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그저 팥이었다.
깨끗한 행주를 반듯하게 접어 슬며시 고개를 비틀어준다.
조심스럽게 스팀 버튼을 돌려주면 쉬이-익--- 소리를 내며 한 김을 빼주고
자, 이제 준비는 되었다.
우유를 담은 피처 코를 스팀파이프(스팀 완드, 노즐)에 살짝 걸치고
시계반대방향으로 살살살 돌려주면 후르르륵~ 우유에 공기가 생기고 고운 거품을 만들어 본다.
내가 걱정한 건 이런 거였다. 폼밀크 제조라던가 음료의 맛.
혹은 포스 기계나 여타 전자기기가 고장 나지 말아야 할 텐데... 와 같은 그런 류의 문제들.
주말 아침, 카페 문을 열고 음악을 고른 후 에스프레소 머신과 그라인더를 깨운다.
오전 4시간. 아파트 입주민이 사용하는 작은 옥상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다.
가족과 장거리 여행은 애매해졌지만 매주 주말, 약간의 긴장감과 혼자만의 단순 작업이 아직 싫지 않다.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이제 어느 정도 음료 작업에는 자신감이 생겼는데...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바로 팥!
팥빙수가 잘 팔려도 너~~ 무 잘 팔린다.
그래서 팥 소진이 빨라졌는데 캔 소재의 대형 팥 통의 뚜껑을 따기가 쉽지 않다.
팥통을 따는 병따개는 평일 근무자들이 여러 개를 써봤지만 유레카! 수준의 것이 없었다고 한다.
팥뚜껑 따기는 요령과 힘이 필요하다. 손님이 없는 틈에 여러 번 시도한 결과 드디어 딸 수 있게 되었는데...
"병따개 칼날이 부러졌어요."
카페 단톡방에 비보가 전해졌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써야 하는데
어제 팥빙수 매출만 56개였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병따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후기에 사람들은 어쩜 이리도 손재주가 좋을까. 부러운 마음도 잠시 궁리 끝에 더 늦기 전에
다이소로 뛰어갔다. 새로운 병따개와 팥통의 궁합이 맞길 바라며...
캔 따기가 뭘 대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내가 혼자 할 수 없던 일에서 할 수 있게 된 일로 폴더를 옮기는 순간
뿌듯했었다. 그렇게 호흡을 맞춘 병따개의 사망신고(?)는 나에게 청천벽력이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팥이 문제가 아니라 팥으로 인해 불거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문제다.
카페 일은 오픈-마감 사이의 루틴이 잘 지켜져야 일이 쉬이 돌아간다. 관리자의 공석으로
근무자들은 서로 다음 타임의 편의를 위해 재고 물품을 살피고 재료가 떨어지지 않게 챙겨준다.
냉장고, 제빙기 청소도 틈틈이 평일 근무자들이 애써주고 있다. 그러면서 주말 마감자와 평일 오픈 근무자의 소통에 감정이 섞여버린 것 같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이런 것들로 결국 카페 단톡방에서는
매서운 말들이 오갔고 근무자 간의 벽이 생겨버렸다.
그 사이에 끼인 신입인 나. 심장이 팥알처럼 쪼그라들었다.
요즘 대기업이나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배달 아르바이트나 카페 파트타임 같은 단순업무를 선호한다는 기사를 봤다. 가장 큰 이유는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어서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크게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다. 그런데 불통의 관계에 끼어버린 나는 또 애쓰고 있다.
"그렇군요. 제가 더 챙길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감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방에서 혹시 주말 마감자와 평일 근무자들 사이가 더 안 좋아질까,
오해라도 할까 봐 열심히 답변을 하고 있다. (정말 불편하다 불편해~)
왜 이렇게 불편할까? 내가 왜 이런 반응을 할까 생각해 봤다.
하고 싶던 음악프로그램이 있었다. 동경하는 뮤지션들이 나오고 오롯이 그 뮤지션에 음악만 집중하는 방송.
시청률은 애국가 수준이지만 뮤지션이 인정하는 프로그램. 나는 잘할 자신이 있었다.
몇 번의 기회를 엿봤지만 음악 전공이나 프로그램 경력이 없었던 나에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몇 년이 흘러 채널을 옮기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세팅하는 중에 있었는데, 친했던 피디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그 피디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 똑 부러지는 똑순이에 스타일리시까지 한
신여성이었는데 피디 입봉시절, 죽이 잘 맞는 작가로 만나 편집을 도와주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재미를 봤던 사이였다. 그 피디가 선망하던 음악프로그램의 피디가 되어있었다. 나는 기획하던 프로그램 세팅을 마치고 원망의 눈길을 뒤로한 채 서둘러 프로그램을 옮겼다.
"왜 다른 작가님은 다 하는데 작가님만 안 된다고 하죠?"
처음엔 나의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접이식 침대까지 들고 와서 편집실에서 쪽잠을 자며 모든 것에 관여하는 작가, 자막 담당을 두고 폰트까지 바꾸는 작가들을 보며 이건 아니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말은 '왜 너만!'이었다. 함께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던 열정의 피디였던 그녀는
버티지 못하면 나가야 하는 단단한 성의 여왕이 되어 버렸다.
그룹의 세션 이름을 모른다고 작가를 무시하거나 모두가 있는 앞에서 소리 지르며 막내작가에게 화풀이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면서도 나는 그녀가 무서웠다. 나에게 칭찬을 해도 불안했고 내가 이의를 제기했을 때
'다른 작가님들은 하는데요?' 의아해하는 그녀 앞에서 나는 점점 주눅 들었다.
급기야 동료 작가지만 연차가 어린 작가를 회의해서 대놓고 비난할 때는
'아 이 왕국에서 내가 나가야겠구나.' 결심했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고 했을 때 "왜? 잘해왔는데 갑자기?"란 반응이었다.
부조리함에 항거하고 멋있게 나왔어야 하는데 끝내 난 도망치듯 그만두었다. 그 이후였을까?
공격적으로 이야기하거나 '내 말만 맞아'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주눅이 들고 불편해진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반복되면 지적을 하는 게 맞고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그거면 된다.
저격하는 말, 상대를 짓누르는 말에는 신중했으면 좋겠다. 특히 비대면일 경우에는 더 신경 써야 한다.
한 때 팜므파탈을 꿈꾼 적이 있다. 팜므파탈의 어원과는 다를 수 있지만 내게는 멋진 언니의 느낌을 가진,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 남성들을 손에 쥔 것 같지만 손아귀에 있는 남성에게 기대지 않고 나의 만족으로 사는
그 언니는 분명 불의에 항거하고 약자에게 너그러울 것이다.
카페 근무자들 하나하나 좋은 이웃이다. 일을 하면서 결이 맞지 않을 수 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겨냥하는 글과 무응답 사이에서 나는 팜므파탈이 되지 못한 팥알 하나가 되어 초라하게 움츠러든다. 개입할 것도 없고 변호해 줄 것도 없다. 알면서도 참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