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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Feb 17. 2021

생선님이 되어서 좋은 날

학생들을 통해 배우는 선생님

'찾아가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은 한국어 수업이 따로 필요한 다문화 학생이 있는 학교로 한국어 강사를 파견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작년 6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병설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에서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전에는 주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했다.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성인 학습자들을 가르칠 때와 교육 방법도 학생을 대하는 방법도 달라야 해서 처음에는 힘들었다. 성인들을 가르칠 때는 학생들이 교사가 주는 과제를 하기 싫다고 울며 떼를 쓰거나 "선생님 미워!" 하면서 교실 구석으로 도망가서 숨는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순수함 덕분에 즐거웠던 날들도 많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아이들의 동심에 물들어 피로도 날아가고 걱정 고민도 잠시 잊어버릴 수 있다. 오늘도 역시 그런 날이었다.


지금 수업을 하는 학교는 C 초등학교로, 작년 10월부터 수업을 나가고 있다. 학생은 이제 10살이 된 해이, 규, 경수 세 명이다. 세 명은 성격도 성향도 제각각 다르지만, 모두 순수하고 귀엽고 착한 학생들이다.


나는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한국어- 저학년 의사소통 4> 교재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오늘은 6과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고 말았어요’의 문법 ‘-고 말다’와 ‘교실에서의 실수’를 공부했다.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실수로 뭐가 있는지 교재를 보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을 ‘생선님’이라고 잘못 말한 그림이 있었다. 아이들이 그걸 보자 갑자기 빵! 터져서 웃기 시작했다.


진규 : 생선님~? 선생님이 아니고 새앵서언니임?
경수 : 아하하 생선님이 뭐야?
해영이 : 선생님! 선생님이 생선이에요!


생선님?


나도 같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생선이 아니야. 먹으면 안 돼”. 


나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깔깔 웃는 아이들에게 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강의할 때 생선님이 되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줬다.


“선생님이 예전에 외국 학생을 가르쳤는데, 그 학생이 선생님한테 한국어를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편지를 썼어. 그런데 받는 사람에 ‘생선님’이라고 썼어. 나는 생선이 아닌데.”


아이들이 또 빵 터져서 책상에 엎드려 웃었다. 선생님이 생선님이 된 것이 뭐가 그렇게 웃겼을까, 아이들은 나를 ‘생선님, 생선님!’이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생선님’ 소동이 잠시 진정되고 프린트 몰로 ‘-고 말다’를 연습할 때였다. 해영이가 답을 검사받고 나서 몸을 웅크리고 프린트 몰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선생님 봐 봐요!”하고 자랑스럽게 종이를 보여줬다. 이는 얼굴은 나인데 몸은 생선인, 정말 ‘생선님’을 그렸다.


해영이 : 선생님, 이건 생선님이에요. 여기는 선생님 머리, 그리고 선생님 안경. 그리고 여기는 생선!  


아이들은 해이 그림을 보고 “이게 뭐야, 이상해!”라면서 웃고 난리가 났다. 해이는 '생선님'에다가 경진규 이름도 썼다.

 

해영이가 그린 생선님


우리는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에 나가 종이비행기 날리며 놀았다. ‘날씨가 좋으면 종이비행기 날리기 놀이를 하자’고 아이들이 지난주에 부탁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경수진규와 같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동안 해영이는 운동장에서 나무 막대기로 뭔가를 또 끄적였다.


해영이 : 선생님, 이리 와 보세요!


이 앞에는 거대한 '생선님'이 있었다. 경수규는 그걸 보고 폭소를 하며 또 “생선님, 생선님~”하고 돌아다녔다. 나도 정말로 재미있어서 웃었다. 겨우 '생선님'이라는 단어에 몇 시간 동안 즐거울 수 있다니.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즐거웠고, 또 그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이렇게까지 즐거워할 수 있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부러웠다.


운동장에 그린 생선님

 

나도 아이들처럼 작은 것에도 크게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세상을 이렇게 산다면 불행하다고 느낄 일도 짜증을 낼 일도 없을 텐데. ‘욕심부리지 말고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살자’고 다짐하는데도 가끔 그 다짐을 잃어버린다.


어제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는데, 내가 가고 싶었던 식당은 하필이면 그 전날 폐업했고 그다음 순위로 생각했던 식당도 쉬는 날이었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만 원짜리 식사를 했는데 맛이 없었다.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려고 갔는데 무인 반납기가 고장이 났다. 도서관이 휴관하는 날이라 직원도 없어 하는 수 없이 다음에 다시 와야 했다. 나는 ‘오늘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라고 혼잣말로 짜증을 냈다. 아침에 1분도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탔고, 수업은 재미있었고, 나에게 배고플 때 아무 고민 없이 쓸 수 있는 만 원 정도는 항상 있다는 행운 따위는 잊어버렸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소한 불행으로 하루 전체를 ‘되는 일 없는 날’로 생각했던 어제의 나를 반성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을 겪을수록 작은 것에서 오는 즐거움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점점 인생이 복잡해져서 그런 것인지, 순수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이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소한 것에도 배꼽을 잡고 웃을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오랫동안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9개월간 다문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코로나 19라는 힘든 시기에도 많이 웃을 수 있었다. 다문화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아이들의 순수함 덕분에 잊고 있었던 나의 순수 마음도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한국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점점 한국어 실력이 늘고 또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어 교사로서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성장했듯이 나 또한 성장할 수 있었다. '생선님'을 통해서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던 오늘처럼 말이다. 9개월 동안 다문화 가정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재미있었던 일, 내가 했던 한국어 수업,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 또한 학생들을 통해 성장한 경험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와 학생들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기를, 그리고 혹시나 다문화 한국어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앞으로 글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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