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에서 지구를 구하는 대영웅들은 이미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스펙터클로 소비되고 있다. 그들은 이미 하나의 상징으로서 우리가 일상을 벗어나 대리만족을 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들의 스케일이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일상과는 유리되는 모순을 낳는다. 그들의 세계는 가장 작아 봐야 지구 전체이다. 그들이 아무리 평소에 일반인처럼 산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우리 이웃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보인다.
이와 반대로 졸린은 수면 보조사라는 특별한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우리의 삶과 밀접한 잠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 준다. 지구 중에서도 가시거리 안에 있는 협소한 범위에 걸쳐 있는 것이다. 딱 졸린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까지만 해당된다. 영웅의 사전적인 의미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이에 따르면 졸린은 영웅이 맞는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본 이들을 잠들게 한다. 그의 얼굴은 무기이자 약이다.
그는 주로 중환자실 병동이나 호스피스 병동, 수면 클리닉에서 아픈 이들에게 꿀 같은 휴식을 주는 일을 했다. 환자들에게 졸린은 목사님이나 신부님, 의사보다도 더 반가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되었으니 졸린의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겠지만, 여기에서 멈춘다면 영웅이 되기 힘든 법.
그는 쉬운 길을 벗어나 어려운 일을 택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편하게 잠들게 할 방법을 말이다. 그가 간 곳은 극단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드디어 그의 첫 공연인 <서울의 잠 못 드는 밤>을 무대에 올렸다.
미스터 졸린의 일인극인 이 작품은 만성 피로자들을 위한 ‘막간잠’ 공연이다. 어려운 사람보다는 편한 사람과 오거나, 아니면 혼자 오는 것이 좋다. 아니면 아예 회식용으로 와도 좋을 것이다. 피로가 쌓이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잠을 자면서 피로를 풀고 가는 회식! 이것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이상적인 회식 아닐까? 팸플릿에 나온 대로 공연이 끝나면 ‘함께 잠을 잔 사이’로서 한결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푹신한 방석에 따뜻한 무릎담요는 마약과도 같다.
그는 피로에 지친 이들을 잠들게 하는데, 특히 극장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모두 함께 잠드는 집단성을 통해 수면의 죄책감에서 해방되게 해 준다. 그의 앞에서는 누구나 원하든, 원치 않든 잘 수 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지 않으면 티켓값을 전액 환불해 준다고 했는데, 유일한 환불 대상인 필자는 환불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졸린의 연기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공연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십오 분 동안 무대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숙면하기 전의 예열 시간처럼 텅 빈 무대는 조용하다. 여기에서부터 1차 고비가 시작된다. 평소에 피로가 머리끝까지 쌓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침묵들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십오 분 뒤, 무대에 등장한 졸린은 나무늘보처럼 매우 느리게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드디어 관객들에게 공개한다.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본 관객들은 하나둘씩 장렬하게 쓰러진다. 잠자는 이의 얼굴을 가진 졸린은 그렇게 자신의 닮은꼴들을 순식간에 복사해 낸다. 여기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므로 그의 대사들은 관객들에게 가 닿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흩뿌려진다. 연극에서 졸린은 그의 느릿한 동작과 지나치도록 여유롭게 읊는 대사를 통해 관객들을 재운다. 하지만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밀려오는 잠에 몸을 맡기면 된다.
그래도, 혹시 몰라 졸린의 대사를 몇 개 발췌한다.
그의 대사는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동안 내 사생활이 진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
“이건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라 한 인생의 꿈이다.”
“비로소, 마침내, 드디어 꿈의 무대에 섰다.”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이다.”
“자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어느 쪽이 더 나다울까? 잠드는 건 사는 것, 그뿐이지. 잠들어 모든 것이 끝나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닌가? 잠이 들면 꿈을 꿀 테고, 걱정을 벗어나 삶의 잠이 들었을 때, 그땐 어떤 꿈을 꿀 것인가?”
그는 이와 같은 대사들을 통해 잠을 자기 위해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지만, 주인공으로서 무대에 선 뒤에도 잠을 선사했다. 잠을 이기기 위해 그와 경쟁할 필요는 없다. 그의 뜻대로 관객들은 무방비하면서도 편하게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푹 잠들었다. 필자를 제외하고 말이다. 물론 공연을 집중해서 본 덕분에 집에 와서는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의 공연이 피로에 지친 이들을 위해 앞으로도 오랫동안 장기 공연을 하기를, 이왕이면 전용 극장이 생겨 오픈런이 되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이 글은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야맹증을 이 연극을 통해 불운하게 알게 된 한 관객이 쓴 유일한 진짜 후기이다. 무대에서 내려온 졸린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 졸린은 먼 나라 또는 다른 세계에 있는 타인,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이웃이다.
졸린은 아직 살아 있었다.
다른 관객들은 내가 쓴 기사를 보고 공연을 본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관객들이 모두 쓰러져 있는 것을 확인한 졸린이 나무에서 내려왔다. 무대의 조명이 꺼졌다. 남은 시간은 철저하게 잠드는 시간이었다. 옆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허벅지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내 옆 사람도 내 무릎 위에 쓰러져 잠들었다. 연극이 시작하자마자 명상하는 것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중년 여자였다.
한 시간 반이 지나자 객석의 불이 켜졌다. 관객들은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났다. 바닥에 쏟아진 물을 밟아 미끄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지하철에서 모르는 옆 사람에게 기대어 잠들었다는 것을 안 뒤에 무안해하는 것처럼 관객들은 서로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러면서도 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말했다.
“이렇게 작정하고 자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나는 내 무릎을 베고 잤던 중년 여자에게 입가에 흘린 침을 닦으라면서 손수건을 빌려주었다. 여자가 침을 닦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여자는 별수 없이 눈물과 침을 한꺼번에 닦았다. 커튼콜 때 등장한 졸린은 끝까지 뒷모습만 보여 주었다. 관객들도 집에 가야 하고, 공연도 끝내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관객들은 모두 기립 박수를 쳤다. 그리고 개운한 마음으로 술이나 차를 마시러 갔다.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 졸린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졸린은 단 열 번만의 공연을 끝내고 홀연히 사라졌다. 기사로 졸린을 종종 만나기는 했다. 졸린이 수면 사업을 하다가 동업자의 사기로 빚을 지고, 다시 사람들을 재워서 본인과 가족들의 빚을 금세 갚았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지만 곧 묻혔다. 졸린의 기사는 연예란에 있기도 했고, 사회란에 있기도 했다. 연극배우이기도 했고, 그보다 수면 보조사일 때가 더 많았다.
그동안 졸린은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세 번째 인터뷰도 취소되었다. 지금까지 한 인터뷰로 또 다른 기사를 쓰려고 했지만 못 했다. 내 기사는 졸린의 동의가 필요했다. 한동안 세상에서 사라졌던 졸린이 다시 나타난 건 전시회장의 사진 속에서였다. 나의 연락을 다시 받기 시작한 것과 비슷한 시기이기도 했다.
졸린의 옆모습을 곁눈질로 보았다. 그는 맥모닝 세트를 다 먹은 뒤에도 되새김질이라도 하듯이 계속해서 씹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어졌다. 졸린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빛이 없어야 했다.
졸린과 아이스크림콘을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왔다. 졸린의 집으로 향했다. 반지하방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졸린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에게 굿모닝이라고 인사했다. 졸린에게는 굿나잇과 같은 뜻이었다. 평소에 그 인사를 들어 주는 이는 옆집의 메리뿐이라고 했다.
“오늘은 그 인사를 듣는 이가 늘었네요.”
졸린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계단을 내려간 뒤 만난 졸린의 방은 서늘하고 어두웠다.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자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 안이 제대로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졸린은 불을 켜지 않았다. 나는 야맹증을 빌미로 졸린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눈동자가 아득했다. 졸음이 잠깐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졸린의 방에 가구라고는 서랍이 세 개 있는 갈색 다용도함 하나뿐이었다. 식탁도, 의자도, 침대도, 앉은뱅이책상도 없었다. 화장실 옆에 검은 천이 하나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영화제에서 배우들이 밟는 레드 카펫처럼 긴 모양이었다. 이불 같지는 않았다. 커튼보다도 얇았다. 졸린이 그 얇디얇은 감촉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
졸린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뭐예요?”
졸린이 느릿느릿 대답했다.
“그냥, 이대로 조용히 살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졸린은 몸을 틀었다. 나는 졸린의 팔을 잡았다. 팔을 잡은 채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서 졸린의 얼굴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반짝
졸린의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전시회장에 있던 졸린의 사진도 이런 얼굴은 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썼던 기사인 <수면 보조사에서 연극 주도자가 된 졸린>의 마지막 문장이 다시 생각났다.
졸린은 아직 살아 있었다.
여전히 졸린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뇨, 조용히 살지 마세요. 내내 피곤한 세상에서는 당신이 필요해요. 이대로 사라지지 마세요.”
“…….”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능력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구요. 앞으로도 당신의 삶을 쓰고 싶어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리즈로.”
졸린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멋대로 살고 싶었는데…….”
머릿속에 많은 접속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러니까, 그러므로.
그러다가 졸린이 이제까지 많은 직업을 거쳐 왔던 게 떠올랐다. 연극 무대에까지 섰었던 그였다. 못 할 게 없었다.
“다른 직업을 찾으면 되죠. 당신은 잠 괴물이 아닌 잠 영웅이잖아요. 이를테면, 슬립 히어로 같은.”
“그것참, 좋네요.”
“그러니까 이렇게 빨리 당신의 삶을 끄지 마세요.”
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 영웅, 슬립 히어로는 미래형이 아니었다. 졸린이 이제까지 재운 사람들은 셀 수도 없었으니. 그는 그의 일을 계속하면 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이어서 졸린의 인생을 쓸 다음 기사의 제목이 벌써 생각났다. 방이 점차 밝아졌다. 창도 없는 지하 방에 빛이 있었다. 졸린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그 빛을 보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졸린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리 달아났다.
며칠 뒤, 전시회장에 걸려 있던 졸린의 사진에서 검은 천이 사라졌다. 사진 속에서는 사과처럼 반질반질한 졸린의 뒤통수가 관람객들을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