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절린 밀러의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초중고 학교의 개학이 이태원 클럽의 집단감염으로 다시 연기되었다. 고3은 5월 20일부터 , 나머지 학생들은 6월로 미뤄졌다. 5개월간 개학을 못하는 아이들을 챙기는 부모들의 어려움도 이제는 한계 상황에 온 듯하다. 오늘은 이태원 클럽에 갔다가 확진 판정을 받은 남성의 거주지 아파트에 학부모들의 비난의 대자보가 붙여진 사건도 생겼다.
어제는 친구에게 하소연 썩인 전화가 걸려왔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들 둔 친구는 중학생 딸과 일명 '한바탕'을 해서 그 속상함을 풀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다. 사건은 하루 종일 자신에 방에서 나오지 않고, 방과 온 집안을 어질러 놓고 도무지 치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매일 청소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는 것 같단다. 온갖 하소연을 다 퍼붓고 마지막에 친구는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 가봐, 도무지 감정조절이 안되네. 아이들한테 상처 주는 말을 해놓고 매일 후회해"
그 마음이 공감이 간다. 지금은 다 성장했지만 나 또한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수백 번도 더 경험한 일이다. 한 가지 더 절망적인 것은 엄마가 아무리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해도 아이들은 도무지 꿈쩍도 안 한다는 것이다.
친구와의 전화를 끓고 며칠 전에 읽은 앤절린 밀러의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책이 생각났다.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을 전공한 교사로 세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교육하면서, 이상적인 엄마가 되고자 했지만, 결국은 실패한 자신의 얘기를 진심 어린 고백으로 써 나갔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자신을 버려가면서 까지 온 정성을 다 했지만, 분열 정동 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남편, 불안증과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딸을 보며 절망을 느끼며,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고 본인은 생각하지만, 실제는 자신에게 의전하게 함으로써 의존자가 자율적으로 삶의 과업을 수행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사람' 즉 '인에이블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가 변화, 성숙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되는 것은 나와 친구 롤 포함하여 자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자신의 가치나 발전보다는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일명 '헬리콥터 맘'으로 살아가는 한국의 엄마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적인 아내이자 엄마가 되어야 마땅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가정생활은 내가 배웠던 것이 별반 도움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내 계획이나 상상과는 너무나 다른 길로 나아갔기 때문에,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교사로서의 자신의 지식으로 잘 무장했다고 생각했던 저자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찾아오고 나서야 자신의 지식으로만은 '내 가족이 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지를 쉽게 설명할 수 없어서' 그 좌절감에 이 글을 썼다고 했다. 한동안 온갖 부모교육이나, 부모 강의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나 또한 아이들과의 문제를 항상 외부의 지식이나 사람들과의 조언으로 그 원인을 찾으러 다니곤 했다. 그러나 문제는 외부가 아닌 나 자신에게 있었다.
나는 가정주부가 되기 위한 훈련을 잘 받았다고 생각했고, 가족을 성공적으로 보살피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목적이라 여기는 여자들 사이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내 가족이 겪는 고충을 맞닥뜨리고 어리둥절했다. 그 고충이 대체로 남편 탓이라 생각했고,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는 아이들 탓으로 돌렸다. 우리 가족의 고통을 일으킨 장본인이 나일 수 있다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저자는 비로소 아들이 분열 정동 장애 진단을 받고, 딸이 남편처럼 우울증과 불안증세를 보이면서 이 모든 것은 상호의존이라는 자신의 문제임을 직면한다. 남편의 문제행동을 다 받아주고, 남편의 문제를 해결해 주듯이 아들이 성장하는 동안에도 아들의 자질구레한 일을 대신해주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앞질러 해결해 주며, 아들의 모든 문제적 행동을 자율적인 아이의 성향이라고 합리화했고 덮어 주기를 반복한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의 순간이 필요함을 느끼면서 " 이 사람들이 스스로 하는 법을 배우도록 비켜주는 것이 어떨까?"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비로소 자신의 얘기를, 억눌러두었던 두려웠던 자신의 감정을 가족들에게 얘기하기 시작하는 전환점을 갖는다.
용서할 수 없으리만치 잔인한 말을 퍼부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를 도와주려고 노력한 긴 세월 중에 처음으로 그를 '진짜"도운 것이다.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 부담을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저자는 이제 더 이상 가족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와 진다. 그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기 시작하면서, 결혼 전 자신의 가족환경으로 인한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직면하고, 그 해결점을 찾아간다.
일단 스스로 인에이블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조장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면, 고인 연못에서 빠져나와 강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이제는 움직이고, 유연해지고, 성장하고, 변화할 때가 되었다.
성장은 분화와 통합으로 이루어진다. 분화는 스스로 시련을 겪으며, 자신 안에 문제와 결핍들이 돌출되면서,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잘 견디어 내어 수면에 떠오른 혼란과 고통을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겪어가는 것이 성장이다. 이 과정에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시련을 겪어낼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믿어주는 환경만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대상관계 이론가인 도널드 위니캇은 '성숙과정과 촉진적 환경'에서 '충분히 좋은 엄마'와 ' 촉진적 환경'이 성숙에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촉진적 환경'은 자율성의 획득으로 의존으로부터 독립으로 가는 참자기를 방해하는, 자율성이나 자발성의 결여를 가지고 오는 거짓 자기의 요소를 제거해준다고 했다. 여기서 촉진적 환경은 충분하게 공감해주는 '충분히 좋은 엄마'의 안아주는 환경 안에서 자신의 의견과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환경을 말한다. 여기서 '충분히 좋은 엄마'의 조건은 엄마 스스로 자신의 대한 결핍과 상처를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갖춘 뒤 아이들에게 투사를 하지 않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 과정이 선행되어야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을 믿음으로 안아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저자도 '인에이블러'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하기 위한 지침을 마지막에 제시한다. 스스로에 대한 한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이해하고, 더 이상 무리하지 않으며,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지 않을 때 발생되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여러 질문으로 반문하면서 , 정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점점 발전해 나가고 있고, 비록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거친 환경에 대한 안전은 확보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좋은 환경안에서 부모들의 '조금 모자란 사랑'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의 자발적 능력으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여유있는 공간을 선물해 줄 수 있다.
그들은 내가 선택한 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살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