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S Jan 11. 2019

껄끄러운 사람과 일을 한다면

나 너 좀 불편해요

'앗, 따가워! 이상하단 말이야...'

아침 출근길 때부터 조금씩 신경이 쓰였는데, 하루 종일 등에 무언가가 자꾸 따끔거린다. 하필 오늘은 회의가 계속 있어서 회의시간 내내 나를 괴롭히는데, 도대체 이게 뭐지? 겨우 회의를 다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등을 기대자 다시 따끔. "아얏!" 등 뒤를 더듬더듬 뭐가 있나 만져봐도, 화장실 거울로 비추어 보아도 당최 모르겠다. 퇴근시간이 다 되도록 이유 모를 이 증상이 나아지지가 않자 짜증이 밀려온다. '안 그래도 회사일 피곤한데, 별게 다 성가시게 하네. 제발 그만 좀 괴롭혀...' 별것 아닌, 이런 작은 불편함에 하루 종일 신경 쓰이고 짜증이 난다는 게 우습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입었던 옷을 벗어 보니, 살포시 삐져나와 있는 의류 태그 고리.

"... 너 왜 여기 있니?"

이런 껄끄럽고 불편한 녀석과 하루 동거한 것만으로도 괴로웠는데, 매일매일 함께 해야 하면 얼마나 피곤할까.


내 등짝을 괴롭힌 그 아이




반말에 막말이 솔직한건가요?

"그런 건 해외영업에서 해야 되는 거 아냐? 왜 자꾸 우리한테 떠넘겨."


'뭐야, 왜 다짜고짜 반말이야?' 마음의 소리를 꾹 눌렀다. 첫 만남부터 말이 짧았던 유관부서 담당자. 나와 경력 차이도 거의 없고 팀도 다른데, 초면에 말을 놓고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사람이어서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아니, 그 팀에서는 일을 그런 식으로밖에 처리 못해? 진짜 웃기네. 누구 맥이려고 그러는 건가." 회의를 해도 가르치듯 반말조로 하는 태도에 짜증이 나서 회의 내용이 도저히 머리에 안 들어올 지경이 되자, 이제는 이 사람과의 관계를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번 노력해서 잘 풀어보자. 세상에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하니, 그걸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다. 어느 날 마침 그 팀과 함께하는 회식자리가 있어, '잘됐다.' 하는 마음으로 참석하겠다고 번쩍하고 손들었다. 회식장소에 도착하자 저쪽 안쪽에 보이는 그의 모습. 얼굴을 보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 반사로 짜증이 올라왔지만, 오늘은 관계를 좋게 만들어보려 온 게 아닌가. 굳은 표정을 풀고, 그의 옆으로 다가가 인사하며 술을 한잔 따랐다. 조금씩 술이 들어가니 그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덕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알게 되었다. 그는 소위 말하는 '꼰대' 스타일의 선배라 할 수 있었는데, 부서나 업무에 관계없이 자신이 한 살이라도 위라면 '상하관계'를 확실히 하고, 처음 보자마자부터 윗사람이 말을 놓고 '편하게' 하는 것이(편하게 하는 것과 말을 막하는 것을 잘 구분 못하는 듯했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말이야! 또 진국인 게, 뒷담화 같은 게 없어. 사람이 말이야,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면 비겁하잖아, 응? 안 그래?"

취기가 올라온 그가 자랑스럽게 주절주절. 이렇듯 자신은 상대방 면전에서 속내를 다 말하기에 뒤에서 다른 말을 하는 등의 뒤끝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위계질서를 내세워 막말을 하고, 뒤에서 다른 말을 안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면전에서 상처되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의 생각이나 표현방식에 동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확신에 찬 생각을 통해 그가 왜 회의에서 그런 식으로 말을 거침없이 하는지, 주변의 불만을 들어도 왜 달라질 생각을 안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업무에서 종종 그로 인한 불편한 상황이 벌어져도, 그의 행동의 배경을 알게 된 덕분에 확실히 그전과는 달리 견딜만 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뉘예 뉘예 (출처: JTBC '아는 형님')



일에서 감정을 걷어내면

"그럼 여기 내려와서 직접 만드시던가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찢어질 듯한 고함소리에 내 주변 자리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또 저러는구나.' 하는 무관심해진 표정으로 이내 자신의 모니터에 얼굴을 묻는다. '진짜 이 사람이랑 일하기 싫다.' 울컥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내 전화기는 소중하니 조용히 내려놓았다. 제품 납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수출 담당자와 그 제품의 생산을 관리하는 공장 라인 담당자. 어쩌다가 우리 둘의 관계는 이렇게 힘들어진 걸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수출 업무를 본격적으로 인계받았던 어느 봄날. 전임자로부터 라인 담당자가 예민한 사람이라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그와 나의 담당 업무가 서로 부딪히기 쉽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런 말을 들을수록 왠지 모두 보란 듯이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뤄진 그와의 첫 통화. 생산 계획과는 달리 제품 출하가 안돼서 수출 일정에 문제가 생겼다는 안내를 받고는 라인 담당자인 그에게 연락을 했다.

"네, XX팀 OOO입니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오늘 저희 출하 건이 예정보다 지연되는 것 같은데, 언제쯤 출하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참나,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하겠어요? 책상에 앉아서 시키면 다 나오는 줄 아는 건가..."

... 응? 뭐지, 이 상황은? 영문도 모른 채 한방 먹으니 기분이 팍 상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그와 통화하거나 만나서 회의할 일은 계속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이런 불편한 대화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싫다고 연락을 안 할 수도 없고, 업무로 계속 긴밀하게 연락을 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보니, 그와 연락을 하거나 만날 때마다 그만큼 불편하고 짜증 날 수가 없었다. 불편해 죽겠는데 일은 계속해야 되고, 나는 그에게 아쉬운 문의도 해야 되고... 진짜 업무만 아니면 아예 공기도 섞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O대리가 원래 그 정도로 '싸움닭'은 아니었어."

그를 예전부터 알았던 다른 선배가 힘들어하던 내게 위로를 건넸다. 워낙 많은 제품을 관리하다 보니 나 같은 수출 담당자들로부터 매일같이 전화가 빗발치게 왔고, 그럴수록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가득 세우고 방어적으로 대응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걸 왜 애먼 사람한테 푸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서로 그렇게 싸울 필요가 있을까. 이 사람도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거고, 나도 내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일에 감정이 개입이 되다 보니 단순히 업무로 충돌했을 때에도 업무가 아닌 나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느껴졌고 그만큼 더욱 감정적으로 대응했었다. 그래서 쉽지는 않았지만 그와 일할 때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일만 보려 노력했다.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나 가시 돋친 반응을 지우려 했고 그가 전달하는 내용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자 그의 태도가 그다지 변하지 않았어도, 적어도 그와의 일이 못 견딜 정도로 괴롭지는 않게 되었고, 내가 이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조금은 줄게 되었다.


감정을 배제한 얼굴(모범 답안) (출처: 자까 웹툰 '대학 일기')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사람과 둘이 함께 회의실로 가는 길.

"어제 기사 봤는데, 어디 회사는 이런 복지가 있대요."

서로 불편해서 아무 말도 없이 걷다가, 그 침묵이 괴로워 먼저 화제를 던졌다. 그리고 날아온 대답.

"그 회사로 가요 그럼."

아, 네. 그러면 되겠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잘못이다. 왜 굳이 쓸데없이 그런 공격받을 화제를 꺼내서...' 스스로를 계속 자책한다. 다시는 아무 이야기도 꺼내지 않으리라. 침묵의 세상이 와서 말하고 싶어 죽을 것 같더라도, 이 사람하고는 절대 이야기 안하리라. 어린애 같은 유치한 다짐도 많이 했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았던 그 힘들었던 관계도 시간이 흘러 업무가 조금씩 바뀌면서 자연스레 교류가 뜸해졌고, 오랜 기간이 지난 지금은 싫었던 감정도 희미해졌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살면서 불편하고 껄끄러운 사람을 전혀 안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삶이 순탄하고 편하겠냐마는,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삶의 상당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데 그런 사람이 없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는 자체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나만 손해인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있을 때, 그를 이해해 보도록 노력하면서 대화의 기회를 가져 보면 생각보다는 덜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이런 방법이 안 통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때는 업무에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일만 바라보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 소모를 최소한으로 하는 게 서로에게 있어 불편한 상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되곤 했다. 그조차도 안된다면, 맘을 좀 더 넓게 갖고, 해탈하는 게 답인 것 같다. 설마 내가 평생 이 사람 하고만 일하겠는가. 우주는 한없이 넓고 우리의 존재는 먼지 같은데 우리의 이 관계도 찰나의 흔적 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견뎌낼 수 있을 거다. 그래도 그것도 아니라면... 답은 양자택일이다. 그냥 참던지, 떠나던지. 하나 고르자.


한 가지, '불편'한 관계에 대한 '불편'한 사실은... 나도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


저~기 어디쯤에 나 보이는거 같기도 한데... (출처: pixabay.com/en/milky-way-stars-galaxy-space-1653689/)







표제 사진 출처: The Business Journals/Getty Images (AntonioGuillem)

이전 05화 존중과 배려는 기브 앤 테이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