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가장 자신 없는 일에 관해 묻는다면,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루하루가 다른 색으로 칠해지길 바랐고, 매일 다른 작업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고정된 직장에서 일하기보다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프리랜서의 삶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연구도, 창작도 하나의 작업이 끝나면 새롭게 다른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물론 반복적인 퇴고는 감당해야 하겠지만)
이렇게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루틴이 필요하다. 바로 장기전에 돌입할 때이다. 수능처럼 중요한 시험에 응시할 때, 장편 소설이나 학위 논문처럼 긴 글을 쓸 때에는 루틴에 따라서 하는 것이 효과가 좋았다.
그러니 예상외로 길어진 입원 기간에도 루틴이 필요했다. 병원에서의 치료도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으니, 사이사이에 나만의 루틴을 집어넣으면 되었다.
<병원에서의 하루>
1) 오전 5~6시 : 약 배부(매일), 피 검사(가끔)
2) 오전 6~7시 : 기상, 아침 식사
3) 오전 7~9시 : 개인 정비 시간(주변 정리, 세안, 몸 닦기, 머리 빗기와 묶기 등)
-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할 경우에는 쪽잠으로 잠 보충
- 답답할 경우에는 병원 입구에 나가서 잠깐 바깥공기 쐬기(첫 번째 산책)
4) 오전 9~11시 : 원장님 회진, 첫 번째 항생제 맞기, 소독(드레싱)
- 대기 중에는 가볍게 독서를 하거나 뉴스 보기
-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기 때문에 비몽사몽인 채라 아침을 거의 먹지 않으므로, 배가 많이 고플 경우에는 간단한 간식 먹기
5) 오전 11시~12시 : 물리치료받기(간혹 엑스레이 찍기)
6) 오후 12시~1시 : 점심 식사
7) 오후 1시~5시 : 자유 시간(이때 집중적으로 개인 작업을 했다. 친구들도 주로 이 시간에 방문했다.)
- 혈압과 체온 재기(시간은 일정하지 않음)
-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 먹기
8) 오후 5시~6시 : 저녁 식사
9) 오후 6시~7시 : 휴식
10) 오후 7시~8시 : 두 번째 항생제 맞기(치료 일정 종료)
11) 오후 8시~10시 : 두 번째 산책(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또는 간혹 머리 감기와 환복
12) 오후 10시~12시 : 자리 정리, 취침 준비, 소등
- 가벼운 독서를 하거나 보고 싶은 영상 보기
- 간혹 중요한 작업(마감 등)이 있을 경우에는 잔업하기
- 저녁을 일찍 먹어 배가 고플 경우에는 간단한 간식 먹기
병원의 특성상 기상 시간과 식사 시간이 워낙 빠른 데다 일어나자마자 밥이 많이 들어갈 리 없고, 장기 입원을 하니 병원 밥이 물려서 병원 밥 자체는 많이 먹지 않았다. 쌀밥이라서 밥은 많아야 반 정도만 먹고 단백질로 구성된 반찬 위주로 먹었다. 국도 국물은 거의 먹지 않고 건더기 위주로 먹었다. 그렇다 보니 중간중간에 배가 고플 때가 많아서 간식으로 보충을 했다.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 보니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는 것이 큰 낙이다. (원래 먹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다.) 가끔 바깥 음식을 먹기도 했는데 별미였다. 음식과 관련해서는 따로 적을 생각이다.
또한 통잠을 자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 오전에 틈이 나면 쪽잠으로 보충했다. 정형외과 약이 졸리기도 해서 잠은 충분히 자는 것이 좋다. 오전에 잠을 보충해서 정신이 맑아진 뒤에야 오후에 작업을 시작했다. 오후에도 피곤할 경우에는 언제든 누워서 쉬거나 잤다. 병원이 확실히 휴식하기 좋은 공간이기는 하다. 늘 시간을 쪼개면서 살다가 원 없이 자고 쉬니 약간 한량 같기도 했지만 좋았다.
지루한 병원 생활에서는 간식을 먹는 것도 중요한 루틴이 되었다. 가장 많이 먹은 것은 커피 애호가인 만큼 커피였다. 과일도 자주 먹은 편이었다.
치료 일정(또는 치료 루틴!)도 생각보다 많았지만, 대부분 오전 중에 끝나서 오후 일정을 여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이때 개인 작업을 할 시간을 마련한 덕분에 입원 생활을 덜 지루하게 할 수 있었다. 병원 일정에만 얽매여 있으면 그날이 그날 같고 허무했을 것 같다. 병원 공기 자체가 답답한 경우가 많아서 휠체어로 혼자 자유롭게 다니게 된 뒤에는 하루에 한두 번은 바깥에 나가서 바깥공기를 쐬기도 하고, 1층에서 택배를 찾아 오기도 했다. 휠체어를 탄 채 무릎 위에 택배를 올려놓고 오는 것도 가능해지니 뿌듯했다.
물론 대부분 침대 생활을 해서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좀이 쑤시기는 했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갑자기 주어진 여유를 누렸다. 평소에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던 드라마와 영화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놀기만 하면 금방 허무함을 느끼는 편인데, 작업 루틴이 들어가 있으니 그와 같은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잘 작업하기! 이것이 나의 목표였다. 역시 장기 입원에도 루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