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푸념

소설로 배우는 제주도 문화와 부동산

by 루파고

생각지도 못한 소장의 모습에 약간은 황당함을 느꼈던 한건축은 소장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둘 다 소주 한 병 정도는 쑤셔 넣듯 목에다 털어 넣었다. 첫 목 넘김의 알싸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세 병째 뚜껑을 열자 드디어 문어숙회가 흰 수증기를 내뿜으며 상 위에 올려졌다. 한건축은 물속에서는 흰 수증기 대신 까만 먹물을 뿜었을 녀석을 생각하니 처연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는 소장에게 질 세라 문어숙회를 집어 들었다. 제주바다의 맛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했다. 문어숙회에게 있어 그깟 초장은 에어컨 앞에 선풍기 같은 존재나 같았다. 존재 자체가 의미 없는 소스인 거다.

“내가 말입니다. 나름 그래도 서울에서는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경험 좀 있는 건축사였는데 말입니다. 이놈의 제주도에서는 취급도 못 받는다는 거 아십니까?”

소장의 말에 한건축은 알 수 없는 파장을 느꼈다. 자신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고 건축업을 시작했다가 불과 몇 개월 만에 일을 접었다. 그보다 사실은 건축에 관해 아는 게 없는 거나 다름없다고 판단을 했다. 하지만 소장의 경우에는 건축을 전공했을 것이다. 건축사 자격증도 있으며 건축업에 몸담았었다. 능력은 그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이 왜 하필 건설회사 소장으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건설회사에서 근무 중인데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이구. 소장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영락없는 고수 그 자체이십니다.”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지요. 여기 제주는 정말 재미있는 게 그겁니다. 법이라는 게 말이죠.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선을 넘느냐 못 넘느냐에 따라 합법이냐 불법이냐 라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는 그 선이 달라요. 달라도 너무 다르죠. 법 위에 다른 게 더 있어요. 저야 자격증 덕에 급여 외에 부수입이 더 있긴 합니다만 이건 사실 제가 원해서 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한건축 씨 이력서에 보니까 서울서 시행 관련한 일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이런 일을 해 보니까 어떻습니까? 확실히 다르죠?”

“말할 것도 없죠. 다릅니다. 그냥 모든 게 다릅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수준 없는 작은 규모의 시행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안다고 생각했었죠. 어린 치기에 건축업체에 하청을 내리니까 건설업은 시행업체 아래에 있는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는 게 후회스럽습니다. 그래서 망한 거죠.”

한건축은 말을 마치고 씁쓸하게 웃어버렸다. 알고 나면 후회스러운 것이 인생이더라는 선인들의 말씀을 곱씹으며 보낸 세월이 있었기에 그런 초연한 웃음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런 말 들어 보셨죠?”

“아다마다요.”

한건축은 실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땅에 걸면 뭐가 되는지 아십니까?”

소장의 질문에 왠지 모를 오묘함이 있었다. 한건축은 한참을 고민했다. 소장은 한건축이 답변을 낼 수 있을까 하여 시간을 충분히 주기로 했다. 오 분 정도가 지났지만 한건축은 답을 내지 못했다. 한 가지 후보

군 정도를 떠올리기는 했다.

“마수걸이?”

답을 내뱉고도 스스로 어이가 없었던지 한건축은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지꺼리 아닐까요? 원래 정답 없는 질문이니까 다들 다른 답을 낼 겁니다. 저는 지꺼리라고 봅니다. 지꺼리.”

“그게 무슨 뜻이죠?”

“헛짓꺼리요.”

소장은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답변을 포장했다. 한건축은 예상했던 대로 소장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망가져 버린 인생을 새로 세우고자 제주로 입도한 자신과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하

“저는 땅을 투자 대상으로 본다면 그냥 땅은 땅 자체로 두었을 때 가장 좋은 투자라고 보는 겁니다. 제 의견은 그저 국내에서나 공감할 이야기일 수 있어요. 이를테면 땅이란 그 위에 무엇이 세워짐으로 해서 가치가 달라지는 건데 그 무엇이라는 것 역시 생물이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기 때문에 생물이라고 보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의 건축물은 수명이 너무 짧다는 겁니다. 전통이 없으니 수명이 짧을 수밖에요. 건축양식에 기본적인 전통이 없으니까 트렌드를 타는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건축양식은 역사가 짧기 때문에 전통이 없습니다. 정통성이라는 것 자체가 없지요. 우리의 눈에는 이미 서구적인 건축양식이 배어 있어요. 그래서 전통적인 건축양식은 구식이고 멋이 없다는 이미지로 굳어졌습니다. 저는 제주의 건축물들에 제주색이 물씬 풍겨 나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짓고 있는 그런 건물들은 우리 스스로가 제주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겁니다. 제가 오래전 유럽여행을 하면서 감동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건축문화에 관한 부분은 먼저 설명했던 말에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건축물을 우리는 동경하며 우월하다고 보지만 그들에게 있어선 원래부터 그들의 색이었습니다. 모든 곳이 그런 건 아니지만 유럽의 오래된 도시에는 대체로 간판이 작거나 없습니다. 현판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죠. 그래도 다들 알아서 찾아갑니다. 우리나라요?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간판이 빽빽합니다. 원래 건물 마감재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간판문화를 바꾸겠다며 LED로 교체하기도 했지만 미적인 심의를 거치지 않고 마구잡이로 부착되었죠. 그건 오히려 새로운 시각적 불편함을 만들어 냈습니다. 경관심의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허울뿐입니다. 제가 제주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키운다 한들 그 누구도 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실 정책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정책이라는 강력함이 따라주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월정리가 제주도 커피문화를 선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어디에 커피문화가 있습니까? 월정리의 컬러는 너저분함, 어지러움, 마구잡이입니까? 함덕은 그나마 초기단계부터 기획이 있었지만 다른 지역은 절대 그렇지 못합니다. 행정이 앞서지 못하고 허구한 날 뒤따라 다니니까 생긴 결과입니다. 제주도 건축에는 체계화된 행정이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경주만 해도 그렇습니다. 경주는 신라역사의 도시라 해서 주유소에도 화장실에도 기와를 올려야 준공이 납니다. 그거라도 해야죠. 왜 제주는 그러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 또한 먹고살아야 하니까 이런 건축을 하고 있지만 상황만 주어진다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습니다.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니까 난개발을 막아야 해서 토지분할을 막고 하는 폐쇄적인 정책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진보적인 행정이 있어야 합니다. 제주색이 물씬 풍겨 나는 제주석 마감을 의무화하는 방법도 있고 돌담시공을 의무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제주돌담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지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한건축 씨는 이색적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글쎄요. 좀 다르다? 새롭다? 뭐 그런 거 아닌가요?"

“정확합니다. 그겁니다. 제주는 뭔가 다르죠. 뭔가 새롭습니다. 그래서 관광객이 찾아드는 겁니다. 그런데 제주색이 사라진다면 무엇이 이색적인 것이 될까요? 백두대간처럼 도시개발과 도로로 인해 잘라져 가는 곶자왈을 상상하면 될까요? 바닷가에 무분별하게 지어진 건축물들요? 이를테면 우리가 짓고 있는 건물 같은 것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가까운 나라 일본에 여행을 가면 어떻습니까? 뭔가 다르죠? 비슷하게 생긴 사람, 비슷하게 생긴 자연인데 뭔가 다릅니다. 건축양식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이색적인 겁니다. 제주사람들이 제주말을 쓰고 간판에 제주말로 쓰여 있고 하니까 제주인 겁니다. 하긴 요즘엔 이정표나 식당 메뉴판이 제주말보다는 중국어 일색이죠. 제주색이 물씬 풍겨 나는 건물들요? 제주민속촌에 가면 있습니다. 거기에 가야만 있죠. 유럽 풍의 건물들은 꼭 유럽민속촌에 가야 볼 수 있나요? 그런 거죠? 제주도에 정착하고자 하는 외지인들이 왜 제주도 돌집이나 구옥을 찾아다니는 줄 아십니까? 바로 그것! 제주색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주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몰라도 너무 몰라요. 어쩔 때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니까요. 외지인들이 알면 안 되는 특별한 비밀이 있는 거라면 모를까.”

한건축은 소장의 의견에 백 퍼센트 공감했다. 제주색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그는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전 제주도 언론에서 접했던 곶자왈 훼손에 관한 기사를 떠올렸다.



<곶자왈이란, 곶자왈 훼손에 관한 의견>

곶자왈을 어원으로 해석하고 들어가면 곶자왈에 대해 이해하기가 참 쉽다. 곶자왈은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된 고유 제주어다. <곶 = 숲, 자왈 =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 표준어로 하면 그저 ‘덤불’이다. 곶자왈은 제주도의 6.1%에 달한다. 제주의 심장이라고도 일컫는다. 곶자왈은 기본적으로 지하수보전 2등급, 생태계보전 3등급이다. 사실 대부분의 골프장과 영어교육도시가 곶자왈을 파헤치고 만든 곳이라고 보면 된다. 개발계획이 승인된 것이 용하다고 생각된다. 곶자왈은 생각보다 보전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곶자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방식물과 남방식물이 함께 자라는 지역이다. 이 한마디로 곶자왈의 가치는 성립된다고 본다. 제주도청은 뒤늦게 곶자왈 보전을 위해 발 벗고 뛰기 시작했다. 왜 하필 영어교육도시 개발계획 후에 진행된 것일까?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이러한 보전계획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도 훼손에 대한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곶자왈 내 농지개간도 불법으로 간주하여 조치를 취하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과연 지켜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무튼 곶자왈은 제주도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곶자왈은 빗물과 습기를 빨아들였다가 내뿜는 곳이다. 영어교육도시 주민들은 지금도 하소연을 하고 있다. 중산간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내륙에 있음에도 바닷가만큼 습기가 심해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곶자왈과 접한 곳의 벽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기를 주목해야 한다. 곶자왈공유화재단 www.jejutrust.net

아래 내용은 홈페이지에 올려진 설립이념이다.

“제주 생태계의 보고이자 한반도 최대규모의 상록수림 지대이며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 함양에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제주의 허파 곶자왈을 도민의 힘을 모아 영구히 공동의 소유로 보전함으로써 자연자원보전을 통한 혜택을 도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친환경적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2007년 4월 10일 설립되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어 곶자왈이 보전되고 있는 것이다.



곶자왈.jpg








1. 서문

2. 긴급회의

- 제주의 장묘문화

- 제주신화와 오름

- 진입로를 막아 선 묘적지

- 묘적지, 무연고묘지

- 국가기관 소유의 묘적지 인수

3. 급매물

- 제주도 주택문화의 이해

- 계약서 없을 경우 계약금 반환에 대한 사례

- 문화재와 개발 인허가문제

- 제주도 토지 특성

- 농지 취득 시 알아 두어야 할 정보

4. 건축업자가 되는 길

- 괜당이란

5. 선물

- 제주도 제2공항에 대한 단상

- 김녕 도시계획 등 정보

- 예래지구 문제

6. 고뇌

- 제주도 농업

- 영어교육도시와 제주신화월드

7. 오늘은 잔금 치르는 날

- 제주은행 서울(육지)지점 정보, 주택담보 대출 시 유의해야 할 점

- 지도상 거리, 물리적 거리, 과거와 현재의 교통편

8. 푸념

- 곶자왈이란, 곶자왈 훼손에 관한 의견

9. 배 회장의 서류

- 중산간지역의 훼손, 골프장 건설로 망가진 한라산

10. 올 것이 오다

- 토지거래 시 유의할 점, 세금문제, 다운계약에 관한 지침

11. 제주도민이 되고 싶어요

- 건축물 양성화 신고 관련 내용, 법규

- 제주도 건폐율과 용적률

- 건축법상 진입로 규정

12. 제주색 건축

- 제주도 건축법 개정안

- 보전등급, 상대보전, 절대보전에 관한 법률

- 절대보전/상대보전지역

- 특화경관지구(구. 수변경관지구)

- 오름에 붙은 토지의 규제

- 동굴보호에 묶인 토지

- 당처물동굴과 용천동굴

- LNG기지와 가스관 공사

- 지하수 문제

13. 실행력 없는 비전은 비극이다

14. 귀한 존재라는 걸

- 농지전용/산지전용

15. 돼지 잡는 날

- 진입로 관련법안/일반토지사용승낙서와 영구토지사용승낙서

- 제주도 일자리 문제

- 제주도 커피숍 분포

- 제주도 교육환경

- 제주살이, 한 달 살이 그리고 제주도 인구의 진실

16. 건축업자의 길

- 제주색 묻어나는 건축물들

- 제주도 행정구역 편제

17. 현실성 없는 정책도 비극이다

- 제주도 양돈과 환경오염 문제

18. ROLEX

- 제주도 농가주택과 자폐증의 상관관계

19. 제주살이

20. 올레의 비밀

21. 푸른빛 더러운 제주바다

22. 오수관 있나요?

- 오수관, 상수관 관련 내용

23. 제주도민이 되다

24.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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