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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남식 Jul 04. 2024

충주시 홍보 B급포스터 레퍼런스

충주시 홍보담당자 하면서 가장 많이 듣던 말1

 홍보 담당자를 할 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바로 '레퍼런스'다. 레퍼런스란 무엇이냐? 쉽게 말하면 참고다. 참고라는 건 어떤 영감이나 영향을 받는 것처럼 간접적인 것일 수도 있고 구체적인 통계, 연구자료 같은 직접적인 것일 수도 있다. 즉 레퍼런스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는 것은 곧 '뭘 참고했느냐' 또는 '도대체 어디서 뭘 보고 들으면 이런 게 나오느냐' 정도 질문이렸다.('참고'는 두 글자고 '레퍼런스'는 네글자인데 굳이 레퍼런스라는 어휘를 쓰는 이유는 아직 모름)


첫번째는 '소거법'이었다. 무얼 보고 저렇게 해야지하기 전에 이건 하지 말아야지가 먼저였다는 말이다. 

대학 다닐 때 전공 교수님이 그러셨다. 빵- 뜨려면 두 가지 중 하나를 하면 된다고 한다. 하나는 어떤 분야를 개척하거나 선두하여 주류가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거기에 대척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란다. 그런데 아초에 어떤 영역을 처음 개척하고 선두주자가 되는 것 자체가 너무 드물고 어려우니 현실적으로 선두주자를 뒤를 바짝 따라가는 추격자가 되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하셨다. 여기서 추격자가 된다는 것은 가장 잘 나가는 것을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하는거다. 선두주자가 뚫어놓은 검증된 길을 그 뒤에서 바짝 따라가는거지. 이런 경우 선발주자가 안전하게 확보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최고는 못 되어도 어느정도 안정성은 보장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하면 이 정도는 되겠지라는 참고 가능한 전례, 즉 데이터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거나 몇몇 요소가 더해지면 그 선두주자를 앞지를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언뜻 얍삽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업계든 후발주자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이리라. 그럼 이 전략은 무조건 필승이냐? 그건 또 아니다. 업계 최고를 비슷한 수준으로 따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비슷하게 따라하는데 성공해도는 아류취급, 흔히 말하는 짝퉁소리를 들을 위험도 있다. 적당히 잘되면서 욕을 먹는다면 또 모를까 오히려 반감을 사서 철저히 외면당할 위험도 있는 것이다.


그럼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대항자는 뭘까? 잘나가는 사람에게 딴지를 걸고 맞서라는 것이다. 가령 어떤 분야에서 주류가 되는 이론이나 주장이 있다면 그 주류에 맞서는 이단아, 비주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단박에 주목을 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류의 대항마 정도, 주류와 같은 체급으로 묶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도 위험은 있다. 무조건 딴지를 걸면 당장에야 빠르게 주목받겠지만 깊이가 없어 대척균형을 갖추지 못하면  떠오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큼 빠르게 곤두박질 칠테니까 말이다. 가령 모두가 인구절벽을 해결해야 한다고 할 때 인구절벽을 해결하지 말고 순기능을 활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면 당장은 색다름에 주목받겠지만 주장에 깊이가 없다면 관심 받으려다 괜한 매를 벌 수도 있다. 


 서두가 길었다만 결국 나는 위 전략 중 굳이 말하면 대항자 전략을 썼다는 뜻이다. 당시 잘나가던 부산경찰, 고양시, 민속촌 등을 참고하면서 공공기관 애드립 수위라든가 분위기 파악, 충주시가 소화할 수 있는 부분은 참고하되  당장 저들하고 겹치는 것은 일단 피해야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아초에 충주가 고양시 고양고양이 같은 캐릭터를 급조가히고 어려웠고, 충주시가 고담시티가 아니고서야 부산경찰마냥 매번 숭악한 범죄나 사건소식을 다룰 수도 없었다. 이런 결정을 다 하고 추진한 것은 아니라 그때그때 참고하며 다듬어 진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충주시는 농특산물이나 지역축제 등 수혜적인 성격 아이템을 조악한 B급 홍보로 알리는 '진정성 있는 아마추어리즘'(이라고 써놓고 공무원이 그래도 하노라고 애썼다 콘셉) 전략을 택하게 됐다.


두번째는 디자인이었다. 충주B급 홍보가 자리잡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아이템은 충주시B급 포스터인데 이 경우 일단은 픽토그램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이미 다양한 이미지와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수많은 정보신호가 인간을 자극하는데 그 중 픽토그램은 최소한의 신호로 최대한의 정보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다. 화장실을 표시하는 남녀 표지판이라거나 차량 표지판, 미끄럼 주의 등을 보면 사람이나 사물, 상황을 단순화해서 표기해 주목성과 시인성을 높히고 있다. 최대한 단순한 형태와 색깔로 정보를 이미지화하여 전달력을 높히는 것이다. 동그라미와 세모만으로도 사람은 남녀를 구별하고 화장실을 인지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또 빠르게 운전하는 사람에게 경고하는데 정교한 사슴 사진보다는 사슴 실루엣만으로도 사람들 야생동물위협을 더 쉽게 인지하고 위협에 더 빨리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픽토그램에는 형태묘사 외에도 그 형태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내 경우도 디테일한 묘사보다는 대표적인 특징을 묘사하기위해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린 포스터는 선 보다는 면을 활용한 덩어리, 형태에 집중하게 됐다.

  또 시인성을 높히려다보니 사용하는 색상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기본적으로 학교다닐 때 미술시간에 배우는 보색대비라든가 동물 무늬, 자연색 조합, 기존 산업디자인 등 다양한 것들을 참고하게 됐다.예를 들면 운동화, 과자 봉지, 유니폼, 책 표지 등은 위에서 내가 말한 색과 형태, 시인성을 고민한 총체의 산물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디자인도 자연색을 참고하다보니 겹치는 게 많은게 또 재미있었다. 이런 것들을 참고하기도 했고 반대로 다 그려놓고 보니 나중에 특정 상품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충주시 옥수수 포스터의 경우 독개구리 보색대비에 착안한 빨강-초록 배치였고, 충주시 밤 포스터는 빨강-검정으로 그려놓고 보니 신라면이나 농구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극한의 형태 단순화와 극한의 보색대비. 개구리는 아마존에 실제 서식하는 '독화살 개구리'


세번째는 해외사례였다. 의외로 이미지가 아니라 영상이었다. 유튜브도 나오기 전에 다모임 시대에 인터넷을 떠돌다 유머게시판, 인기게시물 같은 데서 봤던 것 같다. 일본광고 중 가끔 쓸데없는 고퀄리티나 대놓고 B급을 표방하는 흔히 말하는 '병맛'광고들이 있었는데 환타 광고나 우유 광고, 복근 운동 기구 등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전설의 환타광고라든가 일본 병맛 광고를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나는 영상미라든가 있어보여야 한다는 있어빌리티, 공공기관으로서 품위유지 같은 허례허식 같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홍보할 때 그런 건 다 개나 줘버려라. 광고는 잘 보이면 장땡이다.  일본 병맛 광고도 광고 자체는 굉장히 하찮은 듯 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사실 그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가령 기획하고 그걸 승인하고 제작하는 관계자들)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했을 것이다. 광고란 그 하나에 해당 상품 매출은 물론 회사 이미지 등 기업의 미래 사활을 건 작업이니까.

 

 미군 사례도 참고가 됐다. 우리나라 군대는 뭐가 고장나서 공지를 하거나 안내문 같은 종이하나를 붙일 때도 줄간격, 폰트 등을 따지고 테이프 붙이는 마감까지 신경을 쓴다. 그렇게 하면 깔끔하고 절도 있기도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필요 대비 과다한 정성이 투입된다. 그런데 미군 부대는 진짜 이면지에 매직으로 찍찍 써서 '수리 중'이라고 써놓는다거나 대충 붙여놓는게 부지기수였다. 군 생활 중 미군이랑 교류할 때 얘네 부대만 그런가, 아니면 몇몇 사람들만 그러나 봤더니 다른 부대들도 비슷한 것 같았다. 미군 특성일 수도 있고 서구권 특징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되어 의미전달을 하는 것이지 그것을 포장하는데 과다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었다. 군인은 훈련하고 전투하는 직군이지 디자인하는 직군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걸 굳이 정리하면 효과적인 자원투입 내지 최소투입 최대효과라고 해야할까. 이런 해외사례들을 접하면서 내가 만들어야 할 것은 그럴싸한 점잖떠는 광고인척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노골적이고 어쩌면 천박하더라도 사람들 뇌리에 남을 무언가라고, 스스로 효과적인 홍보에 대한 방향을 잡아갈 수 있었다.   


네번째는 독서였다. 홍보담당자가 되고 책임감 반, 설렘 반으로 홍보 책을 많이 봤다. 다른 업무 맡았을 때는 이 정도로 한 적은 없는데 그때는 마침 내가 책을 많이 읽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때였고 또 홍보란 분야가 워낙 재밌기도 하고 평소 관심도 많다보니 홍보 관련 책을 50권 정도를 보게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홍보 책 중에도 홍보가 안되어 사장된 책들도 참 많았다. 걔중에는 정말 너무 재미없거나 내용이 식상한 책도 있고 반대로 어떤 것은 꽤 흥행했지만 내용이 빈약하여 알맹이 없이 바람만 잡는 책도 있었다. 홍보 관련 책 내용들 중에 쓸만한 내용을 추리다보면 몇가지 공통되는 내용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인데, 광고를 만들다보면 홍보담당자들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효과보다도 스스로 더 멋진, 그럴싸한 광고를 만를려 한다는 것이다. 우스꽝스럽든, 못났든 결국 홍보라든가 광고란 물건을 많이 팔기위해, 혹은 어떤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등 특정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목적에 최대힌 기여하면 되는데도 사람들 스스로 광고가 갖는 환상에 빠져 본질을 외면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기업이라면 홍보가 생존과 직결되니 광고니 브랜딩에 목숨을 걸지만 공공기관은 망할 일이 없다보니 홍보가 고객이 아닌 윗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면피를 위한 광고에 치중할 것이고 그 결과는 공공기관 홍보물이라고 하면 다들 떠올리듯 이보다 진부하고 처참할 수 없는 지경이지 않은가. 


또 하나는 정보화시대에 정보가 너무 넘쳐나 소비자들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간혹 소음들이 너무 많으면 소음과 소음이 상쇄되어 정작 씨끄럽다 느끼지 못하는 백색소음처럼 홍보도 감각적으로 포화상태가 되면 오히려 그것을 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느낀 점은, 내가 예술작품을 만들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내가 너무 멋진 고퀄리티를 뽑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광고가 잘 되려면, 소비지가 내 광고를 좋아해야 했다. 결국 어떻게든 소비자들의 피로감을 줄이고 차별화를 통해 메시지를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이 내 안에서 섞이고 있을 때쯤, 포스터를 어덯게 만들까하다가 네이버 포털에 포스터를 무심코 검색해봤다. 포스터라는 키워드를 입력하고 이미지 검색을 했더니 형형색색 요란하고 현란한 이미지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화면 배율을 조정하며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사진 하나가 손톱만해지도록 작게 줄였다 하다보니 문득 그 중에도 몇몇 포스터가 튀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 눈에 띄는 포스터가 꼭 잘 만든 포스터는 아니었다. 그때 나는 내 편견 껍질을 깰 수 있었다. 홍보물은 잘 만들려고 할게 아니라 잘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홍보물은 보는 순간 메시지 전달까지 끝나야지 보고나서 '그래서 어쩌라구?'라는 질문이 나오는 순간 이미 실패한 것이다. 이런 홍보물에 대한 태도, 개념을 그때 나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형태나 도전이 조금 더 과감해질 수 있었다. 스스로 흔들리지 않을 기준을 세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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