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우리도 남을 대접하는 것이 인지상정
사람들로 북적이는 엘리베이터 안. 무심코 들어가자, 다들 뒤를 향해 돌아 있는 게 아닌가. 그 뒤에도 들어오는 사람 모두 뒤를 향해 선다. 나 혼자만 앞을 보고 있는 상황. 왠지 나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아, 도저히 못 견디겠다. 뒤 돌자!
1962년에 실행되었던 사회 순응에 대한 심리학 실험의 한 장면으로, 사회의 분위기가 어떤 한 방향으로 형성이 되면, 모두가 그에 자연스레 따르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실험이다.
"팀의 업무는 마음에 들어요? 이 팀에 많은 기회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혹시 다른 커리어 계획이 있다면 회사엔 다양한 기회가 있으니, 커리어 패스를 어떻게 가져갈지 항상 고민해봐요. 혹시 경험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내게 편히 이야기해요. 도와줄게요."
디렉터와의 가벼운 1on1 시간이었다. '엥, 혹시 나의 부서 충성심을 테스트하는 건가?'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고, 신기했다. 팀장이 팀원 개인의 커리어 플랜에 관심을 두거나, 팀에서 계속 성장하고 싶어 하는 팀원을 서포트해주는 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행여 다른 팀으로 이동하고 싶다 해도 이동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준다는 건, 이미 머리가 굳어 있던 내게는 조금 생소했지만, 고마운 감동이었다. 이를 통해 구글은 개인의 성장을 조직의 성장만큼이나 중요하게 바라보는 회사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회사에 보탬이 되야겠다는 의무감도 그만큼 들었다. 아, 이게 바로 구글의 큰 그림이었던가...
"으아아아앙"
아, 우리 집 최고 상전께서 눈을 뜨셨나 보다. 비몽사몽으로 잠에 반쯤 취한 채,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저귀를 갈고는 거실로 안고 간다. 분유를 후다닥 타서는 입에 물리고는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요새 나의 하루의 시작이다. 3개월의 Paternity Leave(출산휴가/육아휴직)를 받은 나는 마음껏, 최선을 다해 육아에 집중하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아빠의 육아휴직 내지 휴가는 장애물이 많은 형편이지만, 내가 Paternity leave를 받을 때, 팀장과 팀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오직 "축하해. 회사 일 걱정 말고, 아기 잘 돌봐주고 돌아와."였다. 동료가 한 명 사라지면, 그들이 감당해야 될 일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눈치 하나 안주는 동료들이 너무 고마웠다. 이처럼 시스템도 시스템이지만, 동료들의 배려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육아뿐 아니라 어떤 휴가에도 장난스럽게라도 "다들 빡세게 일할 때 혼자 휴가 가는구나. 재밌겠다. 부럽네." 따위의 서로 득 될 것 없는 감정 소모도 없었다. 그만큼 개인의 영역에 대해서 철저히 배려해주는 문화였고, 그만큼 나도 내가 불편한 일이 있더라도 동료들을 배려해야 된다는 스스로의 다짐도 하게 되었다. 아, 이것도 구글의 큰 그림일지도...
'이래도 괜찮은 건가?'
내 개인의 삶이나 커리어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고 도움을 주는 회사를 보며, 머리가 굳어 있던 나는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서 배려와 존중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 전 직장에서도 많은 배려를 받았었고, 고마운 기억은 정말 많다. 하지만 구글에서의 개인의 성장과 삶에 대한 존중은 회사 입장이 아닌,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차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순응에 대한 심리학 실험과 같이, 나도 그런 분위기에 맞춰서 동료들을 배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전에는 동료가 다른 부서로 이동할 때 내가 해야 될 일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본능적으로 계산을 했다면, 이제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이동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 되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 존중과 배려가 기본이 되자, 다른 사람에 대한 서운하거나 안 좋은 감정이 누그러지고 회사가 조금은 더 즐거운 곳이 될 수 있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성경에 쓰여있을 정도로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진리 아닌가. 물론 각박한 회사 생활에서 하루하루 넘기는 것도 버거울 때, 동료들의 개인사까지 다 배려를 한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먼저 동료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개인적인 영역을 존중하고 배려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변화가 하나하나 주변에 물들어 모두가 그런 문화에 자연스레 순응하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표제 사진 출처: Richard Austin/Rex 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