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가 Sep 03. 2024

프롤로그

모든 시절의 나에게

여느 때처럼 오늘을 사는 나를 불현듯 어느 한 시절로 잡아끄는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설렘이던 순간,

이유도 모른 채 지독히 외롭던 순간,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어 홀로 방황하던 순간,

죽고 싶을 만큼 마음이 무너져 내린 순간들 속으로.


순식간에 그 시절로 소환된 나는 한참을 헤매다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옵니다.

대체로 돌아올 때 들고 오는 건 아련함과 후회, 아쉬움과 쓸쓸함 같은 마음인데요.

그런데 들고 오는 그 마음보다

더 오래 사그라지지 않는 건

'홀로 툭 하고 남겨놓고 온 듯한 그때의 나'였습니다.      



'집단상담'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대학원 수업 중 집단상담에 참여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첫날, 첫 시간에는 어색하고 묘한 공기가 흐릅니다.     


'체면을 유지할 것인가,

빗장을 열고 취약함을 드러낼 것인가,

어디까지 내보일 것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보이지 않는 탐색전의 끝은 언제나 반전이었는데요.

완전히 무장해제가 된 채, 서로 깊이 연결되고,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며

서로에게 한없이 무해한 존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가족 상담 분야에서 저명한 노 교수님이

이끄는 집단상담에 참여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기억에 중년이

되어서도 힘들어하는 한 집단원,

그분이 어린아이가 되어 묵은 원망과 서러움을

쏟아내는 역할극을 끝낸 뒤였습니다.      


”누군가 진심으로 삶을 드러낼 때 그곳에는

놀라운 연결이 일어납니다. “     


교수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서 손을 들었습니다.

이후 교수님의 깊이 있는 질문에 이끌려, 저는 오랜 질병의 서사와 그로 인한 우울감,

성공에 가까울수록 소진되어 온 나의 내면들, 말하기 힘들었던 취약함들을 꺼냈습니다.


평가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안전한 곳,

그 집단 안에서 교수님은 집단원들에게 내 감정이 집약된 한 시절의 역할을 맡게 했고,

나는 내 모든 시절들을 한 공간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찾아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해주지 못했던 위로, 묻고 싶었던 질문,

말 없는 포옹, 지금의 내가 꼭 건네고 싶은 말들...

그러는 사이 생각지 못한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 눈,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네 마음이 먼저야.

지나고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평소에도 생각했던 말이었고 가끔 되뇌던 말이었기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마 '나라고 명명된 대상'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역할이 되었던 그녀도 자신의 어느 때가 떠올랐는지 우리는 바라보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렇게 다섯 살의 나부터, 현재의 나를 만나는 시간은 그곳에 있는 모두에게

자기 이야기가 되고, 우리 이야기가 되어 각자의 가슴 어딘가를 뜨겁게 했습니다.     


그 행위는 말 그대로 역할극일 뿐입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도 명백하고요.

하지만 아무리 늦었을지라도,

어떤 형태로라도 내 마음의 안부를 묻는 시간이

필요했음을 우리는 한마음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누군가는 한두 번, 누군가는 수십 번, 수백 번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나의 마음을,

특히 취약함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거라고요.

       


저는 올해로 24년 차 방송작가입니다.

두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를 하는 시기, 수술로 입원했던 총 1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던 워킹맘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는 입꼬리 하나도 거짓으로 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심한 번아웃이 왔습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선 마치 가면이라도 쓰듯

꾸역꾸역 나를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써야 했습니다.     


쌓여가는 커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워킹맘의 처절한 노력은 온데간데없이

자식 농사는 매일, 형편없는 엄마로서 나를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괜찮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바닥으로 꺼져가던 저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반가운(?) 코로나 시대가 왔습니다.  


내 마음의 안녕을 묻지 못한 채 몰아치기만 했던 삶의 속도를 늦췄고,

저는 단절을 오히려 환대했습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오래,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늘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마음을 쓰고, 공감하는 일을 하면서

정작 나에게 다정한 안부 한 번 묻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내 모든 시절들을 찬찬히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MBN<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7년째 해오며 숱한 자연인들을 만나는 사이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이 산으로 들어가는 이유에는 주요한 공통점이 있다는 걸요.

자신을 돌보지 못한 시간의 후회, 그 강렬한 자각은 고립되고 외딴 산도 불사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뜻한 밥 한 끼 정성껏 차려 먹지 못했던 시절, 먹고사는 일에 치여 쉬는 법을 몰랐던 세월,

서로 밟고 밟히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누리지 못했던 평온,

따가운 비난과 쏟아지는 조언 때문에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한 삶...

모두들 시간, 돈, 사람에 치이는 사이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을 아끼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지금 산에서 느끼는 행복의 전부는 자신을 돌보는 시간과

묵묵히 그들을 바라봐주는 자연의 품이었습니다.      


이런 시간들을 지나며 점점 더...

언제 어떤 모양으로든 나의 지난 시절을, '툭 하고 홀로 두고 온 나'를

안아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위로일 수도 화해일 수도 있는 그 마음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요.

이 시간이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아닙니다.

오히려 앞으로는 '내 마음에 다정한 안부를 잊지 않겠다'는, '누구보다 내가 내 편이 되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일은 앞으로의 내 세상을 더욱 선명하고 주체적으로 만들 것이며,

이제야 내가 나를 믿고 살아가도 되겠다는 신뢰이기도 합니다.      


늦었지만 용기 내 본 저의 여정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이 안부를 묻는 일에 늦지 말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파이팅이 되었으면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