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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남식 Aug 08. 2024

B급 포스터 결재 어떻게 받았어요?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충주시 홍보가 B급 포스터로 유명해지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나 나가는 강의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결재 어떻게 받았어요?”였다. 사실 회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질문을 듣는 순간 그 의도를 알아챘을 것이다. 당초에 이런 모험적인 기획안이 어떻게 통과됐느냐는 거다.      


 어떤 파격, 혁신 내지 새로운 도전이라 불릴만한 아이디어들은 언제고 늘 우리 주변에 있다. 그런 아이디어들은 매번 있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있다고는 하는데 아무도 본 사람은 없다는 유니콘마냥 희소할 것은 아니어서 주변에 간혹, 더러, 심심찮게 있다는 말이다. 아이디어들이란 포스트잇처럼 원래 그러려고 한건 아니었는데 전혀 엉뚱한 쪽으로 얻어걸리는 우연찮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아르키메데스가 그 옛날에 왕관에 금 함량을 무슨 수로 알아내나 자나깨나 그것만 고민하다 마침내 깨닫고 목욕탕에서 뛰쳐나오며 유레카를 외친 것처럼 오랜시간 궁리한 끝에 만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어느 경우든 수많은 지식과 경험, 여러 상황과 숱한 시도들이 겹치고 누적되어 그것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아이디어로 나타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늘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려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뭐라도 해보려고 늘 이런저런 실험과 궁리를 할 것이고 같은 맥락으로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어요?”라는 질문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할 것이다. 이것을 유식한 말로 노우~하우~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위와 같이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나타난 새롭고 기발한 생각, 실험적인 기획안 등은 인제 어떤 대접을 받는가? 예외 없이 수많은 공격을 받게된다. 충주시 B급포스터를 예로 들면 ‘여기다 이런 문장을 쓰면 사람들이 이런 오해를 하지 않을까’, ‘저런 디자인은 저런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같은 걱정이 들러붙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아이디어는 리스크 부담을 넘지 못하고 사장된다. “이러면 안될 것 같은데...”라는 말과 함께.  묻히거나 폐기되지 않은 아이디어들은 어떨까? 걱정과 검증의 격랑을 뚫고 온 아이디어들도 만신창이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위험할 것 같은 부분은 드러내고 특정타깃이 아니라 모두가 좋아할만하게 튀는 부분을 깎아내고 둥글둥글게 사포질을 하고 고치고 고치다보면 처음에 나왔던 기발한 아이디어는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잡은 청새치 꼴이 된다. 엄청 큰 청새치를 잡았지만 바다에서 해변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상어가 다 뜯어먹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는 뜻이다. 그나마 최초 기획한 흔적이나마 온전하다면 그 아이디어를 냈던 의기나 정성은 어딘가에서 누군가 추억해줄지도 모르겠다. 노인과 함께 돌아와 해변에 덩그러니 놓인 청새치 대가리 토막마냥.     


 여기까지만 놓고보면 프로걱정러들이야말로 혁신의 적이다. 그런데 또 현실은 그들을 그렇게 매도할 수가 없다. 대개 프로걱정러들은 경력이 적은 이들보다는 주로 관리자들이나 선배들인데  그들은 어떤 형태로는 고생을 해봤으니 그 도전이 고생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이다. 입장바꿔 내가 관리자라도 위험요소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그게 관리자고 시니어 역할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사람 생각이 다 다를테니 나는 이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짜잔-하고 내놨지만 남들이 봤을 땐 영 별로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우리가 일상 중 물건을 고를 때도 나름 고민을 하고 각자 다른 물건을 집어드는데  하물며 회사같은 큰 조직이라면 그 위험부담을 무시할 수 있을까.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물음앞에 관계자들이 한없이 주늑들고 초라해지는 씁쓸한 현실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마냥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저렇게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약한 기획안이라도 쌓이고 쌓인다면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그릇에 한방울씩 떨어진 물이 언젠가 넘쳐 흐르듯 혁신의 밑거름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다만 혁신을 위해 그 거름이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점은 아무래도 아쉽다.     


 그럼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서, 현실이 이러할진데 너는 무슨 재주로 그 현실을 넘었느냐는 질문이다. 앞서 아이디어가 어떻게 나오는가에 대해 누적된 것이 임계점을 넘어 나타나는 것이라는 표현을 썼. 아이디어가 실현되어 그 성적표를 받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임계점까지 축적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충주시B급 홍보도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원형 그대로 실험대에 올라 피드백을 받기까지 많은 것들이 축척된 결과라 생각한다. 


 나는 처음 공무원이 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수습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수처리장에는 하루에도 엄청난 량의 오폐수가 모이니 시설에 물이 안 넘치려면 물높이를 측정해서 물이 들어오는 하수관을 차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오폐수에서 나오는 부식가스 때문에 수위를 측정하는 고가 장비가 자꾸 망가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경우 수시로 장비상태를 확인하고 교체해주기만해도 직원이 세심하고 부지런하다 할만하다. 그런데 그때 하수처리장에 계시던 팀장님 한분은 문제의식을 가지셨다. 그 팀장님은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물이 차오르는 부력으로 물 유입을 차단할 수 있는 장비를 고안해내셨다. 복잡하고 비싼 첨단장비가 아니라 오히려 단순한 원리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내놓으신 것이다. 이게 적극행정이고 역발상 아닐까? 이 아이디어는 이후 특허를 받았고연말에 충주시 공무원 학습동아리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나는 이런 것들이 참 멋지다 생각했다.


 이후 나는 정식직원으로 인사가 났다. 엄정면사무소였는데 처음에는 농지관리와 농업 보조사업을 맡았다. 연초에 보조사업은 많은데 일을 할줄 몰라 몰라 맨날 야근을 했는데 늦봄 무렵 농번기가 되니까 하루아침에 갑자기 한가해졌다. 그 중에도 지독히도 한가한 날이 하루쯤있었는데 그날은 늦은 오후 창문으로 길게 드러누운 햇살 사이로 떠다니는 먼지들 바라보기도 했다. 군대 있을 때부터 일복이 터지는 팔짜였던지라 이때부터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서 돈을 받아도 되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자마자 곧 이장님 한 분이 사무실에 오셔서 내게 양수기를 달라 하셨다. 양수기는 낮은 지대에 있는 물을 높은 곳으로 퍼올리는 엔진펌프다.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찾지? 처음에는 속으로 뭐 맡겨놨나 싶었다. 평소에도 유쾌한 분이라 내가 어리고 말단 직원이라 장난을 치시는건가 싶었다. 놀라운 것은 양수기가 면사무소 창고에 있었다. 나라에서 농민들 필요할 때 빌려주라고 갖춰놨던 것이다. 양수기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상태가 멀쩡할 리가. 이장님이 주섬주섬 부품들을 그러모아 양수기를 가지고 돌아가셨다. 나는 쪽팔렸다. 잘하는 건 몰라도 못하진 말아야 하는데. 공무원이 일 한다고 꿀빤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은데. 아 1인분은 해야하는데, 밥값은 해야되는데!        


 시간이 더 흘러 엄정면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이 될 무렵, 지금도 충주시장이시고 10년전에도 시장이신 조길형 시장님이 취임하셨다. 시장님은 충주시내에 각 읍면동마다 장기발전 계획을 세울 것을 주문했는데 어쩌다보니 그게 엄정면에서는 내 몫이 됐다. 장기발전 계획을 세우라고 하니 나는 엄정면을 삼국지마냥 전통시장, 자연경관, 농업체험 3개 구역으로 나누는 계획을 세워 제출했다. 그랬더니 주변에서는 9급직원이 뭘 몰라서 실현가능성 없는 터무니없는 것을 가져왔다 아이고야- 하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결국 전체 읍면동 중에 내가 제출한 엄정면 장기발전 계획만 시장님 기준을 통과했다고 들었다. 이후 장기발전 계획을 발표하게 됐는데 당시 면장님께서 새로운 발표스타일을 꾸준히 주문하셨고 나는 그때 피피티를 만들고 엄정면 젊은직원들과 내래이션을 더빙한 슬라이드 영상을 만들었다. 그게 또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창조정책담당관으로 가게 됐고 거기서 규제개혁 업무를 맡았고 또 업무 외 충주시 직원 기자단을 하게 됐다. 중간에 생략한 일들이 많지만 그렇게 약 4년이라는 시간동안 일을 하다보니 조직 내에 나라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된 듯 했다. 이때의 나는 다소 무모하고 엉뚱하긴해도 책임감 있고 성실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축구로 비유하면 헛발질을 할 지언정 자기 몫을 하려고 쉬지않고 땀나게 뛰는 그런 애들 있지않나. 당시 다소 무모한 실험을 준비하던 충주시와 마침 이런 성향의 내가 만나 충주시B급홍보 같은 화학작용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이런 화학작용도 나에게 니가 한번 해보라고 일을 맡겨주시고, 또 분명 불안하셨을텐데도 니가 알아서 잘해보라고 응원해주신 분들이 없었다면 아초에 충주시B급홍보는 시작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일도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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