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열전 (5) 삼바르

남인도식 야채커리

by 이그나티우스
삼바르 - 복사본.jpg



동남아시아의 삼발 소스가 아니다. ‘삼바르’라는 남인도 지역의 대표적인 커리이다. 삼바르는 아주 쉽게 표현하자면 야채, 콩 커리이다. 가지나 드럼스틱과 같은 여러가지 야채와 비둘기콩(toor dal)이 들어간 커리인데,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사실 최근에 남인도 지역의 커리를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사를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인도 역사 내내 남인도 지역은 독립적인 정치, 경제, 문화권을 형성한 지역이었다. 당연히 문화도 다르고 애초에 말과 인종부터가 다르다. 당연히 커리도 상당히 차이가 있는데, 야채나 콩, 해산물이 들어간 커리가 많고 타마린드와 같은 남국의 식재료도 많이 사용된다.


사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커리는 거의 북인도지역의 커리이다. 치킨 마크니, 탄두리 치킨, 팔락 파니르와 같은 요리들은 북인도 지역의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삼바르와 같은 남인도 지역의 커리들은 상대적으로 소개가 잘 되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라는 곳은 거의가 뉴델리, 우타르프라데시와 같은 북인도 지역이나, 뭄바이 같은 중서부 지역의 인도이다. 케랄라, 타밀나두와 같은 남인도나 벵골, 마니푸르와 같은 동인도 지역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 있지도 않고 이미지도 흐릿하다.


그리고 나무위키(나무위키를 인용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이 이상의 소스를 찾기가 어려웠다.)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한국의 인도 레스토랑은 네팔 출신의 요리사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도 이전까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잘 생각해보니 인도 식당에 가면 꼭 차우민과 같은 네팔 요리를 같이 파는 경우가 많다. 또 동묘앞 네팔거리와 같은 곳에는 아예 어센틱한 네팔요리를 파는 식당도 꽤 있다.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얼얼한 매운맛이라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인도 요리들은 크림, 요거트, 토마토, 닭고기가 듬뿍 들어간 북인도 풍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이것이 또 나의 힙스터 기질을 자극해서 남인도 지역의 커리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내가 남인도 커리를 최초로 맛본 것은 후쿠오카 여행을 갔을 때 먹은 스리랑카 커리였다. 커리라기보다는 국에 가까웠던 이 멀건 커리는 외형이나 텍스쳐와는 달리 굉장히 단단하고 강렬한 맛의 레이어를 갖고 있었다. 멀겋다고 해서 무식하게 물을 탄게 아니었고 풍미를 잘 살리도록 세심하게 조정된 스프에 가까웠다.


이후로 나는 남인도 지역의 커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살아왔는데, 최근 다시 자취를 하고 커리를 만드는 데에 재미를 붙이면서 점차 남인도 지역의 커리에도 손을 대고 있다. 맛을 재현하기 위해 타마린드 페이스트와 겨자씨도 큰맘 먹고 구매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남인도의 대표적인 야채 콩 커리인 삼바르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드디어 실행으로 옮겼다. 가지나 드럼스틱을 직접 구하긴 애로사항이 있어서 가지가 많이 들어간 냉동 구운야채 믹스를 구입해서 넣기로 했고, 한국에서는 잘 취급하지 않는 비둘기콩도 인터넷 쇼핑몰로 샀다.


삼바르를 만드는 과정은 달 프라이와 같은 콩 커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나처럼 커민씨드, 겨자씨, 커리잎을 기름에 튀겨 탬퍼링을 하고 양파와 토마토를 볶아 페이스트의 바디를 만든다. 그 다음에는 마늘과 생강, 향신료를 넣고 볶아서 커리 페이스트를 만든 뒤에 야채를 넣어 잘 섞어준다. (여기까지는 중불로) 그런 뒤에 미리 30분쯤 삶아 둔 비둘기콩과 물에 탄 타마린드 페이스트, 그리고 적당량의 물을 넣고 10분 간 끓였다.


아쉬운 점은 이것이 실제 삼바르와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나는 챗 지피티가 알려준 조리법을 중심으로 요리를 했는데, 그쪽에서는 커리파우더와 고춧가루만으로 풍미를 주었다. 하지만 유튜브의 삼바르 만드는 영상을 보니 ‘삼바르 파우더’라는 이름의 붉은 가루를 한바가지 정도 넣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고춧가루와 커민, 터메릭 등을 중심으로 한 양념 파우더인 모양이었는데 영상에는 정확한 성분이 나오지 않아서 대체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구글이나 챗지피티로 검색하긴 귀찮고… 다만, 다른 커리와는 달리 이 양념가루가 바가지로 많이 들어가는 것으로 봐서는 이것이 슴슴한 콩 커리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이 삼바르 파우더를 썼더라면 훨씬 정통에 가까웠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좀 아쉬웠다.


아무튼 맛은 어땠느냐? 완성도가 높은 커리였다. 부드럽고, 고소하고, 속이 편안해지는 메뉴였다. 콩의 고소함과 야채의 쥬시함이 섞여서 다른 강렬한 맛의 커리들과는 일선을 긋는 흥미로운 메뉴였다. 내가 술은 잘 마시지 않지만 술 마시고 속이 불편한 다음 날 먹으면 왠지 좋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향은 다르긴 하지만 간이 강하지 않은 청국장 같다고나 할까… (단, 발효콩이 아니라 특유의 거부감이 드는 풍미는 없음.)


단, 1가지 중요한 단점이 단독 메인메뉴로 성립하기에는 너무 빨리 물린다는 점이었다. 부드럽긴 한데 동시에 슴슴하기도 해서 단독으로 밥과 먹기에는 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탈리(인도의 정식)에 여러가지 다른 풍미가 더 강한 커리들과 곁들인다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위에 삼바르 파우더 이야기를 한 것도, 어쩌면 커리파우더와 고춧가루 이외의 무언가 강렬한 재료가 들어간 삼바르 파우더가 강한 바디감을 주어 덜 물리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만약 그렇다면 삼바르는 훨씬 더 단독으로 먹을 만한 메뉴일 것이다.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현지 맛을 얼마나 재현했는지는 알 수 없는 애매한 괴식이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혼자서만 먹는 음식이라 피해를 볼 사람이 없어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4화괴식열전 (4) 케랄라 민 물라키타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