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단길 이야기-48
#169 호스텔 문학회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까지는 버스로 10시간. 버스를 타기 전 까르푸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빵과 물을 미리 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드리드로 들어올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싼 값에 버스 티켓을 끊었지만 시간대는 최악이었다. 포르투에 도착한 건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점심때 먹고 남은 미니 크로와상을 먹으며 호스텔까지 걸었다. 리셉션 마감 시간이 12시라는 공지를 봤기 때문에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해졌다. 입구는 또 왜 이렇게 안 보이는지, 건물 주변을 한참 동안이나 빙빙 돈 후에야 간판도 없는 호스텔의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좁아 보이는 곳이었지만 들어가 보니 옆 건물과 이어져있는 신기한 구조였다. 층마다 공용 거실과 부엌이 분리되어 마치 작은 호스텔이 여러 개 붙어있는 모양새였다. 내 방이 있는 3층의 공용 거실에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안녕, 지금 들어온 거야?"
"응 방금 마드리드에서 여기로 왔어. 밤에 여기 찾기가 좀 힘드네."
"맞아 대신 여기가 근처에서 제일 싸잖아."
호스텔에서의 대화법 같은 책이 있다면 예시로 들만한 뻔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슬쩍 나도 소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베로니카, 이브라힘, 말테, 오리오는 각각 슬로바키아, 요르단, 독일, 브라질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하나 마실래? 우리도 오늘 여기 도착했는데 이미 우리 층 냉장고는 맥주로 꽉 채워놨어."
같이 여행을 한다는 이브라힘과 말테가 빨간 상표가 붙은 포르투갈의 대표 맥주 슈퍼 보크(Super bock)를 내밀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다들 말테와 이브라힘이 권하는 맥주를 나눠마시며 소파를 떠날 줄을 몰랐다.
"난 여기 여행 온 건 아니고, 학회 참석 때문에 왔어.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어 문학이 내 전공이거든."
여행자들의 대화 사이에서 조용히 맥주만 마시던 오리오가 말을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나와 베로니카, 오리오 모두 전공이 비슷했다.
"나도 문학 전공이거든, 요즘에는 페이스북에 '베로니카, 죽지 않기로 결심하다(Veronika, decided NOT to die)'라는 페이지에 여행, 문학 관련 포스팅을 해."
베로니카는 휴대폰을 꺼내 그녀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주제는 문학으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하지만 나에게 브라질 문학은 몇몇 작가들의 이름으로만 정의되는 미지의 영역이다. 어릴 때 동화처럼 읽었던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브라질의 국민 작가인 파올로 코엘류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대표작 <연금술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집트를 다녀온 직후 읽었다. 나는 이집트에 두고 온 사람도 없으면서 양치기 산티아고가 피라미드로 가기 위해 사막의 파티마와 이별하는 장면에 몰입해서 눈물이 났다. 오리오는 내 짧은 서평을 열심히 들어주었다.
"파올로 코엘류도 좋지. 그가 젊은 시절에 히피였다는 것도 알아? 그걸 소재로 쓴 <히피>라는 소설도 재밌어. 그런데 난 개인적으로 브라질 작가 중에는 마차도 데 아시스(Machado de Assis)를 추천해주고 싶어. 그의 책 중에서 돔 카스무로(Dom Casmurro)가 진짜 걸작이야. 한국어로 번역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없으면 영어로라도 한 번 읽어봐."
영어로 읽을 자신은 없고, 한국어 번역본을 찾아봤는데 아쉽지만 번역은 안된 것 같았다. 언젠가 번역이 된다면 읽어야지, 수첩에 책 제목을 적어두었다.
맥주를 나눠주던 말테와 이브라힘은 유쾌한 친구들이다. 결국 그들의 제안에 넘어가 내일 같이 놀기로 약속까지 해버렸다. 혼자 방을 쓸 때는 아늑하고 편안하지만 심심하다. 여러 명이 함께 한 방을 쓰는 호스텔은 시끄럽고 불편할 때도 있지만 또 이런 게 좋다. 나는 광장과 밀실 모두 필요하기에 여행을 하며 일주일에 하루 꼴로는 에어비앤비의 개인실이나 싸구려라도 호텔방에서 묵으며 쉬었다. 쉴 때는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일기도 썼다. 그렇게 쉬고 나면 다시 사람들이 만나고 싶다. 이미 남은 날들의 숙소를 다 예약해두었을 만큼 여행의 끝이 보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일은 즐겁다.
#170 포르투의 하루
"브로, 우린 브라가에 갔다가 밤에 돌아오려고. 너도 같이 갈래?"
"오늘 일정이 브라가에 가는 거였어? 음... 나는 어제 포르투에 와서 여기 먼저 돌아보려고 했거든. 너네 먼저 나갔다 와. 밤에 다시 오면 술이나 한 잔 하자."
"그래, 이따 보자. 좋은 하루 보내!"
말테와 이브라힘을 먼저 보내고 나도 천천히 나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춥던 북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오니 기온은 15도 정도로 봄가을 날씨다. 이미 겨울 같았던 지나온 곳들과 달리 아직 단풍이 한창인 가을로 돌아왔다.
거리로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점심 먹기. 포르투갈은 뭐가 맛있나 찾아보다가 칼로리 폭탄 샌드위치라는 프란체시냐를 발견했다. 계란, 햄,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 위에 다시 치즈를 얹어 녹이고 걸쭉한 소스를 부어 촉촉하게 적셔 먹는 샌드위치. 호스텔을 나와 느낌이 오는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프란체시냐'라고 크게 써붙여진 가게를 보고 들어가서 앉았다. 이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종류가 많았다. 나는 기본 재료만 들어간 '노말 원'을 시켰는데 '스페셜 원'이 아니라서 그런지 생김새가 별로였다. 마치 햄버거 가게에서 메뉴판의 사진같이 안 만들어주는 것처럼 사진과 실물 사이에 괴리가 좀 있었다.
포르투는 이스탄불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바닷가 도시라 갈매기들이 많이 날아다니고, 군밤 장수들이 때는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났다. 길이 오르막 내리막이 심해서 걸어 다니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인지 한 칸짜리 트램이 땡땡 소리를 내며 언덕을 올라 다녔다. 터키와 동유럽의 도시들에서 일반적인 트램은 많이 탔지만 한 칸짜리 트램은 관광용으로 보존해둔 이스탄불의 '노스탤지어 트램' 말고는 본 적이 없다. 가파른 언덕길을 걷다가 '한 번 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요금이 편도 3.5유로, 왕복 6유로라는 말에 그냥 걷기로 했다.
또 다른 포르투갈 길거리의 특징은 아줄레주, 유약을 이용해 그린 이 도자기 타일은 푸른색이 선명하다. 이 타일을 이용해 건물의 외벽이나 내부를 꾸민다. 성당이나 역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건물에는 어김없이 아줄레주로 장식이 되어있어 화려한 느낌이다. 특히 카르무 성당은 한 면 전체가 아줄레주로 장식된 그림이 커다랗게 박혀있다. 멀리서 보면 옛날 할머니 집 찻잔 생각이 날 만큼 아기자기하다. 푸른 색감이 화창한 포르투의 날씨와 잘 어울렸다.
돔 루이 1세 다리를 보러 가는 길, 동선을 조금 잘못 잡아서 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갔다. 귀스타프 에펠의 제자가 만들었다는 이 다리는 그래서인지 에펠탑과 살짝 비슷한 느낌도 난다. 2층 구조의 다리 아랫부분으로는 사람만 다닐 수 있고, 윗부분에는 트램이 지나다니는 철로와 사람들을 위한 인도가 작게 설치되어 있었다. 아찔한 높이의 윗부분은 커다란 곡선을 그리는 아치가 지탱하는데, 마치 산업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거대한 철제 기념물 같다.
강둑에서 상부 다리로 올라가려면 푸니쿨라를 탈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절벽을 따라 난 계단을 걸었다. 숨이 찼다. 다리로 다가가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밑에서 올려다봤을 때보다 높이가 훨씬 높아 다리가 떨렸다. 바닥판 사이의 틈이 심하게 벌어진 곳은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여차해서 휴대폰을 쏙 빠뜨리면 영영 찾을 수 없을 정도의 넓이였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다리 자체의 아름다움과 아슬아슬함 덕분에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특히 트램이 지나가면 다리가 꽤 심하게 흔들린다. 하지만 100년 넘게 서있던 다리인 만큼 믿어도 되겠지?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좋아서 한참을 강둑에 앉아있었다. 갑자기 검은 개 한 마리가 나를 따라왔다. 가방에 먹을 거라도 있었으면 조금 나눠줬을 텐데, 가방에는 오늘 저녁거리인 커리맛 인도미(Indomie) 라면 두 봉지밖에 없었다. 한국 라면보다 크기가 작지만 1유로에 두 개를 살 수 있기 때문에 더 싸게 끼니를 때울 수 있다.
호스텔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툭 쳤다.
"헤이, 오늘 하루 어땠어? 우리 방금 브라가에서 돌아왔어. 이따 술 마시러 갈 거지, 맥주 하나 마실래?"
슈퍼 보크의 홍보대사 같은 말테가 캔을 내밀었다. 그는 이브라힘과 함께 파스타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라면도 맛이 없었지만, 그들이 먹는 깡통 볼로네제도 별로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술을 마시기 위해 배를 채웠다. 그리고 아직 잔뜩 남은 냉장고의 맥주로 예열을 했다.
"밖에서 마시는 술은 비싸니까 미리 마셔두고 나가는 거지. 클럽에서는 맥주 한 병만 시켜서 주구장창 들고 다니면 되니까."
말테와 이브라힘은 테라스에서 위드를 나눠 피웠다. 특유의 쓴 냄새가 부엌까지 들어왔다.
"자, 이제 나가자고 브로."
말테가 찾아놨다는 록클럽은 12시에 공연을 시작하는 곳이었다. 오픈 시간에 맞춰 찾아간 클럽 '플랜 비'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우리도 맥주 한 병씩을 손에 들고 스테이지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무대에서는 보컬 없는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베이스 볼륨이 심장이 쿵쿵 울릴 만큼 컸다. 클라이맥스가 없는 곡들의 연속이었는데도 템포가 다 빨랐다. 록 페스티벌에 온 기분이었다. 뻣뻣하게 생긴 말테는 춤을 못 췄다. 반면 가르마를 타고 잔뜩 준비를 한 듯한 이브라힘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좁은 공간에서 다 같이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 혼자 왔다는 독일인 시아나가 우리 무리에 꼈다. 독일 공군인 루프트바페(Luftwaffe)에서 정비사로 근무한다는 그녀는 우리에게 맥주를 돌렸다.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는 이야기를 하려면 서로의 귀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했고, 귀가 떨어질 것 같았다. 밖으로 나와서도 한동안 귀에서 쿵쿵 소리가 들렸다. 새벽이 지나며 우리는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말테와 이브라힘, 시아나까지 클럽을 나와 맥도날드로 향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맥도날드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배가 고파서 치즈버거를 2개나 먹었다. 알고 보니 그 맥도날드는 화려한 내부장식으로 유명한 ‘임페리얼’ 맥도날드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몽롱할 정도로 배가 고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치즈버거뿐이었다.
#171 포르투 저예산 동행
'내일 포르투 저예산 여행 함께하실 분!'
유랑에 올려두었던 동행을 찾는 내 글에 연락이 왔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만테가리아 에그타르트 가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전날 밤의 피로가 밀려와 다시 눈을 감고 싶었다.
'정훈님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냥 못 만나겠다고 하고 잠이나 더 잘까?'
한참을 누워서 고민을 했다. 만약 그냥 잠이 든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옆 침대를 쓰는 말테와 이브라힘이 짐을 싼다고 소란을 떠는 바람에 다시 잠이 들 수가 없었다.
"미안, 우리 오늘 독일로 돌아가거든. 너는 오늘 뭐 하려고?"
"아니야. 나도 이제 일어나야 해. 한국인 동행을 만나기로 해서."
나는 마른 입을 쩍쩍 다시며 2층 침대에서 내려왔다.
여태껏 내가 알아온 정훈이들은 모두 남자였다. 이정훈, 현정훈, 지정훈, 김정훈... 수많은 정훈이들 중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나와 카톡을 주고받던 전정훈도 당연히 남자일 것이라 생각하고 에그타르트 가게 앞에서 '정훈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기... 혹시 유랑 보고 오셨어요?"
가게 앞에 있는 걸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사람이 나를 불러세웠다.
"네 맞아요. 혹시 그럼 정훈님 친구세요?"
"아뇨, 제가 정훈인데요."
"아..."
"괜찮아요. 이름만 보고 다들 남자인 줄 알아서."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에그타르트 가게로 들어갔다. 빌바오에서 교환학생을 한다는 그녀는 내 빌바오 여행을 궁금해했다.
"빌바오 다녀간 사람 처음 봐요. 빌바오에 할 게 없을 텐데."
그녀는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맛집을 알려줬을 거라며 아쉬워했고, 나는 대신 맛있게 먹었던 우동집을 추천해줬다.
"오빠 아직 렐루 서점에 안 가봤다고? 거기 진짜 유명한데, 해리포터 서점으로."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플러리쉬 앤 블러트 서점'의 모티프가 된 서점이 이곳에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아직 가 보지는 않았다. 정훈이를 따라 렐루 서점 앞으로 향했다. 어제 갔던 카르무 성당이 있는 광장을 지나 모퉁이를 돌았다. 사람들이 서점 앞에서 줄을 서 있었다. 입장료는 5유로, 서점 안에서 책을 사면 그만큼 물건값에서 빼주기는 하지만 서점에 입장료가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해리포터 서점'으로 유명해지고 관광객이 몰리면서 손님 자체는 많아졌지만 매출은 오히려 떨어지면서 입장료를 책정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굳이 돈을 내고 들어가 볼 생각은 안 들었다. 대신 구글에 검색을 해서 찾아본 내부는 정말 영화 속 서점처럼 계단 난간이 굽이치는, 마법 서적을 팔 것 같은 곳이었다. 나는 아르누보 스타일로 꾸며진 외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은 요즘, 이제야 기념품을 조금 사볼까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쇼핑을 하자는 정훈이의 제안에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어제 봐 뒀던 빈티지 가게에 갔다.
"이거 너한테 어울릴 것 같은데, 한 번 입어봐."
대부분 여자 옷들이라 나는 주로 정훈이가 옷을 입어보는 것을 기다렸다. 나는 너무 길어지지만 않는다면 쇼핑에 따라가서 한두 마디쯤 얹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기념품을 살 때 티스푼이나 자석 같이 특정한 종목을 정해 모으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지만 어떤 걸 사야 할지 결정을 못했다. 그런 게 있다면 편할 텐데, 사고 싶은 게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으니 파는 게 다 똑같은 기념품 가게들을 빙빙 돌기만 했다.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만 살 수 있는, 분위기가 묻어나는 그런 걸 사고 싶은데 그게 뭔지 나도 모르니 도통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채울 수 없는 물욕 때문에 걷기는 또 엄청 걸었다. 어느새 짧은 해가 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야경을 보러 돔 루이 1세 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다리도 이미 갔다 온 사람이 그 포인트를 몰랐다고? 다리 건너면 수도원이 하나 있거든, 거기 앞마당이 뷰포인트야."
어제 왔을 때는 몰랐는데, 다리를 건너면 바로 있는 세라 두 필라르 수도원이 다리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다는 곳이었다. 정훈이는 포르투에 온 사람 백이면 백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다며 여태 그것도 모르고 뭘 했냐며 수도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낮에 왔을 때와는 풍경이 사뭇 달랐다. 이렇게 극적으로 색감이 변하다니, 역시 같은 장소도 낮밤 두 번은 와봐야 한다. 우리는 난간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동행 좋은 게 뭐냐며.
"이제 밥 먹으러 갈래? 내가 찾아본 식당이 하나 있는데 오빠만 괜찮으면 거기로 가자."
오늘 하루 종일 정훈이를 따라다녔다. 식당까지 그녀가 찾아봤다는 곳으로 향했다. 과연 맛집답게 이미 한국인 몇 팀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우리도 마지막 남은 빈 테이블에 냉큼 앉았다.
"밥 하나만 시켜서 나눠먹을까? 저거 양이 많다고 하더라."
"응 그러자. 여기 술은 술집보다 더 비싸네."
우리는 해물밥 하나를 주문했다. 우리의 주문을 받은 웨이터는 '그게 끝?'이라고 되물어볼 듯이 잠깐 서 있다가 우리가 아무 말도 없자 돌아섰다. 잠시 후 냄비에 담긴 요리가 나왔고, 배고픈 우리는 사진 찍는 것도 잊은 채 국자로 국물과 밥을 떴다. 요리는 묘하게 맛있었다. 고슬고슬한 밥을 토마토와 새우, 조개가 들어간 국물에 말아먹는 맛이다. 국물이 많은 빠에야 정도로 생각하면 제일 가까울 것 같다.
"와 진짜 배불러. 하나로 나눠먹길 잘했네."
"맞아 나도 하나만 시키면 적지 않을까 싶어서 사이드라도 추가할까 생각했었거든. 근데 너 이제 뭐 할 건데? 호스텔로 돌아갈 거야?"
"몰라 좀 걷다가? 오빠는?"
"나도 아직 모르겠는데, 그럼 시내 가서 술 마실래?"
우리는 다시 번화가로 나가 술을 몇 잔 마셨다. 조용한 바의 안락의자에 앉은 정훈이는 말이 많았다. 나도 진토닉을 휘휘 저으며 그녀의 전공인 호텔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분야라, 배우는 과목들도 재밌어 보이고 실습도 취업도 다 좋아 보였다. 물론 호텔에서 일하기와 호텔에서 놀기 중에 고르라면 당연히 후자를 고르겠지만, 내가 해야 할 교생 실습보다 카지노 딜러 실습이 더 재밌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말을 많이 하니까 또 배고프네."
나는 또 기어이 맥도날드로 정훈이를 데려가 치즈버거를 먹었다. 술을 마시면 괜히 배가 출출한 기분이 든다. 시간이 늦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뜸하게 지나다녔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그녀는 비록 서울에 살지만 부산에 애정이 더 큰 것 같았다.
"어 잘 가고, 나중에 부산 오면 한번 봐."
부산 사람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우리는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