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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S Jan 03. 2019

'네고(협상)의 달인'이 되고 싶어요

협상의 기술 내 것으로 만들기

"아놔, 이제 보니 또 너네 동네잖아!"


술자리에서 살짝 취기가 오른 절친 하나가 방금 막 깨달았다는 듯 외친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상대방을 설득할 일이 참 많다. 어렸을 때 선물 받으려고 동네 주일학교에 반 친구들을 네댓 명씩은 데리고 갔던 시절부터, 수도권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친구들을 내가 사는 동네에 불러서 모임을 갖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치열했던 나의 설득의 역사를 돌아보며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막무가내 설득이 먹히는 건, 그 대상이 나를 좋아해 주는 고마운 주변 사람들이니 가능했던 일이었을 뿐. 나와는 다른 목적이 있는 비즈니스 상대를 설득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캬, 역시 너네 동네가 눕는 맛이 나는구나 (feat. 설득에 넘어가 주는 고마운 친구들)




누구나 긍정적인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저희 제품도 함께 올해 안에 출시할 방법이 없을까요? 회장님 지시사항으로 급하게 요청드리게 돼서..."

신제품 출시에 맞추어 다양한 파트너사의 제휴 제품들을 함께 출시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일 때, 업체 A사가 뒤늦은 합류 의사를 밝혀왔다.

"아... 어쩌죠? 개발 리소스가 기존에 미리 협업을 요청해왔던 업체들에 전부 투입되어 있어서, 아무래도 연내 출시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신규 업체의 연내 합류에 대해서는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제휴 업체가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이지만, 사정이 아무래도 안 되겠으니 내년 초에 진행하자고 협의를 해보자.'라고 프로젝트의 모두가 생각했다. 단 한 사람을 빼고. 업무로 종종 보게 되는 유관부서의 B님은 파트너십 업무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그는 양사를 만족시켜 비즈니스를 반드시 성사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관련부서의 의견을 구했다.

"이건 도저히 안될 것 같네요. 저쪽에서 개발을 끝내고 난 뒤에 우리 쪽 검증기간도 X주 잡아야 하는데, 그 업체에서 개발을 언제 완료한다는 보장도 없어서. 그것만 마냥 기다리면서 다른 프로젝트 인력 줄여 리소스를 미리 배분할 수는 없습니다. 내년에 다시 이야기하자 하시죠." 유관부서 담당자의 한마디.

B님은 A사로 직행해서, 의 말을 이렇게 전달했다.

"연내 출시 기준으로 검증기간 역산을 해보면, X월 X주차네요. A사 실력이시면 워낙 탁월하실 테니까, 이때까지 개발 완료해서 주실 수 있으시겠죠? 저희도 지금 사실 모든 인력이 기존 계약 업체들 건으로 투입이 되어 있다 보니 원래대로라면 인력이 전부 내년 이후에나 배정될 수 있는 상황인데, 개발 완료를 이때까지로 컨펌만 해주시면 저희 쪽에서 특별히 A사는 어떻게든 도움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도 연내 출시는 안 되겠지.'라고 우리와의 협업을 반쯤 포기했던 A사의 분위기를 '해볼 수 있겠다!' 하는 분위기로 바꾼 건 B님의 긍정적인 희망의 한마디였다. 그리고는 다시 만약의 사태를 걱정하는 A사의 하소연.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좀 마음에 걸려서 말씀드립니다만, 회장님부터 내려온 지시니 더욱 최선을 다해서 일정에 맞추려 준비는 해보겠는데요, 아무래도 이 프로젝트는 처음이다 보니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몰라서 예정에 맞춰 개발을 완료 못할까 봐 걱정이네요..."

A사와 회의를 마친 B님은 다시 회사로 돌아와, A사의 우려 섞인 답변을 이렇게 전했다.

"A사에서 우리 검증 일정 맞춰서 개발 완료하겠다고 합니다. 회장님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전사 역량 투입해서 진행할 정도로 사활을 걸고 있으니 꼭 비즈니스 한번 만들어 보시죠. 만에 하나 첫 프로젝트인 이유로 시행착오 때문에 개발 지연이 벌어질 것 같으면 저희에게 사전에 계속 공유하게 하면서 일정 협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설사 지연이 발생해도 A사의 개발 지원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건 아니니, 바로 수정 보완이 되도록 해보죠."

결국 그의 설득에 A사는 연내 출시를 바라보고 달리게 되었다.

같은 말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 내용은 건드리지 않았다. 단지 부정적 표현을 긍정의 언어로 바꿨을 뿐. 사람들은 협상할 때, 무의식적으로 방어적이 되고 부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합의점을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경우들이 종종 있고, 그런 때 말의 뉘앙스만 살짝 바꿔주면 헤어질 뻔한 짝이 만나게도 되는 것이다.


부정적 표현을 긍정의 언어로 (출처: 영화 '내부자들')



내 얘기 좀 들어줄래?


"오늘 학교에서 3반 애들하고 축구했어"

"그래? 나는 피자 한판도 혼자 먹을 줄 안다"

"진짜? 근데 나 거기서 내가 두 골 넣었다"

"오, 난 그것도 라지 사이즈로 먹었어"

어린이 둘이 얘기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가끔 재미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둘이 대화라고 하고는 있는데, 알고 보면 서로 자기 얘기만 계속하고 있는 거다. 어라, 근데 왠지 익숙한 느낌. 가만 보니 내가 그랬었네. 내가 업무에서 하던 협상이 딱 이모양이란 걸 느꼈을 때의 그 부끄러움이란...

광고 세일즈 업무를 할 때,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담당한 기업들이 유튜브에 광고를 많이 낼까?'였다. 유튜브 사용자들은 탐탁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기업들이 유튜브에 광고를 많이 하도록 하는 게 나의 업무였다. 당시 내가 담당하던 C사는 회사의 광고비 규모에 비해 유튜브 투자에 대해서는 점점 더 인색해지고 있었고, 나는 이 회사의 유튜브 광고 집행을 늘리는 게 미션이었다.

"우리 아빤 태권도 100단이야!" "우리 집은 세상에서 제일 커!"  (출처: http://amyhtown.tumblr.com/)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처음에 나는 마치 '성냥팔이 소녀' 같았다. 그저 앵무새처럼 내 입장만을 내세우며, '이걸 쓰면 어떻게 좋고 어떻게 된다더라.' 상대 회사는 계속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얘기하는데, 난 그저 '광고해라 그러면 복 받을 거다.' 따위의 주입이나 하고 있었던 거다. C사의 관심사는 온라인 광고를 많이 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새로운 콘셉트의 광고 캠페인을 하고 싶어 했다. 구글이라면 새로운 기술이 많을 테니 '새로운 광고 기술은 없냐', '신박한 캠페인 제안은 없냐'는 문의를 해왔고, 나는 새로운 기술은 테스트성으로 진행하게 되어 아무래도 큰 규모의 투자는 어려우니, 좀 더 규모를 크게 가져갈 광고 제안을 해왔던 것다. 내 제안의 무게중심은 나의 니즈였고 그들의 요구는 그저 양념처럼 들어가,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광고 솔루션 중에서 그래도 새롭다고 할만한 것을 제안하는 식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나의 의중은 그들에게 간파되어 협상에 진척이 없었다.

어린이들의 말싸움이 연상되었던 그날, 다시 판을 짜 보기로 했다. 같은 제안이라도 그들의 고민을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보자. C사가 새로운 광고 솔루션을 원하는 이유부터 그들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파일럿 프로젝트로 해볼 만한 신규 기술을 분류해냈다. 그래, 비즈니스 규모를 크게 키우는 것도 일단 상대방이 날 필요로 해야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에 대해 기대가 줄어들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니, 이 기대감을 돌려놓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그동안 보다 개인화된 광고 캠페인에 대해 니즈가 크셨죠? 이번에 새로 개발된, 타깃 고객에게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캠페인을 최초로 집행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테스트성으로 일부 진행하고 성과 보면서 규모를 늘려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고민을 하니, '새로운 시도'의 솔루션 중에서 대규모 캠페인으로 키울 가능성이 있는, 상대가 솔깃할 제안이 만들어졌다.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고민의 시작점을 어디에 두냐'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결과, 작은 파일럿 프로젝트를 2건 진행하게 되었고, 그중의 한건은 C사 내에서 호평을 받으며 투자를 크게 늘려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 C사와 협상을 할 때, 나는 상대의 말을 듣고 내 의견을 제시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말 그대로 그저 '듣기'만 한 것이었다. 그들의 말은 한 귀로 흘린 채 나의 니즈만을 중심에 두고 의견을 제시했기에, 당연히 상대방은 자신이 손해 본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목표에만 집중했더니 역설적으로 그것을 달성 못하게 된 것 아닌가.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어떤 요구를 왜 하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내가 진정으로 고민한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연애할 때도 그렇지 않나?

"오빠, 나 부산 여행 못 갈 거 같아. 시험기간이라."

지난번에 식당 옆자리에 있던 갓 사귀기 시작한 듯한 커플의 대화. 그 남자, 얼굴에 나라를 잃은 것 같은 표정이 살짝 스쳐가더니, 다시금 아빠 미소를 지으며

"아... 시험기간이구나. 그럼 해운대 앞 카페에서 같이 공부할까? 난 바다 보면서 공부하면 그렇게 잘되더라고. 회가 또 DHA가 그렇게 많잖아. 회 한 접시 먹고 공부하면 이번 성적 진짜 잘 나올걸?"

최선을 다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노력상' 하나 드리고 싶었다. 연애에는 물론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이렇듯 내 고민을 함께 해주고 긍정적으로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머리로는 당연히 이해하고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실제 내가 그 협상의 자리에 갔을 때 잘 활용할 수 있느냐'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만큼 내가 현장에서 실제로 활용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기에, 나는 오늘도 상대방의 고민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나의 제안을 긍정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끊임없이 연습하고 있다. 진정한 '네고의 달인'이 되는 그날까지.


네고의 달인 '4딸라' (출처: SBS 드라마 '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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