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빤 마음이 꽃밭이야
그의 가슴부터 윗배 그리고 몸통을 테두리로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렸다. 오빤 여기에 꽃밭이 있다고 했다.
작은 얼굴의 반이 털과 수염자국으로 덮인 남성미 넘치는 외양과는 대비되게 마음속에는 예쁜 꽃밭이 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중남자라고 칭한다. 가운데 중. 상남자도 하남자도 아닌 그 중간. 절대 상남자라고는 스스로를 칭할 수 없지만, 하남자라고도 인정하기 싫은 딱 그 중간의 중남자. 늘 자긴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중간의 남자라고 말한다.
TV에서 상남자스러운 남자를 보면 혹하는 나에게 그는 “역시 해일리도 상남자 좋아해. ”라며 살짝 서운한 티를 낸다.
나는 그러면 “아니, 나는 중남자 좋아해.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빠처럼 겉은 상남자인데 속은 섬세한 중남자 좋아해. ”라며 정정한다.
그래도 투닥거릴 때는 좀 상남자처럼 해줄 수 없냐는 뉘앙스로 말하곤 한다.
꽃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주의를 많이 기울여야 한다. 주변의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고 주인의 관심도 듬뿍 필요하다.
꽃처럼 예민하고 섬세한 남자를 만나는 일은 절대 지루할 틈이 없지만, 마냥 마음이 잔잔하게 머물 수만도 없다.
꽃처럼 민감한 그는 나의 작은 변화에도 휙휙 요동치고, 안정감을 느꼈다 불안에 휩싸였다 한다. 똑같이 꽃처럼 예민한 나는 그의 불안을 절대 방관할 수가 없다.
그 역시 나의 예민함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주 미세한 행동 변화와 표정 변화에도 괜찮은지 묻는다. 즉시 말로 표현을 잘 못해도, 조금이라도 불편할 때나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미간에 힘이 들어오는데, 그렇게 눈썹사이가 가까워질 때면 그는 늘 내게 기분이 안 좋냐, 불편하냐며 입을 뗀다.
그런 섬세함이 좋았다. 그래서 서운해질 일도 적지만, 서운함이 오래 지속될 틈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번은 그가 버럭 하는 탓에 제대로 서운함을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마음을 닫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그냥 지나칠 리 없는 그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다며 돌아와 달라고 했다.
그의 노력에도 마음을 비웠다는 둥하며 일주일째 그에게 미지근하다못해 냉랭한 말과 태도로 그를 대하니, 그는 점차 더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여전히 사랑한다고 표현했지만, 전과는 다르게 서운함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도 않으면서 간접적으로 툭툭 티 내는, 마음이 다 식은 사람처럼 어쩌면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티 내는 내게 그는 이러다가 결국 헤어지자고 하는 거 아니냐며 만날 거면 제대로 만나자고 했다.
전에 해오던 대로 서운함을 대화로 제대로 풀지 못해서 그랬을 뿐이지 헤어질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충격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대해 오히려 좀 더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였다.
꽃이 물과 햇볕이 없으면 죽듯이 그의 마음도 그렇구나.
너무 많이 밀어내면 밀려나고 너무 멀어지려 하면 먼저 달아나려 하는구나.
딱 나와 같구나. 딱 나와 비슷한 예민하고 불안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는 TV보다 잠에 빠질 때든, 밤에 잘 때든 내 옆에 꼭 붙어서 나를 끌어안고 잔다.
서로에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며 오래 함께하자고 했지만, 그가 말하는 시간과 공간이란 서로에게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막간의 시간과, 마음이 멀어지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공간을 말하는구나 싶었다.
마음이 가까울 때는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멀어지면 불안한 우리에게 너무 많은 시간과 공간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절대 버리지 말라, 절대 떠나지 말라고 말하던 우리는 이제 절대 멀어지지 말자고 말한다.
꽃은 방관하면 죽는다. 아름다운 꽃밭은 아름답게 봐주어야 한다.
한 번 봐줄 것 열 번 봐주고 볼 때마다 늘 예쁘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상남자처럼 멋있지만 대화가 안 통하지도 않고, 하남자처럼 여자에게 노력하는 것을 아까워하지도 않는 그는 그저 대화와 노력이 많이 필요한 마음이 꽃밭인 섬세한 중남자이다.
이런 중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그냥 딱 연애하는 것 같다. 행복한 것, 좋은 것, 힘든 것, 마음 아픈 것이 모두 다 패키지로 들어있는 지루하고 심심할 틈 없는 선물 세트를 받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