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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Oct 18. 2024

슬기로운 골절 생활 (10)

먹는 일의 기쁨과 즐거움


골절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중요한 동력 중의 하나가 음식이었다. 골절은 다행히 술과 담배를 제외하고는 음식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병원 밥도 간이 되어 있는 편이기는 했지만, 병원 밥만 먹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공간적인 제약이 많은 실내 생활의 특성상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에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 활동적인 성격이라 대부분의 취미 생활이 밖에서 하는 것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가장 빨리 풀 수 있는 게 먹는 일이었다. 먹는 일의 기쁨과 즐거움이 없었다면 입원 생활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먹는 일에도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서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사진 많음 주의)








1. 뼈에 좋은 음식들


골절인으로서 가장 큰 관심사는 뼈에 좋은 음식들이었다. 반찬으로는 엄마가 싸  멸치볶음을 열심히 먹었고 간호사 선생님이 그릭 요거트를 추천해 줘서 그릭 요거트+과일+그래놀라+꿀 조합도 많이 먹었다. 여동생이 만들어 온 수제 그릭 요거트도 좋은 간식이었다. 바나나도 뼈에 좋다고 해서 종종 먹었고 뼈에 좋은 두유도 간식으로 챙겨 먹었다. 가끔 과자가 먹고 싶을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도 양심상 단백질이 들어간 단백질 쿠키나 과자들을 골라서 먹었다. 바깥 음식으로는 칼슘이 풍부한 흑염소탕이나 수육을 챙겨 먹었다.






2. 부기에 좋은 음식


생각보다 큰 복병이 부기였다. 평소에도 부종이 있는 편이라 수술 후 부기 빼기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항상 거상 자세로 다리를 올리고 있었고, 얼음찜질도 수시로 했다. 여동생이 보내 준 호박즙도 자주 먹었고 병원 식단에 호박죽이 나오면 반가웠다. 금식이 끝난 뒤 첫 식사도 밥은 부담스러워서 호박죽을 사 와서 먹으니 좋았다. 호박즙은 냉장고에 차게 해서 먹으면 여동생이 군고구마 맛이 난다고 했는데 진짜 맛있었다. 음료수가 먹고 싶을 때마다 먹었다.





3. 맛있는 커피


커피 애호가로서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한방병원에서는 근처에 예쁜 카페들이 많아서 가족들이 오면 함께 카페 나들이를 가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테이크 아웃을 해 오기도 했고, 나중에는 혼자서도 병 커피를 주문하거나 배달해서 하루에 한두 잔씩은 먹었다. 강제 금주를 하게 되었지만 술은 생각보다 참을 만하고 생각이 많이 나지는 않는데, 커피를 못 마시게 했으면 괴로웠을 것 같다. 그래도 카페인이 과도하면 안 좋기에 수술 직후에 한동안은 마시지 않고, 이후에 디카페인을 마시다가 카페인을 섞어서 마시는 식으로 조금씩 늘려 갔다. 좋은 작업 메이트이기도 한 커피를 입원 생활에서도 빠뜨릴 수 없다!





4. 다정한 선물들


가족들과 친구들이 준 다정한 선물들도 맛있게 잘 먹었다. 직접 만든 그릭 요거트와 개성 주악, 공진단부터 시작해서 맛있는 케이크와 빵, 푸딩, 요아정, 베이글, 과일, 포케, 샐러드, 음료수 등 맛있는 밥과 간식들도 많이 먹었다. 엄마의 도시락도 감동적인 맛이었다. 입원을 하는 동안 운동을 많이 못 해서 평소에 혼자 있을 때는 밥의 양도 조절하고 단백질 간식이나 과일 위주로 먹고자 했지만, 다정한 선물들은 기쁘게 받아서 기분 좋게 먹었다. 물론 혼자 다 먹은 건 아니고 골고루 나눠 먹고 나눠 받기도 했다. 집에서 직접 땄다는 구아바도 처음으로 먹어 봐서 신기했다.






5. 바깥 음식들


병원 밥은 주로 한식이고 건강식이어서 생활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나의 입은 가끔 자극적인 바깥 음식을 찾기도 했다. 식사 취소가 자유로운 편이어서 종종 가족들과 바깥 음식을 배달해 먹거나 직접 가서 먹었다. 사진을 모두 찍지는 못했지만 장어와 삼겹살에서부터 시작해서 치킨, 피자, 쌀국수, 족발, 주꾸미, 파스타, 꼬막비빔밥, 돈가스, 김밥과 컵라면 등등을 야무지게 먹었다. 배우자가 '사제 음식'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할 정도로, 병원 밥만 먹다가 먹게 되는 바깥 음식은 꿀맛이었다.











또한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과도 간식을 나눠 먹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서로 많은 간식을 주고받았다. 과일이나 음료수를 가장 많이 나누어 먹었다. 귀한 샤인머스켓을 가장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사과와 귤도 많이 먹은 편이었다. 병문안을 온 친구들이나 가족들과도 많은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혼자만 먹었다면 부담스럽기도 하고 재미가 덜했을 텐데,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니 하나하나가 다 맛있고 먹는 과정도 즐거웠다. 병실에서 함께 나누어 먹었던 음식들, 그리고 함께 먹었던 경험들이 나중에는 다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자칫 삭막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이 안에서도 나눔과 정이 있는데 중요한 매개체가 음식이었다. 먹는 정이 병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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