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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남식 Jun 27. 2024

말단 공무원, 페이스북 코리아에서 강의한 이야기

유독 기억 나는 강의

 충주시B급 포스터와 충주시 홍보가 유명해지면서 담당자인 나까지 주목을 받게 됐다. 공무원은 맞냐, 시청에 근무하는 공익아니냐, 대학생 아니냐, 직원의 미성년 자녀 아니냐 등등 재밌는 얘기들도 들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평소 상상해본적도 없던 비일상적인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인터뷰니 방송출연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 중에도 가장 많은 것은 강의였다.


 그 전까지 내가 알던 강의라함은 어느 분야의 권위자, 전문가가 청중들에게 전문지식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강사로 강의를 하게 되니 상황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좀 민망하기했다. 덕분에 강의시작하고 초반 한동안내가 강의할 깜냥이 되나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다. 아초에 이런 고민 자체가 오바 같았다. 나라는 사람을 찾아 강사로 섭외하는 과정도 누군가에게는 다 일일 것이다. 당연히 심심해서 나를 찾진 않았을 것이고 어련히 필요하니 불렀을테니 나는 그때그때 쓰임을 다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 나를 찾을 때마다 나는 내 쓸모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반응이 좋았다. 청중들이 내 강의를 잘 들어주거나 때때로 개인적으로 감사 인사를 받을 때면 뿌듯했다.


나는 아초에 어떤 일을 맡으면 내가 담당자가 되기 전보다 나중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담당자가 누구든간에 일을 맡아 했으면 그 전과 후는 일한 만큼, 일에 보태진 시간만큼 달라지는 것이 일 아니겠는가? 물론 일이란 것이 여러 요인이 있으니 담당자 의지만으로 무조건 잘되리란 법은 없다. 일이 하기전보다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이전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도 버거울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려고 노력해야하는거 아닐까? 이렇게 놓고 보면  일이란 건 꼭 이어달리기나 술자리에서 하는 짓궂은 의리게임이라 생각했다. 내가 더 나아가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은만큼 내 후임자든 정책수혜자든 그 누군가가 그 대가를 치룰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에 더해 나는 성향이 효율적인 것을 선호하고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을 보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이를 두고 좋게 말하면 불의를 보면 참지않아 정의롭다거나 혁신적인 기질이라 할 수 있으나 나쁘게 말하면 반골기질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MBTI가 ENTJ인 사람 특) 이런 특징들 덕에 조직 내에서 내가 평소 안하던 무언가를 하려하면 조직 내에서는 중간만 하면 될 걸 너무 튄다고, 왜 굳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이느냐고 타박받거나 은근 배척받는 감도 있어 내가 지금 하는게 맞는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나 싶어 주눅이 들고 우울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강의를 가서 대중에게 내가 했던 생각과 경험을 얘기했을 때 그것을 인정받고 칭찬받을 때면 그래도 내가 해온 것들이 이상한 게 아니구나, 틀리진 않았구나 하고 안심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또 앞으로 내가 공직자로서,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었다. 홍보 주제로 강의를 하다보니 스스로 뭘 할때면 내가 지금 쓰는 문장은 타깃이 누군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고있는가?등을 스스로 물으며 홍보관점에서 내 말과 행동을 점검하게 됐다. 또 내 경험담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말 들을 때는 내가 일하는 방식이나 태도가 진정성이 있는지, 내가 강의에서 하는 언행과 평소 언행이 일치하는지 한번도 돌아보게 되면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됐다. 기왕이면 재밌게 일하자고 하면서 내가 재미없게 일하면 그건 기만일테니까.


 전국 강의를 다니다보니 내가 강의했던 기관과도 업무협조를 할일이 더러 생겼는데 그럴 때면 나와 함께 일하는 실무자가 혹여 날 알진 않을까, 혹시 저쪽에서 날 안다면 "뭐야, 강의할때랑 다르게 불친절하네? 일하는 태도가 영 맥아리가 없고 시원찮네, 말만 번드르하고 실력은 별거 없네?" 이런 말을 들을까봐 더 열심히 하고 더 조심하게 됐다. 연예인병 초기 증세인지도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나의 퀄리티 전반을 올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





 강의를 여러 곳 다니다보니 수강생, 듣는 기관 간에 차이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강의, 그리고 그 중에 만난 모든 분들이 정말 어제일처럼 기억이 나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강의가 있다 첫번째 강의라든가, 유독 청중과 합이 좋아 만족스러웠던 강의 혹은 스스로 아쉬웠던 강의 같은 것들일 것이다.


 내 경우 첫 강의는 앞서 밝혔듯 문체부였다. 이 강의는 내게 첫 강의기도 했지만 사실 이후 강의를 또 할 것이란 생각을 안했었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충주시 홍보를 중앙부처 전체에 각인 시키겠다는 각오로 임했었다. 그러니까 강의이기도 했지만 사실 강의시간 자체가 충주시 홍보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러다보니 청중들 오감에 충주를 입력시키기위해 강의장 모든 사람들의 동선이라든지, 삶은 대학찰 옥수수를 강의장에 풀까 아니면 사과즙을 풀까 하는 고민부터, 어떻게 이들을 다시 충주시를 다시 찾아보게 할까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청중은 모두 중앙부처 홍보담당자들인만큼 청중의 영향력을 내가 간접적으로 활용하여 바이럴마케팅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머리가 뜨거워지는 감각을 경험했다. 게다가 홍보실무자들간 경험이나 생각에서 공감대가 많았고 하나같이 적극적이고 통통튀는 분들이어서 강의장의 분위기도 뜨겁고 재미있었다.


 또 한번은 페이스북에서 연락이 왔다.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순환보직이다. 순환보직이란 말 그대로 업무를 맡고 보통 1~2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무작위스럽게 업무를 바꾸는데 나도 관례대로 홍보실에서 7급으로 진급한 후에 다른 부서로 이동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홍보담당자도 아닌데 홍보 관련 연락이 온 것이다. 당시 페이스북과 국토균형발전위원회에서 전국 지자체 온라인 홍보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이었는데 2박3일 일정 동안 대기업 홍보기획자도 오고 청와대 대변인도 오는 등 그 규모나 수준이 상당한 행사였다.

페북 담당자더러 페북에서 강의를 하라니 완전 영광아닌가? 그 자리에 열기가 벌써 느껴지는 것 같아 나는 강사가 아니라도 참석하고 싶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홍보담당자가 아니었으므로 좋게 봐주시고 연락주셔서 감사하나 지금은 내가 업무가 바뀌었으니 홍보실로 연결해드리겠다 안내했다. 그런데 그쪽 과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지금 말단 지자체라는 악조건에서 B급 홍보를 처음 개척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라며 나를 콕 찝어 다시 불러주신거다. 그땐 뭔가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들어줄만한 이야기가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강의도 있었다. 직업특강 이었는데 한번은 중고등학생 대상이었고 또 다른 한번은 취업준비생들이 대상이었다. 내 강의는 거의 대부분 공무원들이 듣다보니 말단 공무원인 강사(바로 나)와 청중들 간 공무원 업무환경과 경험을 공유하는 공감대에 기반한 에피소드나 레파토리가 많았는데 공직사회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공감대 형성이라든지 강의 중 청중과 강사간 연결이 조금은 느슨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공무원이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고 대외 이미지와 달리 다들 진정으로 열심히 일한다는 내용을 알려주고자 하는 취지였는데 내 나름의 공무원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청중에게는 다소 거부감을 주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혹은 이와 반대로 홍보실에서 성과를 한창 낼때도 내 방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분이 조남식 주무관 인터넷 공부 더 시켜라라는 등 민원 이야기라든가 그 외 다른 업무 중에 고생한 사례같은 것을 이야기할때는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실감나게 하다보니 공무원과 민원인이 서로 적대적인 구도로 표현된다거나 공무원하는 일이 너무 가혹하고 처절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될 때도 있었다.


지나고 보면 별에 별 일이 다 있었다. 충주에서 먼 지역으로 출강한 적이 있는데 당시 집에서 아기를 돌보다 밤 아홉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나는 새벽에 도착하면 주최 측이 마련해준 숙소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음 날 오전 강의에 나설 계획이었는데 열두시 넘어 새벽에야 도착해보니 연수원 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연수원 정문 구석에 주차하고 담을 넘어 언덕을 한참 올라가 배정받은 숙소에 가서 짐을 풀었던 기억이 있다. 다음 날 강의 시작할 때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 지난 밤 연수원 담을 넘어온 조남식입니다." 소개하니 반응이 다들 재미있어하시긴했다.


 온라인 강의도 많았다. 특히 코로나 때는 온라인 강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초창기에는 강의 주최측이나 강사나 온라인 강의 경험이 적다보니 웃지 못할 일이 많았다. 특히 강사는 스스로 온라인 강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거나 장비연결 등 세팅을 직접 해야했다. 간혹 설치를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온라인회의 자체가 새로운 분야다보니 다들 어색해했고 나중에는 내가 스스로 장비를 조작하고 세팅을 점검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한번은 온라인강의를 위해 빈 사무실 공간을 구해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인터넷이 안됐다. PC니 뭐니 다 있는데 딱 인터넷만 안됐다. 당초에 나는 휴대폰 데이터를 이용해 핫스팟을 사용하려 했는데 휴대폰 핫스팟 기능을 켜고 온라인 회의를 켜는 순간 한번도 쓴적 없어서 빵빵했던 데이터가 한번에 0이 되어버렸다. 당황하여 몸이 굳기도 잠시 나는 일단 달렸다. 강의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 없었다다. 차로 뛰어가면서 한손으로는 휴대폰을 검색하고 주변 PC방에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도 한낮에 PC방들은 대부분 받지 않았고 간혹 전화를 받아도 일하시는 분들이 화상회의에 대해 굉장히 낯설어했다.(그 와중에 뛰느라 숨소리도 헉헉댔다.)


요즘들어 PC방 자체가 워낙 숫자가 줄기도했고 그나마 있는 PC방들도 주로 게임에 맞춰져 화상회의라든지 업무기능을 갖춘 곳이 드물었다. 강의 시간은 다가오고 결국 나는 한 PC방을 찾아 시간에 맞춰 화상회의장에 접속할 수 있었다. 깜깜한 PC방, 내 앞에는 화려한 게이밍 키보드가 오색찬란한 빛을 웅-웅-발하고 있었고 옆에서는 게임을 하는 어린아이들과 아저씨들이 음성체팅으로 서로 작전을 주고받으며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업무를 맡은 이상 나는 프로다. 그래. 프로다. 고요한 PC방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게 또렷하게 내 강의가 시작됐다. 강의하면서 내 강의소리에 옆에서 말하는 게임용어가 들어가지 않을지하는 걱정은 맘속에 묻어두고 내 강의소리가 주변에 민폐가 되지 않도록 마이크에 입을 가깝게 되고 새벽 라디오 디제이마냥 조곤조곤 강의를 마쳤다.  


 황당한 경험도 있었다. 한번은 서울에 있는 기관으로 갔는데 저녁 강의였다. 자기들이 정규업무가 끝나고 듣는 교양강의라 저녁시간 강의를 원한다고 했다. 상황마다 다르긴 하지만 저녁강의를 좋아하는 강사는 없을 것 같다. 일단 강의 전에는 식사를 편하게 할 수도 없다. 말을 하고 움직이는데 배가 불러 불편할 수도 있고 강의를 하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거나 트림이 나올 수도 있다. 또 입안이 짜면 아무래도 불필요하게 침이 고일 수도 있어 말하는 데는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강의 전에는  가급적 속을 비운다. 시간도 문제다. 강의가 끝나면 귀가 시간이 길기 때문에 다른지역에서 저녁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가면 10시가 훌쩍 넘을 때가 많다. 그러나 강의섭외를 함부로 거절하기도 어려운게 나는  내 개인사정이나 선호에 따라 강의를 선택했다해도 그게 내 소속기관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사회 좁다. 결국 나는 서울에 있는 모 기관 저녁시간에 강의를 갔다. 도착했더니 자기들이 저녁을 못 먹었다며 밥을 좀 먹고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수강생 숫자에 맞게 도시락도 주문한 상태여서 내가 그러자말자 할 상황도 아니었다. 나에게도 도시락을 줬지만 나는 강의에 악영향을 줄까 따로 먹지 않았다. 이제 식사가 끝나고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화기애애하고 수업참여도 좋았다. 강의가 끝나고 한 분에게 야근 많이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당시 '아이도 어리기도 하고 스스로 어떻게든 업무시간 내에 일을 마무리하려 한다. 하지만 SNS특성상 새벽 3시에도 답변할 때도 있고 또 일상에서 무시로 아이디어 등을 구상한다.' 답을 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고 행사를 마무리 하는 자리에서 강의 교육담당 팀장 쯤 되시는 분이 '우리는 저렇게 여유가 없으니까 야근을 할수밖에 없다.'는 뉘앙스로 자기들은 바쁘고 충주시라든가 나는 한가하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미 나는 강의도 끝났고 분위기도 좋았기에, 자기들 사기를 올리기 위한 것이려니 하고 굳이 정정하진 않았지만 내 의도를 굳이 곡해하는 것이 기분이 좋진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몇 주후에 갑자기 연락을 해서는 사전에 합의된 강의비를 다 줄 수 없다했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약속한 시간이 강의를 1시간 이상하기로 했는데 실제 강의를 그보다 몇분 모자르게 했으니 당초 약속한 비용보다 조금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강의로 먹고 사는 전문강사가 아니고 공무원이지만 그래도 강의를 위해 들인 내 정성과 노력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을 있어야 한다 생각을 했다. 아초에 많은 돈을 주기로 한 것도 아니었는데 여기서 강의비를 더 깎다보니 차비니 연가보상비를 계산해보면 나는 수고료는 고사하고 오히려 내 돈을 내고 강의를 다녀온  셈이 됐다. 저들의 무례함에 많이 화가났지만 어쩌겠는가. 여기서 내가 논리를 꺼내면 저쪽에서는 공무원이 돈을 밝힌다는 둥, 충주시라는 조직이 어떻다는 둥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돈을 주제로 하는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심지어 나는 공무원이다. 출강하는 순간 나는 홍보담당자로서 충주시 홍보대사가 되는 것이렸다? 어쨋거나 공무원은 을이었던 것이었다. 당할 당시에는 불쾌했지만 조금 지나고보니 그만큼 성장한 것도 사실이었다. 홍보가 아니었다면 아초에 상상하거나 경험해볼 수 없던 영역이었다.


결국 이런 경험은 모두 홍보로 시작하고 홍보로 끝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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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부정청탁금지법 제10조에 의거 출강 등 외부활동이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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