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S Jan 12. 2019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대가 바로 해결사

"일이 뭐라고 생각해요?"


응, 갑자기? 부서 배치 첫날. 각 잡고 긴장하고 있는 신입사원에게 커피 한잔을 건네며 질문을 툭 던진 차장님. 난 아직까지 여기서 아무 일도 못해 봤는 걸요... '이 질문에 답하는 게, 내 인생 첫 번째 업무구나. 잘 대답해서 사장까지 올라가야지.(응?)'라는 생각에 머리를 굴렸지만, 내가 무슨 답을 했는지는 사실 기억도 안 난다. 얼마나 진부한 답이었을지. 어차피 이 질문은 사실 '답정너'였기에, 중요한 건 이어지는 차장님의 설명.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에요. 그러니까 일을 한다는 것은 문제를 계속 해결해 나가는 거지."

오, 그럴싸한데? 마음에 딱 와 닿았다. 이 말을 해주신 차장님이 참 멋져 보였고 시간이 갈수록 그 의미가 공감이 되었다. 지금도 이 말은 내 마음에 깊이 박혀, 주니어 직원이 들어오면 폼 잡으면서 똑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종종 받는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끊임없이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책을 찾아 헤매는 '일'을 하고 있다.


오, 그럴싸한데?




정신 차려보니 심천(선전) 가는 비행기 안


현지에서 만납시다


더듬더듬 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

"이런 때 왜 또 전화번호가 생각이 안 나는 거야..."

마음이 급하니 더 머리가 안 돌아간다. 

"중국 심천행 비행기표, 제일 빠른 걸로 예약해주세요!"


회사 여행사에 긴급으로 항공권 수배를 하고, 바로 일본 통신사업자에게 연락한다.

"전 내일 비행기로 심천 업체 공장에 가 있겠습니다. 현지에서 뵙죠."

이렇게 007 작전하듯이 정신없이 일을 진행시키고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한숨을 돌린다.


일본에서는 스마트폰 매장에 샘플로 전시하는 플라스틱 모형(목업)을 통신사가 직접 구매하고 품질을 까다롭게 검증한다. 문제는 목업이 자신들 기준에 통과하지 못하면, 스마트폰 제품 자체를 출시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기준이 다르기에 뭐가 옳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매장에 전시하는 플라스틱 모형의 퀄리티 문제로 스마트폰 제품 자체의 출시가 보류되는 경우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래서 그만큼 일본향 목업의 검증 통과는 중요한 이슈였는데, 이번에 일본 목업을 처음 담당한 중국 심천의 업체는 통신사의 까다로운 기준을 계속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출시 예정일이 코앞에 다가오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목업때문에 출시가 밀리게 생겼어?"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제품 담당이었던 나는 필사적으로 문제없이 출시할 방법을 찾았다. 전체 프로세스에서 뭐가 문제인지 하나하나 짚어보니, 생산된 샘플을 검증하는 리드 타임(Lead time)이 너무 길었다. 이 시간만 줄일 수 있어도 출시일에 제품을 낼 수 있어 보였다. 과정은 물리적 거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선 중국 심천의 목업 공장에서 샘플 생산을 하고, 이를 국제 택배로 일본에서 대기하고 있는 나에게 보낸다. 나는 통신사에게 이 샘플을 보여주면서 통과 여부를 협의하게 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수정 사항이 나오면 다시 중국 업체에서 그 수정을 한 뒤, 위의 절차를 반복하게 된다. 사실 수정사항이란 게, 내 개인적으로는 조금 융통성 있게 넘어가도 되지 않나 싶은 자잘한 것도 많아서 합격을 안주는 통신사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목업 화면에 붙이는 그림 종이가 조금 어둡다'던가 '모서리의 곡선이 덜 완만하다'던가 하는 이유인데, '이건 합격이다, 아니다'라며 보는 사람에 따라 이견이 분분한 이슈들이 많았다. 그러나 원망한다고 일정이 단축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기에, 출시일에 맞춰 목업 제품을 최종 합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려 했다. 


결국 내가 찾아낸 해결책은 통신사와 함께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샘플을 바로 확인하고 합격할 때까지 수정, 생산, 검수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된 사례는 전에 전혀 없던 터라, 양사의 허가를 받는 게 우선이었다. 이것이 내가 믿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에 꼭 이렇게 진행해야 된다고 우리 회사 임원뿐만 아니라 통신사까지 설득했고, 다행스럽게도 양사의 오케이가 떨어졌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중국으로 건너가서, 목업 업체까지 3개 회사가 붙어서 지지고 볶은 끝에 스마트폰을 무사히 예정대로 출시할 수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프로세스를 바꾼 덕분에.


여럿 웃기고 울렸던 그 목업



그 비용 내가 줄여줄게요

"단가 못 올리면 제품 공급은 어렵겠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귀에 쏙 들어왔다. 눈 앞을 깜깜하게 한 사은품 제작 업체의 연락.


매 분기마다 일본 전국 10여 개 도시에서 휴대폰 매장 판매원을 대상으로 제품 설명회가 열린다. 실제로 판매하는 영업 직원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모든 제품 메이커가 참여해 자사 제품을 홍보하느라 열기가 뜨거운 행사다. 물론 나도 매 분기마다 참석해서 함께 그 열기를 뜨겁게 달구곤 했다. 그 행사에서는 메이커마다 볼펜이나 열쇠고리 같은 작은 사은품을 부스 방문자에게 나눠주는데, 재미있는 건 상당수가 오직 그 사은품을 받기 위해 부스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쟁사끼리 '어느 메이커가 이번에 어떤 걸 준비했다더라.' 하는 견제가 상당했다.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눈에 띄고 저렴한 제품이 없을까 발품을 팔던 중, 어렵사리 휴대폰 모양의 작은 열쇠고리를 고퀄리티로 만드는 업체를 찾아냈다. 다양한 휴대폰 제품의 모양과 컬러를 본떠서 만든 덕분에, 첫 행사에서 바로 참석자들의 인기를 독점했다. 다른 메이커 홍보직원들조차 서로 달라고 할 정도라, 소니 직원이 삼성 휴대폰 모양 줄을 폰에 달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에 묘한 승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업체에서 제품 단가를 우리의 마케팅 예산으로는 감당 못할 금액으로 올리겠다는 연락을 해온 것이다. 사내 담당부서에 확인하여 그 정도 예산은 지원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고, 요구한 가격을 들어주는 제일 확실한 해결책을 눈물 머금고 포기해야만 했다. '이걸 어떻게든 사야 한다.' 단가를 올려야 하는 배경 원인이 있을 테니, 눈에 보이는 문제가 아닌 진짜 근본 원인을 찾아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희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이런 긴급 주문을 맞추려면 라인도 대기시켜야 하고, 디자인 시안을 받자마자 급하게 금형 떠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어요."

원인을 알게 되자, 다른 해결책이 떠올랐다. 투입되는 비용이 많아서 가격을 올려야 하는 거면, 투입 비용을 낮추면 가격을 유지시킬 수 있겠지? 바로 가격 인상 요인을 줄이는 제안을 던졌다.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필요한 제품이니, 주문 시기와 주문량 등 수요예측을 좀 더 장기적으로 주고, 디자인 시안도 최대한 빨리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다행스럽게 가격을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할 수 있었다. 만약 비용절감이라는 해결책을 못 찾고 업체가 요구했던 단가 인상만 신경 쓰느라 주문을 못했다면, 그 해의 삼성 부스는 그만큼 북적였을까.


"나도 사은품 주세요." 대략 이런 느낌 (출처: markfweber.com)



포기하면 편하다?


"저희는 이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 클라이언트의 단호한 답변.

"이 숫자가 최소 조건이에요. 이 보다는 못 줄여요." 사내 담당부서의 단호한 답변.

아, 나는 어쩌란 말이냐... 단호한 답변 사이에 끼어 버렸다.


클라이언트 A사와의 파트너십 협정을 위해 조건을 조율하다가 벽에 부딪혔다. 파트너십의 핵심 내용이자, A사의 주요 관심사인 부가 서비스 제공을 위한 조건이 안 맞는 것이다. 부가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A사와의 협업이 일정 규모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A사가 그간 해오던 유튜브 투자규모를 감안하면 택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보니 서로 '내 말만 들어.'라고 평행선을 그리는 상황이 돼버렸다.

사실 좀 흔들렸다... (출처: 김규삼 웹툰 '쌉니다, 천리마 마트')

'아, 그냥 포기할까... 포기하면 편할 것 같은데...'

답이 안 보여 그냥 포기하자는 유혹이 내게 손짓을 했지만,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비즈니스 성장을 위해 양사 간 파트너십은 필요하고, 파트너십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협업 규모가 필요하다. 그런데 A사의 내년 마케팅 투자는 그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협업 분야에 더해 새로운 협업 기회를 만드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기존에 안 한 사업분야를 찾으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머리에 기름칠이라도 해야 하나 자책하던 중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머리에 '핑'하고 떠올랐다. '유레카!' 바로 A사의 해외 광고 캠페인. 담당자 미팅이나 언론 기사를 통해, A사가 전부터 해외 시장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아직까지 성과가 신통치 않다는 것은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해외 예산은 국내 예산과는 별도로 책정되어 있었고,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구글과의 협업은 국내 시장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들이 어려움을 겪는 해외 시장 마케팅이라는 가려운 부분만 긁어줄 수 있다면, 이게 바로 Win-win 전략이 아닌가? 꽉 막혔던 협상이 다시 뚫릴 수 있겠다는 희망이 나를 움직였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해외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해외 시장 데이터가 많은 우리와 협업하는 게 그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설득에 수긍했다. 그렇게 신규 투자에 합의하며 양사는 파트너십을 체결하게 되었다. 포기하면 편하다? '기존에 안 했던 사업이니까 어차피 안 하겠지.'라고 포기했다면, 아마도 편하지 않았을 거다. 




"아오, 넌 왜 맨날 뻘짓을 하냐. 그냥 다들 하는 대로 빨리 깨버리지."


게임할 때, 그런 친구가 있었다. 공략 매뉴얼대로 안 하고 이것저것 이상한 거 다 시도해보면서 퀘스트를 깰 때마다 좋아라 하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친구 일 참 잘할 것 같다.

내가 업무에서 문제를 마주했을 때, 겉으로 보이는 문제에만 몰두해서 기존에 갖고 있던 프로세스 안 혹은 기존에 하던 사업의 틀 안에서만 해답을 찾아내려 했다면 아마도 일은 완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게 주어진 업무를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처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라고 생각했기에, 다행히 다양한 해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게임처럼 공략집이란 게 있고 매뉴얼대로만 진행된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세상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맞닥뜨린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표제 사진 출처: pixabay.com/en/hand-rubik-cube-puzzle-game-2208491/

이전 11화 효율적으로 일하기: 공수를 줄이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