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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y 30. 2023

15. 우울증은 100% 치료되는 병입니다

우울증, 그 끝

2022년 봄, 나는 비자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어 베트남 하노이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파견을 가는 거는 좋았지만 그때까지도 나를 많이 의지하는 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엄마, 내가 없어도 괜찮겠어?"

"그럼. 엄마 이제 괜찮아. 걱정 말고 다녀와."


2017년에 베트남 후에로 파견 가기 전에 엄마는 나한테 "네가 떠나면 나는 어떡하니."라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오히려 자신은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하노이에 와서 근무하며 1주일에 한 번 집과 통화를 했는데, 통화할 때 엄마는 자주 웃었다. 가까이 사는 언니를 돕고 손녀를 돌보느라 바쁘면서도 좋아 보였다. 엄마 말로는 가끔 감정 기복이 있기는 하지만 상태가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한다.


2022년 7월, 부모님이 하노이에 놀러 오셨다. 우리는 하노이와 하노이 인근 지역인 닌빈에서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은 내가 짠 여행 코스에 만족하셨는데, 특히 닌빈을 아주 좋아하셨다. 닌빈은 영화 <콩:스컬 아일랜드>에서 킹콩이 사는 곳 배경으로 나올 정도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항무아 산 정상에 올라가면 마치 용이 강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의 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가히 절경이라고 불릴 만하다. 부모님과 나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떠다니며 동굴과 섬, 감탄만 나오는 닌빈의 자연 풍경을 실컷 구경했다. 영어 선생님이셨던 아빠는 배 옆자리에 같이 탄 오스트리아 여행객과 영어로 이야기를 계속 나누고, 나는 엄마 옆에서 엄마가 하는 말을 오스트리아 사람에게 통역해 줬다. 엄마는 아빠와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아주 뿌듯해했다.


내가 효도하려는 마음에 비싸게 예약한 리조트는 부모님의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 객실에서 닌빈의 산이 아주 잘 보였고 시설도 좋았다. 게다가 평일에 가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엄마는 수영을 하는 방법을 다 잊어버렸다고 수영장 물속에서 걷기만 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서 뒤를 졸졸 걸어 다녔다. 아빠는 맥주를 마시고 엄마와 나는 수영장에서 걷고 달리고 물도 뿌리며 신나게 놀았다.


하노이에 돌아와서 공항에 가기 전에는 우리 집에서 내가 직접 만든 닭볶음탕을 대접했다. 하노이의 우리 집은 빌라인데, 옥상이 예쁘고 전망도 좋다. 옥상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긴 탁자도 있어서 우리는 거기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었다.  부모님은 베트남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서 제일 맛있다며 계속 칭찬했다.


이렇게 부모님은 베트남 여행에 대만족하고 귀국하셨다. 며칠 후, 부모님과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좋은 소식을 말해 줬다.


"희숙아, 베트남 갔다 오고 있잖아, 나 수면제 안 먹고 잤다?"

"와, 진짜? 진짜야?"

"어! 몇 년 동안 수면제 없이는 못 잤잖아. 그런데 베트남 갔다 오고 수면제를 안 먹었는데도 졸음이 오는 거야! 엄마 그래서 며칠 동안 수면제 안 먹고 잤어. 내가 이제 정말 괜찮아지는 건가 봐."

"그런가 봐. 엄마 너무 다행이다. 축하해! 그래도 약은 함부로 끊지 말고, 의사선생님하고 상의해서 줄여야 돼. 알겠지? 지난번처럼 부작용 생기면 안 되니까!"


엄마는 여행 후 상태가 좋아지고 약을 반 알만 먹게 되었고 병원을 2달에 한 번 갔다고 했다. 귀여운 내 조카, 엄마 손녀의 재롱을 보며 엄마는 더 좋아졌다. 언니가 틈틈이 보내주는 조카의 동영상 속에 엄마는 언제 우울증이었냐는 듯 매우 밝고 행복해 보였다. 엄마는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정말 복 받은 삶이라고, 우울증이 심할 때는 그냥 죽고만 싶었는데 지금은 사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2023년 5월, 의사 선생님은 엄마에게 우울증이 나았고, 지금은 우울증이 재발하지 않게 관리하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2021년에 우울증이 도저히 낫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죽고 싶고 무섭고 막막해하던 엄마에게,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은 자살만 하지 않으면 100% 낫는 병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맞았던 것이다.


중증 우울증 환자는 병원에 가는 것조차 힘들어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남들은 다니던 병원에 계속 다니라고 했는데 엄마는 더 좋은 병원을 찾기 위해 병원을 바꿨다. 그 결과 엄마를 살릴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우울증 환자는 가까운 사람에게 자살을 생각한다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죽고 싶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말 덕분에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우울증 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나도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많이 알고 엄마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정말 용감하고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2년 전 엄마와 산책할 때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글로 쓰기로 다짐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다 나으면 우울증이 치료된 이야기를 브런치에 글로 쓰고 싶어."

"그래. 꼭 나을 테니까 네가 꼭 엄마 이야기를 글로 남겨 줘."

"응!"


엄마에게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엄마보다는 나를 위해서 쓰기로 한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지금은 엄마의 우울증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우울증이 길어진다면 내 마음도 또 지치고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완치된 이야기로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정한 것이었다. 목표가 있으면 마음은 더 견고해지니까.


나는 원래 가끔 일기를 쓰는데, 엄마와 산책을 할 때는 매일 썼다. 마음을 글로 표현하면 북받치는 감정이 이성의 필터를 거쳐 어느 정도 승화되고 정제된다. 그렇게 나는 일기를 쓰며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정돈하고 관리했다. 2년 전의 바람대로 이렇게 엄마의 우울증이 완치된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울증은 재발이 쉬운 병이라고 한다. 엄마도 재발이 됐었고, 그때 더 심해졌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 이 무서운 병에 벌리지 않게 관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만약 또 재발된다면 나는 또 엄마와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환자도 가족도 너무 힘들게 하는 병이기에 , 엄마든 누구든 우울증에 다시는 안 걸리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과 가족들도 그러길 바란다. 만약 걸리더라도, 우울증은 반드시 치료되는 병이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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