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보다 자유롭고 싶다

실전 연애 휴업합니다

by 해센스

현실판 나는 솔로처럼 올해 다섯 명의 남자를 만나 다섯 번의 짧은 연애를 했다. 이제 완전한 번아웃이 왔다. 격렬하게 혼자 쉬고 싶다.


올해의 남은 세 달은 친구들이 간간히 보내오는 연애 상담, 혼자 지난 연애에 대해 곱씹으며 글 쓰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친한 친구의 부케를 받아서 6개월 내에 결혼에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을 두어 달간 했다.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최소한 약혼까지는 무리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 무모한 계획은 접었다. 가능할지라도 실행에 옮기고 싶지 않아 졌다. 누군가를 만나 그렇게 짧은 시간에 결혼 결정을 하느니 그냥 3년 동안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혹여나 딱히 결혼할 사람 없이 마의 35살이라 불리는 나이를 지나치는 것도 두렵지 않다. 옅게 도화살 서린 얼굴에 똑 부러지는 모습 이면의 멜랑콜리함은 어딘지 모르게 남자들의 구원본능을 자극하는지, 나서지 않아도 연애가 끝나기 무섭게 계속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런데 그 구원본능이라는 것도 지겹다. 힘들다. 내가 뭔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다정하게 해 주면 얘는 절대 나를 떠나지 못할 것 같은데, 나한테 의지하게 해서 꼭 옆에 붙어있게 해야지 이런 생각들, 이제 빤히 보이고 멋있게 느껴지기보다는 도리어 겁이 난다.


사람을 만난다면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적당히 내 취향 외모에 인성에 신뢰가 가는 성실한 사람 정도이다. 나의 우울함이나 대디이슈에서 나를 구원해 줄 필요도,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사랑을 폭발적으로 쏟아줄 필요도 없다. 그냥 지나치게 선 넘거나 간섭하지 말고 적당한 속도로 친구처럼 알아가다가 잘 맞고 서로가 편안하다고 느끼면 관계에 조금 가속이 붙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울함과 숨 막힘 사이에서 정신과 약에 손을 뻗어야지 싶은 트리거도 다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연애에서 생긴 일들의 영향이 크다. 연애에서의 힘듦이 내 인생의 시나리오를 일깨워 하루의 한 순간에 나를 한없이 추락시킨다. 하지만 ‘아, 이 사람도 내가 잘못 선택했구나. ’하며 또 실패야 싶어 낙담하다가도 ‘이 정도에서 알아봐서 다행이다.’하며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난다. ’이별, 몇 번짼데, 아마추어처럼 왜 이래. 수많은 헤어질 결심과 실행 끝에도 난 잘 살아왔다고!’라며 속으로 말한다.


경험이 주는 힘은 분명 강력하다. 이제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사람도 꽤나 빠르게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다, 사리분별 잘하고 나와 성정이 잘 맞는 친구들이 있어 헤어질 결심은 신속하고 굳건하며, 이별 후의 마음은 홀가분함 그 이상이다. 아주, 그리고 오래 힘들어질 뻔하다가 내가 나를 구원해 낸 그런 느낌이다.


나를 구원해주고 싶었던 남자들의 간섭에서 벗어나 세상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내가 도와줄 테니 너는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말, 그저 내가 나를 잘 알고 에세이로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이유로 조금은 부족한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집의 청소 상태는 어떻고, 빨래 상태는 어떻다는 둥의 평가, 내가 둔감했으면 좋겠는데 정신과 약물은 복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모순, 내가 내 몸에 타투를 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좋네 싫네 하는 말, 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자유인이 된 기분이다.


자유영혼력이 충전되어 연애 휴업이 끝나면 앞뒤 안재고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호랑이 같은 남자 말고, 내가 먼저 콕 집어 친해지고 싶은 그를 만날 것이다. 내가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서운해지는 한이 있어도, 그를 사랑하는 나를 의심할 필요가 없는 연애를 할 것이다.


내가 드러낸 것들을 이해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고마워하는 자신감 부족한 모습 대신, 드러내기 전이든 후든 당당하고 때로 멜랑콜리한 내 모습 그 자체로 내가 꽂힌 그에게 나를 내던질 것이다. 차이면 차이는 대로 또 자유를 만끽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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