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Feb 22. 2021

공포 게임으로 존댓말 가르치기

만 4세 아이에게 존댓말 가르치기

만 4세 아이에게 존댓말 가르치기

여섯 살(만 4세)이 ‘프레디의 피자가게’라는 공포 게임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살짝 당황했지만, 그 나이 때 아이가 뭘 알겠는가. ‘프레디의 피자 가게’는 줄거리도 무서웠고 게임 분위기도 음산했지만, 잔인하거나 심하게 폭력적인 장면이 없고 꽤 재미있다 싶은 부분도 많이 있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인형들이 나오니 줄거리를 모르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수의 담임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진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고 진수는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본다고 한다. 아마도 프레디의 피자가게겠지.


어느 날, 나는 진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나 : 진수야, 진수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셔?

진수 : 엄마 아빠는 맨날 바빠. 나랑 안 놀아.     


이렇게 말하는 진수의 표정은 아이답지 않게 슬프고 외로워 보였다. 나는 아이가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진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전에 진수의 외로움을 덜어 주고, 또 진수가 나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 수 있게 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수와 공감대를 만드는 게 필요했다.      


진수와의 첫 번째 수업이 끝나고, 나는 집에 와서 ‘프레디의 피자가게’에 나오는 프레디(곰) 보니(토끼), 폭시(여우), 치카(병아리)를 만들었다. 물론 정말 똑같이 만든 것은 아니고, 색종이로 곰과 토끼, 여우, 그리고 대충 치카같이 생긴 얼굴을 접고 거기에 정을 그린 것이다.


(좌)프레디의 피자가게 등장인물. 왼쪽부터 프레디, 토끼 보니, 병아리 치카, 해적 폭시(출처: 나무위키)/(우) 내가 접은 '프레디의 피자가게' 등장인물 손가락 종이인형


다음날 진수의 교실로 가서 진수를 부르니, 교실에서 혼자 종이접기를 하며 놀고 있던 진수가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달려와서 꽉 안았다. ‘이제 고작 하루 만났을 뿐인데 이렇게나 반가워 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반가워해 주는 진수가 고마웠다. 첫 만남 때 아이와 관계 형성에 성공한 것 같았다. 나는 진수에게 내가 만든 프레디와 보니, 폭시, 치카를 보여줬는데, 예상보다 훨씬 좋아했다.     


진수 : 이게 뭐야. 프레디하고 보니하고 폭시잖아! 이건 치~카? 와하하하하.

진수 : 선생님, 우리 프레디와 보니 놀이 하자요!

(오타가 아니다. 내가 선생님에게 말할 때는 ‘요’를 말하라고 했더니 그 뒤로 진수는 정말로 말끝에 ‘요’만 붙여서 말했다)


나는 우리만 쓰는 교실로 이동한 후에 진수의 부탁대로 ‘프레디와 보니’ 놀이를 했다. 진수는 보니, 나는 프레디. 어떻게 노는 건지 모른다. 그런데 진수도 모른다. 그냥 내가 프레디가 되고 진수는 보니가 되어 진수가 시키는 대로 놀았다. 진수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들떠서 놀았다. 그리고 나에게 프레디와 보니, 그리고 그들을 잡는 경찰 아저씨(경비아저씨)에 대해 한참을 뭐라 뭐라 설명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골든 프레디’도 만들어 달라는 특별 주문도 했다.     


전편에서 말했듯이, 진수는 어른에게 반말을 한다. 버릇이 없어서가 아니다. 존댓말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진수는 유치원에 온 지 별로 되지 않은 아이였다.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지만 진수는 집에서만 생활하다가 처음으로 ‘유치원’이라는 공동체를 만난 것 같았다. 부모님이 아무리 한국어를 잘해도 중국인이라 한국 아이처럼 자연스럽고 정확한 한국어를 할 수 없었고, 항상 반말만 들으니 진수 역시 반말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은 진수를 힘들게 만들었다. 유치원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반말을 하는 진수를 이상하게 생각했고, 진수가 다문화 아이 치고 한국말을 잘한다고 해도 발음이 부정확한 데다가 자꾸 아무도 모르는 ‘프레디의 피자 가게’ 이야기를 해서 선생님도 친구들도 진수의 말을 이해 못할 때가 많았다. 또 진수가 아는 어휘가 같은 또래 아이에 비해 많지 않아, 진수 또한 친구들과 선생님이 하는 말을 이해 못할 때가 많았다. 결국 진수는 유치원에서 스스로 혼자가 되길 원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무서워했고, 친구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했다.

      

진수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유치원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존댓말 익숙해지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수와 대화를 많이 해야 했다. 하지만 진수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자기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이 되면 짜증부터 냈다. 그래서 나는 ‘프레디의 피자 가게’를 이용한 것이다. 전편에 썼듯이 진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프레디의 피자 가게’를 설명할 때는 존댓말을 잘 쓰는 편이었고, 또 아는 단어 부족으로 자기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때도 어떻게는 말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 : 진수야, 그럼 프레디의 피자가게에서는 경찰 아저씨가 나쁜 사람이야?

진수 : 네. 경찰 아저씨는 프레디하고 보니 때려요. 밤에 잡아요. 그럼 프레디는 위잉 위잉 해요. 프레디는 머리에 이거 있어요. (‘모자’라는 단어를 몰라서 머리에 손으로 모자 모양을 표현하며)

나 : 아, 모자 말하는 거지?

진수 : 네. 모자.

나 : 그럼 폭시는 어떤 친구야?

진수 : 폭시는 손이 하나 없어요. 눈이 하나 없어요. (눈을 가리며) 눈에 이거 있어서 안 보여요. 손은 이렇게 있어서(갈고리 모양 표현하고 손을 내저으며) 휙휙 이렇게 해요.

나 : 아~ 눈에 안대를 하고 다녀? 손은 갈고리 모양이구나.

진수 : 네. 갈고리 모양이어서 휙휙 해요.     


이런 식으로 프레디의 피자 가게에 대해 이야기하며 높임말을 연습하고 어휘력도 점점 늘릴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아이가 ‘선생님도 내가 좋아하는 프레디의 피자 가게를 알고 있고 그 게임을 좋아하는 나를 이해해. 선생님하고 프레디의 피자 가게에 대해 많이 이야기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를 제외한 어른들은 진수에게 무조건 컴퓨터를 보지 말라고만 했을 것이고 친구들은 ‘프레디의 피자 가게’가 뭔지 모르니,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수와 공감대를 만들어서 진수가 나를 완전한 자신의 편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무엇보다도 아이의 외로움을 없애주려고 했다.


프레디의 피자 가게 등장인물인 프레디 · 토끼 보니 · 해적 폭시 · 병아리 치카를 색종이로 최대한 비슷하게 접어서 진수에게 선물하기도 했고, A4 종이에 등장인물을 그리고 색칠해서 주기도 했다. 어떤 날은 진수가 직접 색칠할 수 있게 밑그림만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진수는 아주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방방 뛰며 좋아했고, 나는 진수와 계속 프레디의 피자가게 역할극 놀이를 하거나 게임에 대한 진수의 설명을 들으며 진수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직접 그린 '프레디의 피자가게' 등장인물 밑그림


우리는 프레디의 피자가게 놀이 이외에도 교실 안에 있는 다양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아니, 내가 가지고 놀아줬다. 교실 안에는 블록, 퍼즐 놀이, 인형, 자동차, 공룡, 장난감 벽돌 등 다양한 장난감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직접 다이소나 문구점에서 같이 놀이 활동할 수 있는 물건을 사기도 했다. 또 진수가 좋아하는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거나 운동장 산책도 했다. 이렇게 놀다가 진수와 약속한 시간을 거의 다 보내기도 했다. 진수는 놀았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정말로 ‘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놀면서 진수와 이야기하며 진수가 반말을 할 때나 잘못 발음할 때마다 교정해주고, 또 진수에게 새로운 단어를 계속 알려주면서 진수가 더 많은 말을 더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진수 : 선생님, 우리 반신 로봇 놀이하자.

나 : (진수와 눈을 맞추며) 선생님, 우리 ‘변신 로봇’ 놀이해요.

진수 : 응. 변신 로봇 놀이해요.

나 : 선생님한테는 ‘응’ 아니고 ‘네’.  

   

어느새 진수는 내가 지적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반말을 고치기 시작했다.   


진수 :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선생님, 이것 봐! (갑자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선생님, ‘이. 거. 보. 세. 요.’


진수 : 선생님, 이거 먹어요. 아니, 먹어... 세요?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진수와 같이 손가락에 끼울 수 있는 동물 얼굴을 접었다. 물론 내가 다 접었고 진수에게는 표정만 그려 달라고 했는데, 그나마도 어려워해서 한 개에만 간신히 표정을 그렸다. 진수와의 수업이 끝나고 진수의 원래 교실에 가서 우리가 종이접기 한 것을 친구들에게 나눠 주라고 했고, 진수는 쑥스러워하며 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그런데 친구들 반응이 엄청 좋았다. 선물을 받은 친구들은 진수 주위로 몰려들어 ‘우와아, 이거 강아지야, 토끼야! 표정 봐 너무 귀여워’라고 감탄하며 ‘진수야 고마워’라고 연신 말했다. 교실은 순식간에 ‘진수야 고마워’로 가득 찼고, 진수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동물 얼굴 손가락 종이 인형


다음날, 진수의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어제 손가락 종이 인형 덕분에 진수가 친구들한테 인기 있었고, 그래서 진수가 많이 좋아했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내가 진수가 존댓말을 잘하는 편인지 묻자, 웃으시며 확실히 전보다 훨씬 잘한다고 말해 주셨다.

이전 02화 나는 ‘너’가 아니고 ‘선생님’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