설마'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황급히 손도 안 씻고 화장실을 나왔다. 하지만 이 친구는 화장실 바로 앞에서 가방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참 나도 대단하구나... 그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는 내 호텔 주소를 물어 택시를 잡아 흥정까지 해줬다. 나에게는 호텔까지 얼마에 협상해놨으니, 그 이상은 절대 주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
"현진, 5일짜리 경유 비자라도 가능한 한 빨리 여기는 벗어나는 게 좋을 거야. 우리나라는 별로 외국인 관광객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 피곤한 일이 생길까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짧은 시간 안에 나에게 이렇게 큰 인상을 남긴 사람이 있을까, 어젯밤 그의 소원대로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면 진심으로 그를 돕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휴대폰 번호와 메일 주소를 교환하며 한국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 뿐이었다. 다시 투르크멘바쉬행 기차를 갈아타러 매표소로 가야 한다는 그를 보며, 그의 눈에는 마음 편히 '한국 오면 연락해'라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외국인은 무조건 정부에서 공인한 호텔에서 묵어야 한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교외에 있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예약했던 호텔인데, 그냥 예약을 안 바꾸고 그대로 갔다. 1박에 30달러, 이때까지 묵었던 곳 중 제일 비싼 곳이다. 하지만 나는 마나트를 암시장 환율로 바꿨기 때문에 만약 마나트로 계산을 하면 그보다 훨씬 싼 값에 묵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리셉션에서 모르는 척 마나트를 주섬주섬 꺼내자 직원은 "Only Dollar!"이라며 딱 잘라 말했다. 자기 나라 돈을 안 받는 나라도 있네요.
방에 짐을 대충 던져두고 아시가바트 시내로 가기 위해 나왔다. 화이트 앤 골드로 깔맞춤 한 시내 건물들이 진짜 레고 블록처럼 늘어서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대중교통 정보를 몰라 히치하이킹을 했다. 다행히 친절한 사람을 만나서 시내까지 공짜로 태워다 줬다.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와이파이 되는 곳을 찾아 헤맸다. 호텔에서도 와이파이가 없어서 못 썼다. 하지만 아예 와이파이가 없는 곳도 많고, 있는 곳도 와이파이를 쓰려면 투르크메니스탄 번호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는 경유비자를 가진 외국인은 심카드를 살 수가 없다. 어쩌라는 건지, 그냥 인터넷 쓰기는 포기했다.
시내는 기형적이다. 마치 할 일 없는 억만장자가 변태 같은 강박관념을 가지고 외진 곳에 만들어둔 테마파크 같다. 곳곳에는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고, 황금 동상도 찾을 수 있었다. 길거리에는 사람만 쏙 지운 듯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쇼흐라트의 말대로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는 별명답게 감시와 통제가 심한 듯싶다. 경찰들만이 건물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외국인인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여기서 진짜 사진을 찍으면 제지를 할까, 슬쩍 카메라를 꺼내 길 맞은편의 건물로 렌즈를 겨냥했다.
"미스터, 미스터! 니옛 포토, 니옛"
곧장 경찰들이 다가와 손으로 크게 X자를 만들어 보였다.
"아... 이즈비니쩨" (미안합니다)
억지 미소를 지어보이고 자리를 슬그머니 피했다. 역시 인터넷에서 본 대로 정부 건물의 사진을 찍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정부 건물이고, 아닌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쇼흐라트가 사복 경찰을 주의하래서 경찰이 안 보여도 사진기를 꺼내는 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의욕을 부추겨서 몰래몰래 필름 한 통을 다 썼다.
시내에는 분수가 많고, 주요 건물과 가로등은 모두 흰색과 금색으로 통일돼있다. 누군가 이 도시를 두고 “평양과 라스베이거스 사이의 어딘가”라고 했던 표현이 떠올랐다. 분수가 많은 이유도 전 대통령 니야조프의 개인적 취향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는 집권하는 동안 많은 법을 만들었는데, 운전 중 음악 듣기 금지, 가수의 립싱크 금지, 또 하나가 본인의 건강 악화로 담배를 끊어야 하자 전 국민들에게 금연령을 내려버렸다. 지금도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담배 피우는 게 경찰한테 보이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담배는 공공연하게 한 개비씩 팔기는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감당하기 힘들 만큼 비싸다. 그래서 외국인이 지나가면 가끔씩 담배를 달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3시간 넘게 시내를 헤매고 다녔다. 대통령궁의 황금돔이 번쩍번쩍하게 빛난다. 안 그래도 해가 정수리로 꽂히는 곳인데 건물 벽까지 하얗게 칠해놓으니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이 나라에는 횡단보도가 없다. 그 이유는 역시 전임 대통령이 시내에서 카레이싱을 좋아했기 때문에. 지하도를 나와 대통령궁 앞 거리로 들어서자, 경찰들이 또 길을 막아선다. "이곳으로는 차든 사람이든 지나다닐 수가 없다, 돌아가라." 이럴 거면 길은 왜 만들어 놓은 걸까, 오직 대통령만을 위한 길인가 보다.
너무 이질적인 풍경이 이어지다 보니 현실 감각이 안 생겼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시내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분수대가 줄지어 늘어선 공원이 나왔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사람이 없는 건 둘째 치더라도, 모든 게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점이 더 기괴했다. 아무도 없지만 화려한 분수대의 물이 쏟아지는 소리만 들렸다. '트루먼 쇼'의 짐 캐리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기분으로 공원을 걸었다.
정부 건물이 늘어선 시내 중심부를 벗어나면 긴장이 조금 풀린다. 갑자기 흰색과 금색의 신기루 도시가 끝나고 비로소 평범한 건물에,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물을 사러 들어간 슈퍼마켓에는 초콜릿도 팔고, 계산대에는 직원도 있어서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었다. 인터넷도 못 쓰는 곳에 있어서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다. 한국인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까레이 풋볼'이라며 엄지를 내밀었다. 무슨 말이지... 설마 이겼다는 말은 아니겠지? 경찰들도, 지나가는 사람도 그래서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었다. 나도 결과가 궁금했지만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을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티비를 봤다. 러시아 방송이었는데, 어제 경기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한국이 독일을 2대 0으로 이겼다니, 꼭 봐야 하는 경기를 놓쳐버렸다. 하이라이트라도 내일 이란으로 넘어가서 찾아봐야겠다.
호텔방에 돌아와 비치된 잡지를 뒤적였다. 잡지나 신문의 첫 페이지는 모두 대통령의 화보 같은 사진들이 장식하고 있었다. 벌써 이 사람 얼굴이 지겹다. 투르크메니스탄에 온 지는 아직 이틀 째고, 내 비자는 5일 동안 머무를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있고 싶지가 않았다. 쇼흐라트를 만난 것과 아슈하바트 시내의 텅 빈 건물들을 본 것만으로 충분한 기분이다. 이란은 조금 다른 분위기일까, 일정을 당겨 또 다른 국경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