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Of The Dog 영화후기, 줄거리, 해석, 정보
여러분은 서부극하면 무엇이 떠오르나나요? 미국의 개척정신으로 대표되는 정체성을 주제로 하는 장르이다. 많은 서부극들이 인디언과의 대결보다 국경지대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주목한 까닭도 마찬가지다. 제인 캠피온은 토머스 새비지가 1967년에 내놓은 동명 소설을 필름에 옮긴다. 서부극의 외피를 빌려 1925년 미국 몬태나주의 한 목장을 배경으로 긴장감 넘치는 복수극이자 세밀한 심리스릴러를 완성해낸다. 남성성을 찬미하고 동성애를 혐오하며 여성을 하대하는 카우보이들의 대장이자 동성애자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감독은 뉴질랜드의 풍광을 빌어 냉혹하고도 우아하게 펼쳐놓는다.
몬태나주의 목장을 경영하는 형제가 있다. 형인 필 버뱅크(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엄청난 독서가이자 손재주가 뛰어나고 음악에도 천재적이며 목장에서 일하는 카우보이들의 리더다. 씻거나 치장하지 않으며,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수송아지를 거세하고, 불태울지언정 인디언에게 가죽을 팔지 않는다. 그는 20년 전 사고로 사망한 전설의 카우보이 '브롱코 헨리'를 우상으로 삼으며 ‘카우보이’만이 이상적인 남성상이라고 믿는다. 너무 잘나서 그래서인지 남을 깔보고 성정이 거칠고 독선적이다. 심지어 주지사에게도 무례하게 군다.
반면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는 뚱뚱한 몸집이지만 신사답게 과묵하면서도 예의가 바르다. 아내에게 헌신적이며, 부모를 공경하며, 주지사와 친분을 유지할 만큼 사교성이 뛰어나다. 또 가방끈이 길지 않지만 기억력은 비상해서 목장의 실질적인 운영을 도맡고 있다. 이들 형제는 얼핏 상극처럼 여겨지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영혼의 단짝으로 중년이 다되도록 함께 침실을 쓰는 기묘한 사이다.
25년간 함께 목장을 경영해왔지만, 어느 날 조지가 과부인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그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피)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분노한 필은 로즈의 아들을 볼모로 삼아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영화는 로즈의 심신이 파괴되는 연유를 소상히 밝히지 않는다. 감독은 필의 존재감을 은밀한 방식으로 살린다. 목재마루를 저벅저벅 걸어가는 필의 발소리가 크게 강제한다거나 로즈가 서툴게 피아노 연습을 할 때 필이 벤조로 그 곡조를 능숙하게 따라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로즈를 짓누르는 필의 카리스마는 컴버배치가 탁월하게 연기했다.
영화에는 다양한 남성상이 제시된다. 필은 마초 그자체이며, 조지는 신사이며, 피터는 유약해 보인다. 필은 예일대 고전학과를 전공한 엘리트이며, 카우보이로써 강인한 남성성을 예찬한다. 그리스시대에서 군대에서 동성애를 권장했는데, 이유는 동료애를 심고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완벽한 남성상을 동경해왔으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자승자박이 되어 되돌아온다.
반면에 앙상하고 구부정한 피터는 카우보이 집단의 손쉬운 놀림거리가 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휴대용 빗을 꺼내 만지거나 훌라후프를 돌린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길 원하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지켜주고 싶어 한다. 그가 섬세하게 종이를 잘라 만든 꽃은 부모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나약함을 이겨낸다. 어느덧 덫을 놓아 토끼를 잡고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토끼를 해부한다. 마침 필의 비밀스러운 정체성을 목격한 뒤로 필과 피터 사이의 역학관계도 변한다.
중요 시퀀스의 순서를 약간 달리 편집했다면 통속적인 반전스릴러가 될 수 있었으나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프롤로그 내레이션부터 사건의 전말을 미리 알리며 영화 곳곳에 암시와 은유로 단서를 흩뿌려 놓고서 조니 그린우드의 불안한 음악(스코어)속에서 감정을 고조시켜나가는 연출이 영화의 깊이를 더해줬다.
이 영화의 제목인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은 구약 시편 22장 20절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 주시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 개입에서 빼내 주소서."에서 따온 것으로, '악의 세력'을 뜻하면서 동시에 극중에 등장하는 중요 모티프인 사냥개의 형상을 한 산세를 가리키는 이중의 의도를 지녔다.
캠피언은 필을 두고 “그는 악의적이고 불친절하기 일쑤인 복잡하고 잔인한 성격이지만 한편으로는 오래된 과거의 감정을 간직하는 것으로만 안전함을 느끼는 외롭고 고통 받는 연인이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영화 곳곳에서 필이 마초로 살아가는 이유를 ‘동성애’라고 암시한다. 이 대목은 남성성을 강요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탈갑옷' 운동을 연상시킨다. 갑옷은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강요를 뜻한다. 그리고 여러모로 여성스러운 피터가 가장 남성스럽게 각성하는 대목이나 필의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남자라 안 된다"나 "남자가 그것도 못하냐"는 기존 시선을 거부한다.
★★★★☆ (4.5/5.0)
Good : 컴버배치의 압도적인 카리스마
Caution : 서부극에 대한 선입관을 떨쳐내시길
●원작자 토머스 새비지는 실제 경험에 의거해 소설을 썼다. 그는 어린 시절 이혼한 어머니가 부유한 목장주와 재혼하며 따라가 함께 살았는데. 소설 속의 조지는 그의 새아버지가 모델이며 필은 새아버지의 둘째 형 에드가 모티브다. 작가의 큰아버지이기도 한 에드는 재수를 교묘하게 모욕하고, 괴롭힘으로써 새비지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교양이 풍부하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악담을 퍼붓는 소설 속의 필과 거의 비슷하다. 새비지는 자신의 가족사에서 힌트를 얻어 훌륭한 소설을 썼고,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사악한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어머니를 대신해 통쾌하게 '문학적 복수'를 했다.
■'탈갑옷'의 배경과 관련,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소속 오경미 활동가는 “초기 페미니즘 운동에선 남성을 가둬 놓는 ‘맨 박스’도 함께 해체해야 한다는 얘기를 원래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여성은 피해자’라는 얘기만 남게 됐다”며 “대결 구도가 돼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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