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쳤을 때를 제외하고, 골절 생활 중 가장 괴로웠던 때를 골라 보자면 통깁스를 할 때라고 말하고 싶다. 짧은 통깁스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통깁스를 4주간 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문이었다. 처음에는 다리에 딱 맞게 통깁스를 해 주는데, 무릎 위로 올라올 경우 깁스를 할 때 괴롭더라도 무릎을 조금이라도 굽혀 달라고 해야 한다. 무릎을 편 채 4주간 통깁스를 하면 무릎까지 굳어져서 재활할 때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전에 했던 반깁스에서도 무릎을 펴고 있느라 무릎이 아팠기 때문에 통증을 호소해서 통깁스 때 무릎을 많이 굽힌 편이었다. 덕분에 나중에 통깁스를 풀고 나서 무릎은 금방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가족들이 통깁스에 써 준 문구들. 통깁스 기간은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이 문구들을 보면서 버텼다.
통깁스를 하는 순간부터 답답함과 간지러움과 저림의 고통이 시작된다. 일단 무게가 매우 무겁기 때문에 움직이기도 불편하고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아 통잠을 자기 힘들다. 피가 아래로 쏠려서 발뒤꿈치의 통증이 가장 심했던 때이기도 했다. 혹시나 발뒤꿈치에 욕창이 생겼을까 봐 걱정될 정도로 통증이 심했는데 다행히 욕창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중에 통깁스를 풀었을 때 보니 발뒤꿈치에 피가 맺혀 있었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통깁스를 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발뒤꿈치 통증을 물어보고 다닐 정도였다. - 물론 의사 선생님들은 워낙 흔한 증상이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는 한다. - 게다가 씻지 못해 각질들이 번식하는 수준이고 간지러움도 심해져서 당장이라도 통깁스를 깨고 시원하게 긁고 싶을 정도였다. 깁스 긁개가 없었다면 간지러움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갈수록 깁스 틈이 벌어져서 긁기가 더 수월해지긴 했다.
또한 통풍이 되지 않고 더위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큰 고통이었다. 통깁스와 더위의 조합은 예기치 못하게 나의 장기 입원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그래도 장점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통깁스의 유일한 장점은 두껍고 답답한 만큼 안정적이라는 거다. 덕분에 잘 때 옆으로도 자세를 틀 수 있고, 입원 후 처음으로 외출도 시도할 수 있었다.
통깁스를 한 뒤 처음으로 병원 1층에 나와 바깥공기를 쐬고 있는 모습. 통깁스 기간에는 외출을 비교적 자유롭게 했다.
그러나 통깁스의 고통과 슬픔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안전하게 통깁스 생활을 하기 위해 옮겼던 한방병원에서 몸은 편하게 있었고 주변 맛집과 카페도 신나게 탐방했지만, 더위 때문에 통깁스 안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하필 올해 9월까지 날씨가 더웠고, 추위를 많이 타는 어르신들이 많은 한방병원의 특성상 항상 더웠으며, 나는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3콤보의 결과로 통깁스 안에서 정강이 상처 부분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상처가 일찍 아물어서복숭아뼈 쪽과 달리 소독도 일찍 끝났고 통깁스를 할 때도 창을 따로 뚫지 않았었다. 그 상황에서 안에 습기가 차 상처가 약간 벌어져 피가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한방병원에서 온도 싸움을 하느라 내가 낮춰 놓은 에어컨 온도를 누군가가 높여 놓을 때마다 짜증이 났는데, 이런 일까지 생기니 어찌나 화가 나고 속상하던지.......
염증이 생겼다는 것도 운 좋게, 우연히 발견했다. 침대 시트에 갈색 얼룩이 점점이 떨어진 것을 보고, 당연히 전날 병문안을 온 친구가 사 온 민트 초코 음료를 치우다가 흘린 거라고 생각했다. (이토록 단순한 나) 그런데 침대 시트를 갈고 나서도 얼룩이 또 생긴 것이다! 그때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다리를 살펴보았는데 발뒤꿈치 깁스 쪽에 피가 묻어 있었다. 처음에는 발뒤꿈치에 욕창이 생겨서 피가 난 거라고 생각했다. 급히 수술 병원에 연락해 외래를 잡고, 예정일보다 일찍 통깁스를 깼다. 그리고 염증을 발견하게 되었다. 운이 좋은 편이긴 했다. 얼룩이 아니었다면 통깁스 기간 내내 몰랐다가 더 크게 곪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다시, (재난) 시작이었다. 염증 치료를 위해 급하게 수술 병원으로 다시 옮겨 와 입원을 하고, 검사를 받고, 염증을 긁어내고 꿰매기 위해 수술을 받고, 수술 후에 다시 치료를 받았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도 절차는 똑같기에 재입원과 재수술을 하자 심리적으로 더 힘들었다. 첫 번째 수술은 경황없이 수술실에 들어갔지만 두 번째 수술은 맨정신으로 들어가려니 힘들었고, 금식부터 시작해서 수술 후 열두 시간 동안 누워 있는 것과 주사 치료도 괴로웠다. 하필 혈관도 얇아서 두 팔은 주사 자리를 계속 바꾸느라 손등까지 멍투성이었다.
결국 쇄골에 주사 라인을 뚫는 시술(C-line)까지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라인을 잡은 게 팔에 주사를 꽂는 것보다 편하긴 했지만, 시술을 받는 것이다 보니 받을 당시에는 무척 심란했다. 국소 마취도 해야 하고 쇄골에 관을 삽입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막상 받고 나니 주사를 맞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관을 빼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서 혈관을 찾기 어려운 경우에는 아예 일찍 시술받는 것이 환자나 간호사에게나 좋을 것 같다. 주사를 몇 번이나 바꾸느라 나와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 고통받았기에....... (주사 트라우마가 생길 뻔했다.)
시술받은 첫날은 뻐근하고 불편한데, 갈수록 나아진다. 다만 테이프 주변이 간지럽기는 하다.
결국 통깁스 염증 때문에 장기 입원자가 되었다. 통깁스를 일찍 푼 것은 좋았지만 그 후에 겪은 과정들을 생각하면 통깁스 기간에는 무조건 시원한 곳에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다행히 다시 옮겨 온 수술 병원에서는 내내 시원하게 있을 수 있었다. 재입원 기간 동안 2인실에서 쾌적하게 있는 것도 좋았다. 옆자리가 빌 경우에는 독방처럼 사용하기도 해서 마치 내 집, 내 방, 내 아지트처럼 편안하게 있었다. 자리도 구석이라서 안락하기도 하고. 가족들과 도시락을 먹으며 피크닉처럼 즐기기도 하고, 혼자 있을 때도 커피나 간식을 배달해서 밤늦게까지 영상을 보며 먹기도 했다.이 재미가 아니었다면 재입원 기간이 무척 괴로웠을 것 같다. 여유만 된다면 역시 다인실보다는 2인실에라도 있는 게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서도 백번 나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