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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상정 댕그마니 Aug 31. 2019

Her Story - 오래된 가죽 앨범

   

나는 올해 91세가 되었다. 스물한 살 때 선물 받은 가죽 앨범을 꺼내 들었다. 사진들을 붙인 도톰한 종이는 진한 색 크라프트지처럼 보이나 선물 받았을 때는 연한 아이보리색을 뗬고 가죽과 종이에서 신선한 내음이 풍겼었다. 내가 갖고 있는 45권의 앨범 중 1호 앨범이며 69년째 끼고 살아가고 있는 이 오래된 앨범에서 가죽과 종이의 묵은 향에 나의 향마저 배어난다. 누렇게 변한 앨범 종이나 사진은 자칫 잘못 만지면 바스러질 것만 같다. 아래 위로 두 군데 묶여 있던 가죽 리본은 낡아서 떨어져 나간 지 오래이다. 1936년에 촬영한 가장 오래된 사진 한 장을 포함하여 중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인 시절의 사진들이 붙어있다. 인두로 지져 새긴 멋진 문양의 가죽 표지를 열면 흩뿌린 은가루가 반짝거리는 속지가 나타난다. 상단에 퇴색한 만년필 글씨로 쓰인 한 줄 문구가 보인다. 'Best wishes and many successful years in the future', 이 문장에 이어 앨범을 선물로 준 서양인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다. 직장 동료 중 누군가가 준 선물일 텐데 누구인지도 잊었고 필기체라 나도 제대로 이름을 알아볼 수 없다. 비록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살이하던 암울한 때였지만 ‘future’라고 적어 보낼 만큼 내 앞에 아주 길고 넓은 미래가 창창하게 열려 있던 1950년 겨울에 받은 귀한 선물이다. 나는 이 앨범에 나의 미래를 붙여나갔었다.

앨범 첫 페이지에 남편과 데이트했던 1955~1956년경 사진 한 컷과 직장 다니던 시절의 사진 한 컷을 붙여 두었다. 이어서 유치원과 소학교 동창생 꼬맹이들이 오글오글 모여 함께 찍은 단체 사진 두 장이 따라 나온다. 나는 사진 위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꼬맹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나를 찾고자 했는데 90년 동안 사용한 어두운 눈으로는 어린 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눈이 밝을 때 미리 찾아서 표시해둘 것을 그랬다. 딸아이와 나는 사진이 명료하게 보이지 않아 서로 머리를 들이밀다 이마가 딱 부딪치고 말았다. 우리 둘 다 눈을 아무리 가까이 가져다 대도 잘 안 보이는 ‘더 나이 든 할머니와 덜 나이 든 할머니’가 어느새 되어 있었다. 나보다 눈이 조금 더 밝을 막내딸이 유치원 사진에서 드디어 나를 찾아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일곱 해가 되었지만 이렇게 여유 있게 지난 앨범들을 보며 대화를 나누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앨범이란 열심히 사진을 정리 보관해 두지만 그것으로 소임을 다한 듯 완성한 후에는 들춰보지 않는 게 정석 아닌 ‘정석’이기도 하다. 지난 91년을 돌아보며 집구석구석 책꽂이에서 먼지를 쓰고 고이 서 있던 앨범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70~80년 만에 다시 보는 사진들 덕분에 과거로의 긴 시간여행을 한다. 신기하게도 그때 그 시절의 흥과 기쁨과 설렘이 생생히 되살아나 오히려 생경하다. 나의 것이 아닌 타인의 인생 다큐멘터리 한 편을 훑어보는 느낌이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니 새삼 즐겁다. 

막내딸이 ‘엄마이자 여자의 일생 91년의 기록’을 정리한다고 컴퓨터와 프린터를 싸들고 와 나의 집에 설치했을 때 나는 컴퓨터의 메커니즘을 세세하게 알지 못했다. 마흔다섯 권에 보관한 사진들을 어찌할 것인지, 이 사진들에 얽힌 나의 지난 이야기는 또한 어찌 될 것인지 고민이었는데 컴퓨터와 블로그가 나의 문제를 이 시대의 방법대로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다. 컴퓨터 작업을 하는 막내딸 옆에 앉아 세심히 관찰하고 떠오르는 대로 질문했다. 이 기계가 무슨 일을 할지 구체적으로 감을 잡아가게 되었다. 막둥이는 45권에 이르는 앨범 사진들 중 선택하고 스캔하여 인터넷상의 블로그에 업로드하여 사진을 보관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해외에 있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세계 어디에 있든 접속하여 사진을 골라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작업, 즉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을 선택하기 위해 막둥이와 나는 사진을 고르기로 했다.  

우리는 여학생 34명, 남학생 54명, 가운데 앉은 원장 선생님과 다섯 분의 선생님들이 함께 촬영한 1936년의 낡은 유치원 단체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사진에는 흰색 펜글씨로 우측에서부터 좌측으로 '昌信學院 第1學年 紀念(창신학원 제1학년 기념)'이라고 반듯하게 적혀 있다. 오른쪽에서부터 적혀 내려간 글을 보면 오랜 세월 동안 익숙했던 우측 기준 글쓰기에 잠시 애틋한 향수가 인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귀했던 시기에 단체 사진 촬영이란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대사(大事)였을 것이다. 한없이 귀여운 꼬맹이들을 병아리 떼처럼 이끌고 촬영한 선생님들이 기울인 정성이 다시금 느껴진다.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편리하게 변형된 무릎길이 치마의 한복을 주로 입었다. 반짝이는 단추를 일렬로 단 일제시대의 국민복을 입은 아이들도 있으나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검은 두루마기를 걸쳐 일곱 살배기 유치원생 치고는 제법 의젓해 보인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받아 들고 간 이 사진을 보며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구나 판단했을 듯하다. 어머니는 이 기념사진을 곱게 간직했다. 나의 어머니가 잘 보관해 두었으니 나도 어머니에게서 받아와 지금까지 잘 두고 있었다. 어머니가 막 했으면 나도 막 하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나의 기억은 이 사진이 촬영된 해까지 거슬러 올라갔다.1936년 즈음부터 그리고 1936년즈음부터 1950년대까지를, 또 그 이후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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