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단길 이야기-20
#62 돈 좀 빌려주세요
벌써 어젯밤 기온이 33도였다는 사실을 밖으로 나와서야 깨달았다. 대낮의 기온은 족히 40도는 넘는 것 같았다. 대구 사람이라는 자부심인지 더위에는 자신 있는 편이지만 이곳은 매연과 뒤섞인 텁텁한 공기가 허파 가득 채워져 속에서부터 노릇하게 나를 익히는 느낌이다. 도시를 돌아보려 나왔다가, 한두 블록을 어슬렁거리고 도망치듯 호스텔로 돌아왔다. 여전히 에어컨은 최대치로 나오고 있었다. 이미 땀이 송송 배어 나온 티셔츠를 벗어 침대 모서리에 널어두고 서늘한 시트 사이로 파고들었다.
밤잠처럼 낮잠을 깊게 잤다. 잠결에 새로 온 투숙객이 짐을 정리하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다. 결국 그 소리에 일어나 앉았다. 이층 침대의 커튼을 살짝 열고 내다봤다 이 낯선 방해꾼과 눈이 마주쳤다.
"쏘리... 방금 도착해서 짐을 정리한다구요. 방해해서 미안해요."
정중한 그의 사과에 나도 같이 고개가 숙여졌다.
"노 프라블럼"
첫인상이 좋다. 본격적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그와 얘기를 했다. 그의 이름은 안드레아,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특이한 점은 한국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1년을 보내고 이제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 또한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나의 여행 루트와 대부분 겹친다는 점. 둘 다 지나온 길에 대해 어땠다는 둥 할 말이 계속 나온다.
"짐 정리를 다 하면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안드레아와 식당을 찾아 걸었다. 호스텔 근처에는 마땅한 곳이 없어서 바자르까지 한참을 걸었다. 한국이 비정상적으로 식당과 카페가 많은 건지, 여기 사람들이 외식을 잘 안 하는 건지 궁금했다. 길거리에 상점은 많은데 왜 다들 이렇게 못 먹는 것만 파는지... 돌고 돌아 바자르 모퉁이에서 겨우 팔라펠 집을 찾았다. 그마저도 간이식당. 기름에 절은 의자에 앉아 팔라펠 샌드위치를 먹으며 식당 구석에 있는 티비로 멕시코와 브라질의 경기를 봤다. 희미한 브라운관 티비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나도 같이 눈이 침침해지는 기분이다.
안드레아는 말이 많은 친구였다. 이란에서 환전상에게 사기당한 얘기와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투어 프로그램에 바가지를 쓴 일 등을 쉬지도 않고 쏟아냈다. 이란에 쌓인 게 많아 보였다.
"그래서 말이야, 이란에서 예상치도 못 하게 지출이 너무 커졌어. 이란에서는 비자 카드를 못 쓰잖아? 새로 현금을 뽑지도 못하고... 요즘 그것 때문에 걱정이야. 호스텔로 돌아가면 돈을 빌릴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생각 중이야."
역시 이란은 입국하기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현금을 넉넉히 준비해서 와야 한다. 나는 사람을 잘 믿고 이런 사연에 약한 편이라 사정을 듣고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나한테 좀 여유가 있는데, 내가 빌려줄게!"
내 지갑을 열어보니 100달러 정도 여유가 있어 그에게 빌려줬다.
"고마워, 친구. 이란 국경을 넘어서 아르메니아로 들어가면 바로 은행에 가서 갚을게."
그는 거듭 꼭 돈을 갚겠다며, 담보라도 준다길래 넣어두라고 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도 '뭘 믿고 돈을 빌려주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2시간 전에 막 만났는데 말이다.
#63 지하철의 남성 전용칸
안드레아와 빨래를 하고 옥상에다 널었다. 점심을 먹고 쉬다가 3시간 정도 지나 올라가 봤더니 빨래가 바싹 구워져 있었다. 오늘 기온은 41도, 강수확률은 0퍼센트다. 호스텔을 나서기도 싫은 날씨였지만 계속 앉아 있기도 심심해서 커다란 물을 하나씩 사들고 길을 나섰다. 테헤란의 고궁인 골레스탄 궁전으로 방향을 잡았다. 걸어가면 30분 거리라 걷기로 했다. 가는 길에는 주스바가 많이 보인다.
"당근 주스 마실래? 내가 살게!"
주스바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안드레아에게 당근 주스를 한 잔 얻어마셨다. 생당근을 착즙기에 넣어 갓 뽑은 당근 주스는 색깔은 예쁜데 너무 맛이 없어서 숨을 참고 먹었다. 설탕을 하나도 안 넣었는지 그냥 당근 맛이었다. 내가 기대한 건 건강한 당근 물이 아니라 당근 농장의 달달함인데.
이란 혁명 이전, 팔레비 왕조의 궁전이었던 골레스탄 궁전은 입장료 정책이 특이하다. 티켓 오피스에 가면 식당의 메뉴판처럼 각 방마다 입장료가 적힌 판이 있다. 기본 입장은 15000토만, 하지만 메인 홀에 가면 15000토만 추가, 어떤 방은 얼마 더 추가, 이런 식이다. 풀옵션으로 채우면 기본 입장의 7~8배 정도 가격이 나온다. 나는 가성비를 따지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기본 입장에 볼거리가 모여있다는 메인 홀만 골랐다.
왕족이 살던 곳답게 궁전의 내부는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금을 박아 넣은 침실을 보더니 안드레아는 서울에서 살았던 고시원 얘기를 해주고 싶어 했다.
"너 서울에서 살아봤어? 진짜 방값이 너무 비싸. 혜화에서 월세 30만원 내고 고시원에서 살았는데, 6달을 창문도 없는 곳에서 살았어. 그러다 보니까 진짜 죽을 것 같더라. 그래서 결국 5만원 더 내고 창문 있는 방으로 옮겼지..."
"이태원에서 이탈리아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했다면서?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왜 좋은 데서 안 살았어?"
"많이 벌긴 뭘 벌어, 최저시급 받았는데. 사장이 아주 돈을 짜게 줬어. 그래도 일하면서 좋은 점은 연예인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는 점? 나 강동원도 봤는데, 진짜 잘 생겼더라."
안드레아의 얘기를 들으며 박민규 작가의 '갑을 고시원 체류기'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한국 와서 고생 많으셨네요.
우리에게 입장 가능한 건물은 메인 홀 밖에 없었던 관계로, 메인 홀을 보고 나왔더니 좀 아쉬웠다. 대신 안뜰을 천천히 산책하며 외벽에 그려진 벽화를 구경했다. 전형적인 이슬람 문화권의 벽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이슬람 양식의 아라베스크 문양과 서양풍의 그림이 섞인 느낌이다. 독특한 느낌이 좋아서 찬찬히 벽을 훑었다.
그늘에 앉아 쉬고, 고양이와 놀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안드레아도 나처럼 게으른 여행자인지라 앉아서 쉬는 것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고양이들은 일단 낯선 나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왔지만 내게 아무것도 먹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들 일 없다는 듯 돌아가버린다. 먹이가 없다면 만져보는 것도 허락해주지 않는 것 같다.
좀 시원해지는 밤에 다시 나와 타비앗 다리를 보러 지하철을 타고 갔다. 테헤란 지하철은 싸고 깨끗하다. 하지만 물건 파는 사람들이 바자르처럼 많다. 아니, 여기는 지하철을 자유시장으로 활용하려고 만들었나 싶기도 했다. 벨트, 양말, 칫솔 등 온갖 잡다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한 칸에 최소 두 명은 동시에 지나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물건을 사는 사람도 꽤 많다. 한국 지하철에서 물건 파는 사람을 가끔 보긴 했어도 사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데, 여기는 지하철에서 자연스럽게 물건을 사고 판다.
트립어드바이저에 나온 이름만 보고 찾아간 타비앗 다리에게서 나는 당연히 물 위를 지나는 다리를 기대했다. 하지만 사실은 도로 위를 지나는 육교였고, 조명도 얼마나 요란하게 해 놨는지, 눈부신 형형색색의 무지개다리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실망했지만, 이란 사람들한테는 꽤 야경 명소인 것 같았다. 꽤 높은 곳에 있어서 이란 시내가 내려다 보이긴 하다. 다들 다리가 아니라 전망을 보러 오는 건가,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지하철을 탔다. 이란 지하철은 여성전용칸이 따로 있어 여자들은 대부분 거기에 탄다. 커플의 경우에는 남자 칸에 같이 타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도 이란 남자들은 여자 친구 혹은 아내를 구석에 넣고 보호하려고 한다. 여자가 무슨 깨지는 유리라도 되듯. 이란에서 느낀 건데 이 나라는 성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남녀가 다른 학교로 진학해 남자의 경우는 남초, 남중, 남고, 군대를 거쳐야 한다. 남자 초등학교까지 있다는 사실에 약간 소름이 돋았다. 저렇게 높은 칸막이를 쳐놓으면 남녀 학생들은 서로를 상상의 동물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남자와 여자의 의무와 권리가 무 자르듯 깔끔하게 나눠져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는 나라에서 사는 남자, 여자들이 과연 행복할까 궁금했다.
#64 이란이라는 편견
"안녕하세요, 카우치서핑?"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제이납이 약속 장소인 바하레스탄 지하철역 앞에서 서있던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금색 수가 놓인 남색 여름 코트에 베이지색 히잡을 두른 제이납은 옆에 차도르를 쓰고 멀뚱히 서 있는 친구를 소개했다.
"이 친구는 노바예요. 제가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친구를 한 명 더 데리고 온다고 했죠. 얘가 영어를 잘하거든요 하하"
아닌 게 아니라 역시 그 친구는 말이 많았다. 자기는 게임을 좋아한다며, 게임 얘기를 하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게임을 잘 몰라서 듣고만 있었더니 실망한 눈치다.
"한국 사람인데 게임을 안 좋아해요?"
"네... 잘 못해서 안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중국에서도 특히 중국 남자애들이 나만 보면 '페이커'라는 프로게이머를 아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났다. 내가 모른다고 하면 다들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니... 하지만 노바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축구는 좋아하세요?"
"네, 좋아하죠! 이란 선수도 몇 명 알아요. 사흐다르 아즈문, 구차네자드...?"
이것도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박지성, 손흥민 선수의 이름을 내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심리겠지. 하지만 노바는 내 입에서 이란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름이 나오자 놀라워했다.
"저도 축구 엄청 좋아해요! 언젠가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축구를 보고 싶어요."
"아자디 스타디움은 저도 들어봤어요, 원정팀들의 무덤이라고 불려서 우리나라에게도 테헤란 원정은 항상 부담스럽죠. 그런데 축구를 좋아하면서 왜 경기장엔 안 가봤어요?"
나의 마지막 질문은 조금 멍청했다. 그녀는 아자디는 페르시아어로 '자유'라는 뜻이지만, 경기장에는 여성들의 출입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시내를 조금 걸어 제이납이 아는 식당을 가서 밥을 먹었다. 메뉴는 치킨 케밥. 이란에 오기 전 이란의 음식에 대해 찾아봤을 때는 굉장히 다양한 음식이 있었는데, 그 맛있다는 페르시안 음식은 다들 어디에 파는지 모르겠다. 케밥집이랑 햄버거 가게 밖에 안 보인다. 물론 치킨 케밥도 밥에 곁들여 나온 버터를 살짝 올려 비비고, 잘 구워진 치킨 바베큐를 토마토나 고추와 먹으면 어쨌든 맛은 있다. 사실 치킨은 메뉴 선택에 있어 실패하기가 쉽지 않다. 항상 새로운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말로 치킨이 뭔지 알아두려고 한다. 식당에 가서도 그 단어 하나만 말할 수 있게. 페르시아어로 치킨은 주제, 치킨 케밥은 주제 케밥이다.
"진짜 뭐든지 물어봐도 괜찮아?"
"응, 뭐든지."
이란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도 된다는 그녀들의 말에 혹시 진짜 '무엇이든' 물어봤다가 실례가 될까 싶어서 걱정스레 되물었다. 괜찮다면 물어볼 주제는 많지.
"진짜 결혼 안 하면 데이트도 못해? 술도 못 마시고 외국 음악도 못 들어?"
늘어놓고 보니 못 하는 것 밖에 없다. 제이납은 법으로는 그렇게 정해져 있지만 안 지킬 사람들은 죽어도 안 지킨다며, 특히 상류층 사람들이 더 하다고 했다.
"이란은 겉으로 보기엔 경건한 이슬람 공화국이고, 미국과는 원수처럼 보이지만 돈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미국 문화를 따라 하려고 해. 그 사람들 아예 라이프 스타일이 아메리칸이라니까!"
막연하게 이란 사람이라면 다들 신실한 구도자 같은 느낌이었는데, 역시 사람이 신의 삶을 살기는 어렵겠지. 사람은 사람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로 대화를 나눴더니 밥만 먹었을 뿐인데 피곤했다. 수다스러운 노바의 템포에 맞추려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고... 날씨도 너무 더워서 어디 갈 엄두도 안 났다.
"나 이제 이만 일어나 볼게. 기차역에 내일 이스파한으로 가는 표도 사러가야 하고."
"그래? 그럼 우리가 같이 가서 도와줄게. 기차역 사람 장난 아니게 많거든. 줄도 길게 서야 하고. 같이 가자!"
이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제이납과 노바를 앞세워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란 이슬람 혁명의 주인공인 호메이니와 현재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의 사진이 기차역을 장식하고 있었다. 마치 박물관이나 독립기념관 같은 모양이다. 매표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다행히 친구들과 같이 가서 지겹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이스파한으로 가는 기차는 내일과 모레 일정까지 만석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표는 버스 터미널에서 다시 사기로 하고, 친구들과 헤어졌다. 마침 안드레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진, 뭐해? 나는 시내에 시티파크에 있는데 할 일 없으면 여기로 넘어와!"
버스에서 내려 공원 입구로 들어서니 갑자기 세상이 평화로워졌다. 바깥은 테헤란의 트래픽 잼, 클락션을 울리는 자동차들로 가득 찬 위험한 세상. 여기 운전자들은 클락션 울리는 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테헤란에서 길을 건너려면 차라리 눈을 감고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게 나아. 그러면 차들이 알아서 피해 갈 거야. 눈을 뜨고 차를 피해서 길을 건너려면 오히려 스트레스받는 쪽은 우리니까."
안드레아도 테헤란의 교통에 넌더리가 난 듯 고개를 저었다.
시티 파크를 지나 테헤란의 중심 거리 중 하나인 파르도우시 스트리트를 따라 갔다. 길가에는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 많다. 왠지 모르겠지만 1층만 사용하고, 그 이외의 층은 유리창까지 부서진 채 방치되고 있었다. 안드레아와 저 집들을 헐값에 사들여 게스트 하우스를 해도 되겠다며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하며 걸었다. 이 날씨에 호스텔까지 1시간 정도를 걸었더니 등에 소금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다.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물 한 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