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생활을 하면서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온라인(줌) 강의는 소설 창작 클래스였다. 온라인 강의 이야기를 하기 전, 입원 생활을 하면서 창작과 관련하여 무척 기쁜 소식을 들어 그 이야기를 먼저 하고자 한다.
바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병실에서 속보로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기쁘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살아 있을 때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을 받고, 한강 작가가 받는 것을 볼 줄은 몰랐다. 의미 있는 작품들을 쓴 여성 작가가 받아서 더욱 기쁘다. 한국 문학 전공자로서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
지난 학기에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학원 수업 주제가 세계화 시대의 한국 문학이어서 당연히 한강 작가의 작품들도 다루었었는데, 만약 이번 학기에 그 수업을 했으면 수업 시간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대흥분해서 오래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술을 못 마시는 상황이라 아쉬웠지만 포도주라 생각하고 포도 주스를 마시며 축하를 했다.
문학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이런 소식들을 들으면 힘이 난다. 한강 작가 같은 거장이자 대문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읽고 쓰는 일을 더욱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나의 일로 돌아와서, 대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창작 클래스를 연 것은 처음이라 의욕에 넘쳐 열심히 준비했다. 열정적인 멤버들이 들어와서 오프라인 강의 분위기도 무척 훈훈했다. 기획에서부터 참여해서 나의 생각과 아이디어들이 많이 들어가기도 했고, 내 소설을 예시로들면서 어떻게 소설을 창작했는지 말하다 보니 애정이 많이 갔다. 창작 수업을 할 때 실습과 피드백을 많이 하는 편인데 멤버들이 실습 과제도 열심히 해 줘서 나 역시 무척 신나게 했다. 4강까지 한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창작 강의를 하는 일이 즐거웠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오프라인으로 마무리를 할 줄 알았는데 골절 사고 때문에 급하게 5강과 6강은 온라인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대표님과 멤버들이 흔쾌히 동의해 준 덕분에 줌으로 강의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온라인 강의를 하는 장소였다. 공동 간병인실인 4인실에 있었던 데다 강의는 저녁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해야 했고, 소등을 유난히 빨리 해서 저녁 9시면 불이 꺼지기에 병실에서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말하는 소리뿐만 아니라 멤버들이 의견을 말하는 소리도 다 들릴 수 있어서 소리도 걱정이 되었다.
고민하다가 간병인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 제가 사실 온라인 강의 두 번을 병원에서 해야 하는데 혹시 강의를 할 만한 장소가 있을까요?"
"온라인 강의? 혹시 빈 병실이 있나 한번 알아볼게."
간병인 선생님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한 뒤 간호사 선생님에게 요청하여 마침 비어 있었던 병실을 섭외해 주었다! 당일 저녁 7시쯤에 휠체어를 타고 준비물을 든 채 빈 병실로 이동했다. 노트북, 간이 테이블, 물티슈, 음료수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갔다. 이동에서부터 시작해서 침대에 노트북을 세팅하는 것, 강의가 끝난 뒤 데리러 오고 인증 사진을 찍어 주는 것까지 간병인 선생님의 전적인 도움을 받았다. 무척 고마웠다. 조용한 병실에서 혼자 강의를 하니 집중이 잘되었다.
마지막 강의까지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하면 좋았을 텐데, 수술 환자가 워낙 많은 인기 있는 병원이다 보니 6강은 빈 병실을 섭외하지 못했다. 마땅한 장소가 없으면 내 침대에서 커튼을 치고라도 수업을 해야 할 텐데, 역시나 밤늦게까지 소리가 날 것이 걱정되었다. - 강의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흥에 취해 목소리가 커지는 경우가 많은데, 창작 클래스의 경우에는 더 신나게 되어서 목소리가 무조건 커질 것 같았다. - 고민하다가 휴게실에 휠체어를 세워 놓고 강의를 하기로 했다.
문제는 휴게실이 공용 공간인 데다 막혀 있는 곳이 아니고 개방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지나가거나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병실보다는 나을 듯하여 모험을 하기로 했다. 저녁 시간이 5시이니 7시 이후에는 휴게실에 사람들이 많이 안 올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간병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휴게실로 가서 휠체어를 세워 놓고 강의를 시작했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한 시간 동안은 사람이 없어 수월하게 강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후반부 강의를 시작할 무렵, 한 가족이 휴게실에 와 늦은 저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고, 안면이 있는 나에게 말을 걸기까지 해서 오디오가 겹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일단 강의를 중단하고 채팅 창에 사정을 설명한 뒤, 사람들이 가면 강의를 재개하겠다고 했다. 식사를 하러 온 거면 20분쯤 걸리리라고 예상해서였다. 하지만 저녁을 먹은 뒤에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 시작하자 나의 불안감도 커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휴게실을 독점할 수는 없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지, 아니면 아예 더 늦은 시간에 다시 시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동안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고- 더 이상은 멤버들을 한없이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양해를 구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강의를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휴게실에 있던 분들이 분위기를 알게 된 뒤, 대화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정리해 주어서 마지막 강의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을 양해해 주고 내 건강을 우선으로 걱정해 준 멤버들이 무척 고마웠다.
장기 입원이 예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남은 두 번을 온라인 강의로 마무리했지만, 1인실이 아닌 이상은 온라인 회의나 강의는 시도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혈압 체크나 수액 처치 등을 위해 간호사 선생님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같은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들도 있어 개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후에 2인실에도 오래 있었는데 옆자리에 사람이 없을 땐 독방처럼 사용했지만 대부분은 옆자리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입원 생활은 기본적으로 공동생활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가족들이 몽골에서 사다 준 노트. 간단한 메모를 할 때 자주 사용했다.
두 번의 줌 강의를 우당탕탕 마친 뒤에는 침대에서 조용히 할 수 있는 재택근무 위주로 돌렸다. 초반에는 눕거나 기대서 작업을 해야 하기에 긴장이 풀려서 힘들었지만 - 물론 누워서도 PPT를 만들고, 첨삭을 하고, 교정 교열도 하고, 원고도 쓰는 등 할 건 다 했지만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 적응된 뒤에는 벽에 기댄 채 침대 테이블을 사용할 수 있어서 책상에 앉아 있는 느낌이 나 작업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일기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메모도 하고, 줌 강의를 들으며 필기를 하기도 하고, 교정 교열을 하기도 하고, 리뷰나 에세이를 쓰기도 하고, 소설을 수정하기도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라 머리를 써서 연구를 하거나 창작을 새로 하는 것은 어려워 퇴원 후로 미뤄 두었다.
간단한 작업들이나마 꾸준히 하니 병원에서도 무기력함을 피할 수 있었다. 잠을 자는 것도 한계가 있고, 휴대폰만 계속 들여다보는 것도 무료하고 지겹다. 휴대폰을 보다 보면 아무래도 골절과 관련된 정보나 후기들도 많이 찾아보게 되는데, 이것도 과하면 아픈 것에 생각이 집중되어서 심란하기만 할 뿐이다. 병원에서는 일개 환자 1일 뿐이지만 환자라는 정체성을 굳이 내내 자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평소에 하던 것, 즉 일상의 몇 조각들은 떼어서 입원 생활 중에도 해야 그 생활 감각 덕분에 활기가 생긴다. 아프다고 해서 축축 처져 있기보다는 할 수 있는 선에서 병실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과 정신을 돌보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