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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Feb 24. 2021

선생님이 오해해서 미안해

한국말을 잘하는 다문화 아이

“진수야, 이거 제자리에 갖다 놔. 진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선생님 말을 안 듣지?”   


진수와의 수업 초반에 진수의 담임 선생님에게 직접 들은 것과 내가 판단한 진수의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① 어른에게 반말을 한다. 가끔 버릇없이 행동한다.
②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싫어한다. 그래서 단체 수업도 거부한다.
③ 화가 나면 가끔 친구를 때린다.
④ 단독 행동을 한다.(단체 수업을 할 때 혼자 딴짓하기, 갑자기 자기 혼자 자리 이동하기)
⑤ 자기가 가지고 논 것을 정리하지 않는다.
⑥ 가끔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한다. (진수는 발음이 부정확했다. 그리고 진수가 아는 단어가 많지 않아 자기 생각을 말할 때 자주 어려워했고, 이해 안 되는 말을 하다 보니 의사소통이 가끔 힘들었다.)
⑦ 글자 읽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책을 싫어한다.
⑧ 자신감이 없다. 자기가 보기에 조금이라도 어려운 것은 시도도 하지 않고 짜증을 낸다.
⑨ 집중력이 너무 부족하다. (진수는 한 가지 일을 5분 이상 지속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었지만, 진수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중점적으로 부탁한 것은 진수가 반말하는 것과 친구를 때리는 것, 단독 행동을 하는 것과 놀이가 끝나고 정리를 하지 않는 것을 고치는 것이었다. 나 또한 한국어와 글자 공부는 나중 일이고, 일단 진수가 유치원이라는 공동체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①~⑤번 문제를 집중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먼저 반말을 하는 문제는 전편에서 말했듯이 아이가 이제 막 가정에서 벗어나 경험하는 사회생활이 처음이고 다문화 가정이라는 환경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수와 최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진수가 반말을 할 때마다 존댓말로 바꿔 주었다. 버릇없는 행동 또한 아직 여섯 살밖에 안된 아이이기에 정말로 그 행동이 ‘나쁜’ 행동인지 몰라서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진수가 버릇없는 행동을 하거나 친구를 때리거나 기분이 나쁘다며 갑자기 교실 밖으로 뛰쳐나오는 등 단독 행동을 할 때마다 그런 행동은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여섯 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중요한 것은 절대로 ‘화내지 않는 것’이었다. 화를 낸다는 것은 내 감정이 들어갔다는 것인데, 나는 진수의 잘못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깨우쳐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진수를 혼내는 것은 진수를 위해서, 즉 진수가 잘못을 고치고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지 내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나 : 방금 선생님 손등을 왜 때렸어? 선생님이 그림 카드 보여주는 게 싫어서 그런 거야? 그런데 진수야, 진수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한다고 사람을 때리면 안 돼. 진수도 다른 사람이 기분 나쁘다고 진수를 때리면 기분이 어때? 기분도 나쁘고 맞은 데도 아프잖아. 선생님도 똑같아. 진수가 때려서 선생님 손등이 아팠어. 선생님이 아프면 진수 기분은 어때?

진수 : 안 좋아요. (내 손등에 만지고 호 바람을 불며) 미안해요...

    

나 : 선생님한테 말도 안 하고 밖으로 나가면 선생님이 걱정하잖아. 저번에 진수가 복도에서 머리 쾅 한 적 있지? 그때 선생님이 진수 안아주고 머리 만져줬지? 근데 만약 진수가 혼자 있다가 다치면 어떻게 해? 진수보고 혼자 다니지 말라고 하는 건 진수가 걱정되기 때문이야.


나 : 선생님은 오늘 진수가 처음으로 색종이 접기를 혼자 잘 접어서 너무 기뻤어. 진수도 처음에는 못한다고 했는데 멋있게 접어서 좋았지? 그런데 진수가 화난다고 찢어버려서 너무 속상해. 진수는 선생님을 속상하게 하고 싶었어?

진수 : 아니에요... 으아앙....

나 : 그래. 진수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화가 나서 진수도 모르게 찢은 거지? 다음부터는 화가 난다고 찢고 던지고 하면 안 돼. 그리고 이렇게 신발장에서 눕고 짜증 내지 마. 여기는 신발 신는 곳이지 마음대로 눕는 아니잖아. 이거 봐. 옷이 더러워졌어. 진수도 옷이 더러워져서 싫지?


나 : 진수야, 가위나 칼을 줄 때는 이렇게(날을 주는 사람 쪽으로 해서) 주는 것보다 이렇게(손잡이를 주는 사람 쪽으로 해서) 주는 게 더 좋아. 왜냐하면 칼날로 주면 받는 사람이 다칠 수 있거든. 진수도 가위나 칼 받을 때 손잡이로 받는 게 더 좋지?


진수가 짜증을 낼 때는 나도 힘들었지만,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타이르면 대부분의 경우 진수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물론 이렇게 훈육한다고 해서 진수의 행동이 바로바로 고쳐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하고 나니 확실히 진수가 똑같은 잘못을 하는 경우가 확 줄었다. 어떤 날은 진수가 이렇게 말했다.


진수 : (갑자기 내게 가위를 주고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나 : 응? 진수야. 갑자기 선생님한테 가위를 왜 줬어?

진수 : (몇 초 동안 나를 보기만 하다가) 아이잉 왜 칭찬 안 해요! 나 이렇게 줬는데!

나 : 아, 진수가 손잡이로 줬구나! 우리 진수 잘했어! 선생님이 한 말을 잘 기억했네!

    

가지고 논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는 문제는 둘째 날부터 철저하게 연습시켰다. 수업은 9시부터 10시 20분까지였지만, 정리하는 시간 때문에 나는 진수에게 항상 10시 10분에 정리를 시작하자고 했다. 나는 항상 ‘진수야. 이건 선생님이 정리할게. 진수는 저거 정리해’라고 말하며 진수가 해야 할 것을 정해줬다. 진수는 정리하는 것을 싫어해서 항상 울상을 짓고 짜증을 내거나 도망가려고 했지만, 나는 수업 시간이 초과되어도 진수가 정리를 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하니 진수는 점차 시키지 않아도 정리정돈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고 진수에게 이제 정리를 하자고 했다.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제자리에 갖다 놓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진수에게 장난감을 가리키며 ‘이거 제자리에 갖다 놔’라고 말했는데 진수는 대꾸를 안 했다. 진수에게 재차 말하며 진수가 장난감을 갖다 놓기를 기다렸지만, 진수는 내 눈을 피하고 아무 말도 안 하며 딴짓만 했다. 유독 심하게 말을 듣지 않아 진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 진수야, 이거 제자리에 갖다 놔. 진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선생님 말을 안 듣지?  

   

진수에게 잔소리를 몇 개 더 했지만 진수는 여전히 내 눈치를 보면서도 묵묵 답답이 었다. 화가 나려고 하다가 갑자기 ‘혹시...?’ 하는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 : 진수야. 이 장난감 저기 상자 안에 넣어 놔.


이렇게 말하자 놀랍게도 진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장난감을 상자 안에 넣었다. 나는 진수에게 물었다.


나 : 진수야, 혹시 이거 어디에 있던 장난감인지 몰랐어?

진수 : (고개를 푹 숙이며) 네...

나 : 그랬구나 진수야. 미안해. 선생님은 몰랐어. 진수가 정리하는 게 싫어서 말을 안 듣는다고 생각했어. 어디에 있던 장난감인지 모르면 선생님한테 ‘이거 어디에서 가지고 왔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어야지. 그러면 선생님이 알려줬을 거야.


그렇다. 진수는 장난감이 있던 자리를 모르는데 나에게 어떻게 물어볼지 몰라서 말을 안 한 것이다. 진수는 자기가 한국말을 다른 친구들보다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티 내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지금처럼 그냥 아무것도 안 하거나 다른 행동을 했다.


진수는 다문화가정 아이'치고' 한국말을 잘한다. 언뜻 보면 한국 아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게 문제였다. 진수는 모든 한국말을 또래 한국 아이처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티가 나지 않으니 지금같이 진수를 오해하는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진수의 담임 선생님도 나에게 ‘진수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키면 못 들은 척을 해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정말로 하기 싫어서 딴청 부린 것도 있겠지만, 교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해 딴청을 부린 적도 있었을 것이다. 진수는 이런 오해를 많이 받아 봤겠지. 나는 진수에게 사과하며 팔을 벌렸고, 진수는 나를 말없이 꼭 안았다.


진수가 ‘한국말을 잘하는 다문화 가정 아이’라고 오해받은 일은 이런 경우 말고도 몇 개가 더 있었다. 같이 놀거나 수업을 할 때 진수는 갑자기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갑자기 ‘우리 이제 다른 거 하자요!’라며 자리를 벗어나려고 할 때가 있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나 같이 단어 공부를 하는데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 그랬다. 나는 “그럴 때는 ‘선생님, 무슨 말인지 이해 못했어요. 이게 뭐예요?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거야”라고 말했고 진수는 내 말대로 했다. 나는 진수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또 한국어 교사이다 보니 진수의 행동을 이해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 사람이 보면 진수는 그냥 집중력이 없는 아이, 갑자기 짜증 내는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진수의 부족한 한국말은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오해를 만들었다. ‘이것 좀 빌려줘’라는 말을 할 줄 몰라서 친구가 가지고 있던 것을 억지로 가져가는 바람에 친구가 기분 나빠한 적도 있었다. 친구가 색종이로 접은 것이 찢어져서 진수가 테이프를 붙여주려고 했는데(진수는 테이프 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도와줄게. 이건 테이프로 붙이면 돼’라는 말을 못 해서 뺏어가는 걸로 오해받은 적도 있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진수에게 이런 상황에서는 친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어느 날은 우리 교실로 이동하기 전에 진수의 원래 교실에서 진수와 같이 벽돌 빼기를 하고 있었다.(벽돌 빼기와 퍼즐 맞추기 같은 게임이 집중력 향상에 좋다기에 주로 이런 놀이를 많이 했다.) 그런데 친구가 다가와서 진수가 가지고 있던 계란 괴물 장난감을 한번 살펴보고 싶다며 진수 손에 있던 장난감을 가져갔다. 그 순간 진수는 ‘야!’라고 외치며 친구의 이마를 장난감으로 내리찍었다. 친구는 울었고 나는 교실을 옮겨 진수를 크게 꾸짖었다. 진수가 잘못을 인정하고 나서 나는 진수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벽돌빼기. 퍼즐 맞추기는 집중력 향상에 좋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진수와 퍼즐맞추기와 벽돌빼기 놀이를 자주 했다.


나 : 진수야, 친구가 진수가 가지고 놀던 걸 가져가려고 하면 이렇게 말하는 거야. “이건 내가 놀던 거야. 내가 다 놀고 줄게”. 이따가 친구한테 가서 사과해.

진수 : 사과가 뭐예요? 어떻게 말해요?

나 : 사과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아까 때려서 미안해. 이제는 절대 안 때릴게”라고 말해.


수업을 마치고 다시 진수의 교실로 돌아가자 진수는 맞은 친구에게 갔다. 그리고 풀 죽은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수 : 아까 어떻게 말하라고 했어요?


나는 진수에게 귓속말로 진수가 해야 할 말을 다시 말해 줬고 진수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친구에게 사과를 했다. 다행히 친구는 이마에 반창고를 붙였는데도 맞은 것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듯 진수와 어울려 잘 놀았다.

   

며칠 후, 진수와 같이 수업을 하는데 우리 교실로 친구 한 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진수가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보고 ‘나도 보여줘!’라고 말하며 손을 뻗었다. 진수는 ‘야!’라고 말하며 친구를 때리려고 손을 치켜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입술을 꾹 다물고 잠시 생각하더니 ‘후’ 하고 숨을 내쉬며 손을 내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진수 : 이건 내가 가지고 놀던 거야. 내가 다 놀고 줄게.

 


 

진수의 문제점 중 대부분은 ‘진수가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지만 한국 아이처럼 유창하게 하지는 못해서’였다. 진수를 보면서 진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다. 비단 이런 오해를 받는 것 외에도 수업에 따라오지 못하고 친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또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 유치원이든 학교에서든 스스로 움츠러드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한국은 점점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다. ‘2019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출처: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전체 혼인(239,159) 중 다문화 혼인(24,721) 비중은 10.3%로, 전년대비 1.1% 증가했다고 한다. 2019년 전체 출산율(302,676) 중 다문화 출생(17,939)은 5.9%이다. 참고로 2017년은 5.2%, 2018년 5.5%이다. 다문화 가정도 다문화 가정 아이도 점점 증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이 사회생활에, 특히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지금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출처>

표지 사진 : kor.pngtree.com

벽돌 빼기 상품 사진 : 11번가 '유치원 어린이 쉬운 벽돌 빼기 보드게임'

통계 자료 : 2019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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