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를 피하겠다는 생각이 가당키나 한가

헤어질 결심, 더 행복할 결심

by 해센스

연애를 끝낼 때 중요한 것은 다음에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아는 것이다. 그와 이별을 결심하면서, 그리고 이별을 하고 나서, 친구 같은 느낌이어도 괜찮으니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을 만나겠다고 결심하고 글로 옮겨놓았다.


난 섬세한 사람이 필요하구나. 비슷한 사람이 맞을까, 나와 다른 사람이 보완이 되어 오히려 좋을까 많이 고민했는데, 이 연애를 실패하면서 친구 같은 느낌의 비슷한 사람이 맞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랑 둘이 알콩달콩 잘 놀 수 있는 사람, 대화할 때 편안한 사람이 필요하구나 결론 내렸다.​


그래서 다시 절대 아빠 같은 남자 만나지 않으려고, 연고 직접 발라주는 외할아버지 같은 다정한 남자 만나려고 한다.


조만간 그런 사람 만날 것이란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준비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개된 곳에 글로 쓴 건 대부분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를 위한 다짐을 글로 옮겨놓으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남자친구나 배우자가 될 누군가가 아니라 나만큼 섬세해서 대화하고 함께 취미를 즐길 때 재미있고, 나만큼 다정해서 늘 챙김 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다정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크게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꾸준하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돌연히 차가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 늘 따뜻했다가 뜨거웠다가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집에서는 자주 불안했는데 외할아버지가 있는 외할아버지댁에서는 늘 느낄 수 있었던 안정감과 따뜻함을 주는 사람을 반드시 만나야만 했다.


오랫동안 너무 많이 불안했다. 불안은 다른 것들과 달라서 오래 곁에 있다고 무뎌지거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작은 불안에도 민감해지기만 한다. 불안이 힘에 부치니 불안을 피하려 하면 그럴수록 불안이 찾아오는 것에 불안해지는 불안의 굴레에 갇혀버린다.


나쁜 남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쁜 남자에게 끌린 적은 없었다. 끌렸다면 너무 순진했던 시절 뻔한 수법에 넘어갔던 것이지 누군가가 나쁜 남자여서 좋았던 적은 없다. 알면 알수록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 드는 둘도 없는 착한 남자가 좋다.


나쁜 남자는 불안을 유발할 소지가 높다. 그런데 마치 불안을 피하려 하는 것처럼 나쁜 남자를 피하려 하면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나쁜 남자일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불안을 잔뜩 경계할 때 오히려 불안이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것에 불안해지듯, 나쁜 남자와의 만남과 연애를 잔뜩 경계할 때도 나쁜 남자라는 불분명한 실체와 힘 빠지는 싸움만 하게 된다.


불안을 불안해한다고 불안해지지 않을 리는 없다. 오히려 불안을 특정 자극이 내게 불편하구나 하고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이자 당연한 감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조금은 더 수월하게 불안을 겪어낼 수 있다.


나쁜 남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쁜 남자를 경계한다고 완전히 피해 갈 수도 빠지지 않을 수도 없다. 가장 최근에 한 이별 속 그는 지나고 나니 굳이 따지자면 나쁜 남자 쪽의 남자였다. 처음에 사실 크게 매력은 없어도 그렇게 나쁜 남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나쁜 남자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멋있게 보거나 혹할만한 요소가 있는데 나와 소수의 여자들만 알아볼 수 있는 다른 장점이 있으니 이 사람을 고르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결론적으로 틀렸다. 잘생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볼수록 잘생겼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대체로 괜찮다고 했다. 내가 단호하게 이야기해달라고 해서 헤어지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해 준 지인마저도 이 사람이 그 그룹에선 제일 외모가 괜찮다고 했다. 진하고 강한 선을 좋아해서 내 평소 취향이 아니니까 나는 외모를 보고 좋아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대체적으로 그는 괜찮다는 평을 들었고, 아마 그래서 꾸준히 연애를 무리 없이 했을 것이다.


내가 매력이 부족해서 나쁜 남자는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던 부분들도 일부 여성들 역시 똑같이 판단했을 것이다. 매력 없는 착한 남자들이 가진 성향과 그의 카리스마, 단호하고 일관성 있는 화법이 더해져 그의 과거 연인들에게 나르시시스트적 성향과 가스라이팅을 꽤 오래 완벽히 감췄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나, 일을 하면서나, 어떤 모임이나 그룹에서나 늘 멋진 사람을 좋아했다. 매력이 없으면 끌리지 않았고 깔끔한 외모에 적당히 카리스마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책임감 있고 착한 남자와 연애하려 애썼지만 그렇다고 매력 없는 사람에게 끌렸던 적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당당하게 독특하고, 마이너한 사람이라고 외쳐도 이성 취향만큼은 메이저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좋아했던 이성은 늘 속했던 그룹에서 제일 예쁘거나 눈에 띄는 사람을 좋아했거나 그런 그녀와 잘 됐다.


최악의 연애들은 ‘나쁜 남자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누군가와 만났을 때 일어났다. 그러니까 나쁜 남자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는 나쁜 남자를 피할 수 없다. 내게 매력 있는 이성을 만나서 그가 나쁜 남자임이 밝혀지면 떠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차라리 옳다. 그래야 하루를 만나도 후회 없는, 내가 원하는 사람과의 연애가 가능하다.


진짜 나쁜 남자는 교묘하다. 처음에 당신에게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듯한, 절대 달리 의심할 수 없는 행동을 해서 신뢰를 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처음 가졌던 그 확고한 고정관념, 이런 남자는 나쁜 남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한동안 지배받을 것이다. 나는 그랬다. 그래도 마음 관찰을 자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인지라 조금은 빨리 빠져나왔다.


결혼에 있어 아주 불행해지지 않을 결심은 언제든 내 자존감이 훼손되면 이혼할 결심이고, 연애에 있어 아주 불행해지지 않을 결심은 언제든 내 자존감이 훼손되면 헤어질 결심이다. 절대 이혼 안 해줄 남자, 안전 이별 안 해줄 남자가 아니면 첫째)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알고, 둘째) 그런 사람과만 사귀고, 셋째) 마음이 힘들면 떠나면 된다.


후회되는 연애라도, 끝이 찝찝한 사람이더라도 그 끝에 나는 성장했고 조금 더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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