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법대로 하면야 참 좋겠지만서도...
"드디어 핸드폰 개통했다며, 어땠어?"
프랑스에서 MBA에 막 입학했던 초기, 친한 일본인 클래스 메이트에게 물었다.
"아오, 점원한테 엄청 혼나고 나왔어."
"엇, 왜?"
"불어 못하고, 영어로 물어봤다고."
'헐, 손님한테 호통까지 칠 거야 있나.' 하는 반감이 조금은 들었지만, 프랑스에 살면서 영어밖에 못하는 외국인이 못마땅했을 거란 이해도 어느 정도 되었다. '그래 내가 프랑스에 온 건, 이런 것까지 다 배우려 온 거잖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하면서 불어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가장 많이 말한 불어 문장은..."Je ne parle pas français.(저는 불어를 못해요)"
"동선 다시 체크하고, 돌발 변수 있을 수 있으니 다시 예행연습해보자."
얼마 전 애정하는 예능 프로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가 자신의 개업식 행사에 손님 오기 전 예행연습을 하는 장면이 코믹하게 그려졌다. 나는 그 모습에서 데자뷔를 느꼈다. 원래 꼼꼼한 성격이 아닌 내가, 후천적으로 업무에 실수가 없도록 챙기게 된 것은 순전히 전 직장에서의 배움 덕분이었다. 신입 시절부터 과장 시절까지 모셨던 상무님은 작은 행사도 허투루 준비하는 법이 없이 꼼꼼하셨다. 그분과 돌린 예행연습 시뮬레이션을 떠올리면, 과장 조금 보태 '내가 연극배우로 취직한 건가.' 하고 헷갈리기도 했으니. 그만큼 우리 행사는 항상 완벽하게 진행되었고, 나의 덤벙대던 성격은 삼성에 맞춰 변화했다.
"이 기능은 꼭 넣어야 돼. 그러니 일본 현지 클라이언트에 일정 조정 미팅 다시 진행하자."
갤럭시 스마트폰을 일본에 출시할 때, 어떤 기능을 탑재해서 나갈지 내부적으로 이견이 있었지만, 위에서 결정을 내리자 방침대로 실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랐다. 내부에서 보는데도 이건 '정말 빠르다.'라고 느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기능 추가 판단은 옳았고, 시장에 적기에 출시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다. 경영진에서 방향을 결정하면, 실무진은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달성해냈고, 그것이 바로 내가 느낀 삼성의 힘이었다.
"네, 그런데 구상하신 내용이 더 구체화된 다음에 제가 합류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이 단계에 굳이 제 역할이 필요할까요?"
클라이언트에 구글 광고 캠페인을 제안하고자 내부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주니어 직원의 한마디. '어멋? 나한테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라고 외치는 내 마음의 소리. 삼성의 Top-down 방식의 업무 진행에 익숙했던 내가 새로운 직장에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수평적 문화라는 게 사실 말만 들어서 머리로만 이해했었지, 실제로 회사 생활하면서 제대로 겪어 본 적이 없었구나. 솔직히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분명히 그의 의견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다.
내가 구글에서 새로이 배운건, Role의 차이와 Level의 차이의 구분이었다. 물론 전 직장에서도 Role과 Level은 다른 것이었지만, 여기는 Role이 다르면 Level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역할에 맞는 목소리를 분명히 낼 수 있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같은 부서건 유관 부서건 어떤 경우에도, 내가 아무리 직급이나 연차가 높더라도 다른 역할이 있는 직원에게 어떤 걸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되고, 합리적인 설득을 통해 협업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속도가 Top-down 방식보다는 조금 느릴 수도 있다. 그러나 각 역할에 맞는 목소리가 적절하게 나옴으로써 얻어지는 합리적 판단의 결과는 느린 속도를 상쇄할 만큼의 커다란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
"Congrats! 넌 최고야!" "정말 잘했어! 너, 그리고 너와 함께한 동료들한테 경의를 표해. 정말 멋진 결과야." "와우! 진짜 Awesome!!!" "난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와... 나라를 구한 기분이야!' 신규 파트너와 프로젝트를 론칭하게 되었다는 알림 메일을 보내자, 각국의 동료들로부터 뜨거운 축하 메일이 밀려 들어왔다.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조금은 낯 뜨거운 축하. 근데 나쁘지 않았다. 생일 맞은 기분이었다. 주위 동료에게 공개 칭찬을 보내 사내에 공유하거나, 칭찬의 의미로 보너스를 보내면 회사에서 소액의 인센티브를 주는 등, 구글의 '칭찬을 장려하는 문화'는 새로 입사하여 적응하는 내게는 즐거운 생소함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동료에게 감사 보너스를 보내고 칭찬의 메일을 에지 있게 보내게 된 내 모습에 '아, 나 구글러 다 됐구나.' 하며 뿌듯해하곤 한다.
"캘린더 보시고 빈 시간 아무 때나 초청해주세요."
구글에서 업무하다 보면 정말 자주 듣고, 또 하게 되는 말이다. 구글 캘린더에 모든 직원은 자신의 스케줄을 시간 단위로 입력해서 모두에게 공유한다.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직원들의 스케줄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만큼, 서로의 업무 진행을 투명하게 알 수 있고, 또 개개인의 시간을 존중할 수 있다. 나도 회의를 주관할 때, 참석자 전원이 올 수 있는 일정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불참 시엔 미리 캘린더로 알림을 하여 회의 때 못 오는 사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슬픈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처음엔 '아, 나 빈둥대는 거 다 들키는 거 같아.' 하면서 민망해했지만, 어느덧 캘린더 공유 없이 업무를 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역시, 나 구글러 다 됐나 보다.
"Sam, 방금 원빈이 말한 'XX놈아'는 우리끼리는 써도 되는 말이야?"
대학 졸업반 시절, 나와 종종 어울렸던 미국인 친구 Daniel이 한국 영화를 함께 보다가 툭 던진 난감한 질문. '소위 교양 있는 한국인의 육두문자 허용범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깊은 고찰에 잠시 빠져본다. Daniel은 원어민 강사였는데, 보통 한국어 습득을 소홀히 하던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수준급의 한국어를 구사했다. 덕분에 많은 한국인 친구들과 더 자유롭게 어울렸고, 혼자서 허름한 국밥 맛집에서 깍두기 국물 말아 찰지게 한 뚝배기 하며 주인아주머니랑 농담 따먹기도 하는 로컬 라이프를 즐길 수 있었다.
새로운 곳에 가면 당연히 새로운 문화를 만나게 된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아무리 영어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들의 한국 생활의 깊이와 다양함은 따라갈 수가 없는 것처럼, 내가 그 문화에 녹아들어야 제대로 그곳의 삶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자신을 바꾸며 적응하려는 노력을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은 나를 변화시켜 적응하는 것은 정체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나의 갇힌 사고를 더 넓은 세상으로 열어줄 열쇠는 바로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