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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남식 Sep 08. 2024

아깝지 않냐는 질문

 처음 홍보 담당자가 됐던 2016년이나 10여년이 지난 지금이나 나는 TV도 잘 안보고 트렌드에도 둔감한 인간이다. 개인 블로그를 하려고 공무원 블로그기자단에 지원했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개인 블로그가 없다. 게으른 탓이다. 이렇게 아날로그하고 게으른 내가 개인SNS도 아니고 무려 한 기관의 SNS담당자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드라마틱하고 황당한 설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담당자로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1인분은 해내고 싶다는 오기, 무식해서 용감한 순수한 광기, 그리고 도움을 주던 주변에 여러분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홍보나 마케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딱히 기술도 없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시키니까 했다. 대학 전공시간에 잠깐 배웠던 패러디가, 군대에서 훈련계획 그릴 때 쓰던 파워포인트가 이런 데서 쓰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초에 패러디 기법이며 파워포인트가 이런 포스터를 만드는데 쓰인 것을 봤다면 우리 교수님이나 빌게이츠 형님도 어이가 없긴 헀을 듯하다.

 

 허심탄회하게 말하면 전 부서에서 열심히 일하고 이제 막 확실시 되는 성과를 냠냠 거두려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인사이동에 'SNS도 안하는데 왜 시킴? 안되면 니 책임!, 아 그러게 왜 시킴?' 이라는 배째라는 마음도 있었고 그래도 홍보라는 분야가 주는 묘한 설레임과 신기함도 있엇다. 


 가만보니 남이 주는 포스터나 홍보물만 전달받아 올려도 충분했을텐데 천성이 가만있질 못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좀더 잘될 같은데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야금야금 하나보니 어느순간 어어-하고 겉잡을 없이 커졌다.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를 해준다고 하기(무려 발탁인사?!!)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또 하다보니 고향을 홍보하는 것이다보니 애정이 듬뿍 깃들어버렸다. 


 페이스북이니 블로그가 정확히 메뉴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몰라 하나하나 찍어보면서 게시물을 등록해보고 어떻게 보일지 몰라서 다른 계정으로 들어가보면서 하나하나 SNS를 익혀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블로그 관리를 도와주는 업체 대표님에게 노출이니 키워드니 같은 기초적인 것들을 배웠고 이미 파워블로거(요즘 말로 인플루언서)거나 블로그를 능숙하게 다루던 우리 충주시 블로그 기자단원들에게도 온라인 생태계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블로그 기자단 회의는 어떨때는 의견이 너무 날 것으로 거친 것들이 오가면서 회의가 꽤 살벌해진 적도 있는데 솔직히 나는 그럴 때가 오히려 회의하는 척이 아니라 진짜 회의가 되는 것 같아 즐거웠다. 파워포인트 외에 포토샵 항성 같은 고급편집기술이나 통계 같은 것은 당시 사무실 일을 도와주던 주영이란 친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처음엔 평범하고 단정했던 충주시 SNS가 전국방송에 나오고 포털 메인에 소개됐는가 하면 공직 4년차를 막 지난 말단 공무원이었던 내가 전국에 중앙부처니 도시를 다니면서 홍보에 대해 강의를 하게 된 것도 참 별일이다. 생각지도 못한 경험이었다. 대형 커뮤니티 인기게시물에 충주시 SNS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전혀모르던 곳에서 충주시SNS 얘기가 나올때면 그럴 땐 홍보하는 흉내가 아닌 진짜 홍보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페이스북 영향력이 5000% 성장했고 블로그도 누적 방문자나 하루 방문자가 300% 이상 늘었다. 문득 그때를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주식이 그렇게 올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응?)


 햇수로 3년, 만으로 24개월 홍보담당자를 했다. 흔한 말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다이내믹한 기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주변 변화가 급격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인사 이동이 나기 전부터, 인사 이동으로 업무가 바뀌고 난 이후에도 종종 나에게 묻곤 했다. "아깝지 않겠어?" 내지  "아깝지 않아?"라고. 내 마음이라면 흔히들 그러듯 시원섭섭아니었을까? 밑천이 드러나거나 어떤 실수하기 전에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구상했던 시스템이 제대로 완성했는지 모호함, 그리고 그동안 정말 즐겁게 행복하게 하던 일을 내려놓고 간다는게 아쉬움 이런 것들이 복합적이었던 것 같다.


 충주시 홍보를 담당 하면서 내가 고민했던 부분은 시스템 구축이었다. SNS를 총괄 하다보니(총괄..엣헴) 블로그는 시스템이 나름 구축됐다 생각을 했는데 페이스북은 개성이 너무 강해져서 이건 그냥 조남식이란 한 개인의 색깔로 가득한 채널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런 부분을 경계하다보니 언론 인터뷰나 강의 같은 기회에는 적극 응해도 내가 충주시 공식 채널에 직접 출연하거나 언급하는 것은 꺼렸다. 나는 이때 공공기관 페르소나와 나라는 개인 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 굉장히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당시 누가 올지 모를 후임자자가 스스로 톤앤 매너라든가 기획을 고를 수 있는 재량이 없이 내가 하던 것을 답습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니가 뭔데 충주시 이미지를 이렇게 병맛으로 만들어놨냐는 의견도 있었다.) 혹 하던 것을 흉내내는 것도 개인기의 영역이라 구현이 안된다면 이대로 충주시 B급 홍보 브랜드가 무너지는 것인가?와 같은 아까움이 있었다. 나는 기관SNS가 담당자 개인기에 의존해서 한때 반짝하는게 아니라 세대를 거듭하면서 계속 잘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시스템화 된다는 것은 개성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그러면 지금같은 차별화가 가능한가? 라는 물음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이내 생각을 바꿨다. 내가 공무원으로 어느 일을 맡든 일은 내가 평생할 없다. 내가 아무리 애착을 갖고 밤낮 끌어안고 고민하던 일도 내 차례가 지나가면 다음 사람에게 넘겨줘야 한다. 심지어 SNS, 채널이라니. 나는 거기에 내 혼신을 다 했지만 그것은 결국 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충주시 기관을 대표하는 채널이고 내가 충주시 기관 채널 관리자였다면, 홍보담당자로서 홍보를 잘 해냈다면 충주시 채널은 나의 페르소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충주시 페르소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내가 가져올 수 없는, 가져와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그 아쉬움도 만족스러웠다. 


나는 홍보담당자로서 주어진 시간 동안 충분히 즐겁고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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