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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Sep 04. 2024

d.e.a.dline을 넘는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건 시간과 상황에 쫓기더라도 크게 요동하지 않고 이내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거라 생각했다. 숨막히는 초조와 불안에도 최소한의 냉정을 찾을 수 있는 것.

적금 붓듯 쌓아온 내공이 적어도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일은 없어야 하는 거라고.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그만뒀었다. 채 1년을 채우지 못한 때였다. 초등학생 아이를 둘이나 두고 답사를 다니고 밤샘 원고를 쓰는 게 버겁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템 펑크에 대한 공포와 시청률 스트레스가 더 컸었다.

당시엔 시청률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경쟁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종종 후배보다 작가료를 덜 받으며 자존심이 상해도 애써 태연한 척 소화 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작가들을 경쟁에 부치는 횡포에 염증이 났고, 촬영 직전까지 섭외가 안 돼 간을 졸이는 일도 그만하고 싶었다. 나를 거기서 꺼내오고 싶었다.      


그곳에 4년 만에 돌아왔다. 그 동안 모 대기업 방송을 하며 회의감이 짙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만 보면 양육에 최적화된 일이었지만, ‘4차산업혁명’, ‘글로벌기업의 성공 전략’ 등

나에게 1도 와닿지 않는 글들을 쓰는 건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마음을 쓰는 글쟁이’가 되겠다던 내 나름의 철학을 두둑한 통장 잔고, 안락한 삶과 바꾸는 건

매일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프로그램 초기보다 ‘자연인 선정 기준’도 유해졌고, 각 팀마다 막내 작가도 맨투맨으로 붙어 있어 섭외도

쉽고, 원고 일정도 여유롭다고 했다. 4년 전에 비하면 천국이란 말을 믿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에 넌더리가 났기에.      


첫 출근 전, 인수인계를 해줄 후배 작가와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언니, 예전에 비하면 훨씬 편해지긴 했는데요... 언니한테 미안한 게 있어요. 막내 작가가요...”  


자연인 막내 작가는 위성 지도로 자연인의 집을 찾아내고, 전국의 이장님, 면사무소와 통화를 하며 자연인을 취재하는 막중한 일을 한다. 보도자료를 쓰고, 방송 직전엔 오타와 잘못된 문장 없이 자막도 뽑아야 한다.

내가 갈 팀의 막내 소진이(가명)는 ‘성실하지만 답답하고, 열심히 하는데 아이템을 못 찾는’ 아이로 이미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그동안 메인 작가가 아이템을 대신 찾아가며, 화도 낼만큼 내고, 가르칠만큼 가르쳐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단다. 조연출도 피디도 협업을 힘들어했고, 내심 스스로 그만뒀으면 했다는 거다.    

  

소진이에겐 MZ세대다운 트렌디함이 없었다.

20대의 패션 센스도, ’사회생활‘ 멘트를 날리는 붙임성도, 통통 튀는 티키타카도.

단톡에서는 그 흔한 이모티콘도, 물결표시도 없이 마침표로 문장을 마쳤고 한 문장을 읽는 속도도 답을 하는 속도도 느렸다. 속도가 생명인 이 바닥에서.

저렇게 수줍게 섭외를 해서 아이템을 찾겠나 싶게 넉살도 없었다.      


예상대로 아이템 데드라인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소진이는 후보 리스트를 주지 않고 있었다.  

요령을 피는 거 같지는 않았건만 성과는 없었다.

설상가상 이번 촬영에 본사 국장님이 현장에  나오니 내게 아이템에 더 신경을 쓰라고 했다.

‘먹고 죽을래도 아이템이 없는데...최상의 자연인이라니...’

결국 나까지 섭외에 동원됐고, 두어 번이면 끝날 답사를 5번이나 갔고, 막판에는 출연료까지 올려주겠다는

어이없는 협상을 해 겨우 한 명의 자연인을 찾아냈다.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온 기운을 다 뺏겼다.

‘4차산업 혁명이 나았던가...?‘ 갈등이 깊어졌다. 


게다가 제출 시한을 넘겨 소진이가 가져온 보도자료는 ’이래서 작가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수준이라 결국

내가 다시 써야 했다. 조연출과 예고를 만들 때도 화기애애한 다른 팀과 달리 한숨이 공기를 무겁게 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밀어부쳐 가편집이 끝났고, 소진이가 자막을 뽑아야 하는 날이 왔다.   

   

1시간짜리 다큐의 자막을 뽑는 일은 최소 이틀은 걸린다. 어려운 약초 이름도 확인해야 하고 정확한 표기를 위해 맞춤법 검사를 하고, 어순에 맞지 않는 말을 정리하고, 자막의 위치도 표시해야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많다. 그사이 나는 원고를 써야 하고, 두 작업이 제 때 끝나면 영상에 음악과 자막을 입히는 종합 편집, 성우 더빙, 최종 시사, 시사 후 수정 등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모두가 곤란해지기에 이 시기엔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다.       



종편을 몇 시간 앞두고 받은 자막에 나는 손이 떨렸다.

원고 마감 시간도 빠듯했건만 자막은 온통 문장이 어색했고, 수정이 계속 나오는 바람에 소진이는 2차, 3차 자막을 계속 나에게 주고 있었다.

이걸 언제 다 검토해서 넘긴단 말인가? 피디에게 종편, 더빙 시간 조정을 사정해야 할 거고, 피디는 또 편집실, 성우 스케줄 등을 확인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랜만에 팀에 돌아온 내 얼굴은 뭐가 되고,

20년 차 작가의 노련함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다는 건가?      


생각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나는 마치 눈과 손만 있는 기계인 양 키보드를 부술 듯이 쳐 내려갔다. 원고의 퀄리티 따윈 사치였고,

오로지 데드라인만 맞추자 싶었다.

그렇게 밤새 나홀로 사투를 벌인 끝에 겨우 시간 안에 원고와 자막을 넘겼다.

그 순간부터 격렬히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 화를 시퍼런 날에 담아 온갖 모진 말들로

소진이를 찌르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네 작가료를 나한테 줘야 하는 거 아냐?, 방송이 장난이야?

대학 동아린 줄 아니?, 방송사고 나면 책임질 거냐고?’


내게 남은 모든 에너지를 그 새벽, 분노에 다 쏟아부었다.

새벽 5시, 밖은 적막했고, 수화기 너머 소진이도 숨죽였다. 내 인격도, 내 연륜도 쓰레기통에 쑤셔 박혔다.     


1주일 뒤, 다시 아이템 데드라인이 돌아왔다. 어떤 얼굴로 소진이를 마주해야 할까 결정이 나질 않았다.

그런 채로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소진이와 눈이 마주쳤고, 그 애는 나를 보자마자 망부석이 되어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열심히 찾았는데요...아직 한 명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린 난, 오히려 머릿속이 선명해졌다.

”소진아, 나가자...“     


3월, 여의도에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점심시간은 들뜬 상춘객과 주변 직장인들로 붐빈다. 바람이 부는 찰나, 꽃비가 내리는 길을 커피 한잔 들고 걷노라면 삶이 행복하다 느끼는 건 그리 어렵지가 않다.

그사이를 울먹거리는 소진이와 나는 그들과는 다른 온도로 걸었다. 소진이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우는 게 다 내 탓은 아니었지만 또 내 탓이 아닌 것도 아니었기에.

방송국 국장이나 대기업 사장 앞에서 방송 시사를 할 때, 심장이 쪼그라들고 목소리 떨림조차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오늘 그만두면, 이 사람들은 다 지나가는 아저씨다‘


”소진아, 찾는 데까지 찾아보고, 없으면 너도 그만두고 나도 그만두자. 까짓, 방송이 별거냐“


그제서야 나는 마치 제정신이 돌아온 듯 평상심을 되찾았다.   


소진이는 다른 막내들보다 나와 더 오래 일을 하고 그만뒀다. 마지막까지 성실했고, 눈속임 따윈 없었다.

그만두는 날, 소진인 감귤피차를 선물로 줬다. 내가 좋아하는 빨강머리앤 엽서엔 ’위가 안 좋은 나를 위해

 차를 샀다‘는 말과, ’너무 힘들게 해서 죄송했고 자기를 참아줘서 고마웠다‘는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았다.

 카톡에 감성적인 선물이 넘쳐나는 시기에 감귤피차라니...

피식 웃음이 났지만 돌이켜보면 반응이 느린 사이사이, 그 아이는 일을 배우는 속도는 말할 수 없이 더뎠지만 누구보다 착실했었다.


그만둔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진인 가끔 아이템을 보내온다.

오래전 연락했던 이장님이, 예전에 설득하던 자연인이 답을 줬다며... 아이템을 받을 때마다 그 아이의 결실이 반가운 동시에 그날 나의 격분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라 부끄러움이 다시 차오른다.      


내 불안한 바닥의 밑장을 다 까 보였던 순간의 부끄러움.

연차가 20년 가까운 작가라며 내심 거드름을 피웠으나 전혀 그 내공을 가늠할 수 없었던 한심스러운 민낯.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잘못 때문에 그리된 것은 아니라는 듯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에게 나를 포장하는 수준. 결국 나의 어른스러움은 한 걸음 더 도약하기 전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형편 없지는 않았다‘ 내 마음과 의논하고 싶었지만, 그 새벽 나를 떠올려보건대 정확히 바닥임을 들켰다.

한동안 그날의 나를 떠올리는 건 꽤 괴로운 일이었다. 대단히 멋진 선배가 되려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형편없다고 느껴지는 것 만큼 견디기 힘든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 후 6년쯤 지났다. 촬영 전 아이템 펑크부터 출연자 지인의 항의 전화, 시청자 항의 전화, 불방 사건, 벌금, 집 철거 등 다이내믹한 일들을 겪다 보니 이젠 웬만해선 간이 안 떨어진다.

그렇게 된 지금, 이제 와 한 걸음만 더 내 편에서 그날을 회상해보자면 그때의 데드라인은 그렇게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릴 만큼 진짜 ’d.e.a.d‘였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 선을 유연하게 넘을 수 있는 강심장이 그 때 내겐 없었고 연차를 더해갈수록 기대치는 높아졌지만,

그 긴장과 불안을 다룰 수 있는 노련함까진 없었다. 더구나 나의 양육 환경은 늘 숨 가쁘게 돌아갔었기에.

그 데드라인 앞에서 누구라도 위태로울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소진이를 배려할 여유는 없을만큼.


그러니 이제 타협하자. 그 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앞으로는 어떤 데드라인 앞에서도 한껏 연륜을 발휘해보자 다짐하며...

그날의 부끄러움으로부터 조금은 가벼워져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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