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를 소개할 때 보면 무슨무슨 영화제 몇 개 부문 노미네이트(Nominate)라는 말을 자주 한다. 노미네이트란 말은 시상식에서 어떤 상을 받을 자격이나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지정하여 가리킨다. 이런 경우 상은 못 받았더라도 대충 그 상을 받을 정도 레벨, 그 정도 급은 된다는 인식을 준다. 그러다보니 상을 받지 못한 이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 반면 졌지만 잘 싸웠다는 정신승리에 그칠 수도 있다.(결국 안된건 안된거니까)
나도 노미네이트된 적이 있었다. 이름하야 '2019지방행정의 달인'. 지방 행정의 달인은 행안부에서 주는 상인데 2019년이 9회째였다. 여러 행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 성과를 낸, 말 그대로 달인에게 주는 상으로 지방직 공무원이 받을 수 있는 상 중에 권위가 있는 큰 상이다. 2019년 봄, 나는 인사팀에 후보로 서류를 제출했다. 제목은 '온라인 홍보의 달인'이었는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햇수로 3년년동안 충주시SNS를 담당하며 B급 홍보를 개척하여 얻은 성과를 정리해서 홍보분야로 제출했다. 그런데 이 상의 후보명단을 제출할 때 나는 감사실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왜 지금 홍보담당자도 아닌데 홍보분야로 냈느냐?"라 묻을 지도 모른다. 공무원은 원래 업무를 수시로 바꾸는데 우리 기관의 경우는 보통 한 업무를 1년에서 1년 반 정도 담당하고 2년하면 오래했다는 분위기였다.
이 상은 보통 매년 상반기에 후보자 추천을 받았다. 2018년초에 나는 이제 막 홍보 담당자 3년차를 맞이한 상황이었다. 이때 충주시SNS는 파급력이 5000% 성장하는 등 잘 나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막 7급으로 진급한 말단 직원이, 심지어 해당 업무를 하고 있으면서 달인에 신청하는 것은 끝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내가 잘했네" 섣불리 공치사 하는 것 같아 적절하지 않다 생각했다. 그러다 2018년 하반기 정기인사에 업무가 바뀌었으니 이제 이듬해인 2019년초 완료된 성과물을 가지고 행정안전부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 일 잘해, 그때 열심히 했어'와 같은 말을 곧잘 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은 지나고 나면 흐려지는 기억처럼 흔적도 남지 않는다. 몇몇 독특한 사람들 외에는 누구나 일을 열심히하고 곧잘하지 않겠는가? 무명의 지자체SNS를 흥행시켜 8급 직원이 중앙부처와 전국지자체에 우수사례로 강의를 다니고 공중파에 출연했다. 이런 소중하고 자랑스런 결과물을 경로당 어르신 소싯적 회상하듯 그땐 그랬지 추억하기만 할게 아니라 무언가 구체적인 증표랄까 하나의 확실한 기록으로 매듭을 남기고 싶었다. 인사팀에서는 "그래 니가 열심히 했지. 니가 받아야지. 열심히 해라." 응원해줬다. 신청서를 인사팀에 제출하고 후임자이자 고등학교 동창인 현SNS담당자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니가 지금 홍보담당자인데 내가 충주시 홍보로 이 상에 도전하려 한다. 담당자이고 얼마 안됐을 때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 지금 도전하게 됐고 내가 이 상을 받는다면 충주시 홍보에도 득이되면 됐지 실은 안될 것이니 업무에 참고되면 좋겠다.'라고.
지방행정의 달인은 총3회 심사를 본다. 1차 서류, 2차 면접, 3차 면접이었다. 8월 초 1차 서류심사를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다. 5월에 처음 선발계획이 시달되고 6월에 후보자서류를 제출한지 2달 만이었다. 2차 면접은 행정안전부 직원과 면접관이 충주시로 직접 내려왔다. 면접관은 비록 성과는 훌륭하지만 그와 별개로 후보자 나이가 너무 어리고 경력이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나는 왜 내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짧은 것이 별개로 문제가 되는지 의아했다. '지방 행정의 달인' 선정 기준에 나이나 근무 경력은 없었다. 나 역시 그것을 보고 도전했던 것이다. 이전에 알게 된, 지방행정의 달인에 선정됐던 다른 기관 선배님께도 도전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던 것이다. 나는 그 선배공무원의 권유를 받은 이후에 준비하면서 역대 지방행정의 달인 모든 수상자의 수상내용을 최대한 찾아봤다. 그리고 감히 '정성적인 부분을 몰라도 객관적으로 비교가 가능한 정량적인 수치만 두고 볼때 이 정도면 비벼몰만하겠다.' 판단했던 것이다. 면접관은 계속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어리고 공무원으로서 경력이, 그리고 업무를 담당한 시간이 짧다는 것이었다. 다른 기관에서는 20년 이상 한 사람들이 후보로 올라온다 그랬다. 나는 "행정의 달인이 일을 열심히 한 공무원, 그 성과를 홍보하기 위한 취지라 생각한다. 어린 직원이 독특한 성과를 내어 상을 받는다면 그 홍보효과가 극대화 될 것이다." 답하는 등 최선을 다해 나를 '홍보'했다. 서류를 통과한 이상 성과물이 비슷하다고 할 때, 면접에서 떨어진다면 홍보의 달인이 자기 홍보를 못하는 꼴이 아닌가? 면접관의 어두운 표정을 보며'성과가 좋다며?! 그럼 된거 아닌가? 나이 어린 직원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면 안되는 건가' 싶어 억울했다.
3차, 최종 면접 보라는 통보가 왔다. 2차 면접 때 면접관 표정이 너무 안좋아서 안되려니 했는데 됐다고 했다. 최종 20여명 후보가 남았는데 명단을 보니 일반행정 부문은 나 하나였다. 이쯤되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주변에서 벌써 축하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발표날에는 한 사람당 8분이 주어졌다. 자기 차례가 되면 혼자 들어가서 심사관들 앞에서 PT를 하는 거엿다. 앞서 말한대로서류심사를 통과한 이상 비슷한 성과물들이 있다면, PR을 못해 떨어진다면 홍보담당자가 자기 홍보 못했다는 것이 좀 우스울 것 같아 열심히 준비했다. 면접 당일 행정안전부 건물에 들어갔다. 나는 일찍 온 편이었다. 후보자 대기실에 앉아 발표내용을 점검했다. 발표 순서를 불렀는데 나는 두번째였나? 굉장히 앞쪽이었다. 들어가니 심사위원 20여명이 'ㄷ'자로 자리를 잡고 앉아있고 나는 그 앞에 내 발표화면을 뒤에 두고 선 모양이 됐다. 시간에 맞춰 준비한 내용을 최선을 다해 발표했다. 내가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짧지만, 자기 분야에 열심히 하는 공무원을 발굴해 대내외 홍보하고 이슈를 만들려는 상 취지에 적합하노라고 나를 홍보했다. 발표가 끝나고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그때 심사위원 한명이 질문했다.
"충주시에서 온리안 홍보라는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두명이 후보 신청을 했더라구요? 둘 중 한명은 올라올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왜 한 기관에서 똑같은 성과물을 가지고 다른 두 사람이 후보를 신청했나요?"
나는 내가 지난 시간동안 노력하여 거둔 성과에 대해서만 제출했을 뿐 다른 것은 알지 못했다.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홍보실에서 무슨 의도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나에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제가 저희 사람을 시켜 좀 알아봤는데에~ 요즘 충주시가 유튜브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지금 당신은 전임자잖아요? 유튜브를 한 건 후임자이지 본인이 아니지 않은가요?"
이 질문을 받고 많이 허탈했다. 면접은 10월에 있었지만 충주시 유튜브는 2019년 5월에 첫 영상이 게시됐다. 참고로 이 홍보의 달인 후보자 서류를 제출한 시점도 2019년 5월이었다. 심사위원 말대로라면 5월에 유튜브 영상 하나 올리고 홍보의 달인 후보로 제출했다는 말이된다. 심지어 내가 제출한 서류에는 유튜브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지도 않았다. 내가 한 것도 아니거니와 당시 유튜브는 막 개설하여 막 상승기류를 타려던 시점이라 아직 성과라 할만한 것이 딱히 없던 때니까. 나는 '가게도 개업빨이 중요하듯 SNS도 새로운 채널을 개설할 때 초반 인지도며 충성고객이 중요하다. 그리고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그 바탕을 만들고 바운더리를 넓혔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답을 했다.
면접 중에 힘이 쭉 빠졌다. 어째서, 어떤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는지, 그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어떤 저항에 부딪혔는지는 이런 것을 묻지 않고 왜 다른 주변사정을 묻는가? 한 성과물에 대해 한 기관에서 두 후보가 제출된 것인지, 나는 당사자에게도 인사팀에게도 미리 듣지 못했었다고 솔직히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는 동안 뭔가 나만 모르게 상황이 돌아간 것 같아 소외된 느낌도 들었다. 후임자는 뭔가 다른 생각이 있어 어떤 오해가 있지 않았겠는가 라며 나도 모르는 후임자 생각을 포장하며 두둔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래서 내가 낸 서류는 제대로 읽어봤는지, 그쪽 직원분께서 조사를 뭘 어떻게 하신 건지 되묻고 싶었다. 그 서류를 봤다면, 충주시SNS나 충주시 홍보기사를 하나라도 제대로 보고 히스토리를 파악했다면 상식적으로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가?
"최초로 무엇을 시도하고 그것을 정착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구려 최대 영토이자 전성기는 장수왕 때지만 고구려 대국의 꿈이란 비전을 세우고 실천한 것은 광개토 대왕이기에 사람들은 고구려하면 광개토대왕을 기억한다.", "아메리고는 신대륙을 처음 발견했기에 신대륙 이름은 그의 이름을 땄다"와 같이 처음이 얼마나 힘든지 예시를 들었다. 그리고 이런 처음 발상, 도전에 대한 부분을 인정받아 말단직원임에도 문체부나 페이스북에 강의를 가는 등 귀중한 경험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는 내용으로 발표를 마쳤다. 그 면접관분이 일부러 압박면접을 한건지 모르지만 면접 내내 나를 몹시 안좋게 보시는 듯 했다. 면접 시간이 타이트 해 딱 저 일문일답이 끝나니 다른 문답은 오가질 못했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자 결과는 나중에 통보된다며 끝난 사람은 먼저 가라고 했다. 나는 오는 차에서 내 면접발표와 문답을 녹음한 것을 다시 들으며 또 입맛이 씁쓸해졌다.
결국 최종 명단에 나는 없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2019지방행정의 달인'에 '충주시SNS'를 가지고 도전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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