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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권 May 27. 2021

우리는 고요를 함께했다

리트머스지에 서서히 액체가 빨려 올라오고, 서서히 증발되듯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헬스장을 나오니, 학교 중앙 잔디에서는 올해 스스로 삶을 정리하고 떠난 네 명의 학생들을 기리는 추모식이 있었다. 조용하고 진지하게 우리는 고요를 함께 했다. 경건한 아카펠라와,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전공, 그들의 관심사, 취미를 기억하는 시간과,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정시가 아닌 시간에,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 교회 종이 단조의 화음으로 울려 퍼졌다. 아홉 시가 되자, 누가 끝이라고 선을 그어줄 것 없이 우리는 하나둘씩 발길을 옮겨 각자의 고요와 촛대를 가지고 각자의 장소로 돌아갔다. 부디, 그곳에서는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하길. 그 누가 마음이 전쟁 같고 소음이 가득하기를 바랄까.


잔디가 묻은 옷을 툭툭 털고 집으로 나 자신을 옮기기 시작했다. 묻어두었던 생각들은 뭔가 끼어들 틈이 있다는 눈치를 챘는지 밀물 차오르듯 내게 다가왔다.


예전에 중학교 때. 흔히 하는 자살 및 정신건강 조사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내 앞자리의 친구는 엄청 밝은 성격의 소유자, 연예인 노홍철, 광희 느낌의 인싸 같은 활기를 지닌 사람이었는데 그가 '누가 자살 생각을 하냐? 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고 진심으로 궁금함에 밝은 방백을 외쳐서 놀랐었다. 누구나 삶에 지치고, 무의미함에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삶을 사는 건 아니었구나 깨달음에 머리를 맞은 기분. 그때까지 나는 모두가 그런 시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갈 힘이 안나는 시기들. 이런 삶이 계속된다면 이제 그만 쉬어도 될 것 같은 기분과, 어떻게 하면 나와 내 주변인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 없이 정리할 수 있을까 담담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던 시간들. 그런 기분은 오늘부터 갑자기 드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새, 시나브로, 서서히 스며들고, 서서히 사라지는 것. 리트머스지에 서서히 액체가 빨려 올라오고, 서서히 증발되듯. 그런 거. linearity, continuity, analog, something that's never digital. 


혼자 있는 방으로 도저히 바로 올 수가 없어서 친구와 밤 산책을 했다. 여름밤 엠티 자리를 나와 산책을 하듯 시끄러운 마음의 소음에서 귀를 돌려 이 시골의 공기를 친구와 누린 덕분에 나 자신을 옮기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걷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늘 더 괜찮은 척을 했다. 

그들의 마음에 그늘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나를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기를, 햇살을 쬐듯 따스함을 느끼기를 바랐다. 설령 내가 당장 내일 사라진다면 더더욱 그들의 마지막 기억의 나는 웃기를 바랐으니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의 미소가 늘 밝고 빛이 난다고 해줬다. 보는 자신들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웃음이라고. 그들이 내게 빛이었듯, 나 또한 그들의 빛이고 싶었으니.


감정이라는 것은 직면하면, 마치 쏟아지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볼 때처럼 내게 쏟아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감정이 무겁고 어두울수록, 그 깊고 끝이 없는 무한한 은하를 쳐다보지 못하고 앞으로 걸었다. 그저 내 발이 앞으로 똑바로 가고 있는지를 보았다. shoe gazing. 그렇게 앞도 위도 보지 못하고 걷다 보면, 사실 내가 밀물이 곧 들어닥칠 뻘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적어도 그렇게 뻘로 혼자 걸어 들어가면 나는 다른 사람들을 내 기분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으니까.


입시를 마치고 언젠가 그렇게 내가 사라질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쯤. 점점 더 초연 해지는 나를 보고 나와 함께 생활하던 사람은 내게 자신의 울분을 토하다가, 해탈한 듯한 내 모습을 불현듯 깨닫고 이야기했다. 제발 그렇게 혼자 끌어안고 가라앉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너의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감정에 무딘 자신이 보기에도 너는 위태로워 보인다고. 곧 그렇게 홀연히 없어질 것 같다고. 나는 그 시기의 내게 울고, 지치고, 소리치고, 나와 자신에게까지 화내고 원망하던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나는 내 감정이 너무 커서 일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줄였다고 고백했다. 내 기분에 그까지 잠식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그 당시의 나는 나 자신을 지쳐 쓰러뜨리기 위해서 알바를 했고, 알바 후에는 그저 멍하니, 서울의 가장 중심지인 그곳에서 앉아서 시간을, 나를 흘려보냈다. 벤치에서 나를 건져내어서, 사라지지 않고 나 자신을 내 방으로 옮길 수 있을 때까지. 몇 시간쯤 덩그러니 그러고 있다 보면 그래도 나는 식힌 커스터드푸딩을 떠내듯 나 자신을 부서뜨리지 않고 떠낼 수 있었다.


아마 그 작전은 성공적이었는지, 나는 무사히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그렇게 하루하루 나 자신을 건지고 떠내서 지금의 여기까지 왔다. 아마도 아무도 해치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밝고 따뜻한 웃음을 잃지 않고. 이 여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가까웠던 사람들, 혹은 가끔은 가깝지 않았던 사람들은 내 어깨를 빌려 울음을, 그들의 마음의 짐을 함께 흘려보냈다. 나는 사랑을, 위로를 받는 것보다 그 사람이 조금 덜 울길, 조금 더 웃길 바라는 마음, 사랑의 온기를 주는 것이 나 자신을 더 단단하고 중심을 잡게 만든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와 가까운 몇 명을 제외한 사람들은, 내가 늘 밝고 활기차서, 따뜻하고 사랑이 많아서 봄의 태양 같다고 했다. 나는 그저 담담히 미소 짓고 조용히 생각했다. 그들의 무거움과 어두움에 놀라지 않고 폭풍우를 잠재우는 시간을 함께 만들 수 있는 것은 나 또한 그 소용돌이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 덕분에 나는 나의 어두움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은 무게추임을 깨달았다. 모래주머니가 있기에, 열기구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듯, 내가 안고 사는 나의 마음의 무게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내 마음의 결을 빗질하기 위해 쓴 글이지만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이런 마음의 고요과 마음의 짐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하루하루 자신을 건져 올리고, 조금 더 웃고 조금 덜 울다 보면 사랑을 하고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힘을 안정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그래도 이 삶을 정리하기에는 아깝다는 느낌이 드는 시간들, 사람들이 생길 거라고. 그저,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다 보면 우리가 부러워하던 태양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설령 태양이 아니더라도, 우리만의 빛은 예쁘고 반짝인다고. 그러니 그 촛불을 꺼뜨리지 말아 달라고.


우리는 마음의 고요함을 위해 내일을 포기한 사람들을 위해서 물리적인 공간의 고요함을 만들고 함께 했다.  

잊고 있었던, 저 깊숙이 마치 나의 삶이 아니듯 묻어둔 나의 고요함을 직면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One more light - Linkin Park

https://www.youtube.com/watch?v=Tm8LGxTLtQk




Who cares if one more light goes out?
Well I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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