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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상정 댕그마니 Aug 31. 2019

Her Story - 창신동 약동이


나는 1929년, 칠월 칠석에 태어났다. 일 년에 한 번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만들어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한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서린 날이라 더욱 특별하고 무척 마음에 든다. 서글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이날을 대변하듯 거의 매년 내리는 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주인공 진 켈리가 장대비 속에서도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며 즐거워하는 기분이랄까.

내가 세상에 나오니 때는 일본이 지배하는 시대였고 일본식으로는 그해를 소화(昭和) 4년이라고 불렀다. 종로 5가 근처의 인의동이 나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잘 따르면서도 바지런히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놀았다. 조금 커서 동대문에서 가까운 쪽의 창신동으로 이사했다. 집에서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가게들이 점점이 있었다. 그 가게 앞에는 항상 의자를 내놓고 앉아 볕도 쬐면서, 소일 삼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 앞으로 쪼르르 뛰어 지나가는 나를 보면 늘 "약동아~ 약동아"하고 불렀다. 옛날에 어른들은 영특하고 약삭빠른 어린애를 약동이라고 불렀다. 어떤 때는 "이쁜아"라고도 불렀다. 나를 어찌 알고 약동이라고 별명을 붙였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보기에 어린 내가 똘똘하고 이쁘게 보였나 보다. 

1936년, 골목길을 쏘다니며 마냥 신나게 놀던 일곱 살짜리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유치원에 처음 간 날 신기루 같은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늘 누비고 다니던 익숙한 골목길이 아닌, 담장으로 가려져 있던 특별한 공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두 살배기 여동생을 집에 남겨두고 언니인 내가 당당한 발걸음으로 매일 들락거리게 된 <창신학원>은 소학교, 즉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다니는 학교로 지금의 유치원과 비슷한 교육기관이다. 91세인 내게도 손을 잡아끌고 가는 어머니가 있었다. 30대의 어머니를 그렇게 따라나선 이후 나는 매일 창신학원 가는 길이 왠지 좋았다. 그저 신바람이 났다. 일곱 살 배기의 세상은 울타리 밖의 꼬부라지고 휘어진 골목길과 울타리 안의 넓고 훤한 운동장이 있는 공간으로 나뉘었다. 좁고 막힌 골목길이 아니고 빛을 반사하는 너른 운동장만큼 큰 세상은 없었다. 우주보다 조금 작다 싶은 이 ‘거대한’ 흰 운동장을 가로질러 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한이 생긴 것이다. 손바닥만 한 운동장이 내게는 그때 그리도 커 보였다. 동네 조무래기 어린아이들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골목길에서는 무질서한 가운데 우리끼리 맺고 헤쳐 가는 약속의 질서가 있었다면 하얀 운동장에는 정해진 특별한 규칙과 규범이 있었고 배움이 있었다. 유치원생이 배웠으면 얼마나 대단한 것을 배웠겠냐마는 태어나 처음으로 인생의 작은 한 계단을 올라섰다는 느낌이랄까. 이때의 감흥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밝고, 넓고, 배움과 환한 빛이 있는 공간이 좋다. 항상 그런 길을 향해 나아갔다. 무릎까지 오는 한복 치마에 앞가르마를 하고 곱게 뒤로 땋아 내린 머리 꽁지의 댕기를 팔랑거리며 창신학원 문을 드나들게 되었다. 

학원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산보 삼아 걸어갈 정도였다. 십 리만큼 멀었더라도 나는 기꺼이 걸어갔을 것이고 나의 부모님들도 그렇게 시키셨을 것이다. 여자 아이이므로 학교에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지는 않으셨던 듯하다. 학교는 당연히 가는 곳이었다. 하얀 운동장에 친구들이랑 모여 땅바닥을 향해 머리를 맞대고 뭉쳐 있으면 먹이 찾아 오글거리는 참새떼처럼 작아 보였던 일곱 살 배기 들은 내 눈에는 특별한 아이들, 혜택 받은 아이들은 아니었다. 앞집, 옆집, 뒷집에서 온 평범한 창신동 동네의 조무래기들이 모두 한 반 친구들이었다. 

사진 속 원장 선생님은 지금 봐도 역시 멋지다. 어린 생각에도 참 점잖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훤칠하니 큰 키의 원장 선생님 집은 학원에서도 바라보이는 곳에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집 대문의 형태와 질감이 고스란히 아른거린다. 하굣길에 그 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흘깃거리며 열린 나무 문 사이로 들여다보았다. 어른만큼 큰 아들 둘이 있었는데 아들들도 선생님인 것 같았다. 예를 갖추는 법도가 자세에 배어 있었다. 그런 깍듯함이 눈에 들어왔다.

유치원을 다녔던 창신동 약동이었을 때나 하얀 머리카락의 할머니가 된 지금이나 자라온 날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사진 속 꼬맹이와 같이 '내게 이런 시절이 있었나'하고 흠칫 놀라고, 거울 속 나를 보면 '언제 이렇게 늙었나'라고 되뇔 정도로 지나온 날들이 남의 일만 같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건만 마주했던 수많은 버거운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매 순간 그랬겠지만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날은 바로 막연히 다가온 ‘오늘’이다. 다가오는 대로 맞이하고, 학교가, 사회가, 나라가 하라는 대로, 돌진하며 살다 보니 그런 오늘을 또 맞으며 약동이는 91년째 살고 있다.

지금의 유치원인 경성(서울) 창신학원 1학년, 단체 사진. 나는 두 번째 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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