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호기심 대마왕, 후마타 고사리
고사리에 대해 관심도 애정도 없었다. 관심이 없으니 애정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근데 작년인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근 1년은 고민한 것 같다. 고민하게 된 이유는 참 여럿이다. 첫째로 고사리의 수형은 내가 선호하는 형태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선이 곧고 잎맥이 선명한 식물을 선호하는데 고사리는 정반대에 있는 느낌이다. 종류가 정말 많지만 대체적으로 산발적으로 자라는 느낌에 자라나는 새로운 잎 또한 어디로 뻗어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잎이 여리다. 줄기가 가는 편이고 잎의 두께도 그렇다. 두툼하고 힘 있어 보이는 친구들을 더 좋아해서 그런지 선뜻 데려오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런데 이럼에도 데려왔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흔들리는 고사리 잎이 봄을 한가득 머금은 것 같아서 데려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근처에 식물을 소중히 하는 공방이 있다는 것도, 그게 내 친구라는 것도 참 좋다. 그 친구한테 데려온 이 후마타 고사리는 얼마 하진 않지만 다양한 감정을 선물해 줬다. 퇴근하기까지 나에게 설렘을 가득 주고, 집 가는 길에 혹시 추울까 걱정 반, 데려와 분갈이를 해주면서 아지랑이 마냥 몽글몽글 기쁨을 줬다.
후마타 고사리는 참 독특한 친구다. 복슬복슬한 발이 뻗어가며 여기서 새 순도 돋아난다. 찾아보니 비늘줄기, 뿌리줄기라고 하는 모양이다. 마치 여러 개의 발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뿌리줄기에서 새 순이 돋아나는 모양이 신기하다. 처음엔 거무튀튀한 느낌으로 반점이 있길래 뭘까 했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 꼬불꼬불 말린 형태의 새 순이 돋아났다. 신기해서 하루 종일 사진을 찍어줬다.
어느 날 공중 분무를 해주고 가만히 분에 담긴 후마타 고사리를 보는데 분을 탈출하려는 모양새였다. 분을 꽉 잡은 뿌리줄기들은 아직 축축한 흙에 힘을 영 쓰지 못하는 듯했다. 만약에 흙이 바싹 마르면, 뿌리들이 마른 흙을 파헤치고 기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이 후마타 고사리는 여러 방향으로 뻗은 잎을 통해 더듬이처럼 내 방의 주변 지형을 읽고 파악한 다음 흙이 마르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너는 무슨 생각하니?
여기 환경은 어때?
답을 듣고 싶은 질문은 한가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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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차.
오랜 시간 포트 분에 껴있다가 새로운 분으로 옮겨졌다. 물까지 듬뿍 얻어먹어 뿌리가 무겁다. 습하지 않은 이 공간에서 흙은 생각보다 금방 마를 것이고 그러면 내 뿌리는 조금 더 가벼워지겠지. 그때를 기다린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리 힘을 줘봐도 꿈쩍 않는다.
방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2단인 것 같은 철제 선반에서 가끔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줄 때 둘러보았다. 선반의 위치와 문은 멀지만 베란다는 가깝다. 바로 앞에 선반이 놓여있거든. 그렇지만 베란다 문은 무겁겠지. 나는 느리다. 또 내가 몰래 다녀볼 수 있는 곳은 분명 얼마 안 될 것이다. 그래도 흙이 바싹 마르면 모두가 잠든 새벽 슬금슬금 기어 나와야지. 여기저기 다른 화분도 구경하고 몰래 다시 들어가야지! 나는 안다. 나한테 어찌 보면 안전한 곳은 이 조그만 화분이라는 것을. 그래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가만히 있는 건 너무 아쉽잖아.
캄캄한 밤. 가벼워진 뿌리. 고요한 시간. 슬금슬금.
조금은 느리지만 여기저기 구경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는 호기심이 많은 후마타 고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