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간, 행복한 시간, 이해할 수 있는 시간
그의 집에서 진토닉을 만들어 마시며, 같이 게임을 해보다가 우리 집에 다시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그는 내게 얼만큼 사랑하냐고 물었다. 내가 자주 묻던 질문을 따라 해본 것이었다.
손으로 허공에 작은 하트를 그렸다.
"겨우 그만큼? " 그가 말했다. 그가 이런 걸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아니, 이만큼 빼고 다. " 내가 말했다.
"그럼 그만큼은 뭐야? " 라고 했다.
"Space for understanding(이해의 공간)." 내가 말했다.
100일 기념으로 그가 써 준 편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서로에게 조금만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면서 오래 함께하자. "
그 말이 좋았다.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말.
조금만 시간을 두고 보면 그를 감싸 안아줄 수 있고, 조금만 내게 공간을 주면 편안하게 관계에 머무를 수 있다.
그의 짧은 편지에 시간이라는 단어가 총 세 번 등장했는데,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도 그 모든 "시간"을 수식하는 말들이 좋았다. 그래서 시간 맞추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나인데, 그 시간이라는 말들이 좋았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같이 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자. "라는 문장이 있었다.
함께 보낼 많은 시간, 행복한 시간,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
이 모든 시간이 내가 바라는 시간이자, 꼭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았다.
연애를 하면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적극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겠다 싶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도 조금만 떼어 놓을 수 있다면 더 오래 행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편지에 등장한 시간이라는 단어들과, 그 단어들을 품고 있는 문장들 속에 그런 그의 연애관이 드러나 더없이 안정감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맞지만,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행복하기 때문에 나와 시간을 보내는 남자여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서로를 더 이해해 주자는 말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남자와 연애하고 있는 것이 기뻤다.
“Space for understanding”이라는 말에 그는 “이해의 공간이 그렇게 작아? ”라고 했다.
이기고 싶었지만 말문이 막힌 채 깔깔거리며 웃기만 했다.
나는 “쉽지 않네. ”라고 했다.
“그래도 재밌잖아. ” 그가 말했다.
“져주지 않아. ” 내가 말했다.
그는 “져주지 않지만 확실한 남자지. ”라고 했다.
“뭐가 확실해?“ 내가 물었다.
“확실하게 너를 사랑하는 남자. ” 그가 답했다.
“그렇네. ”
그렇다. 그것은 조금도 의심이 들지 않았다. 그는 확실하게 나를 사랑한다. 그는 내 일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전부를 사랑하는 남자이다.
얼마 전에도 티격태격 하다가 밤새 서럽게 울었다.
내가 먼저 아무것도 아닌 걸로 화냈지만, 그 한 번을 안 받아주는 게 서러웠다. 싫은 티 한 번 안 내고 참아줄 수 없나 싶었다.
그는 이해 안 되는 것은 져줄 수가 없다며, 그렇게 져주다 보면 상대방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고, 자신은 결국 한계에 봉착해 터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싸워도 마음이 잠잠해질 때까지 동이 틀 때까지고 통화해 줬었는데, 그날은 그가 머리가 아프다며 먼저 잔다고 했다.
혼자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울었다.
길고 어두운 터널같은 하룻밤이었지만 막상 혼자 견뎌내고 보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보니 마냥 져줄 수 없는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남자친구가 다 참아주는 연애의 끝이 어떤 지 너무 잘 알았다. 딱 그의 말대로 될 것이 뻔했다. 그 길을 또다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 다 져주지는 않지만, 그는 나를 확실하게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단 한순간도 그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이해의 시간과 공간을 남겨두고, 남은 시공간을 모두 다 감싸 안아주는 사랑도 괜찮겠구나, 충분히 사랑이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