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May 29. 2023

14. 꿈을 꾸었다

엄마와 같이 우울증에 맞서다

엄마와 우울증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2017년에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는 1주일에 두세 번은 요양원에 갔거든? 근데 엄마가 돌아가시니까 내 일상이 바뀌었어. 그전에는 '엄마 보러 요양원에 가야지' 했었는데, 내가 할 일이 없어졌달까. 소파에 혼자 앉아 있으면 산다는 게 뭘까, 죽음이 뭘까 하는 생각이 밀려오더라."

"엄마가 특히 외할머니한테 신경을 많이 썼으니까 더 그랬을 것 같아."

"신경을 많이 쓰긴 뭘. 할 일을 한 거지. 아무튼, 우리 엄마 그렇게 돌아가시고 그 허망함을 이겨내려고 다시 마음 굳게 먹으려고 했는데, 한 달 만에 너희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잖아. 엄마하고 아빠한테는 양쪽 부모가 다 사라진 거지. 그때 뭐랄까, 살아계실 땐 걱정고 챙겨드리고 해서 긴장해야 됐던 삶이 다 끝나버린 느낌... 삶이 공허하더라. 너희들도 다 커서 이제 내 손을 타야 하는 일이 없잖아. 그러니까 내 역할이 다 없어진 거야. 자식을 챙길 일이 있나, 부모를 챙길 일이 있나."

"그랬구나. 그렇게 느꼈었구나..."

"그리고 그때 하필이면 허리디스크까지 터졌잖니. 내가 전에도 허리 디스크가 있었는데, 관리를 엄청 철저하게 했었거든. 목디스크 때문에 수술도 하고 고생하고 그래서 허리는 그렇게 안 되게 하려고 말이야. 근데 장례식 두 번 치르고 허리가 아파서 잠도 못 자겠는 거야. 아, 너무 자책감이 들더라. 내가 그렇게 조심하려고 했는데 결국 미련하게 행동해서 건강 관리를 잘못했구나 싶어서. 자다가 깼을 때 허리 통증을 느끼면 얼마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는지! 그러면서 잠을 못 자기 시작하면서 불면증이 온 거야. 불면증이 오니까 불안도 밀려오고. 어느 날은 불안이 너무 심해서 응급실에 가고 싶을 정도였어.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더라니까. 그게 다 장례식 후에 마음이 힘들어서 그랬던 거 같아. 그 공허한 마음에 불안이 들어온 거지."

"나는 그냥 마음이 힘들고 허리도 아파서 그랬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내가 엄마 마음을 잘 몰랐네."

"우울증이 제일 심했을 때, 내가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했을 때 있지? 내 마음속에서 나보고 죽으라고 죽으라고 하는 거 같았고, 가족들한테 더 이상 폐가 되고 싶지 않아 죽고 싶었어.언젠가는 '지금 뛰어내릴까?' 생각했었는데,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아 교회로 가서 기도하면서 펑펑 울었어. 하나님 나 좀 데려가 달라고, 차마 가족들한테 미안해서 나 스스로는 못하겠고 그냥 데려가 달라고. 누구도 나를 이해 못 하니 털어놓을 수도 없고, 정말 힘들었어. 그때 병원을 바꿨지. 그 병원 의사 선생님한테 처음 갔을 때, 선생님한테 나 좀 제발 살려달라고 했었어. 근데 그분이 나한테 이 병은 반드시 치료되는 병이니까 걱정 마시라고, 자기가 꼭 살려 주겠다고 하더라. 그 말이 너무 믿음이 가서 말만 들어도 반 정도는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더 살아 보려고 한 거야."

"나는 엄마가 죽고 싶다고 말하기 전까지 엄마 병을 외면했었어. 미안해..."

"아니야. 그게 다 병 때문이었어. 이 병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 모를 수밖에 없어. 엄마는 다 이해해. 그래도 네가 나랑 산책하면서 이야기 많이 들어주고 집에서 의지도 참 많이 됐. 너한테 많이 고마워."




엄마의 우울증이 아직 중증이었던 2021년 가을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귀신이 나를 쫒는 꿈이었다. 나는 귀신에게 잡히지 않으려 도망치다가 침대에서 눈을 떴다. 환한 낮이었다. 거실로 나가 보니 부모님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하하 호호 웃고 계셨다. 특히 엄마가 아주 크게 웃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아... 나 꿈꿨는 데에... 귀신이 쫒는 꿈 꿨어. 무서웠어."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일어나 나에게 왔다. 그리고 나를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말했다.


"아이구 그랬어? 나쁜 꿈을 꿔서 무서웠어?"

"응. 무서웠어..."


그러자 엄마는 햇살과 같은 미소를 짓고 나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쁜 거 물러가라, 나쁜 거 물러가라아~ 우리 희숙이한테서 나쁜 거 물러가라."


나는 엄마의 미소와 사랑이 가득 담긴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정말로 꿈에서 깨었다. 꿈속의 꿈이었던 것이다. 눈을 뜨자, 엄마가 우울증에 걸린 후 그렇게 웃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생각나서 씁쓸해졌다. 하지만 꿈속에서 받은 따스한 느낌이 깨어서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눈을 비비고 방을 나오니, 항상 그렇듯 축 처진 습의 엄마가 아침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자신이 꿈에서라도 그렇게 웃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나한테 꿈에서처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꿈과는 다르게 힘든 미소를 짓고 나를 쓰다듬으며 "나쁜 거 물러가라."라고 말했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이번에는 내가 엄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쁜 거 물러가라~ 우리 엄마한테 나쁜 거 다~물러가라!"


엄마는 흠칫하더니 "풋!" 하고 웃었다.  그러더니 진지하게 기도하는 자세를 짓더니 내 말이 끝나자 "아멘!"이라고 외쳤다. 나는 더 힘주며 "나쁜 거 물러가라!"라고 말했고 엄마는 더 힘차게 "아멘!"이라고 했다. 교회도 안 다니는데 마치 목사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 밤, 자기 전에 나는 또 엄마에게 "나쁜 거 물러가라!"를 했다. 엄마는 웃다가 또 진지하게 "아멘!"을 외쳤고, 나에게도 "나쁜 거 물러가라!"라고 말해 줬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여전히 우울한 표정으로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를 조금 느끼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애기, 잘 잤어?"

"뭐? 푸하하. 얘는! 엄마가 네 애기니?"


엄마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제보다 더.


"애기 맞지. 우리 애기. 잘 잤어?"

"아이구, 어이없어. 그래, 애기는 잘 잤는데 우리 애기도 잘 잤어?"

"응. 엄마네 애기도 잘 잤어."

"참냐 내가 환갑이 넘어서 애기가 됐네. 하하하."


그렇게 나는 한동안 아침에는 "우리 애기 잘 잤어?"를, 밤에는 "나쁜 거 물러가라!"를 하며 엄마의 아침과 밤을 웃음으로 시작하고 웃음으로 끝날 수 있게 도와줬다.


엄마는 점점 웃는 일이 많아졌다. 비록 꿈에서처럼 환하게 웃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중간에 몇 번 우울증 증세가 살짝 심해졌을 때도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 약 때문에 그런 거라고 했다. 정말 약을 바꾸자 바로 괜찮아졌다. 매일 저녁 교회에 가서 울던 엄마는 교회에 가지 않는 저녁이 점점 많아졌고, 손을 떨고 식은 땀을 흘리는 증상도 없어졌다. 가족 모임도 힘들어하지 않았고, 본인이 나서서 모임을 주도하기도 했다.


언니는 건강하고 예쁜 조카를 낳았다.  엄마는 언니의 산후조리를 도와주면서 바빠졌고, 사랑스러운 손녀 덕분에 웃을 일이 더 많아졌다. 의사 선생님도 엄마가 많이 호전됐다고 칭찬하셨다.


2022년 초, 정신건강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를 1년 만에 만났다. 친구가 어머니 우울증 치료비 지원을 신청했느냐고 물었다. 아! 잊고 있었다. 1년 전에 만났을 때 친구가 내게 우리 지역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우울증 진단, 치료비 약물 처방비를  최대 2만 원씩 지원받을 수 있다는 걸 말해줬었다. 근데 그때는 내가 엄마를 신경 쓰지 않을 때라 흘려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잊고 있었다니. 집에 가서 엄마에게 신청 방법과 구비 서류를 알려 줬다. 엄마는 바로 치료비 지원을 신청했고 이후부터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치료비에 돈을 계속 써서 부담이었는데 이렇게 지원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엄마는 이렇게 양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이전 14화 13. 마음속 볼록렌즈,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