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 가면 성공된 인생이 보장되던 옛 시절이 있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대학가라!’만 충고하고, 자신들은 열심히 돈 벌면 강남 아파트 한 채 정도는 마련할 수 있던 때가 있었다. 이런 가정이 옹기종기 모여 우수한 노동력을 공급해주며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을 했다. 그러나 빨리빨리 문화 때문인지 ‘성수대교의 붕괴’처럼 한국사회는 내실을 갖추지 못했다.
2019년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노력만 한다고 자수성가할 수 없다. 가족의 보유자산이 얼마냐에 따라 삶이 미리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더 이상 ‘학벌’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들에게 뭐라고 조언해야 할까? 철학의 빈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우리는 먹고살기 바빠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것이 1990년대와 2010년대 대한민국에 자리 잡은 불안감의 원천이다. 그렇다고 <벌새>가 철학적인 영화라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공부’ 이외의 다른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함을 정확히 진단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오프닝’이다. 김보람 감독이 왜 여러 번 찍었는지 알겠다. 보고 나면 알 수 없는 미묘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창동과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상되지만, 영화는 확실히 여성적이다. 주인공 은희(박지후)는 관심과 공감, 이해를 바라는 평범한 10대 소녀다.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좋은 뜻에서 중구난방이다. 에피소드들은 여성적인 멀티태스킹이 수시로 이뤄진다. 아무런 맥락도 인과관계도 없이 서사가 진행된다. 마치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의 일상처럼 여기저기서 여러 일들이 터진다.
떡집을 운영하는 아빠(정인기)는 춤바람이 났고, 엄마(이승연)는 그걸 눈치챘으면서도 모른 척한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외삼촌이 자신 때문에 대학을 포기한 것 같다며 엄마에게 미안함을 표시한다. 또 다른 어느 날 밖에서 은희가 반가운 마음에 엄마를 불러도 엄마는 딸을 알아채지 못한다. 일상에 지친 엄마는 만사가 귀찮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런 엄마의 무기력한 체념은 딸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공부 잘하는 오빠(손상연)는 집안의 희망이지만, 그 기대 자체가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손버릇이 나쁘다. 또, 언니(박수연)는 공부와는 담을 쌓고 남자 친구와 열애 중이다. 구성원 모두 가족이지만, 자기 앞가림하기에 바쁘다. 은희는 가족의 냉담함에 지치고,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남자 친구와 헤어진다. 또,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면 신기하게 사라지는 청소년기 한정 동성애 혹은 선배에 대한 동경의 당사자가 되지만, 얼마 후, 후배 유리(설혜인)에게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라는 싸늘한 대답과 함께 뻥 차인다.
외로운 은희는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고, 공감하고 싶고, 이해받길 원한다. 사춘기 소녀가 겪는 정체성 혼란이 찾아온 것이다. 가끔 반항과 탈선하지만, 이럴 때 대개들 역할 모델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연예인일 수도 있고, 멋진 학교 선배 혹은 존경할만한 선생님 등을 동경하며 본받으려고 한다. 때마침 학원 선생님 영지(김새벽)가 등장한다. 운동권인 그녀의 책상에 꽂힌 책들로 봐서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녔거나 김수행 교수의 수업을 들은 것 같다. 어쨌거나 그녀로부터 명심보감 交友篇(교우 편)’의 한 구절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機人)’을 배운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라는 뜻이다.
이 구절을 배운 은희는 주변 사람들(특히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은희의 귀 밑에 느껴지던 조그만 혹을 수술하려고, 입원하면서 영화 내내 흐르던 불안감은 현실이 된다. 김일성 사망, 성수대교 붕괴 그리고,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
상실도 잠시 영화는 어느덧 은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가족애를 발견하게 된다. 무심해 보였던 아버지가 병원에서 딸이 아프다는 진단을 받자마자 펑펑 울고, 엄마는 감자전을 해주시며 맛있게 먹는 딸을 지긋이 바라봐준다. 그리고 인간 같지 않아 보였던 오빠가 어떤 사건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언니가 기분전환 겸해서 은희와 함께 한강변에 동행해준다. 이렇듯 가족 간의 정을 확인하면서 은희의 관계지향적인 고민도 일단락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다 보고 나면 왠지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감독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삽입하면서 ‘어른이 된 나는 과연 어릴 적 내가 꿈꾸던 모습일까?’를 회고한다. 그와 동시에 감독이 설정한 이상적인 어른, 영지 선생님을 통해 자신이 실제 겪었던 개인적인 불안과 고독을 은근슬쩍 시대의 상흔과 동일선상에 놓아둔다.
영화 <벌새>가 인상 깊게 다가온 건 ‘거리 두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단짝 지숙(박서윤)이 ‘네 말만 하냐? 너 되게 이기적인 거 알아?’라고 은희의 단점을 팩폭해 줄 때 ‘자기 객관화가 제대로 됐구나!’ 싶어 안심하고 스크린을 응시하게 됐다. 자기 경험담인데도 불구하고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아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살 수 있었다는 뜻이다.
★★★☆ (3.8/5.0)
Good : 성인이 된 내가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
Caution :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옮긴 수상록!
●벌새는 빠른 녀석은 초당 55회도 친다. 조류이니까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필사적으로 날개 짓을 하는 것이다. 극중 은희의 가족들처럼 한국사람들도 다들 경쟁사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들 산다.
●<1994년 10월 21일>이라는 자막이 없었다면 후반부가 더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 여중생, 여고생 때 느끼는 동성 간의 유사연애는 외국에서 보면 레즈비언으로 비취질 듯 싶네요.
●김호철이 작곡한 민중가요 <잘린 손가락>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여중생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왜 감독이 저 곡을 골랐는지 의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