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단길 이야기-21
#65 버스 좀도둑
테헤란의 버스 터미널은 혼잡하기로는 기차역에 뒤지지 않는다. 터미널 입구에서부터 버스 호객꾼들이 달려들었다.
"미스터, 이스파한? 쉬라즈?"
중앙아시아에서도 겪은 상황이라 이스파한을 부르는 아저씨를 망설임 없이 따라갔다. 인터넷에서 보고 온 버스비보다 싸게 불러서 기분이 좋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버스비를 지불하고, 짐칸에 배낭을 싣고 편안한 마음으로 차에 오른다. 6시간 뒤, 이스파한에 내려 다시 배낭을 메고 호스텔을 찾아 나섰다. 버스에서 잘 자서 그런지 무겁던 배낭이 가뿐하게 느껴졌다. 아직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호스텔에 도착해 짐을 정리하면서 알았다. 누가 내 배낭을 열어봤다. 압축팩들과 파우치들이 모두 어질러져있고, 군데군데 칼로 그은 듯 찢어진 곳도 있다. 소름이 쫙 끼쳤다. 다행히 여권이나 지갑, 노트북 같은 귀중품들은 보조 배낭에 들고 탔기 때문에 도둑맞지 않았다. 대신 큰 배낭에 있던 티셔츠, 면도기, 로션 같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없으면 불편한 물건들이 사라졌다.
"이란 버스터미널에서 호객꾼을 따라가서 표를 산다고? 그건 이란 사람들한테도 위험한 일이야. 너 표 받았어? 거봐, 안 받았지. 아마 운임도 조금 싸게 부르면서 너를 꼬셨을 거야. 오피셜 티켓이 없으면 니가 그 버스에 탄 사실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짐에 무슨 일이 생겨도 버스 회사로부터 보상받을 길이 없어... 그 사람들도 그걸 노리는 거야. 앞으로는 절대 호객꾼을 따라가서 야매로 타지 말고 티켓 오피스에서 정식 티켓을 사서 타는 게 좋을 거야."
호스텔 스탭에게 억울한 마음에 푸념을 늘어놨더니 정식 티켓을 안 사고 버스를 타면 그런 경우가 왕왕 있다며 충고를 해줬다. 미리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애써 좋게 생각을 해봐도 분하다. 결과적으로 잃어버린 물건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이때까지 잘 버텨왔는데 여기서 당하다니. 혼자 씩씩거리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먹고 일찍 누웠다. 기대했던 이스파한이었는데, 시작부터 꼬인다.
#66 내 환상을 돌려주세요
눈을 떴을 때는 조용한 호스텔 방 안에 나 혼자 남아있었다. 이곳은 이란의 전통 가옥을 개조한 곳인데, 내리쬐는 햇빛을 막기 위해 벽이 두꺼워서 그런지 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서늘하다. 이부자리도 그렇고, 내부 인테리어도 할머니 집에 온 것처럼 푸근한 느낌이다. 평화로운 아침을 맞아서 그런지 어젯밤의 분노가 조금 진정됐다. 그냥 누가 악의로 그랬다기보다 내 실수로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쪽이 마음이 편할 테니까. 흐트러진 짐을 처음부터 다시 예쁘게 싸서 정리했다.
이스파한은 광장의 도시다. 이맘 광장은 '세상의 절반'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을 만큼 크다. 사방이 아케이드로 둘러싸인 이 광장은 17세기에 지어질 당시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이었다. 광장의 넓이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사방으로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들어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여행을 준비하며 찾아봤던 프로그램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 이스파한 편에 나왔던 메아리가 울리는 돔이 있는 샤 모스크를 향해 광장을 가로질렀다.
"저기... 혹시 한국인이세요?"
샤 모스크는 별도의 입장권을 사야 한다. 매표소를 지나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누가 한국어로 말을 걸어서 깜짝 놀랐다. 사하르는 테헤란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테헤란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원래 고향은 이스파한이에요. 내일도 이스파한에 있을 예정이면 저랑 제 친구들이 여행하는 것 도와줄게요!"
그녀와 번호를 교환하고 내일 체헬소툰 궁전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샤 모스크는 멀리서 봤던 대로 웅장하다. 하지만 곳곳이 보수 공사 중이라 그런지, 조금 어수선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유명한 '메아리 돔' 아래에는 이슬람 음악만 틀어달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하긴, 종교 시설인 이 곳에서 'Despacito'가 울리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다. 발판 앞에 서서 둥그런 지붕을 향해 소심하게 '야' 소리를 내 보았지만 천장까지 닿지도 않는지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붕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싶지는 않아서 포기하고 천천히 모스크 안을 구경하며 걸었다.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건물 안은 고요했다. 구석에 앉아서 유럽에서 온 듯한, 기린 같이 생긴 친구가 사진을 찍으며 걸어 다니는 것을 구경했다.
이스파한에서 이맘 광장보다 기대했던 곳은 시오세폴. 이스파한을 흐르는 자안데 강을 건너는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하지만 이 곳은 나에게 아름다움보다는 환상이 깨지는 충격을 선사해 주었다. 어제 호스텔 스탭이 자안데 강은 벌써 1년 전에 말라붙었다길래 설마 했는데, 진짜 강이 없었다. 다리는 말라붙은 강바닥을 가로지르는 육교가 되어있었다. 최근의 만성적인 가뭄으로 정부에서 상류의 댐을 막았고, 저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물을 거의 안 보낸다는 기사를 구글에서 찾아냈다. 막상 그 극적인 상황을 실제로 보고 있으니 환경 재앙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다리 근처의 기념품 가게에 들러 옛날 모습이 담긴 엽서를 몇 장 샀다. 엽서 속 사람들은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기타를 치고 있었다. 이란은 올해 들어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는데, 특히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접한 남동부 산악 지역에서는 이로 인해 반정부 시위가 빈번히 일어난다는 뉴스도 있었다. 비가 내려 사람들이 다시 행복해졌으면 싶었다.
"어, 너 혹시 아까 샤 모스크에 갔었어? 모스크에서 봤어!"
호스텔에 돌아가 방에서 쉬고 있는데, 샤 모스크에서 봤던, 내가 '기린'이라고 이름 붙였던 친구가 방으로 불쑥 들어왔다.
"맞아 모스크 안에 우리 둘 밖에 없었잖아, 나도 너를 봤는데 같은 방에서 만나네! 진짜 신기하다 하하"
나만 구경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도 앉아있던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새로 만난 친구의 이름은 말테, 독일인이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소설「말테의 수기」가 생각나는 멋진 이름이다.
좁은 3인실 방에 오늘은 투숙객이 나와 말테 밖에 없어서 마치 더블룸 같았다. 방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우리는 안마당으로 통하는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창문까지 다 열었는데 뭔가 허전하다. 있어야 할 것 같은 무언가가 빠진 기분, 여기는 여름이면 응당 있어야 할 모기가 없다. 너무 건조해서 그런지 내 입술도 같이 부르텄지만 너무 좋다, 모기 없는 세상.
#67 우연에 우연이 더해지다
약속한 대로 사하르와 체헬소툰 궁전 앞에서 만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꼼지락대는 내 성격 때문에 약속 시간에 조금 늦어버렸다. 사하르와 같이 한국어를 배운다는 친구들을 만나 '안녕하세요'와 '미안해요'의 용례를 동시에 보여줬다.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하기는 상당히 어색하다. 내 발음도 신경 써야 하고, 어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나는 방언 사용자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 그래서 막상 입을 떼면 교과서를 더듬더듬 읽는 듯한 어색한 표준어가 나오는 기분이다.
조경으로 유명한 체헬소툰의 뜰을 걸었다. 연못 앞에 세워진 메인 홀은 이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목조 건물이다. 스무 개의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은 연못에 비춰보면 마흔 개가 된다는, 어디서 들어봄직한 이야기를 갖고 있기도 하다. 플라타너스를 깎아 만든 기둥들은 그마다 다르게 장식이 되어 있어서 찬찬히 살피는 재미가 있었다.
"이스파한에 오래 살았지만 여기는 나도 처음이야, 설명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못 해줘서 미안해."
"괜찮아, 나 원래 산책하는 거 좋아해. 그리고 나도 우리 동네에 외국인이 오면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모를 것 같아."
그렇게 궁전을 둘러보고 밥을 먹고 전통 목욕 박물관도 구경하며 사하르가 준비한 코스를 따라다녔다. 전시물은 크게 인상적이지 않지만,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한 목욕 박물관의 벽화는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전통 목욕 방식을 보여주려 만들어둔 밀랍 인형은 내 '불쾌한 골짜기' 안에 있는지 조금 기괴해 보였다.
사하르와 헤어지고 나는 혼자 졸파 지구로 향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이 모여 살던 이곳은 17세기 상공업에서 두각을 보이던 그들의 이주를 장려하기 위해 만든 당시의 신도시 같은 곳이다. 확실히 미로같이 좁은 골목들이 마구잡이로 엉킨 구시가지보다 길도 넓고, 반듯하게 구획된 느낌을 준다. 졸파 지구의 중심부인 반크 교회로 가기 전 카페에 들러 쉬었다. 파인애플 주스를 열심히 마시고 있는데, 낯익은 사람이 내 자리로 다가와 인사를 했다. 같은 호스텔에서 묵는 여행자였는데, 마주칠 때는 끄덕 눈인사만 했었는데 여기서 보니까 반가웠다.
"이틀 동안 있으면서 인사도 못했네, 나는 에블린이야. 노르웨이에서 왔어. 너도 혼자 다녀? 어제 같이 놀던 그 키 큰 친구는 어디 갔어?"
"말테 말이야? 우리도 호스텔에서 만난 거야, 이따가 저녁에 다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이제야 통성명을 하고 대화를 나눴다. 노르웨이 사람은 처음 본 나는 궁금한 점이 많았다.
"노르웨이 연어는 많이 먹었는데 거기 사람은 처음 봐. 얼마 전에 뉴스에서 봤는데 진짜 노르웨이는 여자도 군대 가?"
"응, 맞아. 근데 난 법이 바뀌기 전에 입대 의무 나이가 지나서 몇 년 차이로 비껴갔어. 운이 좋았지! 물론 나도 군대 가기 싫거든."
나와 마찬가지로 반크 교회를 찾던 중이었다던 그녀와 같이 카페를 나서 교회를 찾았다. 이 아르메니아 교회는 특이하게 생겼다. 모스크처럼 양파 모양의 돔이 있지만, 돔 상단에 십자가가 서 있다. 내부는 역시 성화로 장식되어 있다. 천장까지 이어진 벽화를 한참 동안 보고 있었더니 목이 뻐근했다. 성경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는 모르는 내가 봐도 대충 내용을 끼워 맞춰 볼 수 있을 만큼 자세했다.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옆에서 또 누군가 나를 찾는다.
"저기, 한국인이시죠?"
이번에는 진짜 한국어 화자의 발음이 들려왔다. 슬기 형은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거기서 만난 이란 친구의 초대로 여기 와 있다고 했다.
"저녁에 일 있으세요? 한국인을 못 보다가 봐서 반가워서 그런데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까요?"
내 대답은 웬만하면 예스. 저녁에 구시가지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교회 부속 박물관은 아르메니아에 대한 전시물이 많았다. 아르메니아인은 쿠르드인처럼 오랫동안 자신들의 나라를 가지지 못했고 1차 대전 중에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이라 불리는 터키 정부에 의한 박해를 받아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으니까. 그런 수난의 역사 때문인지 아르메니아인들은 더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나 혼자 걸으면 길거리에서 정말 많은 남자들이 말을 걸어. 진지하게 그러는 건 아니고 다들 그냥 헬로, 헤이, 섹시 같이 기분 나쁜 추근거림이야. 그런 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는데, 너랑 걸으니까 신기하게 말을 아무도 안 거네. 여기는 젊은 남녀가 길을 걸으면 다들 연인 혹은 부부라고 생각하니까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나 봐."
교회를 나와 에블린과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 에블린이 여행하며 쌓인 게 많은 듯 에피소드들을 쏟아냈다. 단순히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외국 여성에 대한 그들의 판타지인지 모르겠지만 상당수의 이란 남자들은 성적으로 억압된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여행하면서 느낀 사회 분위기를 봤을 때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누르면 어디서는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에블린과 이란에 대해 얘기를 하며 호메이니의 혁명 전 자유롭던 시절의 사진을 구글에서 찾아봤다.
"왜 사람들은 순순히 자유를 상당 부분 제약받으면서까지 혁명을 받아들였을까?"
"우리가 외국인이니까 그 점에 대해 정확히 알기는 힘들 것 같아. 하지만 너나 나는 외국인이니까, 같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내 생각을 말해줄까?"
이어진 에블린의 의견은 명쾌했다.
"Because of one fucking asshole, the whole society was fucked up" (한 사람의 망할 새끼 때문에 사회 전체가 망해버렸어)
호스텔 앞 주스바에서 에블린과 오렌지 주스를 한 잔씩 사 마시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이스파한에 온 뒤로 매일 이 가게 앞을 지나는데, 한 번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 이제는 나를 알아보는 주인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넸더니 아저씨는 주스 짜는 기계부터 켰다. 주스 기계는 하나 사고 싶을 만큼 귀엽다. 오렌지들이 한 알씩 차례대로 떨어져 레일을 따라 착즙기 속으로 굴러간다. 주스가 충분히 모이면 수도꼭지를 열어 컵에 가득 담아준다.
반크 교회에서 만난 슬기 형과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은 나 같은 겁쟁이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호스텔이 있는 구시가지의 미로 같은 골목길은 해가 떨어지자 으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모퉁이에 놓인 쓰레기도 마치 나를 위협하는 느낌이다.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두리번거리며 호스텔을 찾았다. 호스텔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며 비로소 긴 숨을 몰아쉬었다.
#68 테헤란으로 히치하이킹!
말테와 나는 동시에 짐을 싸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우리 둘 다 오늘 테헤란으로 돌아가는 것. 나보다 훨씬 모험적인 말테는 히치하이킹으로 테헤란까지 가고 싶어 했다.
"브로, 내가 자동차 다 세워줄게. 나랑 같이 가자!"
이제껏 히치하이킹은 서너 번 밖에 안 해봤기 때문에 긴가민가 했지만, 자신만만한 그를 앞세워 테헤란으로 가는 고속도로 나들목에 섰다. 나는 페르시아어로 '테헤란'이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말테는 긴 팔을 쭉 뻗어 지나가는 차들을 붙잡으려 시도했다. 그렇게 2시간을 길에서 보냈다.
"테헤란? 버스, 택시?"
우리 앞에 멈춘 운전자들은 다들 왜 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느냐고 의아한 눈치였다. 기름값이 워낙 싸 대중교통도 저렴한 이곳은 히치하이킹이라는 개념이 없는 듯했다. 히치하이킹에 대해 설명하다 지친 우리는 결국 그들의 질문에 '노 머니'라고만 대답했다. 그러자 지갑을 열어 버스비를 챙겨주려는 사람들도 있었고, 버스 터미널까지 우리를 태워가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한 무리의 친절한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들은 이상한 여행자인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듯했고, 우리도 그들의 호의를 무시하지 않으려 애쓰는 기묘한 실랑이가 이어졌다.
"말테, 오늘 안에 히치하이킹은 힘들겠는데? 저분들이 버스 터미널까지 태워주신다는데, 그냥 저 사람들을 따라가서 버스를 타는 건 어때... "
땡볕에서 몇 시간을 보낸 끝에 우리는 스스로와 타협하고 순순히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준다는 사람들을 따라나섰다. 얌전히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그늘에 앉아 말테가 담배를 한 개비 말아 피울 동안 차가운 레모네이드를 한 잔 마셨다. 이제야 평화가 찾아온 기분이다.
며칠 전 아유미에게서 한 달만에 연락이 왔는데,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결국 못 받아서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 조지아, 아르메니아를 거쳐 드디어 오늘 그녀도 테헤란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묵었던 테헤란의 호스텔을 추천했고, 우리는 거기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예상외로 버스가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시간이 지난 후였다. 반가운 호스텔로 다시 들어서자, 그녀는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다이마, 아유미! 겡끼데스까?"(다녀왔어, 잘 지냈어?)
"하하, 유 크레이지 보이"
아유미는 내 이름을 얼핏 들으면 일본어로 '크레이지 보이'라며 나를 놀렸다. 나와 같이 온 말테를 소개하고, 우리는 호스텔 안마당에서 무알콜 맥주를 마시며 놀았다. 이제 이 흐물흐물한 맛에도 익숙해졌다. 아니, 꽤 맛있는 것 같기도 하다. 레몬, 복숭아, 민트 맛까지 다양한 맛을 이제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세 병쯤 마시다 보면 취하는 기분이 살짝 드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