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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이 Apr 15. 2020

손보미 스타일

손보미, 폭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작가로서는 큰 매력이다. 손보미가 그렇다. 외국소설을 읽는 듯한 번역투의 문체, 중산층의 취향과 삶에 대한 치밀한 묘사, 그리고 미묘한 균열. 이것들은 손보미가 특별하게 해낼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안개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는, 세련되면서도 어색한 문체와, 중산층의 삶과 그 삶에 은폐되어있는 균열이라는 내용은 잘 어울려져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이것이 손보미의 전부라고 한다면 그녀의 스타일을 독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잘 가꾸어진 집에 살며 정상적인 삶에 사는 중산층이 문득 느끼는 불가해한 균열과 정체성 불안은, 이미 1980년대의 미국영화들이 훌륭하게 그려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진부함을 벗어나는 지점은 보통 그녀의 스타일이라고 알려진 것 이상에 있다.

 「임시교사」나 「폭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가 보여주는 세련된 문체와 내용 사이사이에는 촌스럽고 추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중산층의 단순한 불안이나 균열과는 다르다. 불안이나 균열은 결국은 다시 삶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며,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적당한 부정성이다. 그러나 촌스럽고 추한 것들은 통합될 수 없으며, 순화될 수 없는 절대적 부정성이다. 동시에 그것들은 삶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P부인과 맹인의 아내는, 부부와 강사의 삶의 내부에 있다. 그것들은 내부에 있으면서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다.

 「폭우」에서 나타나는 두 개의 이야기의 두 주인공, 강사와 맹인의 아내인 그녀의 삶과 계급은 다르다. 그것은 취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통속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강사는 미국의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종강 이후에도 그녀는 강사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에게 다가가고 연락처를 건네준다. 얼핏 보면 그녀가 강사를 쫒아 다니는, 강사가 그녀의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사는 “불쾌하고 기괴한 냄새”가 나는 그녀의 집을 방문한 이후에 그녀에게 다시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질 않자 집에 찾아간다.

 강사는 왜 그랬을까. “못생기고 가난한 여자”인 그녀가 강사의 매끄럽고 부드러운 삶에 없었던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부도 잘하는 아들과 훌륭한 아내,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강사에게 그녀는 분명 강사의 삶의 일부분을, 이를테면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는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강사 자신과 전적으로 다른 존재다. 그녀의 말처럼 강사는 똑똑한 반면 그녀는 멍청하고 이 사실은 그들의 자손에까지 이어지며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만든다. 평행선처럼 이어지는 그 차이는 무의식적으로 잠겨있으나 그 차이를 의식하고 차이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삶의 균열이 시작된다. 강사는 자신의 아들을 잃었으며 그녀는 남편에 대한 애정을 잃었다. 이것은 자신의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에 관심을 들인 대가다. 

 삶에 균열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영역에 깊이 신경 쓰지 않고 그것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미스터 장은 “자신과 상관없는 이 세상의 불행들”에 대해 생각하며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 평안한 삶에 감사했다.” 미스터 장은 술을 마시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평안한 삶에 이물질이 개입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자신의 가게에 오는 손님들의 삶을 관조한다. 이러한 삶은 중력에 맞서지 않고 중력을 따라 사는 삶이다. 중력에 맞서는 순간 불운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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