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노을이 빨간 이유가 뭔지 알아?"
"글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빨리 달려오느라 힘들어서 빨간 거야."
딸아이가 해준 이야기다.
딸아이 생각일 수도 있고 동화에서 듣고 공감하여 내게 전해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뒤흔드는 것을 감당해야 했다.
노을이 내게 달려드는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아이는 모르겠지만 노화는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존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노을이 들 때, 나는 시뻘간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생체에너지를 모두 태운 정열이 연료가 되어 삶의 마지막을 태울 수 있을까?
해놓은 것 없이 지구 저편으로 추락하는 순간에 후회만 가득하다는 상상을 하니 긴 한숨만 나왔다.
노을은 나를 향해 달려오는 중이다.
아직 멀리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려 하지만 저것이 어떤 속도를 낼지 알 수 없다.
갑자기 속도를 열 배 이상 낼 지도 모를 일이다.
감당할 수 있을까?
인생의 종착점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다.
당장 내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순간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이라도 뭔가 해야 하는데 왜 늑장을 부리는 걸까?
위태로움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나태로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왜일까?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며 살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을 매일 어기며 사는 게 인간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