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합리적 의심
장마로 눅눅해진 살림살이의 꿉꿉함을 견디지 못하고,가사 노동에 온 기운을 다 뺀 뒤,
일을 하려고 앉은 건 무려 정오였다.
4시면 아이가 오고, 또 이어 남편이 올텐데...
이래서 재택근무는 이도저도 안된다.
집안일을 하는 것도, 회사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촬영본을 보며 구성안을 두 장이나 썼을까,
후배 작가 J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너무 답답해서요.
아니 나는 애기 보느라 모임은 커녕
회사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남편은 답사까지 미루고 술 약속에 간대요.
그래놓고 그 정도도 이해 못 하냐고 더 난리에요.
너무 적반하장 아니에요?"
6개월 된 딸 아이는 옆에서 칭얼거리고 있고
J는 방금 남편과 싸운 끝이라 그런지
여전히 격앙된 목소리였다.
J의 남편은 타 방송사 피디다.
둘은 베이비시터 없이 서로의 촬영, 답사 일정을
조절하고, 급할 때는 강원도와 충청도에 있는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딸아이를 둘이 키워보기로 했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아 무모한 시도지만 일단 해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6개월쯤 되자 비협조적인 남편 때문에
J는 매번 일정 조절을 해야 해서 피디 눈치도 보이고,
일도 제대로 못하고, 애도 잘 못키우는 거 같다며
그만둬야하는 거 아닌가 매일 고민이라는 것이였다.
'나라고 뭐 답이 있겠나'.
나는 결국 그만두지는 않았지만 잘한 선택이었다
자신할 수 없기에,
그저 듣고 할 수 있는 위로들을 전할 수 밖에.
잠시 어수선해진 마음을 커피 한 잔으로 달래고,
서둘러 다시 촬영본을 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목감기로 어제 내내 일을 미뤘던터라
오늘은 피디에게 절반이라도 해서 넘겨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급히 일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꼭 세금 낼 일이 생각나고,
아이가 사달라고 한 양말을 안 산 게 생각나고,
불현듯 페북에 올린 글에 댓글이 달렸나 궁금해진다.
그 모든 유혹을 가까스로 이겨냈건만
또, 받지 않으면 안되는 후배 작가의 전화가 걸려왔다.
올해 중1인 딸이 학교에서 심리 검사를 했는데
상담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전화를 했던 K다.
K는 늦둥이로 낳은 셋째가 아직 유치원생이라
작가일을 드문드문 할수밖에 없는 후배다.
"언니, 학교에서 애를 수업 시간에 상담한다고
데려갔데. 말이 돼?
애들 다 있는 데서, 뭔가 문제 있는 애라는 거
다 소문내듯이.
원래 이래? 중학교는? 너무 무개념 아냐?“
속상함과 화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K를 한참을
다독인 다음에야 불편했던 부분을 잘 전달하라 했고,
아는 상담사를 연결해주겠노라 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일에 지칠대로 지친 K는
그제서야 흥분이 가라앉는 듯 했다.
그렇게 그 전화를 채 끊기도 전에 이번엔
우리팀 작가 Y에게서 전화가 왔다.
'얘들이 오늘 날을 잡았나?'
하는 수 없이 ’오늘도 피디에게 목감기가 낫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며 노트북은 덮었고,
아예 산책을 나서며 Y 전화를 받았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Y.
"언니, 하... "
"왜?왜? 무슨 일이야? 촬영 펑크야? 잠수탔어?"
"...아니요... 민이(가명) 유치원이요..."
미안하게도 순간 아주 약간의 배신감이 들었다.
'겨우 유치원...?‘
Y는 6살 딸아이가 사회성이 없는 거 같다며 내내 걱정을 해왔고, 최근엔 유치원을 옮겨 걱정이 더 커졌다.
그런데 아무리 지켜봐도 영 적응을 못하는 거 같아서 도무지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거였다.
사실 알고 보면 그랬다.
우리들에게 일이 힘든 건, 일 때문인 때는 거의 없었다
일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모든 것들이
일을 힘들게 했을 뿐.
잠깐의 배신감이 미안했다.
그냥 뒀다간 걱정에 짓눌려 땅으로 꺼질 거 같은
Y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온갖 긍정적인 미래들을 이야기하며
진심 어린 화이팅을 보냈다.
오후 서너 시쯤 되면 동네 아파트는 시끌벅적해진다.
유치원 하원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들,
학원 보내느라 학교 가방과 학원 가방을 바꿔
들려 보내는 엄마들,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고 간식을 사 먹이는 엄마들,
퇴근길에 저녁 장을 봐오는 엄마들로 뒤섞이는 시간.
그 모든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한 사람씩 스치는 그 엄마들 속에서
나의 지나간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되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한 바퀴 도는 사이 순식간에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랄까.
첫 아이를 키울 땐 베이비시터가 있었고,
둘째땐 시어머니가 계셨고, 남편도 나를 도왔지만,
모든 육아와 양육의 때에 나는 대체로 전전긍긍했고, 불안했고, 버텨내느라 안간힘을 썼으며,
자주 울었던 듯 하다.
언젠가는 이른 시간 회의로,
둘째 유치원 버스를 내가 태워줄 수 없던 날,
방학 중이던 초등학교 1학년 큰아이를
엄청난 보호자 삼아 아파트 정문,
유치원 버스가 오는 벤치에 앉혀놓았었다.
'버스가 올 때까지 꼼짝 말고 여기에 있어야 한다.
버스가 오면 동생을 잘 태워야 한다.
꼭 동생을 보내고 너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 한다'는
랩을 속사포로 쏟아내고 뛰어가 마을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잡아 타고 헐레벌떡 앉았는데
창 밖 멀리서 정말 꼼짝도 않고 앉은 두 녀석이 보였다
유치원 버스가 오는 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두 녀석을...
그 모습을 스치는데 왜 그토록 눈물이 나던지...
어떤 피디는 내게 '저녁 6시만 되면 집중력이 흐려진다'고 핀잔을 줬었다.
베이비 시터 퇴근시간에 맞추려
나는 점심도 안 먹고 일했건만
총각이었던 자기는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떨다
겨우 3시쯤 책상 앞에 앉은 주제에 말이다.
언젠가 원고 마감이 임박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할 때,
'엄마 일하는 방문을 열지 말라'며 엄포를
어지간히도 놓았었던지
한참을 일하다 나와보니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이가 밥을 퍼서 김 하나만 놓고 먹고 있는 날도 있었다.
엄마를 불러서 밥을 달라고 하지 그랬냐고 당황해하니
'엄마가 문 열지 말라고 해서요...' 라고 말하던 아이.
짠함과 미안함에 눈물짓게 한 날은 지금도 아프다.
아이들은 꼭 회의 중일 때 학원버스를 놓쳤고,
산에 답사를 갔을 때면 아이가 열이 난다며 전화도
안 터지는 산중턱 사이사이 선생님은 전화를 했었다.
간식 먹을 돈이 없다는 전화도 꼭 살벌한 본사 시사 중일 때 걸려왔었다.
이렇게 나열하기 시작하면 워킹맘이든 전업주부던
아이를 키우는 고된 순간 스토리는 아마 끝도 없을 것이다. 너무나 처절해서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할 이야기가 며칠을 계속해도 마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질문이 생겼다.
이 모든 일은 정말 우리가 엄마니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맞는 거였냐고?
모성은 위대하고, 엄마 체력은 괴력이고,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보냈다는 말로,
소위 우리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겨우 서른 살 무렵 여자에게 감당 불가한 엄청난 일을 맡겨놓고는 '모성의 위대함'이라는 거룩한 타이틀을
던져 주고 하나 같이 우리를 모른 척 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생물학적인 본능을 마치 세상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인 양, 세뇌시켜왔기에
모든 엄마들이 이 위대한 거짓말에 속고 있는 건
아니냐고?
첫 아이를 낳고 친정 안방에 누운 아이를 보고
왈칵 울어버린 적이 있었다.
저 아이가 나만 믿고 세상에 나왔다는 게 덜컥 겁이
나서였다.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터져버린 눈물이였다.
그렇게 울고 싶은 날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셀 수 없이 많았었다.
후배들의 전화를 연이어 받고는 그간의 내 의구심에 느닷없는 확신이 더해졌다.
한 사람의 인생을 갈아 넣어야만 하는 일이란 있을 수가 없다고.
모성이라는 굴레를 던져놓고 모두들 은근슬쩍
비겁하게 발 빼지 말라고...
위대한 모성을 흠집 내는 돌멩이 하나, 던져버리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