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자기 자신에게 취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가 물었다.
“넌 날 왜 그렇게 좋아해 줘?”
“그런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전남친들보다는 날 더 많이 좋아해 주는 것 같아. ” 그가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말했다.
“그냥 그런 것 같아. 내 바람인가?” 그가 말했다.
사랑이 넘친다는 말, 날 너무 좋아해 준다는 말,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 네가 날 제일 많이 좋아해 주는 것 같다는 말…
비슷한 말들을 들어왔어서 놀랍지 않았다. 물론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에게서…
남자친구도 이 말을 내게 처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표현을 더 듣고 싶은 것인지,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아서 마음이 따뜻한 것으로 차올라 어느새 새어 나오는 말인지, 그는 종종 묻곤 했다.
“날 왜 이렇게 좋아해, 날 왜 사랑해, 날 왜 이렇게 사랑해줘?”라는 말들로.
잠시 생각했다.
정말 난 전남친들보다 이 사람을 더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나?
제일 많이 예뻐하는 것은 맞았다.
내 표현 방식이 그에게 얼마나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나름의 표현 방식으로는 제일 많이 표현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가 내 품에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은 채 파고들어 귓가에 쎅쎅 소리를 들려주며 잠에 들면, 코 고는 소리마저 마디마디 놓치지 않고 들으며 토닥토닥해주는 것이었다.
내 옆에서 그렇게 잠든 그와 나란히 있을 때면, 평생 아껴주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말했다.
“이 정도로 아기처럼 예뻐해 주는 건 처음인 것 같아. 오빤 나한테 이렇게 파고드는데 그게 사랑스러워. 더 사랑해주고 싶어 지게 돼. ”
정말 그랬다.
더 많이 가까워지고 싶어 했던 그와 더 많이 가까워졌고, 더 많이 사랑받고 싶어 하는 그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휩싸여 티격태격할 때는 같은 말로 그를 찔렀다.
“오빤 아기 같잖아. 사랑받으려고만 하잖아. ”
곧이어 깨달았다. 딱 내 마음을 그에 대입해서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내 달라진 온도에 불안해하며 아니라는데도 계속 그에 대한 내 마음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은 “베이비시팅하며 만나기 싫어. ”라며 모진 말을 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하면 믿음을 가지면 되지, 불안감에 휩싸여 내 모든 말과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그에게 세게 말한 것이었는데, 그는 그 말에 튕겨 나갈 뻔했다. 정확히 말하면 튕겨나갔다가 금방 제 발로 돌아왔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라고 했다.
아기처럼 예쁨 받을 때는 언제고, 싸울 때 아기 같다는 말에는 경기를 일으켰다.
그는 그 말에, 누가 누구보고 아기 같다고 하냐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기 같은 대접받기를 쌍수 들고 환영하는 것은 나였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당당히 인정한다.
그가 “우리 애기”라고 표현할 때 속으로 너무 좋고, 어린이들이 좋아할 법한 스퀴시 인형이나 폭신폭신한 쿠션을 사줘서 들고 다닐 때가 제일 행복했다. 음… 그런 나를 어린아이처럼 봐주고 표현해 주는 그를 볼 때 더 행복했다.
전화 통화 할 때 가끔 어린아이한테 할 법한 말투로 말하면 그게 너무 좋았다.
아이처럼 사랑받는 것을 좋아하면서 인정하기 싫어하는 그와 인정하는 것을 껄끄러워하지 않는 나는 누구보다 서로의 모성애를 가득 채워주며 만나고 있다.
마치 그에게 모성애를 듬뿍 채워주면, 내 사랑 잔고에서 사랑이 줄어드는 양 전전긍긍했던 나는 이제야 그런 게 아니구나 깨달아 간다.
그냥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듬뿍 주면 되는구나. 내가 더 많이 준다고 그가 내게 덜 주는 것이 아니구나. 그 역시 처음부터 내가 충분히 관계 속에서 행복한 아이처럼 느끼게 해주고 있었구나 느낀다.
그의 왜 나를 사랑하냐는 말에, 어느 날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빠가 처음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날부터 오빠를 사랑하기로 했어. 세상엔 자기 자신에게 취한 사람들이 많은데 오빠는 날 봐줬어. 물론 전에도 나에게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잘해줬던 사람들이 있지만, 진짜로 나를 봐줬던 사람은 드물었던 것 같아. ”
사람들은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보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스쳐갔던 일부 사람들은 그런 면모가 더 두드러졌다.
잘생긴 나, 멋진 나, 잘난 나, 그리고 그런 내가 좋아해 주는 너. 그러니까 기뻐해야 하고 행복해야 하는 너.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나라는 멋진 사람.
그런 사람들은 사랑을 하며 조금이라도 내가 지워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에게서는 그런 나르시시스트적인 면모를 느낀 적이 없었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조금씩 지우는 일이라는데,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그의 일상과 패턴을 조금씩 희생하고,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자신을 조금씩 깎아나가는 그를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는데,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 모습을 조금씩 지워 나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받으려고 하고 관계 속에서 아이가 되고 싶었던 내가, 몸에 배어 있지만, 하기는 싫었던 엄마 같은 모습도 그를 위해 마음껏 내어주는 것을 보면, 그에게서 자기를 지워나가는 사랑을 배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