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열전 (4) 케랄라 민 물라키타투

by 이그나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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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에 만들어 먹은 요리는 케랄라식 생선커리, 케랄라 민 물라키타투(Kerala Meen Mulakittathu, കെരള മീൻ മുലകിട്ട്)라는 요리였다. 또 안 믿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구글과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분명해 존재하는 요리이다. 그렇게 대단한 음식은 아니고, 쉽게 말해서 매운 생선 커리이다. 갈치조림을 방불케 하는 맵고 중후한 맛은 한국 사람 입맛에도 잘 맞는데 아직까지 왜 우리나라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사실 이 시리즈의 1편인 안드라프라데시 식 생선커리 체팔라 풀루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의 문화가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는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는 류의 성상파괴운동이 한창이다. 틀린 말은 아니고, 커리는 하나의 고정된 요리라기보다는 국밥이나 김치 같은 하나의 장르라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나도 그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필칭 커리라고 불리는 요리들 간에 공통점이 전혀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커리들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 조리한다. 기름에 향신료를 튀겨 탬퍼링을 한 뒤 양파와 토마토를 볶아 걸쭉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걸쭉한 덩어리에다가 각종 향신료를 비벼 커리 페이스트를 만들어 물을 부어 국물을 만든다. 그리고는 그 국물에 닭고기, 생선, 양고기 등 각종 재료를 넣어 완성하고 끝에 향신 기름을 붓거나 각종 허브 혹은 버터를 올려 토핑을 한다. 상당히 많은 커리가 이러한 문법을 따르고 있으며, 중간중간에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안드라프라데시는 인도 동해안이고, 케랄라는 인도 서해안이다. 특히 케랄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혼란스럽고 극도의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인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인데, 전통적으로 좌익 세력이 강세인 지역으로 복지제도가 발달해 있고 인도 전역에서도 인간개발지수가 높은 지역이다. 또 오래전부터 무역을 통해 전해진 동방 정교회 계열의 기독교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굉장히 특색있는 지역이다. 당연히 안드라프라데시와는 일선이 그어지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선 커리의 기본 구조나 맛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물론 내가 만든 민 물라키타투의 핵심은 코코넛 오일인데, 나는 예산상의 문제로 과감히 생략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차이가 훨씬 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변화구가 있다. 원리원칙만 따지고 보면 케랄라 민 물라키타투에 코코넛 오일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그 이름으로 부를 수 없을지 모른다. 만약 케랄라 출신의 인도인이 코코넛 오일이 들어가지 않은 민 물라키타투는 가짜라고 말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내가 수많은 인도 지역 언어를 현란하게 구사하는 요리 유튜브를 보고 깨달은 것은 같은 이름의 요리여도 만드는 방식이 완전히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육을 양념에 재운 뒤 볶느냐, 볶으면서 양념과 섞느냐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이게 같은 요리인가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천차만별이었다. 어쩌면 이런 맥락에서 내가 만든 물라키타투가 가짜가 아니라고 인정받을 여지가 조금은 있는지도 모른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챗 지피티도 케랄라 내 지역에 따라서는 코코넛 오일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다만 나는 체팔라 풀루수와 완전히 같지는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고춧가루를 대폭 증량해서 매운맛을 더했다. 실제로도 민 물라키타투의 요리 영상을 보면 시뻘건 국물이 마치 우리나라의 갈치조림을 방불케 한다. 나머지는 체팔라 풀루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커민씨드, 겨자씨, 커리잎, 시나몬, 카르다몸을 기름에 튀겨 탬퍼링을 한 뒤 양파 1개를 캐러멜라이징을 한 뒤 토마토를 넣어 볶아서 물기를 다 날린다. (시나몬과 카르다몸은 인도 요리엔 보통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그냥 넣었다.) 그리고 커리파우더와 고춧가루를 넣어 커리 페이스트를 만들고 타마린드 페이스트(현지에서는 블랙 코쿰(black kokum)이라는 재료로 만든 페이스트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것은 민 물라키타투를 민 쿠르람부와 구별하는 중요한 차이점인데, 국내에선 재현이 불가능해서 포기했다. 따라서 이 요리는 엄밀히 말하면 민 물라키타투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를 푼 물 1컵을 넣어 국물을 만들어 5분간 끓인다. 그리고 나서 생선(이번에도 코다리)을 넣고 10분간 끓이고 불을 끈 뒤 5분간 뜸을 들였다.(해당 문단은 업로드 후 수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다 만들고 나서 안타까웠던 부분은 첫술을 뜨는 순간 입안을 감도는 씁쓸함이었다. 이것은 향신료를 약간 태웠다는 증거이다. 나는 커리 페이스트를 만들기 위해 냉동양파를 볶는다. 사실 생양파는 굉장히 성가신 식재료다. 조금만 놔둬도 금새 싹이 자라 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양파를 먹기 싫은데 소비를 하기 위해 억지로 양파를 넣어 음식을 만드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다.


자취하는 사람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가정주부의 경우 다양한 식재료를 아침, 점심, 저녁 심지어는 간식까지 나누어 두루 소비하고 먹어줄 사람이 있다. 아침에는 된장찌개에 양파를 넣고, 점심때는 라면에 양파를 넣고, 저녁에는 제육볶음을 만들고, 간식으로 어니언링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자취생은 양파를 먹는다 치면 하루 1, 2번에 나눠서 반드시 먹어야 하고 양파를 안 먹는 날도 많다. 결국 양파망 하나를 사면 마지막 몇 개는 싹이 나거나 문드러져서 버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올해부터는 쿠팡에서 잘게 다이스된 냉동양파를 사서 필요한 만큼 쓴다. 물론 제육 같은 생양파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쓸 수 없지만, 커리나 파스타같이 굳이 양파의 질감과 형태가 안 중요한 경우에는 꽤나 괜찮다. 냉동 식재료의 장점은 재고관리가 간편하다는 것이다. 한 2-3일, 아니 일주일 정도 그 재료를 쓰지 않아도 상할 우려가 없다. 팜 투 테이블 철학의 대두로 인해 냉동, 장기보관, 가공음식에 대한 불신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실제 음식을 만드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음식 만드는 사람이 생재료가 좋다는걸 누구보다 잘 안다. 알이 단단하고 굵은 무안 생양파를 썰어서 요리하는 것은 만드는 사람에게도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그걸 관리하는 문제는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문제는 냉동양파를 사용해서 카라멜라이징을 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탬퍼링 할 때 넣은 향신료가 탄 것이었다. 냉동양파는 수분이 일거에 팍 빠져나와서 볶는데 손이 간다. 그래서 조리법과는 달리 강불로 올려서 물기를 날려보내는 습관이 있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인덕션 버튼을 5번까지 올려서 물기를 날렸더니 그새 겨자씨나 생강 따위가 탄 모양이었다.


물론 첫입만 씁쓰리했고 먹다보니 점점 적응이 되어 밥과 비벼먹으니 나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마치 한국 음식처럼 매콤한 맛에 식물성 기름과 생선에서 나온 기름이 뒤를 받쳐주어 깊은 맛이었다. 그리고 양파와 토마토가 깊은 맛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먹은 뒤에도 몇시간이 지나도록 입안을 감도는 탬퍼링한 커민씨드의 풍미가 하루를 향기롭게 한다. 이래서 커리를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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