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건축업자의 길

소설로 배우는 제주도 문화와 부동

by 루파고

“한반장. 혹시 아직도 건축일을 하고 싶은가?”

소장은 이번에도 역시 술안주가 상 위에 올려지고 서야 입을 열었다. 한건축은 그의 질문이 엉뚱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여간해서는 가벼운 소리를 하는 성격이 아닌 걸 알기에 마음가짐을 고쳐 잡았다.

“당연하죠. 이제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걸요. 그런데 갑자기 그거 웬 질문이십니까?”

“언젠가 한반장하고 호흡 좀 맞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거든. 당신을 보면 말이지. 내가 건축이란 데 심취했을 당시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해서 말이야. 나도 한 때는 이렇지 않았거든. 뭔가 꿈이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그저 남의 회사에서 밥이나 빌어먹는 마인드로 살고 있잖아. 가끔은 스스로 한심하다고 느껴지긴 했는데 이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내 그릇의 문제라고 보이거든. 그래서 말이지. 한반장이 계속 이 일을 하겠다면 내가 한반장을 좀 꾀어볼까 해서 말이야. 내가 보기에 말이지, 적어도 한반장은 지르는 건 나보다 선수 같거든.”

한건축은 소장의 의외의 발언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는 그런 뉘앙스조차 비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늘 같은 스승님께서 어떻게 이런 하찮은 제자에게 그런 심오한 말씀을 하십니까? 미천한 제가 능력이 된다면 스승님 보필해서 열심히 해볼 생각은 있습니다. 적어도 스승님 정도의 내공이라면 제가 믿고 따라가 볼 만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한건축은 농담을 섞어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소장을 만난 후에서야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깨우쳤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불과 일 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에게서 깊이 있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럼 말이지. 한반장 당신 집부터 한번 지어보면 어때? 그럴 만한 자금여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조그만 집이라도 당신 집을 한 채 지어봤으면 해.”

“왜 그래야만 하는 거죠? 제가 잘 모르더라도 소장님 밑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한건축은 소장의 의도가 궁금했다.

“난 항상 이런 생각을 하거든. 나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못해 봤었는데 말이야. 오래전에 아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어. 그래픽디자이너가 자기 명함 하나 감각적으로 만들지 못하거나 간판디자이너가 자기 업장 간판 하나 감각적으로 만들지 못하면 디자이너라는 단어를 빼고 업자라는 단어로 교체해야 한다고 말이야. 바로 그거였던 거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건축디자이너 혹은 건축가인지 아니면 건축업자인지 그게 항상 문제가 되더라고. 내 정체성에 혼돈이 왔다는 거야. 이상하게도 첫 발은 디자이너였는데 끝 발은 건축업자가 되는 것만 같더라고. 그게 말이야 나 스스로도 하지 못하는 걸 한반장에게 요구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말이지만. 한반장이 도와준다면 나도 디자이너 한번 되어볼 수 있지 싶어서 그래. 그런데 문제는 한반장 스스로도 디자이너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야.”

“저는 건축기사 같은 자격증도 없고 전공도 그쪽이 아닌 걸요.”

한건축은 소장의 의견을 이해하고도 남았지만 현실적으로 소장의 제안을 수긍하는 건 어려웠다.

“잘 들어봐. 이런 생각을 해보면 좋겠어. 딱 내 이야기나 마찬가지거든. 자격증은 그저 그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는 증표 같은 거야. 전공이란 건 그 사람이 어떤 걸 공부했냐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하지만 한반장 당신은 좀 다르다고 봐. 전공을 했어도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한 놈들보다는 한반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해. 자격증은 사회에서 인정하느냐의 문제인데 그딴 건 나한테 있으니까 된 것 같고 말이야. 당신은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걸 가지고 있으니 거꾸로 나를 채워주는 거지. 이럼 상부상조 아닌가?”

소장의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한 한건축은 일단 그의 의견을 수긍하고 좀 더 들어 보기로 했다. 소장의 제안이 이어졌다.

“일단 당신 집을 지어보라는 건 이런 이유에서야. 아까 말한 것처럼 자기 것도 똑바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것을 제대로 만들어 주겠어? 그것도 돈을 받고 말이야. 집 한 채를 짓고 나면 말이지, 업무의 커리큘럼을 알게 돼. 그럼 일반적인 건축업자가 될 수 있는 기본은 됐다고 보면 되는 거야. 업자를 벗어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남았군.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어. 남의 집도 내 집처럼 지을 수 있느냐는 것이지. 그렇게 해서 돈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게 우리가 가져야 할 명제인 거야. 건축업으로 남의 돈을 벌기 위한 최소한의 양심. 그건 내 집처럼 지었냐는 것이거든.”

“그 말은 똑바로 짓고 돈 받아라 이거 아닙니까? 하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많긴 하죠. 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제주도엔 샌드위치 패널로 뼈대 세워 집 짓고 겉에 예쁘게 보이는 마감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건축물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매매하는 업자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집을 멋도 모르고 사는 소비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어떤 생각이 들지는 모르겠네요.”

“바로 그거야. 양심을 파는 일을 할 것이냐는 걸 말하는 거지. 자넨 이미 다 알고 있네. 어떤가? 내 제안이. 당신이 대표를 하던 난 상관없어. 난 그저 내 이름 앞에 디자이너라는 단어를 넣어도 부끄럽지 않은 건축가가 되고 싶거든. 한반장만 도와준다면 내 이름과 당신 이름에 더러운 게 묻지 않도록 최선을 한번 다해 보겠네. 어때?”

이미 소장을 스승으로 모실 각오로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던 한건축은 소장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술잔은 비워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머릿속은 제주색을 가진 건축 비즈니스가 채워지고 있었다.

한건축의 집 짓기는 무려 아홉 달이 걸렸다. 토지를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해서 처갓집의 남는 자투리 토지를 장기분할상환조건으로 매입했다. 다행인 건 처갓집이 대부업체가 아니라 이자는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을 짓는 건 처음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허가부터 소장이 조금씩 조언을 해 주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한건축 스스로가 처리해야만 했다. 그것이 소장이 낸 조건이었다. 도저히 답이 없을 때만 도와주는 식이었다. 집이 모양새를 갖춰가자 동네사람들은 그의 집이 올라가는 것을 신기한 구경처럼 지켜봤다. 건축양식이 독특하지도 않았다. 모양이 특이하지도 않았다. 그저 동네 어귀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집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구옥 같으면서도 신식 주택이며 신식 주택이면서도 구옥 같은 집이다. 벽면은 돌집처럼 생겼다. 집은 두 채로 갈라져 있는데 안거리와 밖거리가 구분되어 있고 안거리와 밖거리는 내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분리되어 있지만 연결된 구조다. 통로는 유리온실이다. 유리온실은 슬라이딩도어로 개방되어 있다. 그 안은 정원이면서 온실이면서 거실이기도 하다. 양쪽 벽을 제외하고는 온통 투명하다. 안에는 벽난로도 설치되어 있다. 집 앞은 제주석 판재와 현무암 덩어리가 재미있게 배열되었다. 현무암 뒤로는 조그만 연못이 있다. 낮은 돌담이 제주도 주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제주석 판재 사이로 잔디와 난초가 불규칙하게 심어졌다. 건물 지붕은 일부 징크로 마감했지만 제주색을 버리지 않기 위해 최소한으로 했다. 징크는 절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현대적인 모습을 접목하고 싶다는 치기 어린 고집이었다.

소장은 한건축의 주택에 크게 만족했다. 청출어람한 제자에 대한 사랑이 묻어났다. 준공 후 그들은 한건축 처갓집의 오래된 제주의 전통을 따라 집에 고수레를 했다. 그는 이제 내가 집을 지었구나 하며 스스로 만족했다.

“이제 남의 집 지을 준비가 됐나요?”

한건축의 밝은 표정을 확인한 소장의 질문이다. 한건축은 대답 대신 미소로 답했다.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한건축이 집을 짓는 동안 소장은 그들이 함께 일할 사무실을 준비했다. 물론 한건축은 알지 못했다. 소장의 손에 이끌려 새로 꾸민 사무실에 들어선 한건축은 소장의 감각적인 인테리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무실 역시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제주색 그 자체였다. 소장이 한건축의 손에 들려준 명함에는 <대표 한건축>이라고 쓰여 있었다. 소장의 명함에는 <건축사 이희웅>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건축은 소장의 말처럼 남의 집을 지어줄 자격이 되었을지 걱정도 되었다.

“이제 다음 과제를 드리지요. 한대표님.”

소장은 익살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건축가님. 또 무슨 숙제를 주시는지 겁부터 납니다. 이번엔 몇 년 걸리는 거 아니죠? 차라리 대학을 다시 다녀오라 하시지 그러십니까?”

“어! 어떻게 알았지?”

소장의 말에 한건축은 농담인지 알면서도 아차 싶었다. 행여 그가 시키면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장은 특유의 미소를 머금으며 지도 한 장을 펼쳤다. 제주도 지도였다. 흔히 보았던 것이라 소장이 지도에 뭔가를 그려 놓은 게 아닐까 싶어 구석구석 시선을 돌려보았다. 하지만 지도는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방금 코팅한 것처럼 표면도 매끈했다.

“대표님이라면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주도 행정구역 편제에 대해서는 잘 아시죠?”

한건축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시계방향으로 하면 한경, 한림, 애월, 제주시, 조천, 구좌, 성산, 표선, 남원, 서귀포시, 안덕, 대정 이렇게 돌아가죠. 행정구역 경계선을 그어 보시죠.”

소장이 빨간색 네임펜을 한건축의 손에 쥐어 주었지만 그는 쉽게 선을 긋지 못했다. 소장이 말한 대로 방향으로 가면 그 편제가 맞는데 어디서 어디로 그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지도를 들여다보며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리자 소장이 펜을 돌려받아 선을 긋기 시작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제주도를 남과 북으로 선을 긋더니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선을 다 그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동 지역까지 선을 그었다. 선 긋기를 마친 소장이 한건축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현실이죠. 제주도민들도 잘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입니다. 제주도의 행정구역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방사형 편제가 되어있습니다. 제가 선을 그은 대로 보시면 딱 그렇죠?”

소장이 그어 놓은 선은 실제로 그랬다. 왜 지금껏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자체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다음 질문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맞출 수 있겠죠?”



<제주색 묻어나는 건축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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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행정구역 편제>

아래 사진은 서귀포시 행정지역도다. 보다시피 한라산을 기점으로 방사형으로 잘라져 있다. 동 하나가 남북으로 길다. 중산간지역 위로는 인가가 거의 없다. 대부분 해안가 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서울을 알려면 한강의 교량을 순서대로 외우면 된다고 하듯이 제주도는 시, 읍, 면 단위로 알아 두면 길을 잃어버릴 일도 없다. 뒤로 한라산이 보이면 바다 쪽을 향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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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2. 긴급회의

- 제주의 장묘문화

- 제주신화와 오름

- 진입로를 막아 선 묘적지

- 묘적지, 무연고묘지

- 국가기관 소유의 묘적지 인수

3. 급매물

- 제주도 주택문화의 이해

- 계약서 없을 경우 계약금 반환에 대한 사례

- 문화재와 개발 인허가문제

- 제주도 토지 특성

- 농지 취득 시 알아 두어야 할 정보

4. 건축업자가 되는 길

- 괜당이란

5. 선물

- 제주도 제2공항에 대한 단상

- 김녕 도시계획 등 정보

- 예래지구 문제

6. 고뇌

- 제주도 농업

- 영어교육도시와 제주신화월드

7. 오늘은 잔금 치르는 날

- 제주은행 서울(육지)지점 정보, 주택담보 대출 시 유의해야 할 점

- 지도상 거리, 물리적 거리, 과거와 현재의 교통편

8. 푸념

- 곶자왈이란, 곶자왈 훼손에 관한 의견

9. 배 회장의 서류

- 중산간지역의 훼손, 골프장 건설로 망가진 한라산

10. 올 것이 오다

- 토지거래 시 유의할 점, 세금문제, 다운계약에 관한 지침

11. 제주도민이 되고 싶어요

- 건축물 양성화 신고 관련 내용, 법규

- 제주도 건폐율과 용적률

- 건축법상 진입로 규정

12. 제주색 건축

- 제주도 건축법 개정안

- 보전등급, 상대보전, 절대보전에 관한 법률

- 절대보전/상대보전지역

- 특화경관지구(구. 수변경관지구)

- 오름에 붙은 토지의 규제

- 동굴보호에 묶인 토지

- 당처물동굴과 용천동굴

- LNG기지와 가스관 공사

- 지하수 문제

13. 실행력 없는 비전은 비극이다

14. 귀한 존재라는 걸

- 농지전용/산지전용

15. 돼지 잡는 날

- 진입로 관련법안/일반토지사용승낙서와 영구토지사용승낙서

- 제주도 일자리 문제

- 제주도 커피숍 분포

- 제주도 교육환경

- 제주살이, 한 달 살이 그리고 제주도 인구의 진실

16. 건축업자의 길

- 제주색 묻어나는 건축물들

- 제주도 행정구역 편제

17. 현실성 없는 정책도 비극이다

- 제주도 양돈과 환경오염 문제

18. ROLEX

- 제주도 농가주택과 자폐증의 상관관계

19. 제주살이

20. 올레의 비밀

21. 푸른빛 더러운 제주바다

22. 오수관 있나요?

- 오수관, 상수관 관련 내용

23. 제주도민이 되다

24.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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