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언젠가의 일기

- 나는 호기심 대마왕, 후마타 고사리

by Siesta Feb 18. 2025


고사리에 대해 관심도 애정도 없었다. 관심이 없으니 애정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근데 작년인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근 1년은 고민한 것 같다. 고민하게 된 이유는 참 여럿이다. 첫째로 고사리의 수형은 내가 선호하는 형태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선이 곧고 잎맥이 선명한 식물을 선호하는데 고사리는 정반대에 있는 느낌이다. 종류가 정말 많지만 대체적으로 산발적으로 자라는 느낌에 자라나는 새로운 잎 또한 어디로 뻗어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잎이 여리다. 줄기가 가는 편이고 잎의 두께도 그렇다. 두툼하고 힘 있어 보이는 친구들을 더 좋아해서 그런지 선뜻 데려오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런데 이럼에도 데려왔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흔들리는 고사리 잎이 봄을 한가득 머금은 것 같아서 데려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근처에 식물을 소중히 하는 공방이 있다는 것도, 그게 내 친구라는 것도 참 좋다. 그 친구한테 데려온 이 후마타 고사리는 얼마 하진 않지만 다양한 감정을 선물해 줬다. 퇴근하기까지 나에게 설렘을 가득 주고, 집 가는 길에 혹시 추울까 걱정 반, 데려와 분갈이를 해주면서 아지랑이 마냥 몽글몽글 기쁨을 줬다.







후마타 고사리는 참 독특한 친구다. 복슬복슬한 발이 뻗어가며 여기서 새 순도 돋아난다. 찾아보니 비늘줄기, 뿌리줄기라고 하는 모양이다. 마치 여러 개의 발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뿌리줄기에서 새 순이 돋아나는 모양이 신기하다. 처음엔 거무튀튀한 느낌으로 반점이 있길래 뭘까 했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 꼬불꼬불 말린 형태의 새 순이 돋아났다. 신기해서 하루 종일 사진을 찍어줬다.







어느 날 공중 분무를 해주고 가만히 분에 담긴 후마타 고사리를 보는데 분을 탈출하려는 모양새였다. 분을 꽉 잡은 뿌리줄기들은 아직 축축한 흙에 힘을 영 쓰지 못하는 듯했다. 만약에 흙이 바싹 마르면, 뿌리들이 마른 흙을 파헤치고 기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이 후마타 고사리는 여러 방향으로 뻗은 잎을 통해 더듬이처럼 내 방의 주변 지형을 읽고 파악한 다음 흙이 마르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너는 무슨 생각하니?

여기 환경은 어때?


답을 듣고 싶은 질문은 한가득인데!




-





끙-차.


오랜 시간 포트 분에 껴있다가 새로운 분으로 옮겨졌다. 물까지 듬뿍 얻어먹어 뿌리가 무겁다. 습하지 않은 이 공간에서 흙은 생각보다 금방 마를 것이고 그러면 내 뿌리는 조금 더 가벼워지겠지. 그때를 기다린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리 힘을 줘봐도 꿈쩍 않는다.


방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2단인 것 같은 철제 선반에서 가끔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줄 때 둘러보았다. 선반의 위치와 문은 멀지만 베란다는 가깝다. 바로 앞에 선반이 놓여있거든. 그렇지만 베란다 문은 무겁겠지. 나는 느리다. 또 내가 몰래 다녀볼 수 있는 곳은 분명 얼마 안 될 것이다. 그래도 흙이 바싹 마르면 모두가 잠든 새벽 슬금슬금 기어 나와야지. 여기저기 다른 화분도 구경하고 몰래 다시 들어가야지! 나는 안다. 나한테 어찌 보면 안전한 곳은 이 조그만 화분이라는 것을. 그래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가만히 있는 건 너무 아쉽잖아.



캄캄한 밤. 가벼워진 뿌리. 고요한 시간. 슬금슬금.



조금은 느리지만 여기저기 구경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는 호기심이 많은 후마타 고사리.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일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